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대대기념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만수대대기념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 위치한 기념비로,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2년 김일성의 60회 생일을 기념하여 김일성 동상이 처음 세워졌으며,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일 동상이 추가되었다. 기념비는 김일성 동상의 금박 제거, 김일성 동상의 의상 변경 등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기념비는 조선혁명박물관, 백두산 모자이크 벽화, 군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한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여 헌화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만수대대기념비는 북한의 개인 숭배와 관련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평양시의 관광지 - 주체사상탑
주체사상탑은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기념하여 대동강 동편에 김일성 광장과 마주보도록 세워진 170m 높이의 기념탑으로, 고대 한국 석탑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25,550개의 화강암 블록 탑신과 금속 횃불, 노동자, 농민, 지식인 조각상으로 구성되어 조선로동당 휘장을 형상화했으며, 주체사상을 상징하는 건축물로서 정치적 의미, 디자인, 문화적 영향과 관련하여 논란과 비판이 있다. - 평양시의 관광지 - USS 푸에블로 (AGER-2)
USS 푸에블로(AGER-2)는 미국 육군의 경수송함으로 건조되었다가 해군 정보 수집함으로 개조되어 1968년 동해에서 북한에 나포된 후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 및 전시 중이며, 이 사건은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각품 -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은 평양 보통강변에 건립되어 한국 전쟁 승리를 기념하고 북한 주민의 이념적 단결을 도모하는 구조물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각품 - 천리마동상
김일성 49번째 생일에 맞춰 공개된 천리마동상은 만수대 창작사에서 제작한 김일성 헌정 기념비로, 인민 예술 발전 연설을 계기로 건립되어 인민상을 수상했으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붉은 편지"와 벼 이삭을 든 노동자와 농민이 천리마에 올라탄 모습으로 표현된 총 높이 46m의 조형물이다.
만수대대기념비 | |
---|---|
개요 | |
![]() | |
위치 | 만수대, 평양, 북한 |
좌표 | 39° 1′ 55″ N, 125° 45′ 12″ E |
설계 | 만수대창작사 |
종류 | 기념물 |
높이 | 22m |
완공 | 1972년 (김일성 동상), 2012년 (김정일 동상) |
헌정 대상 | 북한의 역사적 지도자 |
명칭 | |
한국어 | 만수대대기념비 |
한자 | 萬壽臺大紀念碑 |
추가 정보 | |
참고 자료 | BBC: 북한 은둔 왕국으로의 여행 Tongil Tours: 만수대대기념비 |
2. 역사
1972년 4월, 김일성 생일 60주년을 기념하여 만수대대기념비가 건립되었다. 김정일의 지시로 건립된 이 기념비는 처음에는 김일성 단독 동상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5년 후 동상에 금박을 입혔으나, 덩샤오핑 방북 이후 제거되었다.[3][4]
김일성과 김정일의 높이 약 20미터의 동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항일 혁명 투쟁을 표현한 군상 119체, 왼쪽에는 사회주의 건설 역사를 표현한 군상 109체가 있다. 동상 뒤에는 백두산을 그린 길이 약 70미터, 높이 약 13미터의 모자이크 벽화 (조선혁명박물관 외벽)가 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후, 평양 시민들은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 동상 앞에 조문을 갔다.[9] 2000년 10월 24일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동행한 미국인 기자가 김일성 동상 앞에서 포즈를 흉내내어 사진을 찍으려다 북한 안내원으로부터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0]
만수대대기념비는 동쪽 언덕 아래 승리거리·평양 지하철 천리마선모란봉역 앞에서 폭이 넓은 계단 참관로가 있어,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평양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평양에서 결혼한 남녀는 결혼식 후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헌화하는 관습이 있다.[11]
2. 1. 건립 배경
1972년 4월, 김정일은 김일성의 60회 생일을 기념하여 이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 기념비는 평양을 내려다보는 김일성 단독 동상을 특징으로 한다. 5년 후, 동상은 금박으로 덮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금박은 덩샤오핑의 방문 후 제거되었는데, 그는 기념비를 보고 중국의 원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불만을 표했다.[3][4]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일성 동상 북쪽에 그와 유사한 동상이 세워졌다. 동시에 김일성 동상은 더 나이든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변경되었다. 김일성의 원래 마오 쩌둥 수트도 서양식 양복으로 바뀌었다. 김정일의 동상은 처음에는 긴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곧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카로 변경되었다.[5] 대한민국 측은 추가 동상 건설 비용을 1000만달러로 추산했으며,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150USD씩 기부하도록 지시했다.[6]
1972년 4월 김일성 생일 60주년을 기념하여 김일성의 거대한 동상 등이 세워졌다. 2011년 12월 사망한 김정일의 거대한 동상은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은 2012년 4월 13일에 설치되었다(김일성상도 이에 맞춰 인민복 차림에서 수트 차림으로 다시 제작되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거대한 동상은 북한의 개인 숭배의 상징적인 예로 언급되기도 한다.
