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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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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대한민국에 분포하는 고인돌 유적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며, 특히 고창, 화순, 강화 지역의 고인돌을 중심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 고인돌의 기원은 동남아시아 전래설, 동북아시아 전래설, 한반도 자생설 등 여러 가설이 존재하며, 고인돌은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으로 분류된다. 고인돌은 무덤, 제단, 묘표석 등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되었으며, 피장자의 신분에 대한 여러 추측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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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개요
강화도의 고인돌
위치대한민국
좌표34
기준
ID977
등재 연도2000년
확장 연도2017년
면적51.65 헥타르 (ha)
완충 구역314.55 헥타르 (ha)
상세 위치
위치 1고창군
좌표 135
위치 2화순군
좌표 234
위치 3강화군
좌표 337
명칭
한국어고창, 화순, 강화 지석묘군
로마자 표기Gochang / Hwasun / Ganghwa Jiseongmyogun
문화관광부 표기Gochang, Hwasun, Ganghwa Goindol Yujeok
한자/ /
영어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프랑스어Sites de dolmens de Gochang, Hwasun et Ganghwa

2. 기원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며,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과정과 함께 한국 청동기 시대의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36]

한국 고인돌의 기원에 관해서는 크게 동남아시아 전래설, 동북아시아 전래설, 그리고 한반도 자생설의 세 가지 학설이 있다. 각 학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고인돌은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한 중심이며, 남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연안부에도 존재하지만, 한반도가 세계에서 고인돌 수가 가장 많다.

2. 1. 동남아시아 전래설

한국 고인돌의 기원에 관해서는 세 가지 주요 이론이 존재한다. 첫째, 고인돌과 그 축조에 대한 정보가 동남아시아로부터 해상로를 통해 전파되었다는 설이다. 둘째, 고인돌과 그 축조에 대한 정보가 한반도 북부에 살았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로부터 전파되었다는 설이다. 셋째, 한국의 고인돌은 한반도의 신석기 문명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4]

이 이론에 따르면, 고인돌과 그 축조에 대한 정보는 동남아시아에서 벼농사와 함께 전파되었다. 한반도의 많은 고인돌이 한국 서해안을 따라 분포하며, 특히 한반도 남부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러한 분포는 동남아시아로부터의 이주를 통한 전파와 일치할 수 있다.[5]

2. 2. 동북아시아 전래설

이 이론은 오늘날의 만주와 시베리아 남부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한반도로 이주할 때 고인돌과 그 제작 정보를 가져왔거나, 오늘날의 만주와 시베리아 남부의 다른 신석기 집단으로부터 이미 한반도에 있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게 그러한 정보가 전달되었다고 가정한다.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찰에 근거한다. 한국의 고인돌과 오늘날의 만주와 시베리아 남부의 고인돌 사이의 형태적 유사성, 한국과 오늘날의 만주 사이의 청동기 시대 매장 유물(요녕식 동검 문화 참조)의 유사성, 그리고 오늘날의 만주와 시베리아 남부의 고인돌과 해당 지역의 청동기 문화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6] 그러나 오늘날의 만주와 시베리아 남부의 고인돌 분포는 한국보다 훨씬 덜 집중되어 있어 이 이론의 설득력을 약화시킨다.[6]

2. 3. 한반도 자생설

한국 고인돌의 기원에 관해서는 세 가지 주요 이론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한국의 고인돌은 한반도의 신석기 문명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4]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근거한다.

