마리나 리트비노비치
1. 개요
마리나 리트비노비치는 러시아의 정치 컨설턴트이자 인권 운동가이다. 1990년대 후반 부총리 보리스 넴초프를 위한 정치 웹사이트를 제작했으며, 2000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선거 운동을 도왔다. 2003년부터는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가리 카스파로프 등의 선거 운동을 지원하는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모스크바 공공 모니터링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수감자들의 인권 보호에 힘썼으며, 2021년 러시아 하원 선거에 출마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촉구했다가 체포되었으며, 2024년 5월 러시아 법무부에 의해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되었다.
| 본명 | 마리나 알렉세예브나 리트비노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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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Marina Alekseyevna Litvinovich |
| 출생일 | 1974년 9월 19일 |
| 출생지 |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
| 국적 | 러시아 |
| 직업 | 저널리스트, 선거 캠프 매니저, 정치인 |
| 학력 |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 (1998년 졸업) |
| 과거 소속 정당 | 우파 세력 연합 (2003년) 열린 러시아 (2003년) 우리의 선택 (2004년) 자유 러시아 (2004년) 또 다른 러시아 (2006년—2008년) 2008 위원회 (2008년) 시민 플랫폼 (2014년) 성장당 (2016년) 시민 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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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인권 운동가 -
옐레나 본네르
옐레나 본네르는 소련과 러시아의 인권 운동가이자 반체제 인사로, 핵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아내로서, 프라하의 봄을 계기로 인권 운동에 투신하여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창립 멤버로 활동하고, 사하로프 사후에도 인권 운동을 지속하며 푸틴 정권 비판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
러시아의 반전 운동가 -
알렉세이 나발니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변호사이자 정치 활동가, 반부패 운동가로서, 러시아 정부 고위층의 부정부패 폭로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 비판 활동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나, 독살 시도 후 체포 및 투옥되었고, 그의 활동과 사망은 엇갈린 평가와 국제적 비난을 야기했다. -
러시아의 반전 운동가 -
안나 폴릿콥스카야
러시아의 탐사 보도 기자이자 작가인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노바야 가제타》에서 활동하며 제2차 체첸 전쟁 취재 중 러시아군과 체첸 반군 양측의 인권 침해를 폭로하고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다 2006년 모스크바에서 암살당했다. -
1974년 출생 -
강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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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출생 -
이즈미 겐타
이즈미 겐타는 1974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태어나 2003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민주당 정권에서 내각부 부대신을 역임하고, 2021년 입헌민주당 대표가 되어 중도 자유주의, 진보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2. 초기 활동
리트비노비치는 1996년 정계에 입문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부총리였던 보리스 넴초프를 위해 러시아 최초의 정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넴초프는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주요 반대자로 활동하게 된다. 리트비노비치는 2000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는 푸틴의 선거 운동을 도왔으며, 푸틴에게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치고 러시아 최초의 온라인 대통령 회의를 조직하기도 했다.
2003년부터는 직접 공직에 출마하는 대신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다른 정치인들의 선거 운동을 지원했다. 이 시기부터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가리 카스파로프 등 푸틴 정권과 대립하는 인물들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2.1. 보리스 넴초프와의 관계
1990년대 후반, 리트비노비치는 당시 부총리였던 보리스 넴초프를 위해 러시아 최초의 정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넴초프는 나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매우 눈에 띄는 반대자가 되었고, 2015년 모스크바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2.2.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관계
리트비노비치는 정치 경력 초기에 블라디미르 푸틴과 협력했다. 2000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당시 푸틴의 선거 운동을 도왔으며, 푸틴에게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치고 러시아 최초의 온라인 대통령 회의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리트비노비치는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푸틴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 가리 카스파로프의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특히 카스파로프의 통합 시민 전선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푸틴 정권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2007년 4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카스파로프를 심문한 것에 대해 "FSB는 현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극단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며 "푸틴에 반대하는 슬로건을 외치면 극단주의자로 낙인 찍힌다"고 비판했다. 같은 해, 정신과 진료소에 강제 수용된 야권 운동가 라리사 아라프의 사례를 알리고, 시위를 주도하려던 카스파로프가 경찰에게 구타당했다고 전하는 등 푸틴 정권 하의 인권 및 정치 탄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모스크바 공공 감시 위원회(ONK)에서 활동하며 수감자 인권 문제에 관여했으나, 수감 중이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측 변호사 류보프 소볼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위원회에서 배제되었다. 리트비노비치는 이러한 조치가 레포르토보 구치소 수감자들을 위한 자신의 활동 때문이라고 반박하며, 푸틴 정권과의 갈등 관계를 보여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리트비노비치는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 반전 시위를 촉구했다가 집을 나서던 중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2024년 5월 31일, 러시아 법무부는 리트비노비치를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하였다. 이는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에 대한 탄압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3. 야권 정치 컨설턴트 활동
2003년부터 리트비노비치는 공직 출마를 고려하는 대신, 다른 정치인들의 선거 운동을 돕는 정치 컨설턴트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과 마찰을 빚어 투옥된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의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이후 야권 정치인 가리 카스파로프의 조수로 일하며 그의 정치 조직인 통합 시민 전선의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리트비노비치는 푸틴 정권의 야권 탄압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2007년 4월, 러시아의 국가 안보 기관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카스파로프를 심문하자, 그녀는 "FSB는 현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극단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며 "푸틴에 반대하는 슬로건을 외치면 극단주의자로 낙인찍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야권 운동가 라리사 아랍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된 사건을 폭로하며 인권 침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기여했다. 리트비노비치는 카스파로프가 시위를 주도하려다 경찰에게 구타당한 사건(2007년 11월)이나, 카스파로프 지지자들이 대통령 후보 지명 모임을 위한 장소를 대여하지 못해 결국 카스파로프가 대선 출마를 포기하게 된 상황(2007년 12월) 등 야권 인사가 겪는 어려움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도 수행했다.
