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토연
1. 개요
모용토연은 토욕혼의 창시자 모용토욕혼의 장남으로, 317년 부친의 사망 이후 토욕혼의 군주가 되었다. 그는 7척 8촌의 큰 키와 뛰어난 용모, 용맹함으로 강족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항우'로 불렸다. 하지만 성격이 잔혹하여 백성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329년 강족 추장 강총에게 암살당했다. 모용토연 사후 장남 모용엽연이 뒤를 이었고, 모용엽연은 사주에 모극천총부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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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년 사망 -
유희 (전조)
유희는 전조의 황족으로 황태자가 되었으나, 쿠데타로 죽은 줄 알았던 형 유인이 돌아오면서 태자 자리를 위협받았고, 결국 후조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처형당함으로써 전조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
329년 사망 -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아우구스타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아우구스타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아내이자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이며, 기독교로 개종하여 성지 순례, 교회 건립, 유물 발견에 기여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십자가를 발견한 인물이다. -
토욕혼의 지배자 -
모용쇄해
모용쇄해는 토욕혼의 군주 엽연의 장남으로, 371년 엽연 사후 즉위하여 전진에 복속하고 국내 정치 혼란 속에 세자 시련이 섭정을 맡았으며, 재위 25년 만에 42세로 사망한 후 시련이 뒤를 이었다. -
토욕혼의 지배자 -
모용토욕혼
모용토욕혼은 선비족 모용부의 인물로, 동생과의 갈등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여 토욕혼을 건국하고, 그의 자손들이 감숙성 일대로 이주하여 유목 생활을 하며 한인의 제도를 받아들였다. -
토욕혼 -
후군집
후군집은 당나라 초기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당 태종을 섬겨 현무문의 변에 기여하고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나, 말년에 탐욕과 반역으로 처형당해 공과가 엇갈리는 인물로 릉연각 24공신에 선정되었다. -
토욕혼 -
모용쇄해
모용쇄해는 토욕혼의 군주 엽연의 장남으로, 371년 엽연 사후 즉위하여 전진에 복속하고 국내 정치 혼란 속에 세자 시련이 섭정을 맡았으며, 재위 25년 만에 42세로 사망한 후 시련이 뒤를 이었다.
2. 생애
317년, 모용토욕혼이 죽자 장남 모용토연이 뒤를 이었다. 사서에는 그에 대해 '웅대한 모습이 괴걸(魁杰)하니 강족들이 그를 꺼렸고, 항우라고 호칭하였다.'라고 묘사하였다. 성격이 잔혹하여 아랫사람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329년, 강족 추장 강총(姜聰)에게 찔려 살해되었다. 죽을 때 장남 모용엽연에게 백란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다. 13년간 통치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모용토연은 토욕혼의 창시자인 모용토욕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장은 7척 8촌이었으며, 체격이 웅장하고 용기와 완력이 남달랐다. 강족은 그를 두려워하여 항우라고 불렀다. 재기가 뛰어나 속인과 교류하지 않았으며, 한의 고조나 광무제 시대였다면 한신, 팽월, 오한, 등우 등과 중원을 누볐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성격이 잔인하고, 재능을 믿고 아랫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2.2. 토욕혼의 군주 즉위
317년, 아버지 모용토욕혼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토욕혼의 군주 자리에 올랐다. 사서에는 그에 대해 '웅대한 모습이 괴걸(魁杰)하니 강족들이 그를 꺼렸고, 항우라고 호칭하였다.'라고 묘사하였다. 그의 신장은 7척 8촌이었으며, 체격이 웅장하고 용기와 완력이 남달랐다. 재능이 뛰어나 속인과 교류하지 않았으며, 한의 고조나 광무제 시대였다면 한신, 팽월, 오한, 등우 등과 중원을 누볐을 것이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격이 잔인하고, 재능을 믿고 아랫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