  • 한국의 고인돌은 세계에서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가 한국에 있다.[2][3]
  • 한국 고인돌은 형태가 다양하고 세계 다른 지역의 고인돌과 구별된다.[7][8][9]
  •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거석 문화가 광범위하게 번성한 것으로 보이며,[10] 일부 고인돌은 기원전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천문학적 구조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11]


이 이론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의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문화가 독특한 고인돌 문화를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가정한다. 특히, 두 가지 뚜렷한 스타일의 고인돌(북방식과 남방식,[8] 그 분포가 대략적으로 북한강의 흐름에 일치한다[9])의 존재는 한국의 지리적 위치가 한국의 신석기/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여러 지역의 고인돌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독특한 고인돌 문화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12]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100년 사이에 큰 돌로 만들어진 묘이다. 고인돌에는 다리가 긴 석주 위에 돌을 올려놓아 테이블 모양으로 돌을 쌓은 '북방식'과 짧은 석주 위에 돌을 올려놓아 바둑판 모양으로 돌을 쌓은 '남방식'의 2종류가 있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고인돌 수가 가장 많다.

3. 형태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100년 사이에 큰 돌로 만들어진 묘이다. 동아시아에서 고인돌은 탁자 모양으로 돌을 쌓은 '북방식'과 바둑판 모양으로 돌을 쌓은 '남방식'의 2종류로 분류된다.[13] 세계적으로 볼 때 고인돌은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한 중심이며, 남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연안부에도 존재하지만, 한반도가 세계에서 고인돌 수가 가장 많다.

3. 1. 탁자식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의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13] 탁자식 고인돌은 네 개의 돌을 상자 모양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는 형태이다.[13] 탁자식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큰 돌무덤의 한 종류로, 다리가 긴 석주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아 탁자 모양을 이룬다.

3. 2. 바둑판식 고인돌 (남방식 고인돌)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의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덮개돌을 받치는 돌과 함께 지하 매장이 특징이며,[13] 짧은 석주 위에 돌을 올려놓아 바둑판 모양으로 돌을 쌓은 형태이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고인돌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4. 각 지역의 고인돌

한국의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거석기념물로, 고창군, 화순군, 강화군 세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이 밀집되어 있고, 형태도 다양하여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유적이다. 이러한 고인돌들은 청동기 시대의 사회 구조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36]

각 지역의 고인돌 유적은 다음과 같다.

각 지역의 고인돌
지역특징양식주요 유적
고창군한국 최대 고인돌 밀집 지역, 다양한 형식[15]북방식, 남방식 혼재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화순군비교적 최근 발견, 보존 상태 양호, 대한민국 최대 크기 고인돌[19]남방식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
강화군넓은 범위에 분포, 높은 고도에 위치[21]주로 북방식[23]강화 부근리 지석묘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100년 사이에 큰 돌로 만들어진 무덤이다. 고인돌에는 다리가 긴 석주 위에 돌을 올려놓아 테이블 모양으로 돌을 쌓은 '북방식'과 짧은 석주 위에 돌을 올려놓아 바둑판 모양으로 돌을 쌓은 '남방식'의 2종류가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고인돌은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한 중심이며, 남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연안부에도 존재하지만, 한반도가 세계에서 고인돌 수가 가장 많다.

4. 1. 고창 고인돌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는 전북 지역 고인돌의 60% 이상인 대략 2,000여 기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특히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군 죽림리 일원에는 5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어 단일 구역으로는 최대 밀집도를 보인다.

고창 고인돌에 대한 조사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며, 연도별 확인된 고인돌 수는 다음과 같다.

연도확인된 고인돌 수비고
2003년1,665기
2005년1,327기
2009년1,119기지정 문화재 제외



지정 문화재를 포함하면 대략 1,600기 내외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37]

4. 1. 1. 세부 유적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사적 제391호)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약 1.8km에 이르는 야산 기슭에 440여 기의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38] 이 유적은 기원전 400년에서 500년 무렵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집단무덤으로,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들의 가족무덤으로 추정된다. 당시 사람들은 낮은 야산과 농사짓기 좋은 이 지역에 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38]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의 각종 형식을 갖추고 있어 고인돌의 발생과 성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38] 아산면 상갑리 일대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의 남쪽 한계선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38]