3.1.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의 관계
2003년 초부터 리트비노비치는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의 컨설턴트를 맡았다. 호도르콥스키는 크렘린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후 10년 동안 투옥되었으며, 투옥 전까지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중 하나였다.
3.2.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관계
리트비노비치는 야권 정치인 가리 카스파로프의 조수로 일하며, 그의 통합 시민 전선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7년 4월, 그녀는 러시아 국가 보안 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이 카스파로프를 심문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FSB는 현재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극단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 푸틴에 반대하는 슬로건을 외치면, 당신은 극단주의자로 낙인 찍힌다"고 지적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카스파로프가 시위 집회를 이끌려다 경찰에게 구타당한 사건을 알렸으며, 12월에는 카스파로프가 지명 모임을 위한 장소를 빌릴 수 없어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4. 인권 운동 및 반체제 활동
리트비노비치는 1990년대 후반, 당시 부총리였던 보리스 넴초프를 위해 러시아 최초의 정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넴초프는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주요 반대자가 되었으며, 2015년 모스크바에서 암살되었다. 그녀는 또한 크렘린과의 갈등으로 10년간 투옥되었던 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의 컨설턴트로도 활동했다.
이후 야당 정치인 가리 카스파로프의 조수로 일하며 그의 통합 시민 전선 대변인을 맡았다. 2007년에는 연방보안국(FSB)이 카스파로프를 심문한 것에 대해 "FSB가 현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극단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항의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정신과 진료소에 강제 입원된 야권 운동가 라리사 아랍의 사례를 알렸고, 11월에는 카스파로프가 시위 도중 경찰에게 구타당했다고 밝혔으며, 12월에는 카스파로프 지지자들이 모임 장소를 빌릴 수 없어 그가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모스크바 공공 감시 위원회(ONK)에서 활동하며 러시아 교도소 내 수감자들의 인권 상황을 감시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조)
2021년에는 2021년 러시아 하원 선거에 국가 두마 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한 2022년 2월 24일, 리트비노비치는 러시아 전역에서 반전 시위를 촉구했다. 그러나 집을 나서던 중 러시아 경찰에 의해 구금되었다.
2024년 5월 31일, 러시아 연방 법무부는 리트비노비치를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했다.
4.1. 모스크바 공공 감시 위원회(ONK) 활동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리트비노비치는 러시아 감옥의 수감자 상태를 감시하는 감시 단체인 모스크바 공공 감시 위원회(ONK)에서 활동했다. 2021년 3월, 리트비노비치는 알렉세이 나발니의 반부패 재단 변호사인 류보프 소볼에 대한 조사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ONK에서 제외되었다. 리트비노비치는 이 혐의에 대해 반박하며,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된 사람들을 위한 그녀의 활동 때문에 제외되었다고 주장했다.
4.2. 2021년 러시아 하원 선거 출마
2021년, 리트비노비치는 2021년 러시아 하원 선거에서 국가 두마 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이는 푸틴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한 정치 개혁을 이루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출마 당시 "나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 그리고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거의 아무도 남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결의를 보였다.
5.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운동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리트비노비치는 러시아 내 여러 도시에서 반전 시위를 열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 직후 집을 나서던 중 러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2024년 5월 31일, 러시아 연방 법무부는 그녀를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하였다.
5.1. 반전 시위 주도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리트비노비치는 러시아 주요 도시들에서 반전 시위를 열 것을 촉구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적인 시위 요구 직후, 그녀는 집을 나서던 중 러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는 푸틴 정권 하에서 반전 여론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5.2. '외국 대리인' 지정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리트비노비치는 러시아 내 반전 시위를 촉구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집을 나서던 중 러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되기도 했다.
이러한 리트비노비치의 반전 활동과 지속적인 정부 비판은 푸틴 정권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2024년 5월 31일, 러시아 연방 법무부는 그녀를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하였다. 러시아의 '외국 대리인' 지정 제도는 정부에 비판적인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로 비판받는다. 리트비노비치의 지정 역시 그녀의 반전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