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리처드슨 케네디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메리 리처드슨 케네디는 1994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결혼한 미국인으로, 건축 디자이너이자 식품 알레르기 연구 기금 공동 설립자이다. 브라운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건축 설계를 공부했으며, 1980년대 맨해튼 소호에서 활동했다. 1998년 식품 알레르기 이니셔티브를 공동 설립했고, 미국 부통령 관저 개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2010년 이혼 소송 중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었으며, 2012년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사인은 자살로 판결되었다.

메리 리처드슨 케네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08년의 리처드슨 케네디
본명메리 캐슬린 리처드슨
출생1959년 10월 4일
출생지미국뉴저지주베이욘
사망2012년 5월 16일
사망지미국뉴욕주
학력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
브라운 대학교
직업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
자선 사업가
배우자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1994년 결혼, 2010년 별거)
자녀4명
친척케네디 가문(결혼을 통해)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60년 출생 - 정진석 (정치인)
  • 1960년 출생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미국의 건축가 - 피터 아이젠먼
    피터 아이젠먼은 탈구조주의 건축과 CAD의 선구적인 미국 건축가이자 이론가이며, 뉴욕 5인조의 일원으로서 활동했고, 유럽 유대인 학살 기념관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 디자인 어워드와 울프상을 수상했다.
  • 미국의 건축가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20세기 미국 건축의 선구자로서, 독창적인 건축 양식과 유기적 건축 철학으로 낙수장, 구겐하임 미술관 등 상징적인 건축물을 남겼고 현대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 2012년 사망 - 시아오시 투포우 5세
    시아오시 투포우 5세는 통가의 제23대 국왕으로,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다 2006년 즉위 후 민주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권력을 이양하는 등 통가의 정치 개혁에 힘썼으나 결혼하지 않아 왕위 계승권이 있는 자녀는 없었다.
  • 2012년 사망 - 에릭 홉스봄
    에릭 홉스봄은 영국 출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등 저술을 통해 근대와 20세기를 분석했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옹호적 시각과 소련의 범죄에 대한 침묵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메리 캐슬린 리처드슨은 1959년 10월 4일에 태어나 뉴저지주 호보켄에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 존 F. 리처드슨은 변호사이자 스티븐스 공과대학교 교수였으며, 그녀가 12세 때 사망했다. 리처드슨의 어머니는 공립학교 영어 교사였던 낸시 히긴스였다. 리처드슨은 네 명의 자매와 두 명의 형제가 있었다.

그녀는 더 퍼트니 학교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로버트 F. 케네디와 에설 스코켈 케네디의 딸인 케리 케네디와 친구가 되어 룸메이트로 지냈다. 이후 대학에서도 케리 케네디와 함께 룸메이트로 지냈으며, 1990년 앤드루 쿠오모와의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를 맡았다.

리처드슨은 브라운 대학교에 다녔으며,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RISD)에서 건축 설계를 공부했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 캐리 케네디는 메리가 1980년에 예술가 앤디 워홀을 위해 한 학기 동안 일했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당시 20세였던 메리 리처드슨은 워홀과 라우센버그, 리히텐슈타인, 슈나벨을 포함한 그의 네트워크에 있는 다른 저명한 예술가들로부터 미술 작품 기증을 받았다.

3. 경력

리처드슨은 브라운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RISD)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했다.

1980년에는 예술가 앤디 워홀을 위해 한 학기 동안 일했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당시 20세였던 메리 리처드슨은 워홀과 라우센버그, 리히텐슈타인, 슈나벨을 포함한 그의 네트워크에 있는 다른 저명한 예술가들로부터 미술 작품 기증을 받았다. 1980년대에 맨해튼 소호에서 거주하며 보헤미안 문화를 접했다.

1993년, 패리시 해들리 디자인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미국 부통령 관저인 워싱턴 D.C.의 미국 해군 천문대 개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그녀의 작업은 친환경 건축 방식을 포함했고 에너지 및 환경 디자인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인증을 받았다. 2003년 자택의 홍수 피해 이후에는 케네디 그린 하우스 프로젝트로 알려진 대규모 복구 작업과 친환경 재건 프로젝트를 감독했다.

