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나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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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세이 나발니(1976년 6월 4일 ~ 2024년 2월 16일)는 러시아의 변호사, 정치인, 반부패 운동가였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양한 부패 혐의를 제기하고 시위를 조직했다. 그는 러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2020년 독살 시도와 여러 차례의 투옥을 겪었다. 나발니는 2024년 2월 북극의 교도소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은 국제적인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2017년과 2019년에 올해의 정치인으로 선정되었고, 2021년에는 사하로프 상을 수상했다. 그는 회고록 《애국자》를 남겼다.

알렉세이 나발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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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나발니
이름알렉세이 나발니
원어 이름Алексей Навальный러시아어
로마자 표기Aleksei Anatolyevich Navalny
출생일1976년 6월 4일
출생지부틴,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련
사망일2024년 2월 16일
사망지하르프, 야말리아, 러시아
안장 장소보리소프스코예 묘지
서명Signature of Alexei Navalny.svg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NavalnyLiveChannel
유튜브 채널Алексей Навальный
직업
직업정치인
활동가
블로거
알려진 업적부패 활동
소속 정당
정당미래의 러시아 (2013–2021)
무소속 (2007–2013)
야블로코 (2000–2007)
기타 정당NAROD (2007–2011)
나발니 본부 (2017–2021)
가족 관계
배우자율리야 아브로시모바 (2000년 결혼)
자녀2명
학력
모교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
러시아 연방 정부 산하 금융 대학교
정치 활동
직책미래의 러시아 대표
임기 시작2019년 3월 28일
임기 종료2021년 1월 17일
부대표레오니드 볼코프
전임자이반 즈다노프
후임자레오니드 볼코프 (대행)
임기 시작12013년 11월 17일
임기 종료12018년 5월 19일
전임자1'직책 신설'
후임자1이반 즈다노프
직책2러시아 야권 협의회 위원
임기 시작22012년 10월 22일
임기 종료22013년 10월 19일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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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이름Алексей Анатольевич Навальный러시아어
로마자 표기법Aleksey Anatolyevich Naval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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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젊은 시절과 경력

나발니는 모스크바주 오딘촙스키구 부틴에서 태어났으며,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며, 어머니는 러시아 출신이다. 동생 올레크(Олег러시아어)는 함께 정치 활동을 했다.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오브닌스크에서 성장했다. 1993년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에 입학하여 1998년 법학 학위를 취득했고, 러시아 연방 지원 금융 대학교에서 증권과 환전을 공부했다.

2.1. 출생과 가계

알렉세이 아나톨리예비치 나발니는 1976년 6월 4일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주 오딘촙스키구 부틴에서 태어났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계 혈통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나발니(Анатолий Иванович Навальный러시아어)는 1947년 1월 28일생으로, 현재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이반키우스키구 잘리샤 출신이다. 이 마을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능 오염으로 주민들이 이주한 지역이다. 어머니 류드밀라 이바노브나 나발나야(Людмила Ивановна Навальная러시아어)는 1954년 4월 4일생으로, 러시아 젤레노그라드 출신이다. 나발니는 자신을 반은 러시아인, 반은 우크라이나인으로 여겼다. 동생으로는 올레크(Олег러시아어)가 있으며, 함께 정치 활동을 했다.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칼루가주 오브닌스크에서 성장했으나, 여덟 살 때까지 여름에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지내며 우크라이나어에도 능숙해졌다. 나발니의 부모는 블로고다주 코뱌코보 마을에서 1994년부터 바구니 짜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2년까지도 여전히 공장을 운영했다.

나발니는 1998년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러시아 연방 지원 금융 대학교에서 증권과 환전을 공부했다. 2010년에는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 예일 월드 펠로우 프로그램(Yale World Fellows)에 참여했다.

2.2. 학력

1993년 칼리니네츠 중등학교(국제교육분류표준(ISCED)에 따른 3단계)를 졸업했다. 1998년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연방 지원 금융 대학교에서 증권 및 거래를 공부하여 2001년에 졸업했다. 2010년 가리 카스파로프, 예브게니야 알바츠, 세르게이 구리예프의 추천으로 예일대학교 예일 월드 펠로우 프로그램 장학금을 받아 정치학과 국제관계를 공부했다.

2.3. 법조 경력

1993년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에 입학하여 1998년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러시아 연방 지원 금융 대학교에서 증권 및 환전을 공부했다. 1998년부터 여러 러시아 기업의 기업 변호사로 일했다.

2009년 변호사 자격을 얻어 키로프주 변호사 협회(등록번호 43/547) 회원이 되었다. 2010년 모스크바로 이주하면서 키로프주 변호사 협회 회원 자격을 상실하고 모스크바 변호사 협회(등록번호 77/9991) 회원이 되었다.

키로블레스 사건 판결이 확정된 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3. 정치 활동

2000년 야블로코 당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나, 2007년 민족주의적 활동을 이유로 제명되었다. 이후 민족주의 성향의 '인민' 운동을 조직했지만 2011년 해산했다. 2008년부터는 러시아 주요 가스 회사들의 주식을 매입, 소액주주 운동을 펼치며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했다. 특히 2010년 트랜스네프트의 4 횡령 의혹을 폭로했다. 같은 해 정부 조달 과정의 부패를 막기 위한 '로스필 프로젝트'를, 2011년에는 도로 보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로스야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1년 통합 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의 당"이라고 비판했고, 같은 해 총선 이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다. 2012년 레오니드 볼코프와 미래의 러시아 정당을 결성했다.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 27%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했다. 2017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부패 의혹을 폭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다. 202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을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3.1. 야블로코

2000년, 러시아의 선거구제를 변경하는 새로운 법안이 발표된 후 나발니는 러시아 통합 민주당인 야블로코에 입당했다. 나발니에 따르면, 이 법은 야블로코와 우파 연합에 불리하게 만들어졌으며, 그는 두 조직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입당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 그는 당원으로 등록되었다. 2002년에는 모스크바 야블로코 지부 지역위원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003년에는 12월에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야블로코 모스크바 지부 선거 운동을 이끌었다. 2004년 4월, 나발니는 모스크바 야블로코 지부의 참모총장이 되었고, 2007년 2월까지 그 직책을 유지했다. 또한 2004년에는 모스크바 지부 부위원장이 되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그는 당 연방평의회 위원이었다.

