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다다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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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쓰다이라 다다후사는 요시다 번 초대 번주 마쓰다이라 다다토시의 장남으로, 미카와 가리야, 단바 후쿠치야마를 거쳐 히젠 시마바라 번주를 역임했다. 시마바라 번 통치를 위해 번정 개혁을 추진하고, 문학을 장려하여 마쓰다이라 문고를 설립했다. 에도 막부로부터 중용받아 종4위하에 올랐으나, 후계자 문제로 은거 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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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쿠라 가쓰이에는 아버지와 함께 시마바라성을 건설하고 가혹한 수탈과 기리시탄 탄압을 자행했으며, 시마바라의 난 발발 후 개역되어 참수형에 처해진 에도 시대 초기의 다이묘이다.
마쓰다이라 다다후사 | |
---|---|
기본 정보 | |
씨족 | 후코즈 마쓰다이라 가 |
이름 | 마쓰다이라 다다후사 |
한자 표기 | 松平忠房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중기 |
출생 | 1619년 3월 27일 |
사망 | 1700년 11월 11일 |
어릴 적 이름 | 고로하치 |
계명 | 고케이인덴 다이코우레이 타이야 운겐츠우 다이코지 |
묘소 | 아이치현 누카타군 고타정 후코즈의 혼코지 |
관위 | 종5위하 주덴노카미, 종4위하 |
막부 | 에도 막부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미쓰 → 이에쓰나 → 쓰나요시 |
번 | 미카와 요시다 번 번주 → 동 가리야 번 번주 → 단바 후쿠치야마번 번주 → 히젠 시마바라번 번주 |
아버지 | 마쓰다이라 다다토시 |
어머니 | 마쓰다이라 이에키요 딸 |
형제자매 | 다다후사, 다다스에, 여동생 (기노시타 도시하루 정실) |
정실 | 나베시마 가쓰시게의 딸, 에이슌인덴 |
측실 | 이시마루 사다쓰구의 딸 |
자녀 | 요시후사, 다다미치 |
양자 | 다다오 |
관직 경력 | |
미카와 요시다 번 번주 | 1632년 |
미카와 가리야 번 번주 | 1632년 ~ 1649년 |
단바 후쿠치야마번 번주 | 1649년 ~ 1669년 |
히젠 시마바라번 번주 | 1669년 ~ 1698년 |
2. 생애
겐나 5년(1619년) 마쓰다이라 다다토시의 장남으로 요시다성에서 태어났다. 간에이 9년(1632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가독을 이었으나, 미카와 가리야로 이봉되었다. 게이안 2년(1649년)에는 단바 후쿠치야마번으로, 간분 9년(1669년)에는 히젠 시마바라번으로 옮겨 봉해졌다.
시마바라 번에서는 번정 개혁을 실시하고, 검지와 감세 정책을 통해 농민 경영 안정화에 힘썼다. 또한 문학을 장려하여 많은 서적을 수집했고, 이는 마쓰다이라 문고로 남아있다.[1] 에도 막부로부터 중용되어 나가사키 봉행 감독, 나가사키 경비, 서국 다이묘 감시 등의 임무를 맡았으며, 덴나 3년(1683년)에는 종4위하로 승진했다.
하지만 장남 마쓰다이라 요시후사는 요절했고, 차남 마쓰다이라 다다미치는 어리석어 후계자를 얻지 못했다. 마쓰다이라 이야유키의 차남 마쓰다이라 다다오를 양자로 맞아 겐로쿠 11년(1698년)에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겐로쿠 13년 (1700년) 10월 1일에 82세로 사망했다.[1]
2. 1. 출생과 가독 상속
겐나 5년(1619년) 2월 12일, 요시다 번 초대 번주 마쓰다이라 다다토시의 장남으로 요시다성에서 태어났다. 간에이 9년(1632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가독을 이었으나, 같은 해 8월 12일에 미카와 가리야로 이봉되었다. 그해 12월에 종5위하·주전두에 서위·임관되었다.2. 2. 후쿠치야마 번주 시대
1619년 2월 18일, 아마다군·이카루가군 등지에 1만 5000석을 추가로 받아 4만 5000석으로 단바 후쿠치야마번으로 봉해졌다.[1] 1666년에는 단고국 미야즈번 3대 번주 교고쿠 다카쿠니가 개역(영지 몰수)되자 미야즈성을 접수하는 역할을 맡았다.2. 3. 시마바라 번주 시대
간분 9년(1669년) 6월 8일, 2만 3000석을 더 받아 6만 5900석으로 히젠 시마바라번으로 옮겨 봉해졌다. 시마바라 번에서는 번정 확립을 위해 적극적인 번정 개혁을 실시하여, 여러 행정 기관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간분 11년(1671년)에는 종문개를 실시하여 사찰 정책에 힘썼으며, 엔포 7년(1679년)에는 검지를 실시하여 검견제를 세율로 정하는 한편, 감세 정책 등도 실시하여 농민 경영의 안정화에 힘썼다.[1] 또한 문학을 장려하여, 다다후사 자신도 많은 서적을 수집했고, 현재는 그 서적들이 마쓰다이라 문고로 소장되어 있으며[1], 스스로도 "상사원충방"이라는 장서인을 사용하고 있다.간분 12년(1672년) 7월에는 아마쿠사군 1300석을 예탁지로 받게 되었는데, 이는 다다후사에게 나가사키 봉행의 감독 및 나가사키 경비·서국 다이묘의 감시를 명령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에도 막부로부터 중용된 다다후사는, 덴나 3년(1683년) 12월에 종4위하로 승진했다.