고창 고인돌 유적에서 가장 큰 고인돌 중 하나


이 고인돌 유적은 가장 크고 다양한 고인돌 무리를 포함하고 있으며,[1] 정림리 고인돌로 알려져 있다.[14] 고인돌은 해발 15~50m 지점의 일련의 언덕 기슭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건설되었다. 일반적으로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가 약 1~5.8m이며, 무게는 최대 225톤에 달한다. 442개의 고인돌이 기록되었으며 덮개돌의 크기에 따라 분류되었다.[15] 이 고인돌 무리는 기원전 7세기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16]

고창읍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죽림리, 봉덕리, 상갑리 일대에는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7기가 분포해 있다. 죽림리 고인돌은 해발 15~65m의 등고선을 따라 일정한 높이에 442기가 자리 잡고 있으며, 도산리 지동마을에도 고인돌 5기가 남아 있다. 1990년에 사적 제391호로 지정되었으며 행정구역에 따라 상갑리·봉덕리, 죽림리, 도산리 3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 내에 모여 있는 상태에 따라 상갑리, 봉덕리는 4개 지구, 죽림리는 6개 지구로 구분된다. 고창 고인돌은 좁은 지역 안에 440여 기가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인돌의 형식은 탁자식·기반식·개석식과, 탁자식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지상석곽형 등 다양하며 채석장 유적도 발견되었다. 무덤방 안에서 부장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38]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는 전북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의 60% 이상이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수치는 대략 2,000여 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군 죽림리 일원에는 5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되어 있어 단일구역상으로는 최대 밀집도를 보이고 있다. 고창군의 고인돌에 대해서는 꾸준한 조사가 이루어져 개략적인 분포범위와 분포수가 파악되었다.

4. 2. 화순 고인돌 유적

화순 고인돌 유적은 지석강 주변 계곡에 위치해 있으며,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다.[1] 광주광역시 남쪽에 있으며, 10km에 걸쳐 약 500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남방식 고인돌이다.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에서 고창, 강화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 997호로 등록되었다.[20]

4. 2. 1. 세부 유적

화순 고인돌군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고개의 양 계곡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도곡면 효산리 일대에는 총 980여 개의 석재 중 135기가 고인돌로 추정되며,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는 총 3,309개의 석재 중 124기가 고인돌로 추정된다.[39] 효산리 고인돌은 노출되어 확실한 고인돌이거나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채석하여 옮겨온 것을 포함하면 적어도 250여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39]

화순 고인돌군의 대표적인 특징은 좁은 지역 안에 596여 기가 밀집되어 있고, 대한민국 최대 크기(무게)의 상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춘양 대신리에 있는 고인돌은 길이 7.3m, 폭 5.0m, 두께 4.0m로 무게가 280여 톤에 이르며, 도곡 효산리의 가장 큰 고인돌은 길이 5.3m, 폭 3.6m, 두께 3.0m로 100여 톤 이상으로 추정된다.[39] 주변에서 발견된 석사실과 상석 아래에 노출된 석실 등이 있는 고인돌군이 있어 고인돌의 덮개돌 채석과정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39]

화순 고인돌 유적의 고인돌

  •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사적 제410호) - 화순군 효산리 모산마을에서 월곡제, 춘양면 대신리로 넘어가는 보성재 양쪽 계곡 지역에 청동기시대의 바둑판식(남방식) 고인돌 596기가 분포하고 있다. 조사 결과 고인돌, 돌방무덤(석실분), 독무덤(옹관묘), 돌널무덤(석관묘), 널무덤(토광묘)을 확인하였고, 석기류, 토기류, 청동기류 치레거리(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주변의 암벽에서 고인돌의 덮개돌을 떼었던 흔적이 남아 있어, 고인돌을 만들었던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대신리 산 중턱에는 길이 7m, 높이 4m, 무게 약 200여 톤이나 되는 커다란 덮개돌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40]