2006년 말, 나발니는 모스크바 시청에 민족주의적인 2006년 러시아 행진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야블로코가 "모든 민족적 또는 인종적 증오와 모든 혐오증"을 규탄하고 경찰이 "모든 파시스트, 나치, 혐오주의적 행위"에 대항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2007년 12월, 야블로코는 의회 선거에서 단 1.6%의 득표율로 러시아 국가 두마에 패배했다. 당 집행부 회의에서 나발니는 선거에서의 실패를 이유로 당 개혁과 지도부 교체를 제안했다. 그는 당의 많은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며 "당 대표 및 모든 부대표의 즉각 사퇴, 집행부의 최소 70% 재선거"를 요구했다. 그는 "야블로코는 이번 선거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투표] 수를 세는 문제가 아닙니다. 선거는 부정직하고 불공정했습니다. 하지만 공정한 선거에서도 우리는 더 적은 표를 얻었을 것입니다. 공정한 선거는 그리 고리 알렉세예비치를 위한 생방송만이 아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더 인기 있는 카스파로프와 리즈코프가 같은 생방송에 출연했어야 합니다. 즉, 카시야노프가 그의 재정적 자원으로 선거에 참여했어야 합니다. ... 저는 야블로코가 종파로 변했기 때문에 붕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자여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우리 자신은 민주주의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결과가 나쁠수록 지도부의 입지는 더욱 강해집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민족주의적 견해와 러시아 행진 참여를 이유로 같은 회의에서 야블로코에서 제명되었다. 러시아 야권 정치인 일리아 야신에 따르면, 나발니는 당 대표 그리 고리 야블린스키에게 도전했기 때문에 야블로코에서 제명되었다.

3.2. '인민' 운동 조직

2007년 야블로코에서 제명된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 인민해방운동(Национального Русского Освободительного Движения러시아어, НАРОД)을 조직했다. 이 조직은 민주주의와 러시아인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으로 정의되는 '민주적 국민주의'를 이념으로 삼았다. 이후 2008년 6월에는 극우 성향의 단체 불법 이민을 반대하는 운동(ДПНИ)과 대러시아당과 함께 러시아 인민운동을 조직했다. 그러나 2011년 알렉세이 나발니가 인민해방운동이 실패했다고 인정하여 해산을 선언하였다.

3.3. 반부패 조사활동

2008년, 나발니는 로스네프트, 가스프롬 등 5개의 러시아 가스 회사 주식을 30만 루블 어치 매입하여, 이 회사들의 경영 투명성을 요구하는 주주행동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이 회사들의 고위 임원들이 횡령과 회사 재산 은폐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했다.

2010년 11월, 나발니는 트랜스네프트 가스 회사의 비밀 회계 감사 자료를 공개하며, 경영진이 동부 시베리아-태평양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과정에서 4를 횡령했다고 폭로했다.

2010년 12월, 나발니는 러시아 정부의 행정 조달 과정의 부패를 줄이기 위한 로스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의 물품 조달 및 입찰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도록 했다.

2011년, 나발니는 도로의 구멍을 정부에 보고하고 대응을 촉구하는 로스야마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2017년 3월, 나발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패 혐의를 고발하는 조사 보고서 그는 너에게 디몬이 아니다(He Is Not Dimon to You)를 발표했다.

2021년 1월 19일,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부정한 자금으로 크라스노다르 지방 겔렌지크 근처에 거대한 부동산을 건설했다고 폭로하는 푸틴의 궁전 (영화)을 발표했다. 그는 이를 "세계에서 가장 큰 뇌물"이라고 칭했다. 이 부동산은 모나코의 39배 크기이며, 건설 비용은 100 (1350)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발니는 이 조사를 통해 푸틴 측근의 부패 계획과 푸틴의 애인으로 알려진 인물들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3.4. 2011년 의회 선거와 시위

러시아 하원의원 선거 직후, 선거 부정에 대한 비난이 제기되었고, 모스크바에서는 6,000명이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약 300명이 체포되었는데, 이때 나발니도 경찰에 체포되어 "공권력에 저항했다"는 죄목으로 15일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체포에 대해 알렉세이 베네딕토프(에코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의 편집장)는 "(나발니 체포는) 정치적으로 실패였다. 이 체포로 인해 나발니는 온라인(인터넷) 지도자에서 오프라인(현실) 지도자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나발니는 정치 활동가 일리아 야신, 세르게이 우달초프 등과 같은 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 이 중 우달초프는 항의의 표시로 단식 투쟁을 벌였다.

2011년 12월 6일, 법정에 출두한 나발니
2011년 12월 6일, 법정에 출두한 나발니


나발니는 2011년 12월 5일에 체포되어 12월 20일까지 15일간 구금되었지만, 체포 후 나발니의 블로그는 영어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3.5.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

주어진 원본 자료에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는 관련 내용을 작성할 수 없다.

3.6. 신당 창당 (미래의 러시아)

2011년 해체된 극우 단체인 국가 러시아 해방 운동의 후계로, 2012년 레오니드 볼코프와 함께 미래의 러시아 정당을 결성했다.

3.7. 2018년 대통령 선거

2011년 12월 의회 선거 이후, 나발니는 선거 부정 의혹에 항의하며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5일 형을 선고받았다. 석방 후, 그는 2012년 대선에서 푸틴에 맞서 러시아인들이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자유 선거가 치러진다면 출마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지만, 크렘린이 선거의 공정성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3월 푸틴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나발니는 모스크바 푸쉬킨 광장에서 반푸틴 집회를 이끌었고, 집회 후 몇 시간 동안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3.8. 2019년 모스크바 시 두마 선거

2011년 12월, 러시아 의회 선거 이후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알렉세이 나발니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석방 후 나발니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에 맞서 러시아인들이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해, 나발니는 여당인 통합 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의 당"이라고 비판하여 주목을 받았다.

3.9. 2020년 헌법 개정 반대

나발니는 2020년 7월 1일에 실시된 헌법 개정안 투표를 "쿠데타"이자 "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개정으로 푸틴 대통령이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표 결과가 발표된 후에는 여론을 반영하지 않은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개정안에는 푸틴이 네 번째 대통령 임기 이후에도 두 번 더 임기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2036년까지)이 포함되어 있었다.

4. 형사 재판

나발니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10번의 행정구류로 총 192일 동안 구금되었다. 2018년 11월 15일, 유럽인권법원은 2012년과 2014년에 있었던 나발니의 구류가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고 판결했다.

2012년, 러시아 수사위원회는 나발니가 2007년 우파연합(SPS) 정당으로부터 광고 대금을 받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사기 혐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또한, 나발니와 그의 형제 올레그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우편 사업체에서 55 (약 1.76)을 횡령했다고 기소했다.