2. 4. 문예 진흥과 마쓰다이라 문고
마쓰다이라 다다후사는 문학을 장려하여 많은 서적을 수집했으며, 현재 그 서적들은 마쓰다이라 문고로 소장되어 있다.[1] 다다후사는 스스로 "상사원충방"이라는 장서인을 사용했다.[1]2. 5. 에도 막부의 중용
간분 9년(1669년) 6월 8일, 2만 3000석이 증봉되어 6만 5900석으로 히젠 시마바라에 봉해졌다. 시마바라 번에서는 번정 확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번정 개혁을 실시하여 여러 행정 기관을 설치했고, 간분 11년(1671년)에는 종문개를 실시하여 사찰 정책에 힘썼으며, 엔포 7년(1679년)에는 검지를 실시하여 검견제를 세율로 정하는 한편, 감세 정책 등도 실시하여 농민 경영의 안정화에 힘썼다.[1] 또한 문학을 장려하여, 다다후사 자신도 많은 서적을 수집했고, 현재는 그 서적들이 마쓰다이라 문고로 소장되어 있으며[1], 스스로 "상사원충방"이라는 장서인을 사용했다.간분 12년(1672년) 7월에는 아마쿠사군 1300석을 예탁지로 받게 되었는데, 이는 다다후사에게 나가사키 봉행의 감독 및 나가사키 경비, 서국 다이묘의 감시를 명령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에도 막부로부터 중용된 다다후사는 덴나 3년(1683년) 12월에 종4위하로 승진했다.
2. 6. 후계 문제와 은거
하지만 다다후사의 장남 마쓰다이라 요시후사는 요절했고, 차남 마쓰다이라 다다미치는 어리석었기 때문에 폐적되어 후계자를 얻지 못했다. 마쓰다이라 이야유키의 차남 마쓰다이라 다다오를 양자로 맞아 겐로쿠 11년 (1698년) 4월 18일에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겐로쿠 13년 (1700년) 10월 1일에 사망했다. 향년 82세였다.[1]3. 계보
항목 | 내용 |
---|---|
아버지 | 마쓰다이라 다다토시 |
어머니 | 마쓰다이라 이에키요의 딸 |
정실 | 에이슌인 - 나베시마 가쓰시게의 딸 |
측실 | 이시마루 사다쓰구의 딸 |
장남 | 마쓰다이라 요시후사 |
차남 | 마쓰다이라 다다미치 |
양자 | 마쓰다이라 타다오 - 마쓰다이라 이에유키의 차남 |
4. 마쓰다이라기 필사본
도요하시 시립도서관 소장본인 마쓰다이라기의 다다후사 필사본이 레이와 5년(2023년) 현재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밝혀졌다. 이 필사본의 기록은 다른 필사본과 크게 다른 부분이 있어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전의 마쓰다이라 가문의 역사에 대한 해명이 진전될 것으로 기대된다[2]。 이 필사본에는 다다후사가 자신의 계도를 조합하여 검토한 것으로 보이는 기술, 오쿠보 다다타카의 미카와 이야기(三河物語)를 참고하여 비교 검토한 것으로 보이는 기술도 있다.
참조
[1]
간행물
松平忠房の孝子伝 ―漢文孝子伝の役割と展開―
日本近世文学会
2010
[2]
웹사이트
【新発見!】当館所蔵の『松平記』が吉田藩主松平忠房直筆であることを確認しました!
https://www.library.[...]
豊橋市図書館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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