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바테스
1. 개요
메가바테스는 아르타페르네스와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1세의 사촌으로, 기원전 498년부터 기원전 494년까지 일어난 이오니아 반란 진압 사령관이었다. 그는 삼단노선 200척과 육군을 이끌고 낙소스를 공격하려 했으나, 아리스타고라스와의 갈등으로 작전이 누설되어 실패했다. 이후 메가바테스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출생 및 사망 연도 또한 불분명하다.
| {"caption":"기원전 5세기 초에 활동했던 아케메네스 제국의 장군"} | |
| 이름 | 메가바테스 |
|---|---|
| 원어 이름 | [[wiktionary:Reconstruction:Old Persian/Bagapātaʰpeo |
| 그리스어 이름 | {{script고대 그리스어 |
| 그리스어 로마자 표기 | Megabátēs |
| 활동 시기 | 기원전 6세기 말 ~ 기원전 5세기 초 |
|---|---|
| 소속 | 아케메네스 제국 |
| 직업 | 장군 |
| 주요 활동 | 낙소스 공성전 (기원전 499년) |
| 기타 정보 | 아케메네스 왕조의 혈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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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 제국의 제독 -
다티스
다티스는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장군으로, 이오니아 반란 진압과 제1차 페르시아 침공에서 활약했으며, 마르도니우스를 대신하여 아르타페르네스와 그리스 원정을 이끌고 마라톤 전투를 지휘했으나 패배했고,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평가는 나뉜다. -
아케메네스 제국의 제독 -
아르테미시아 1세
아르테미시아 1세는 할리카르나소스의 사트라프 딸이자 남편 사후 왕위를 계승,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 페르시아 함대 지휘관으로 참전하여 활약하며 헤로도토스로부터 지략과 용맹을 인정받고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
이오니아 반란 -
아르타페르네스
아르타페르네스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왕족이자 다리우스 1세의 형제로, 소아시아 사트라프를 역임하며 이오니아 반란 진압과 페르시아 제국의 팽창에 기여했다. -
이오니아 반란 -
밀티아데스
밀티아데스는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아테나이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트라키아 헤르소네소스의 참주였으나 아테네로 귀환하여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했지만 파로스 섬 공략 실패 후 민중 기만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사망했다. -
기원전 5세기 이란 사람 -
크세르크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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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이란 사람 -
다리우스 2세
다리우스 2세는 기원전 423년부터 404년까지 아케메네스 제국을 통치한 왕으로, 제국 안정과 국력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지방 총독들의 반발, 왕실 내부 권력 다툼, 잦은 전쟁 등으로 제국은 쇠퇴했다.
2. 생애
메가바테스는 아르타페르네스와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1세의 사촌이다. 이오니아 반란(기원전 498년~기원전 494년) 진압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삼단노선 200척과 육군을 이끌었다. 낙소스를 공격하려 했으나, 아리스타고라스와의 갈등으로 인해 계획이 누설되어 실패하고 철수했다.
그 이후 메가바테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며, 태어난 해와 죽은 해도 알려져 있지 않다.
2.1. 이오니아 반란 참전
메가바테스는 아르타페르네스와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1세의 사촌으로, 기원전 498년부터 기원전 494년까지 일어난 이오니아 반란을 진압하는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삼단노선 200척과 육군을 이끌고 반란 진압에 나섰다.
메가바테스는 낙소스를 공격하기 위해 적을 속이고자 헬레스폰투스로 가는 척하며 밀레투스를 지났다. 그러나 도중에 동행한 아리스타고라스와 게으른 선장의 처우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이 때문에 아리스타고라스는 앙심을 품고 낙소스에 메가바테스의 계획을 누설하였다.
결국 메가바테스는 미리 방어 태세를 갖춘 낙소스를 함락하지 못하고, 4개월 만에 보급 부족으로 철수해야 했다.
2.2. 불분명한 말년
기원전 498년 낙소스 공격 실패 이후 메가바테스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출생년도와 사망년도 역시 알려진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