2019년, 나발니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연루된 모스크바 슈콜니크 회사가 학교에 품질이 낮은 음식을 공급하여 이질 발생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0월, 모스크바 중재 법원은 나발니에게 29.2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020년 8월, 나발니, 류보프 소볼 및 그의 부패방지재단에 88의 손해 배상을 지불하라는 법원 결정을 집행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2019년 4월까지 나발니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서 러시아 당국에 대해 총 225,000EUR의 배상을 받는 6건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2020년 4월, 얀덱스 검색 엔진은 나발니에 대한 부정적인 논평을 검색 결과 상위에 인위적으로 배치했다가, "실험"이었다고 해명하고 원래대로 복구했다.

2020년 8월 20일, 나발니는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 여객기 안에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옴스크에 긴급 착륙, 제1시립응급의료병원에 후송되었다. 나발니 측은 그의 음료에 독극물이 섞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나발니는 독일 베를린샤리테 – 베를린 의과대학으로 이송되었다.

2024년 2월 16일, 나발니가 수감 중 사망했다는 소식이 교도소 측에서 발표되었다. 성명서에 따르면, 나발니는 산책 후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했고,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의료진을 불렀지만 소생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3월 1일,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 지역의 “신의 어머니 이콘 교회”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시내 보리소프 묘지에 매장되었다.

4.1. 키로블레스 사건

2012년 7월 30일, 러시아 수사위원회는 나발니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수사위원회는 나발니가 키로프주에 있는 국영 기업인 키로프레스에서 2009년 키로프 주지사 니키타 벨리흐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목재를 훔치는 공모를 했다고 밝혔다. 나발니는 이러한 혐의를 "이상하다"고 하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2013년 키로프레스 재판 당시 법정에 선 나발니
2013년 키로프레스 재판 당시 법정에 선 나발니


2013년 4월, 조셉 P. 로브 등이 설립한 https://www.loeb.com/en Loeb & Loeb LLP는 러시아 연방의 알렉세이 나발니 기소에 대한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은 수사위원회의 혐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논문은 "크렘린이 러시아 법 체계를 오용하여 정치적 반대자들을 괴롭히고 고립시키고 침묵시키려고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키로프에서 키로프레스 재판이 2013년 4월 17일에 시작되었다. 7월 18일, 나발니는 횡령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국영 회사에서 약 16(500000USD) 상당의 목재를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3년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판결 반대 시위 ("조작 사건은 그만")
2013년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판결 반대 시위 ("조작 사건은 그만")


같은 날 저녁, 검찰청은 상급 법원이 판결을 확정할 때까지 판결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나발니와 오피체로프의 징역형에 대해 항소했다. 다음 날 아침, 항소가 받아들여졌다. 나발니와 오피체로프는 상급 법원의 심리를 기다리며 7월 19일에 석방되었다.

2013년 10월 16일 키로프 법원에서 그의 징역형 집행이 유예되었지만, 이는 여전히 그의 정치적 미래에 부담으로 남았다.

2016년 2월 23일, 유럽인권재판소는 러시아가 나발니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하고, 러시아 정부에 5만 6천 유로의 소송 비용과 손해 배상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016년 11월 16일, 러시아 대법원은 2013년 판결을 뒤집고, 키로프 레닌스키 지방 법원으로 사건을 돌려 보내 재심을 명령했다.

2017년 2월 8일, 키로프 레닌스키 지방 법원은 2013년 판결을 다시 내리며 나발니에게 5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나발니는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과 명백히 모순되는 이 판결의 무효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키로블레스 재판 당시와 그 이후, 많은 저명 인사들이 나발니를 지지하거나 재판을 비난하는 의견을 표명했다. 마지막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를 "우리가 독립적인 법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불렀다. 전 러시아 재정부 장관 알렉세이 쿠드린은 이것이 "처벌이라기보다는 그를 사회생활과 선거 과정에서 고립시키려는 시도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소설가 보리스 아쿠닌과 투옥된 러시아 억만장자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도 이를 비판했으며, 소련 시대의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대우와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2012년 7월 31일, 그는 횡령죄로 기소되었다. 연방수사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목재 계약에서 그의 비공식 고문으로서의 역할이 수사 대상이었으며, 연방수사위원회 웹사이트에는 그가 횡령 목적의 범죄 집단을 조직했다는 사실이 게재되었다. 2013년 7월 5일, 당국은 징역 6년과 벌금 100만 루블을 구형했다. 프랑스 통신사는 이 재판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하며, 같은 해 9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그가 입후보하기 전에 수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게재했다. 피고 측은 명백한 조작이라고 주장했지만, 7월 18일, 법원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016년, 유럽인권재판소는 2013년에 유죄 판결을 받은 횡령죄에 대해 공정한 재판이 아니었다며 재판 무효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러시아 대법원은 재심을 지시했고, 2017년 2월 8일 집행유예가 포함된 징역 5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4.2. 이브 로셰 사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알렉세이 나발니의 형 올레그 나발니는 이브 로셰의 동유럽 자회사인 이브 로셰 보스톡에 자신이 설립한 글랍포드피스카에 배송 업무를 위탁하는 제안을 했다. 2012년 12월 10일, 이브 로셰 보스톡의 브루노 르프루 사장은 글랍포드피스카가 이브 로셰 보스톡에 피해를 입혔는지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러시아 수사위원회에 제출했고, 수사위원회는 사건을 개시했다.

검찰은 글랍포드피스카가 이브 로셰 보스톡으로부터 2,670만 루블(540), MPC로부터 440만 루블을 받아 다른 회사에 더 적은 금액으로 재분배하고 그 차액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이 자금은 허위 사유로 도피 회사에서 나발니가 설립하고 그의 부모가 운영하는 버드나무 엮는 회사인 코뱌코프스카야 파브리카 포 로조플레테니유로 이체하여 자금 세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나발니 형제는 혐의를 부인했다.

2014년 12월 30일, 평결이 선고되었다. 두 형제는 모두 MPC와 이브 로쉐 보스톡에 대한 사기 및 자금 세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3년 6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올레그 나발니는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평결 선고 후 체포되었다. 두 사람 모두 50만 루블의 벌금과 MPC에 대한 400만 루블 이상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 판결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4.3. 기타 사건

나발니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10번 행정구류되어 192일 간 구금되었다. 2018년 11월 15일 유럽인권법원은 2012년과 2014년 나발니의 구류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2013년 4월 17일, 키로프에서 키로프레스 재판이 시작되었다. 나발니는 횡령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다음 날 석방되었고, 2013년 10월 16일 키로프 법원에서 징역형 집행이 유예되었다.

2013년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판결 반대 시위 ("조작 사건은 그만")
2013년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판결 반대 시위 ("조작 사건은 그만")


2012년 12월, 러시아 수사위원회는 나발니가 2007년 우파연합(SPS) 정당으로부터 광고 대금을 받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사기 혐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사위원회는 나발니와 그의 형제 올레그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우편 사업체에서 55 (약 1.76)을 횡령했다고 기소했다.