1998년, 미국에서 식품 알레르기 연구를 위한 가장 큰 사적 기금인 식품 알레르기 이니셔티브를 공동 설립했다.

4. 결혼 생활

1994년 4월 15일, 메리 리처드슨은 절친한 친구인 케리 케네디의 형제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허드슨 강의 연구 선박에서 결혼했다. 이들은 코너, 키라, 에이단, 윌리엄, 이렇게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메리는 로버트의 전 부인 에밀리 루스 블랙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트 프란시스 케네디 3세와 캐슬린 알렉산드라 케네디의 의붓어머니이기도 하다.

결혼 생활 동안, 케네디는 바람둥이로 널리 알려졌다. 배니티 페어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노골적인 누드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당시 가족의 보모였던 엘리자 코니에 대한 케네디의 성폭행 혐의도 이 기간 동안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5월 12일, 케네디는 리처드슨과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3일 후 리처드슨은 음주 운전 혐의로 체포되었다. 법원은 아이들의 임시 양육권을 남편에게 부여했다. 리처드슨은 알코올 의존증과 약물 남용으로 고통받았다고 알려졌다.

5. 사망

2012년 5월 16일, 메리 리처드슨 케네디는 뉴욕 주 베드포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교수형 자살로 판결되었으며, 부검 결과 혈액에서 항우울제가 검출되었다. 리처드슨은 사망 전 남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2001년 개인 일기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37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기록이 있었다. 케네디에 따르면 리처드슨은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론에 공개하라"는 지시와 함께 일기를 "자신의 자매들에게 넘겼다"고 한다.

케네디 가문이 주최한 장례식은 베드포드의 성 패트릭 가톨릭 교회에서, 리처드슨 가문이 주최한 추도식은 맨해튼의 스탠다드 호텔에서 열렸다. 유해 관리 권한을 두고 케네디와 리처드슨의 형제 토마스 W. 리처드슨 사이에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재판에서 승소하여 리처드슨을 매사추세츠 주 센터빌의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르 묘지에 있는 그의 고모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부부 곁에 안장했다. 며칠 후 케네디는 리처드슨의 유해를 묘지 내 빈 부지로 옮기고 묘비를 세웠다. 당시 언론은 케네디가 리처드슨 무덤 주변 부지 50개를 매입하려 협상했다고 보도했고, 이는 2019년 리처드슨의 조카 사에르시 케네디 힐이 곁에 안장되며 확인되었다.

5.1. 언론 보도 및 사회적 영향

2012년 5월 16일, 리처드슨은 뉴욕 주 베드포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교수형 자살로 판결되었다. 부검 결과 그녀의 혈액에서 항우울제가 검출되었다. 리처드슨은 사망 전 케네디의 2001년 개인 일기를 발견했는데, 일기에는 그가 37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기록이 담겨 있었다. 케네디에 따르면 리처드슨은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론에 공개하라"는 지시와 함께 일기를 "자신의 자매들에게 넘겼다".

케네디 가문이 주최한 그녀의 장례식은 베드포드의 성 패트릭 가톨릭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2012년 5월 21일, 리처드슨 가문이 주최한 추도식이 맨해튼의 스탠다드 호텔에서 열렸다. 그녀의 유해에 대한 권한을 어느 가문이 가질지를 놓고 그녀의 미망인과 그녀의 형제인 토마스 W. 리처드슨 사이에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재판에서 승소하여 그녀를 매사추세츠 주 센터빌에 있는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르 묘지에 있는 그의 고모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와 그녀의 남편 서전트 슈라이버 곁에 묻었다. 며칠 후, 케네디는 리처드슨의 유해를 묘지 내 빈 부지로 옮겨 그곳에 묘비를 세웠다. 당시 언론은 케네디가 리처드슨의 무덤 주변의 50개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협상했다고 보도했으며, 이는 2019년 메리의 조카인 사에르시 케네디 힐이 그녀 옆에 안장되면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