2. 2. 김정일 동상 추가 및 변화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일성 동상 북쪽에 김정일 동상이 추가되었다. 이와 함께 김일성 동상은 더 나이든 모습과 미소짓는 모습으로 변경되었다. 김일성의 원래 마오 쩌둥 수트는 서양식 양복으로 변경되었다. 김정일 동상은 처음에는 긴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곧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카 차림으로 변경되었다.[5] 대한민국 측은 추가 동상 건설 비용을 1000만달러로 추산했으며,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기념비에 150달러씩 기부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6]2012년 4월 13일,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아 김정일 동상이 설치되었고, 김일성 동상도 인민복 차림에서 수트 차림으로 다시 제작되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은 북한의 개인 숭배의 상징적인 예로 언급되기도 한다.
2. 3. 동상 건립 비용 논란
1972년 4월, 김정일은 김일성의 60회 생일(환갑)을 기념하여 만수대대기념비를 건립했다. 이 기념비는 평양을 내려다보는 김일성의 단독 동상을 특징으로 한다. 5년 후, 동상에 금박을 입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덩샤오핑이 방문했을 때 이 금박은 제거되었다. 덩샤오핑은 기념비를 보고 중국의 원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불만을 표했다.[3][4]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일성 동상 북쪽에 김정일 동상이 추가로 세워졌다. 김일성 동상은 더 나이든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변경되었다. 김일성의 복장도 원래 마오 쩌둥 수트에서 서양식 양복으로 바뀌었다. 김정일의 동상은 처음에는 긴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곧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카로 변경되었다.[5] 대한민국 측은 추가 동상 건설 비용을 1000만달러로 추산했으며,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기념비에 150USD씩 기부하도록 지시했다.[6]
3. 구성
만수대대기념비는 중앙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군상 조각들과 조선혁명박물관 건물, 그리고 백두산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김일성 국가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높이 약 20m의 거대한 동상이 동쪽을 향해 서 있고, 그 오른쪽에는 항일 혁명 투쟁을 표현한 대형 기념비와 119체의 군상이, 왼쪽에는 사회주의 건설 역사를 표현한 대형 기념비와 109체의 군상이 배치되어 있다. 거대한 동상 뒤에는 "조선 인민이 계승하고 있는 혁명 전통을 상징하는 혁명의 성산"으로 백두산을 그린 길이 약 70m, 높이 약 13m의 모자이크 벽화(조선혁명박물관의 외벽)가 있다.
북한 공식 웹사이트는 이 조각상들이 "위대한 대원수들의 현명한 영도 하에 승리와 영광만을 기록한 조선 인민의 불멸의 혁명 투쟁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라고 묘사한다.[8]
동상의 방향에 맞춰 동쪽 언덕 아래 승리거리·평양 지하철 천리마선모란봉역 앞에서 폭이 넓은 계단의 참관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지역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평양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3. 1. 김일성, 김정일 동상
1972년 4월 김일성 주석의 60회 생일을 기념하여 처음으로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졌다. 2011년 12월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은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인 2012년 4월 13일에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때 김일성 동상의 복장도 인민복에서 양복 차림으로 변경되었다.[1]

두 동상은 약 20m 높이로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그 뒤로는 조선 혁명 박물관 건물 외벽에 백두산을 묘사한 대형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7]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은 북한의 개인 숭배의 상징적인 예로 언급되기도 한다.