2020년 4월, 얀덱스 검색 엔진은 나발니에 대한 부정적인 논평을 검색 결과 상위에 인위적으로 배치했다가, "실험"이었다고 해명하고 원래대로 복구했다.

나발니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연루된 모스크바 슈콜니크 회사가 학교에 품질이 낮은 음식을 공급하여 이질 발생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 10월, 모스크바 중재 법원은 나발니에게 29.2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2019년 4월까지 나발니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서 러시아 당국에 대해 총 225000EUR의 배상을 받는 6건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020년 8월 25일, 나발니, 류보프 소볼 및 그의 부패방지재단에 88의 손해 배상을 지불하라는 법원 결정을 집행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키로블레스 재판 당시와 그 이후, 미하일 고르바초프, 알렉세이 쿠드린, 보리스 아쿠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등 많은 저명 인사들이 나발니를 지지하거나 재판을 비난했다. 반면,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는 이 판결을 "'제5열'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라고 옹호했다. 미국 국무부, 유럽 연합, 독일 등 국제 사회는 이 재판이 러시아의 법치주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비판했다.

이브 로셔 사건 판결에 대해서도 알렉세이 베네딕토프는 판결이 "불공정"하고 올렉 나발니는 "인질"로 잡혔다고 비판했다. EU 외교 정책 책임자 페데리카 모게리니 대변인은 판결이 정치적으로 동기가 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012년 7월 31일, 나발니는 횡령죄로 기소되었고, 2013년 7월 18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다음 날 석방되어 피선거권을 유지,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9월 8일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나발니는 세르게이 소비야닌에게 패배했지만,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결선 투표를 요구했다.

2014년 12월 30일, 나발니는 프랑스의 화장품 회사에 대한 사기죄로 집행유예를 포함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6년 유럽인권재판소는 2013년 횡령죄 재판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판결했지만, 러시아 대법원은 재심을 지시했고, 2017년 2월 8일 집행유예가 포함된 징역 5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2020년 8월 20일, 나발니는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옴스크에 긴급 착륙, 병원에 후송되었다. 나발니 측은 독극물 음용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후 나발니는 독일 베를린샤리테 – 베를린 의과대학으로 이송되었다.

5. 독살 시도와 회복

2020년 8월 20일, 나발니는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꼈다. 비행기는 옴스크에 긴급 착륙했고, 나발니는 1번 시립 응급 의료 병원(Городская клиническая больница скорой медицинской помощи №1러시아어)에 입원했다. 비행기에서 그는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는데, 나중에 그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고 말했다.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므시는 나발니가 옴스크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발니가 그날 아침 공항에서 구입한 차 한 잔만 마셨다고 말하며, 음료에 독극물이 섞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처음에는 나발니가 독살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경찰이 나타난 후에는 말을 아꼈다. 옴스크 병원 부원장은 나중에 독살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라고 말했다.

나발니를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독일에서 비행기가 왔지만, 옴스크의 의사들은 처음에는 이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가, 나중에 허락했다. 8월 24일, 독일 의사들은 나발니가 콜린에스터라제 억제제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발표했다.

반부패기금 책임자인 이반 즈다노프는 나발니가 기금의 조사 때문에 독살되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9월 2일, 독일 정부는 나발니가 노비촉 신경 작용제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을 독살하는 데 사용된 것과 같은 계열이었다. 국제 관계자들은 독성학 검사에서 "명백한 증거"를 얻었다고 말하며 러시아 정부에 설명을 요구했다. 9월 7일, 독일 의사들은 나발니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고 발표했다. 9월 15일, 나발니의 대변인은 나발니가 러시아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9월 17일, 나발니의 팀은 톰스크의 호텔 방에서 발견된 빈 물병에서 신경 작용제의 흔적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그가 호텔을 떠나기 전에 독살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9월 23일, 나발니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10월 6일, OPCW는 나발니의 혈액 및 소변 샘플에서 노비촉 계열의 콜린에스터라제 억제제가 존재함을 확인했다.

12월 14일, 더 인사이더와 벨링캣은 CNN데어 슈피겔과 공동으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나발니 독살에 연루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나발니는 3년 동안 감시를 받았으며, 이전에도 독살 시도가 있었을 수 있다.

2020년 12월 21일, 나발니는 러시아 보안 요원을 사칭하여 콘스탄틴 쿠드리아프체프라는 화학 무기 전문가와 통화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통화에서 그는 독이 나발니의 속옷에 묻어 있었고, 비행기의 긴급 착륙과 구급대의 신속한 대응이 없었다면 나발니는 사망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 1월, 벨링캣, 더 인사이더데어 슈피겔은 나발니를 추적한 부대가 2014년 티무르 쿠아셰프, 2015년 루슬란 마고메드라기모프, 2019년 니키타 이사예프 등 다른 사망자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2월에는 러시아 야당 정치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가 의심되는 독살 전에 같은 부대의 추적을 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럽 연합, 영국, 미국은 독살 사건에 대해 러시아 고위 관리들에게 제재를 가했다.

6. 투옥

2013년 4월 17일, 키로프에서 키로프레스 재판이 시작되었다. 7월 18일, 나발니는 국영 회사에서 약 16(500) 상당의 목재를 횡령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세르게이 블리노프 판사가 선고한 판결문은 검찰의 요청과 동일했으며, 5년형을 선고한 것만이 검찰의 6년형 구형과 달랐다.

2013년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판결 반대 시위. "조작 사건은 그만"
2013년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판결 반대 시위. "조작 사건은 그만"


같은 날 저녁, 검찰청은 상급 법원이 판결을 확정할 때까지 판결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나발니와 오피체로프의 징역형에 대해 항소했다. 다음 날 아침, 항소가 받아들여져 나발니와 오피체로프는 상급 법원의 심리를 기다리며 7월 19일에 석방되었다. 검찰의 요청은 전문가들에 의해 "전례 없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2013년 10월 16일, 키로프 법원에서 그의 징역형은 집행유예로 변경되었지만, 이는 여전히 그의 정치적 미래에 부담으로 남았다.

2016년 2월 23일, 유럽인권재판소는 러시아가 나발니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하고, 러시아 정부에 5만 6천 유로의 소송 비용과 손해 배상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016년 11월 16일, 러시아 대법원은 2013년 판결을 뒤집고 키로프 레닌스키 지방 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내 재심을 명령했다. 2017년 2월 8일, 키로프 레닌스키 지방 법원은 2013년 판결을 다시 내리며 나발니에게 5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나발니는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과 명백히 모순되는 이 판결의 무효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나발니는 여러 차례 추가 기소와 재판을 거치며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2022년 3월 22일에는 사기 및 법정 모독 혐의로 최고 보안 감옥에서 9년형을 선고받았고, 2023년 8월 4일에는 극단주의 활동 선동 등의 혐의로 19년형이 추가되었다.