  • 화순 벽송리 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제124호) - 전라남도 화순군 벽송리의 고인돌군은 보성강 상류 사평천의 평지에 분포하고 있는데, 하천을 따라 동서로 길게 열을 지어 20여 기의 바둑판식 고인돌이 있다. 규모는 2∼3m 정도의 것이 대부분이고 3m를 넘는 것도 3기나 있다. 이 중 가장 큰 것은 받침돌이 4개인 전형적인 바둑판식으로 길이는 3.4m, 너비 3.2m이며, 무리 중심부에 있는 대표적인 고인돌이다. 이곳의 고인돌 중 ‘배바우’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길이 2.5m, 너비 1.9m의 덮개돌 아래 잘 다듬은 장대석 4매(원래 6매)로 무덤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41]

4. 3. 강화 고인돌 유적

강화 고인돌 유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도) 하점면, 내가면에 있는 고인돌군이다. 약 120여 기가 넓은 범위에 흩어져 있으며 주로 탁자식(북방식) 고인돌 형태를 띤다. 강화도는 산과 물이 풍부하고, 초기 지배 집단이 형성되어 고인돌을 만들기 좋은 환경이었다. 고인돌 분포를 보면 현재는 바다와 떨어져 있지만, 청동기 시대에는 어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22]

4. 3. 1. 세부 유적

강화도에는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해 있으며, 표고 280m의 높은 곳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주로 탁자식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화순, 고창 고인돌과는 달리 여러 지역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강화도에는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제137호)를 비롯하여 많은 고인돌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창, 화순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42] 강화 고인돌은 한강 하구에 해당하는 고려산 북쪽과 별립산에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인돌들은 지금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오늘날 강화도의 들판은 대부분 간척을 통해 조성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해안가 언덕에 무덤을 조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의 고인돌은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이 섞여 있으며, 고인돌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42]

  •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제137호): 부근리 고인돌군은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강화 부근리 지석묘 주변,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과 평지에 모두 1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평지에는 사적 제 137호인 강화 부근리 지석묘와 탁자식 고인돌의 고임돌로 추정되는 석재 하나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솔밭에 덮개돌 밑에 고임돌이 없는 개석식 고인돌 3기가 축조되어 있으며, 사적 제 137호의 동쪽 낮은 구릉에는 탁자식 4기와 개석식 고인돌 4기가 분포하고 있다.[43]
  •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6호): 2000년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에서 발굴하였으며, 현재 인천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고인돌을 중심으로 주변에 10기의 고인돌을 복원하였다. 이 고인돌의 크기는 길이 335cm로 큰 편이며, 돌방(石室)은 돌널 형태로 바닥은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2000년 발굴 당시 간돌칼(磨製石劍), 돌화살촉(石鏃), 바퀴날도끼(環狀石斧),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자귀(石手斧), 갈판(耉石) 등 다양한 석기류와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 편 등의 토기가 출토되었다.[44]
  • 강화 대산리 지석묘(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1호): 대산리 고인돌은 고려산의 동쪽 봉우리인 북산의 북쪽 능선의 맨 마지막 자락에 있다. 해발 약 20m 위치의 평평한 대지 위에 약간의 흙과 자갈을 돋우고 그 위에 고임돌이 무너진 상태에서 덮개돌이 내려앉아 있다. 고인돌무덤은 오른쪽의 크기가 길이 2.4m, 너비 1.5m, 높이 0.45m이다. 왼쪽의 크기는 길이 1.6m, 너비 1.3m, 높이 0.3m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68m, 너비 2.6m, 두께 0.5m이다. 덮개돌 밑으로 마감돌로 보이는 판석이 흙과 자갈에 묻혀 있다. 덮개돌의 석질은 흑운모 편마암으로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45]
  •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2호): 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리 방면으로 가다 송해면과 하점면 경계 지점을 지나 부근리-망월간 도로의 중간지점으로 고려산 북쪽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해발 15m 정도의 낮은 지대의 밭에 위치해 있다. 고임돌이 기울어져 무너져 내린 것을 현재는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동서 방향의 고인돌을 바로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북쪽 방향에는 마감돌이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점골 고인돌은 물론 강화 지역에 분포한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고인돌 유적이다.[46]