현지 주민과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방문객은 동상 앞에서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해야 한다. 현지인들은 존경의 의미로 꽃을 바치며, 외국인에게도 선택 사항으로 제공된다. 동상의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만, 동상의 전체 모습을 담아야 한다.[1] 지도자 동상의 특정 부분을 확대하여 촬영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4]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다음 날인 7월 9일부터 평양 시민들은 매일 아침부터 심야까지 평균 60만 명이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 동상에 조문을 갔다.[9]
2000년 10월 24일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동행한 미국인 기자가 김일성 동상의 포즈를 흉내 내어 사진을 찍으려다 북한 안내원에게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0] 북한 당국은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동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평양에서 결혼한 남녀는 결혼식 후 가족보다 먼저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헌화하고 결혼을 보고하는 관습이 있다.[11]
3. 2. 군상
조선 혁명 박물관 건물 중앙 조각상 뒤에는 백두산을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7] 백두산은 혁명의 성산으로 여겨진다. 조각상의 양쪽에는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각각 다른 병사, 노동자, 농민들의 조각상으로 구성된 두 개의 기념비가 있는데, 이들은 반일 혁명 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한 인물들이다. 그 위에 묘사된 인물들의 긴 행렬은 평균 5m 높이이다.
3. 3. 조선혁명박물관과 백두산 벽화
조선혁명박물관 건물 중앙 조각상 뒤에는 백두산을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7] 백두산은 혁명의 성산으로 여겨진다. 조각상의 양쪽에는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각각 다른 병사, 노동자, 농민들의 조각상으로 구성된 두 개의 기념비가 있는데, 이들은 반일 혁명 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한 인물들이다. 그 위에 묘사된 인물들의 긴 행렬은 평균 5미터 높이이다.김일성 국가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높이 약 20미터의 동쪽을 향한 거대한 동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항일 혁명 투쟁을 표현한 대 기념비와 군상 119체, 왼쪽에는 사회주의 건설 역사를 표현한 대 기념비와 군상 109체가 있다. 거대한 동상 뒤에는 조선혁명박물관의 외벽에 백두산을 그린 길이 약 70미터, 높이 약 13미터의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북한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4. 방문 및 참배
만수대대기념비는 국경일이나 기념일뿐만 아니라 평범한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바친다. 결혼하는 커플들이 방문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8]
4. 1. 북한 주민의 방문
현지인과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방문객은 만수대대기념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한다. 현지인들은 존경의 표시로 꽃을 바쳐야 하며, 외국인에게도 선택 사항으로 제공된다.[1] 조각상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만, 조각상 전체를 담아야 한다.[1] 지도자 조각상의 특정 부분을 확대하여 촬영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4]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이 다음 날 7월 9일 발표되자, 이른 아침부터 심야까지 매일 평균 60만 명의 평양 시민이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 동상 앞에 조문을 갔다.[9]
2000년 10월 24일, 방북 중이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동행한 미국인 기자가 만수대대기념비에서 김일성상 앞에서 김일성상의 포즈를 흉내 내어 스냅 사진을 찍으려 하자, 현지 북한 안내인으로부터 제지를 받아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10] 북한 당국은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동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동상 방향에 맞춰 동쪽 언덕 아래 승리거리·평양 지하철 천리마선모란봉역 앞에 폭이 넓은 계단 참관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지역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평양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평양에서 결혼한 남녀는 결혼식 후 차를 타고 만수대에 가서 가족보다 먼저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결혼 보고와 헌화를 하는 관습이 있다.[11]
4. 2.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현지인과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방문객은 만수대대기념비를 방문할 때 존경의 표시로 허리를 굽혀야 한다. 현지인들은 존경을 표하기 위해 꽃을 바쳐야 하며, 외국인들에게도 선택 사항으로 제공된다.[1] 조각상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만, 사진은 조각상 전체를 담아야 한다.[1] 지도자 조각상의 특정 부분을 확대하여 촬영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4]2000년 10월 24일에는 방북 중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동행한 미국인 기자 한 명이 만수대대기념비에서 김일성상 앞에서 김일성상의 포즈를 흉내내어 스냅 사진을 찍으려 하자, 현지 북한 안내인으로부터 제지를 받아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10] 이처럼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동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은 북한 정부 당국에서 금기시되고 있다.