나발니는 수감 중에도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는 당국이 자신을 도주 위험으로 간주하여 수면 박탈을 통해 고문했다고 주장했으며, 밤에 경비원들이 여덟 번이나 깨웠다고 변호사들에게 말했다. 또한 척추 추간판 헤르니아와 손의 감각 상실 등 건강 문제도 겪었으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2022년 8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총 27회, 308일 동안 독방에 수감되었다.

나발니의 독방 수감 기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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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수기간사유
12022년 8월 12일~15일셔츠 단추를 채우지 않음
22022년 8월 23일~28일복도에서 손을 뒤로 모으지 않음
32022년 8월 29일~9월 5일직원에게 자기소개 시 석방 요구
42022년 9월 6일~21일석방 요구
52022년 9월 22일~10월 4일석방 요구
62022년 10월 10일~24일울타리 청소 거부
72022년 10월 30일~11월 10일운동장 청소 불충분, 직원을 군 계급으로 부름
82022년 11월 중순 (11일간)제복 위반
92022년 12월 1일~12일"동방자와의 대화에서 'бл*дь(f**k)'라는 단어를 사용"
102022년 12월 31일~2023년 1월 14일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세수
112023년 1월 25일~2월 2일 (예정)자기소개 잘못
122023년 3월 (15일간)직원에게 자기소개 잘못
132023년 4월 10일~25일고가 양배추 구매 조사
142023년 4월 (15일간)
152023년 5월자기소개 거부, 교화 활동 거부
162023년 5월
172023년 7월 (13일간)직원에게 자기소개 잘못
182023년 8월 (14일간)
192023년 9월 12일~21일법정에서 군 동원 반대 발언
202023년 9월 22일~26일
212023년 10월 (12일간)직원의 존엄성 훼손 발언
222023년 11월 (15일간)필기구 압수 항의, 재판 출두 거부
232023년 11월 (15일간)자기소개 거부, 교화 활동 거부
242023년 12월 말/2024년 1월 초 (7일간)
252024년 1월 9일~10일자기소개 거부, 교화 활동 거부
262024년 2월 1일~11일
272024년 2월 14일~사망 시까지

6.1. 귀국과 투옥

2021년 1월 17일, 나발니는 독일에서 러시아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가 탄 포베다 항공(Pobeda) 소속 DP936편은 원래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Vnukovo Airport)에 착륙할 예정이었으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Sheremetyevo International Airport)으로 회항했다. 그는 출입국 심사에서 체포되었다. 연방교정청(FSIN)은 그의 체포를 확인하고 법원 심리까지 구금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귀국 전, FSIN은 나발니가 러시아를 떠나 보호관찰 조건을 위반했기 때문에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수감될 수도 있다고 밝히며, 그가 돌아오면 "구금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나발니는 이브 로셔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그는 이 사건이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는 나발니가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판결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나발니를 양심수로 선언하고 러시아 당국에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2021년 2월, 국제앰네스티는 과거 나발니가 한 혐오 발언에 대한 불만이 쇄도한다는 이유로 잠시 그 지정을 철회했지만, 같은 해 5월, "양심수로서 개인을 지정하는 것은 그들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을 전혀 포함하거나 암시하지 않는다"는 성명과 함께 이 결정을 번복하고 그러한 지정의 주요 목적은 "러시아 당국의 권리를 인정하고 행동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 1월 18일 법원은 가석방 위반으로 2월 15일까지 나발니의 구금을 명령했다. 나발니가 구금된 경찰서에 임시 법정이 설치되었다. 나중에 집행유예가 실형으로 대체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또 다른 심리가 열릴 예정이었다. 나발니는 이 절차를 "궁극적인 무법 상태"라고 묘사하고 지지자들에게 거리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다음 날, 나발니와 FBK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어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부패를 폭로했다. 이 조사와 그의 체포는 2021년 1월 23일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2021년 1월 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나발니 지지 시위
2021년 1월 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나발니 지지 시위

2021년 2월 2일 모스크바 법원은 나발니의 3년 6개월 집행유예를 실형으로 대체했는데, 가택 연금 기간을 제외했기 때문에 그는 2년 6개월 이상 교정 노동 수용소에서 복역하게 되었다. 이 판결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국가 정부와 EU의 비난을 받았다. 판결 직후 러시아 여러 도시에서 시위가 열렸고 경찰의 강경 진압에 직면했다. 나발니는 나중에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회부되어 작년 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홍보 영상에 출연한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나발니가 해당 영상에 출연한 사람들을 "부패한 앞잡이"와 "반역자"라고 부른 후 2020년 6월에 이 사건이 시작되었다. 나발니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당국이 그의 명성을 훼손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혐의는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지만, 그의 변호사는 나발니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이 사건이 발생한 후 법이 개정되어 징역형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21년 2월 16일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를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법원은 이 결정이 "신청인의 생명에 대한 위험의 성격과 정도"를 고려하여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나발니의 변호사는 구금 후인 2021년 1월 20일 석방을 위한 "임시 조치"를 법원에 신청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이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콘스탄틴 추이첸코(Konstantin Chuychenko) 법무장관은 이 조치를 "주권 국가의 사법 제도 운영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이자 "불합리하고 불법적"이라고 부르며, 이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사실이나 법의 규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2020년 12월에는 국제 기구의 판결과 국제 조약보다 헌법을 우선시하는 일련의 법률이 통과되고 서명되었다. 며칠 후, 모스크바 법원은 나발니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형을 유지했지만, 가택 연금 기간을 복역 기간에 포함하기로 결정한 후 6주 감형했다. 또 다른 법원은 나발니를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 판결하고 11500USD의 벌금을 부과했다.
2021년 4월 2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나발니 지지 시위
2021년 4월 2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나발니 지지 시위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의는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나발니는 2021년 2월 28일 드미트리 데무슈킨(Dmitry Demushkin)과 콘스탄틴 코토프(Konstantin Kotov)가 수감되었던 블라디미르주(Vladimir Oblast) 포크로프 교정 식민지(Pokrov correctional colony)인 교정 식민지 2호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3월 초, 유럽 연합과 미국은 나발니의 독극물 사건과 투옥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 고위 관리들에 대한 제재를 부과했다.

