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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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장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성으로,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위치한다. 둘레 약 1,400m, 넓이 144,776m² 규모이며,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과 유구가 남아있다.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축조했으며,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곽으로 확인되었다. 2018년에는 비격진천뢰 11점이 발견되었다.

무장읍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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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읍성
이름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한자 표기高敞 茂長縣 官衙와 邑城
유형사적
지정 번호346
지정일1991년 2월 26일
주소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149-1번지 외
시대조선시대
면적205,997m2
참고고창 무장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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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무장읍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알려졌으나, 일부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따르면 조선 태종 17년(1417)에 축성되었다고 전한다.

2.1. 축성

무장읍성은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그동안 흙으로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공사 때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나면서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된 성곽 일부가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따르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하여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만 4개월 동안 축조했다고 전한다.

3. 구조

무장읍성은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그동안 흙으로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공사 때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나면서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한 성곽 일부가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하여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만 4개월 동안 축조했다고 전한다.

4. 주요 시설

무장읍성은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으며,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성 안에는 객사, 동헌 등 옛 건물이 남아 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물들이 흩어져 있다.

4.1. 객사

무장읍성 안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와 같은 옛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물들이 흩어져 있다.

4.2. 동헌

무장읍성 내에는 객사,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4.3. 진무루

진무루는 무장읍성의 남문으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측까지 연결된다.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성 안에는 객사, 동헌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흩어져 있다.

원래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알려졌으나, 공사 중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나면서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곽임이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따르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하여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 동안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5. 출토 유물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에서 비격진천뢰가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5.1. 비격진천뢰

호남문화재연구원은 2018년 11월 15일 전북 고창의 무장읍성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