북한 공식 웹사이트는 만수대대기념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이 조각상들은 위대한 대원수들의 현명한 영도 하에 승리와 영광만을 기록한 조선 인민의 불멸의 혁명 투쟁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국경일과 기념일뿐만 아니라 평범한 날에도 조각상 앞에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바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결혼하는 커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언덕을 올라 위대한 대원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동상의 방향에 맞춰 동쪽 언덕 아래 승리거리·평양 지하철 천리마선모란봉역 앞에서 폭이 넓은 계단의 참관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지역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평양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평양에서 결혼한 남녀는 결혼식 후 차를 타고 만수대에 가서 가족보다 먼저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결혼 보고와 헌화를 하는 관습이 있다.[11]
4. 3.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방북 당시 논란
2000년 10월 24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방북 당시, 동행한 미국인 기자가 만수대대기념비에서 김일성 동상의 포즈를 흉내 내어 사진을 찍으려다 북한 안내원에게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0] 이는 북한 당국이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동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이다.5. 비판 및 논란
만수대대기념비는 북한의 개인 숭배 및 우상화, 강제 헌화 및 참배 등의 논란과 관련되어 있다.
5. 1. 개인숭배 및 우상화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은 북한의 개인 숭배의 상징적인 예로 언급된다.[9]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이 다음 날 7월 9일 발표되자, 이른 아침부터 심야까지 매일 평균 60만 명의 평양 시민이 만수대대기념비에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 조문을 갔다.[9]
2000년 10월 24일에는 방북 중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동행한 미국인 기자 한 명이 만수대대기념비에서 김일성상 앞에서 김일성상의 포즈를 흉내 내어 스냅 사진을 찍으려 하자, 현지 북한 안내인으로부터 제지를 받아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10]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동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은 북한 당국에서 금기시되고 있다.
평양에서 결혼한 남녀는 결혼식 후 차를 타고 만수대에 가서 가족보다 먼저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결혼 보고와 헌화를 하는 관습이 있다.[11]
5. 2. 강제 헌화 및 참배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이 다음 날 7월 9일 발표되자, 이른 아침부터 심야까지 매일 평균 60만 명의 평양 시민이 만수대대기념비에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 조문을 갔다.[9] 2000년 10월 24일에는 방북 중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동행한 미국인 기자 한 명이 만수대대기념비에서 김일성상 앞에서 김일성상의 포즈를 흉내 내어 스냅 사진을 찍으려 하자, 현지 북한 안내인으로부터 제지를 받아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10]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동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은 북한 당국에서 금기시되고 있다.평양에서 결혼한 남녀는 결혼식 후 차를 타고 만수대에 가서 가족보다 먼저 만수대대기념비의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결혼 보고와 헌화를 하는 관습이 있다.[11]
6. 사진
참조
[1]
웹사이트
A Journey into the Hermit kingdom of North Korea
https://www.bbc.com/[...]
BBC
2012-07-19
[2]
웹사이트
Mansu Hill Grand Monument
https://web.archive.[...]
Tongil Tours
2023-01-04
[3]
웹사이트
Mansudae Grand Monument
http://www.lonelypla[...]
2017-03-06
[4]
서적
See You Again in Pyongyang
Hachette
2018-07-10
[5]
서적
North Korea: The Bradt Travel Guide
https://books.google[...]
Bradt Travel Guides
[6]
뉴스
Kim Jong-il personality cult costs North Korea £62m
https://www.telegrap[...]
Daily Telegraph
2012-12-05
[7]
웹사이트
North Korea Statues: Kim Jong-Un Attends Ceremony In Pyongyang For Unveiling Of Family Monuments
http://www.huffingto[...]
AOL (UK) Limited
2012-04-13
[8]
웹사이트
Grand Monument on Mansu Hill
http://exploredprk.c[...]
2017-12-03
[9]
뉴스
金・北朝鮮主席死去 全国の銅像前で弔意は国民の4分の3以上
読売新聞社
1994-07-14
[10]
뉴스
故金日成主席のまね「ご法度」米国人記者に北朝鮮激怒
朝日新聞社
2000-10-25
[11]
웹사이트
北朝鮮・平壌マラソン参戦記、前編。参加費は「米ドル現金払い」の闇。
https://number.bunsh[...]
文藝春秋
2019-05-1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