2021년 3월, 나발니는 공식적인 고소장에서 당국이 그를 도주 위험으로 간주하여 수면을 박탈함으로써 고문을 가했다고 비난했다. 나발니는 경비원들이 밤에 여덟 번이나 그를 깨워 감방에 있다는 것을 카메라에 알렸다고 변호사들에게 말했다. 나발니의 변호사는 그가 감각 상실을 포함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그의 척추와 다리에서 나타났으며, 교도소 당국은 그의 건강이 "양호하다"고 주장하며 민간 의사의 진찰 요청을 거부했다. 2021년 3월 31일, 나발니는 적절한 치료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선포했다. 2021년 4월 6일, 나발니의 주치의인 아나스타샤 바실리예바(Anastasia Vasilyeva)를 포함한 6명의 의사와 CNN 기자 2명이 건강 상태가 크게 악화된 나발니를 방문하려다 교도소 밖에서 체포되었다. 2021년 4월 7일, 나발니의 변호사들은 그가 두 번의 척추 추간판 헤르니아를 겪었고 손에 감각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며 미 정부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인 아녜스 칼라마르(Agnès Callamard)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교도소에서 고문과 비인도적인 대우를 통해 알렉세이 나발니를 서서히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한 신문을 읽거나 코란을 포함한 어떤 책도 읽을 수 없었다고 불평했다.

2021년 4월 17일, 나발니가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나발니의 주치의인 아나스타샤 바실리예바와 야로슬라프 아시흐민(Yaroslav Ashikhmin) 심장 전문의를 포함한 다른 세 명의 의사는 사회 미디어에 "우리 환자는 언제든지 사망할 수 있다"고 말하며 치명적인 심장마비 또는 신부전 위험이 "언제든지" 증가했기 때문에 즉각적인 접근을 허용해 달라고 교도소 관계자에게 요청했다. 나발니의 변호사가 얻은 검사 결과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혈액 속 칼륨 수치가 높고, 신장 기능 저하를 나타내는 크레아티닌 수치가 급격히 높았다. 나발니의 결과는 혈중 칼륨 수치가 7.1mmol/L(밀리몰/리터)이었는데, 혈중 칼륨 수치가 6.0mmol/L보다 높으면 일반적으로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그날 밤 푸틴에게 보낸 공개 서한이 여러 지역 의회를 대표하는 11명의 정치인에 의해 서명되어 발표되었는데, 독립적인 의사가 나발니를 방문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그의 모든 형사 사건을 재검토하고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나발니와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증오심으로 저질러진 정치인에 대한 암살 시도로 간주합니다." 서한은 "러시아 연방 대통령인 당신은 러시아 연방 영토, 특히 교도소 시설 내에서 알렉세이 나발니의 생명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나발니 자신, 그의 친척들, 그리고 전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명자 중에는 야블로코 당(Yabloko)의 프스코프주 지부 의장인 레프 슐로스베르크(Lev Schlossberg), 카렐리아(Karelia) 지역 의회 부의원, 전 야블로코 의장인 에밀리아 슬라부노바(Emilia Slabunova)와 모스크바 시 두마의 부의원인 예브게니 스투핀(Yevgeny Stupin)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 날, 그의 딸은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학생인 트윗에서 러시아 교도소 당국에 아버지를 의사에게 검진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J.K. 롤링(J.K. Rowling)과 주드 로(Jude Law)와 같은 유명 배우들도 러시아 당국에 나발니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그의 처우가 "완전히 불공정하다"고 말했고, 제이크 설리반(Jake Sullivan) 국가 안보 보좌관은 "나발니 씨가 사망하면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크렘린에 경고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수석 외교관인 호세프 보렐(Josep Borrell)은 EU가 나발니의 건강 상태에 대해 러시아 정부에 책임을 묻는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그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외국 국가의 이러한 우려를 비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Dmitry Peskov) 크렘린 대변인은 러시아 교도소 관계자들이 대통령이 아니라 나발니의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4월 19일, 러시아 교도소 당국에 따르면 나발니는 "비타민 요법"을 위해 교도소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2021년 4월 23일, 나발니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요구가 부분적으로 충족되었다고 느껴 단식 투쟁을 끝냈다고 발표했다.

6.2. 수감 생활과 추가 기소

나발니는 2012년 12월, 광고 회사 알렉트를 통해 2007년 우파연합 정당의 광고 대금을 횡령하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유죄 판결 시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었다. 전 SPS 당직자 레오니드 고즈만은 혐의를 부인했다. 같은 해 12월, 나발니와 그의 형제 올레그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우편 사업체에서 55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9년 4월, 모스크바 슈콜니크는 나발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0월에 법원은 나발니에게 29200000RUB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나발니는 이질 사례가 문서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8월,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나발니와 그의 동료들에게 88의 손해 배상을 지불하라는 법원 결정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4월 16일, 모스크바 검찰청은 나발니 관련 단체들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해달라고 모스크바 시 법원에 요청했다. 나발니 측근 레오니드 볼코프는 이를 "푸틴이 러시아에서 전면적인 대규모 정치 탄압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6일, 검찰은 나발니의 지역 사무소 네트워크와 반부패기금의 활동 중단을 명령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를 비난하며 "알렉세이 나발니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운동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2021년 4월 29일, 나발니 팀은 정치 네트워크를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나발니에 대한 새로운 형사 사건이 시작되었다. 4월 30일, 나발니의 지역 선거 운동 사무소는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 목록에 추가되었다. 6월 9일, 나발니의 정치 네트워크는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되어 해산되었다.

2021년 10월, 나발니는 러시아 교정위원회가 자신을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2022년 1월, 러시아는 그와 그의 측근을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 목록에 추가했다.

2022년 2월, 나발니는 사기 및 법정 모독 혐의로 새로운 재판을 받았다. 국제앰네스티는 혐의가 "자의적"이며 "정치적으로 동기가 부여되었다"고 밝혔다. 2022년 3월 22일, 나발니는 유죄 판결을 받고 최고 보안 감옥에서 9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재판을 "가짜 재판"이라고 묘사했다. 2022년 5월 24일, 모스크바 시 법원은 1심 판결을 유지했다.

2022년 5월 31일, 나발니는 새로운 극단주의 혐의로 최대 15년의 추가 징역형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6월 중순, 나발니는 IK-6 최고 보안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2022년 8월 이후, 나발니는 빈번하게 독방에 수감되었다. 사망할 때까지 총 27회, 308일 동안 독방에 수감되었다.

2023년 8월 4일, 나발니는 극단주의 활동 선동 등의 혐의로 추가 19년형을 선고받았다. 2023년 10월 13일, 그의 변호사 3명이 "극단주의 집단"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2023년 12월 25일, 나발니는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나발니의 독방 수감 기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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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수기간사유
12022년 8월 12일~15일셔츠 단추를 채우지 않음
22022년 8월 23일~28일복도에서 손을 뒤로 모으지 않음
32022년 8월 29일~9월 5일직원에게 자기소개 시 석방 요구
42022년 9월 6일~21일석방 요구
52022년 9월 22일~10월 4일석방 요구
62022년 10월 10일~24일울타리 청소 거부
72022년 10월 30일~11월 10일운동장 청소 불충분, 직원을 군 계급으로 부름
82022년 11월 중순 (11일간)제복 위반
92022년 12월 1일~12일"동방자와의 대화에서 'бл*дь(f**k)'라는 단어를 사용"
102022년 12월 31일~2023년 1월 14일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세수
112023년 1월 25일~2월 2일 (예정)자기소개 잘못
122023년 3월 (15일간)직원에게 자기소개 잘못
132023년 4월 10일~25일고가 양배추 구매 조사
142023년 4월 (15일간)
152023년 5월자기소개 거부, 교화 활동 거부
162023년 5월
172023년 7월 (13일간)직원에게 자기소개 잘못
182023년 8월 (14일간)
192023년 9월 12일~21일법정에서 군 동원 반대 발언
202023년 9월 22일~26일
212023년 10월 (12일간)직원의 존엄성 훼손 발언
222023년 11월 (15일간)필기구 압수 항의, 재판 출두 거부
232023년 11월 (15일간)자기소개 거부, 교화 활동 거부
242023년 12월 말/2024년 1월 초 (7일간)
252024년 1월 9일~10일자기소개 거부, 교화 활동 거부
262024년 2월 1일~11일
272024년 2월 14일~사망 시까지

7. 사망

2024년 2월 16일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하르프에 위치한 하르프 IK-3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카르프(Kharp)와 IK-3
카르프(Kharp)와 IK-3


2023년 12월 25일, 나발니는 "북극늑대(Polar Wolf)"로 알려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Yamalo-Nenets Autonomous Okrug) 카르프(Kharp)에 있는 IK-3 "특별 체제" 식민지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2024년 2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알렉세이 나발니의 묘, 2024년 3월
알렉세이 나발니의 묘, 2024년 3월


2024년 2월 16일, 연방 교정국은 나발니가 그날 아침 산책 후 몸이 좋지 않다고 느낀 후 야말로네네츠 서시베리아의 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예카테린부르크 시간으로 오후 2시 17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성명서는 "필요한 모든 심폐소생술 조치가 취해졌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사망을 확인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나발니의 대변인인 키라 야르므시는 다음 날 그의 사망을 확인하고 유족에게 시신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사망 전 나발니는 교도소 내 학대 때문에 영양실조와 기타 질병을 호소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의 시신은 2024년 2월 24일 어머니에게 돌려졌다.

8. 유산

인권센터 메모리얼(Memorial (society))은 2021년 나발니를 정치범으로 인정했다. 유럽평의회 의회의회(Parliamentary Assembly of the Council of Europe) 또한 나발니를 정치범으로 간주했다.

2024년 2월 16일, 연방 교정국은 나발니가 그날 아침 산책 후 몸이 좋지 않다고 느낀 후 야말로네네츠 서시베리아의 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예카테린부르크 시간으로 오후 2시 17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성명서는 "필요한 모든 심폐소생술 조치가 취해졌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사망을 확인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나발니의 대변인인 키라 야르므시는 다음 날 그의 사망을 확인하고 유족에게 시신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사망 전 나발니는 교도소 내 학대 때문에 영양실조와 기타 질병을 호소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의 시신은 2024년 2월 24일 어머니에게 돌려졌다.

2023년 10월 13일, 나발니의 변호사 3명인 이고르 세르구닌, 알렉세이 립체르, 바딤 코브체프가 형무소에서 외부 세계로 그의 메시지를 전달한 혐의로 "극단주의 공동체 참여"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이 범죄에 대한 처벌은 최대 6년의 징역이다.

독살 후 독일에서 쓰기 시작한 나발니의 회고록인 애국자는 그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에 의해 2024년 10월 22일 사후에 출판되었다.

2024년 5월 24일, DW 뉴스(DW News)는 2024년 초 나발니와 에반 게르슈코비치가 거의 바딤 크라시코프와 교환될 뻔했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바딤 크라시코프는 2019년 8월 베를린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푸틴 정권에 폭력적으로 반대했던 조지아계 체첸인 젤림한 칸고슈빌리를 암살했다.

* 『나발니: 푸틴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자의 진실』에 따르면, 지식인 계급(인텔리겐치아)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솔직한 말투", "애교 있고,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금방 화를 내기도 한다"는 특징이 있다.
* 원래는 무신론자였지만, 이후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되었다. 그는 정교회로 개종함으로써 "어떤 거대한 보편적인 것의 일부"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 2021년 5월,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양심수(양심수)로 등록되었다. 투옥은 주로 그의 정치적 신념 때문으로 여겨진다.

9. 논란

나발니는 인종차별 및 극우적 언행,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찬성 등으로 논란이 되었다.

2017년 3월, 나발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부패 혐의로 고발하는 조사 보고서 그는 너에게 디몬이 아니다(He Is Not Dimon to You)를 발표했다. 당국은 이러한 혐의를 무시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제기한 것이라며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3월 26일, 나발니는 러시아 전역의 도시에서 반부패 시위를 조직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당국의 허가를 받았지만,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함한 다른 도시에서는 허가되지 않았다. 모스크바 경찰은 500명이 체포되었다고 밝혔지만, 인권단체 OVD-Info에 따르면 나발니 자신을 포함해 모스크바에서만 1,030명이 체포되었다. 3월 27일, 그는 불법 시위 조직 혐의로 2만 20000RUB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체포 저항 혐의로 15일간 구금되었다.

나발니는 지식인 계급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솔직한 말투", "애교 있고,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금방 화를 내기도 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는 무신론자였지만, 이후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되었다. 그는 정교회로 개종함으로써 "어떤 거대한 보편적인 것의 일부"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정치적 주장은 대러시아주의, 슬라브주의, 극우 민족주의자로 여겨지며, 반이슬람적 태도를 앞세워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반면, 동성결혼 찬성 등 자유주의적 측면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크렘린 타도를 목표로 친미·친서방 정책을 분명히 하고 있어 서방으로부터 권위주의, 부패와 싸우는 자유주의자로서의 글로벌 리더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한 태도는 크렘린 측으로부터 CIA나 MI6의 공작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실제로 러시아에서 컬러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나발니 측과 접촉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이민자 강제 추방을 주장한 적이 있으며,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의 이슬람계 이민자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반이슬람주의자로 묘사된다. 러시아조지아를 침공한 2008년에는 조지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장했다. 동성결혼에 찬성하며, 중앙아시아 출신 러시아 내 취업 노동자에 대해 "가치 없다"며 이민 수용 강화를 주장하는 한편, 독일에는 러시아인에 대한 노동 비자 면제를 호소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러시아의 병합을 칭찬하고,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취한 경제 제재에 반대했다. 2012년 우크라이나 TV에 출연하여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러시아는 하나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반전의 입장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기존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서 전환하고 있다.

9.1. 인종차별 논란

나발니는 피부색이 다른 카프카스계 군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사람은 총으로 죽여야 하지만 바퀴벌레는 슬리퍼로 밟아 죽여야 한다.”고 말해 인종차별 논란을 빚었다.

2006년에는 반 외국인 성향을 띈 '러시아인의 행진'(Русский марш러시아어) 승인을 모스크바 연방특별시 시청에 청원하고 참관인 자격으로 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이듬해 사회자유주의 정당인 야블로코로부터 '인종차별적, 민족주의적 활동 등으로 해당행위를 저질렀다'며 제명당했다.

2012년 러시아 투데이는 이라는 방송을 통해 나발니가 과거 외국인들을 '러시아 민족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치에 비유하며 추방을 요구하는 영상을 공개하는 등 그의 과거 인종차별적 행보를 폭로하기도 했다.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를 앞두고는 2년 전 중앙아시아 이민자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코카서스 급식 중단' 캠페인에 관여한 과거와 야블로코당에서 제명당한 이후에도 '러시아인의 행진' 시위에 지속적으로 참가해 왔던 경력이 논란을 빚었다.

9.2. 러시아-조지아 전쟁 찬성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당시 알렉세이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연방 정부주석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 대통령을 지지하며 전쟁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루지야(현 조지아)에 대한 적극적 봉쇄조치가 필요하며 크루즈 미사일을 동원해 (그루지야) 참모본부를 공격해야 하고, 남오세티야 공화국 상공을 지나는 모든 항공기들을 격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 내 조지아인들을 '설치류 떼들'(грызуны러시아어)이라 비하하며 그들을 전부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쟁 이후에는 남오세티야 공화국과 압하스 공화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5년 후 모스크바 연방특별시 시장 선거 과정에서 과거가 논란이 되자 나발니는 블로그를 통해 '조지아인들을 설치류 떼라고 비하한 것을 사과한다'고 말했으나, 전쟁에 찬성했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2008년과 2017년에는 러시아가 몰도바의 분리주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 수상 및 영예

나발니는 2009년 러시아 경제지 《베도모스티》(Vedomosti)와 증권 시황 분석지 《Stock in Focus》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2010년에는 미국 예일대학교 ‘월드 펠로우 프로그램(World Fellows Program)(World Fellows Program)’에 월드 펠로우로 선정되었다.

2011년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정부 투명성의 새로운 세계를 형성한" 공로로 나발니를 다니엘 돔셰이트-베르크, 튀니지의 사미 벤 가르비아와 함께 FP 세계 100대 사상가로 선정했다. 2012년에도 《FP》는 다시 그를 선정했다. 그는 2012년 《타임》(Time)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이 명단에 오른 유일한 러시아인이었다. 2013년 나발니는 영국 잡지 《프로스펙트》(Prospect) 온라인 투표에서 "세계 사상가" 중 48위를 차지했다.

2015년 알렉세이와 올레그 나발니 형제는 "유럽 기억과 양심 플랫폼 2015년 상"을 수상했다.

2017년 6월, 나발니는 《타임》의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목록에 포함되었다. 2017년 12월, 그는 《베도모스티》에서 "2017년 올해의 정치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베도모스티》 독자들에 의해 "2019년 올해의 정치인"으로 선정되었다.

나발니는 여러 노르웨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2021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나발니 후보 지명을 지지하는 인터넷 청원에는 3만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2021년 2월 나발니가 투옥된 후, 보리스 넴초프 자유재단은 나발니에게 보리스 넴초프 용기상을 수여했다. 2021년 6월 8일, 나발니의 딸은 인권과 민주주의 제네바 정상회담에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도덕적 용기상을 수상했다. 나발니는 정치범들에게 이 상을 헌정했다. 2021년 9월, 나발니는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는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등장이었다. 같은 해 9월, 그는 카지미에시 푸와스키 재단이 수여하는 자유 기사 훈장을 받았다.

2021년 10월, 그는 유럽 의회의 연례 인권상인 사하로프상을 수상했다. 유럽 의회 의장 다비드 사솔리는 나발니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부패에 대해 끊임없이 싸워왔다. 이로 인해 그는 자유를 빼앗기고 목숨까지 위협받았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같은 해 말, 그는 표현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독일의 M100 미디어 상을 수상했다.

2022년, 그는 미국 시민 용기상을 수상했다.

2023년,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발니》(Navalny)는 다니엘 로어 감독의 작품으로, 제76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제95회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2021년 프라하의 알렉세이 나발니 전망대
2021년 프라하의 알렉세이 나발니 전망대

독일 베를린 러시아 대사관 앞 나발니 사후 추모식
독일 베를린 러시아 대사관 앞 나발니 사후 추모식

11. 가족

2013년 나발니와 그의 아내 율리아
2013년 나발니와 그의 아내 율리아

알렉세이 나발니는 2000년 야블로코(Яблоко) 당원이었던 율리아 나발나야(결혼 전 성은 아브로시모바)와 결혼하여 딸 다샤(다리아) 나발나야와 아들 자하르, 두 자녀를 두었다. 딸 다샤는 2019년 9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학부 과정을 시작했다. 나발니의 부모님은 1994년부터 바구니 짜기 공장을 운영하며 개인 소유하고 있다.

나발니의 가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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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출생비고
어머니류드밀라 이바노브나 나발나야1954년러시아 제레노그라드 출신
아버지아나톨리 이바노비치 나발니1947년우크라이나 찰리시아 출신
배우자율리아 나발나야결혼 전 성은 아브로시모바
다샤(다리아) 나발나야스탠퍼드 대학교 학부 과정
아들자하르

12. 저서

* 《맞서는 세력: 새로운 러시아의 음모》 (2016년 12월 8일)
* 〈블라디미르 푸틴: 2022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타임 100, 타임, 2022년 5월 23일
* 《애국자》 (2024년 10월 22일), 수감 중 집필한 회고록
* 《PATRIOT プーチンを追い詰めた男 最後の手記》 斎藤栄一郎・星薫子訳、講談社、2024年 ISBN 978-406538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