이 고인돌들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도에 위치해 있으며, 산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어 다른 고인돌들보다 더 높은 고도에 있다. 부근리(, 하점면 소재)와 고천리(, 내가면 소재)의 고인돌 군집이 초기 고인돌을 닮았기 때문에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결정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21]

강화도는 산과 물이 풍부한 곳이며, 초기 지배 집단이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형성되었다. 또한 약 150기의 고인돌이 풍부하게 존재하여 고인돌을 만들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고인돌의 분포 지도를 보면 고인돌이 현재는 바다와 떨어져 있지만 청동기 시대에는 어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22]

강화도에서 주목할 만한 고인돌은 북방식/탁자식 고인돌로, 이곳에서 조상 숭배 의식이 행해졌다고 여겨진다. 한국에서 가장 큰 돌로, 2.6m × 7.1m × 5.5m 크기이며, 받침돌이 2개만 있다. 받침돌과 덮개돌을 합하면 150톤에서 225톤 사이의 무게가 나간다.[23]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 중 하나로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길이 710cm, 높이 260cm, 폭 550cm의 큰 돌이 사용되었으며, 돌의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 고대 역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언스에서 열린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과 함께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24]

5. 기타 지역 고인돌


  • - 대한민국에는 고인돌이 주로 전라남도에 집중되어 있다.[25]


최근 춘천시에서 많은 고인돌 유적지가 발견되었으며,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는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고인돌이 있다.[27]

과거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도 많은 수의 고인돌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급격한 도시 개발 과정에서 많은 고인돌들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릉동, 개포동 대모산, 우면동, 양재동, 원지동, 고척동 등지에도 고인돌이 존재했다. 이 중 원지동 고인돌은 1984년에 관련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정부의 보호 조치 부족으로 인해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28]

5. 1. 지역별 분포

대한민국에는 고인돌이 주로 전라남도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별 고인돌 수는 다음과 같다.[25]

지역고인돌 수
강원도338기
경기도502기
충청북도189기
전라북도1,597기
전라남도10,068기
경상북도2,800기
제주도140기



최근 춘천시에서 많은 고인돌 유적지가 발견되어 한국의 고인돌 목록에 101기가 추가되었다.[26]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는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고인돌이 있다.[27]

과거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도 많은 수의 고인돌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급격한 도시 개발 과정에서 많은 고인돌들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릉동, 개포동 대모산, 우면동, 양재동, 원지동, 고척동 등지에도 고인돌이 존재했다. 이 중 원지동 고인돌은 1984년에 관련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정부의 보호 조치 부족으로 인해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28]

세계적으로 고인돌은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한 중심이며, 남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연안부에도 존재하지만, 한반도가 세계에서 고인돌 수가 가장 많다.

6. 고인돌의 기능

고인돌의 기능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1967년 충청북도 제천시 황석리 고인돌에서 완전한 인골이 발견되면서 무덤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29]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인돌이 무덤 기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무덤으로서의 기능은 부정할 수 없지만, 무덤 외에 제단이나 묘표석의 기능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탁자식 고인돌이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고, 받침돌의 웅장한 모습, 무덤을 만들기 어려운 받침돌의 구조 등은 제단의 기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30]

또한 고인돌 군집에서 다른 고인돌에 비해 유난히 크거나 방향이 다른 고인돌은 무덤을 만든 집단의 권위와 위세를 드러내기 위한 묘표석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31]

6. 1. 무덤

1967년 충청북도 제천시 황석리 고인돌에서 완전한 인골이 발견되면서 고인돌이 무덤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29]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인돌이 무덤 기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무덤으로서의 기능은 부정할 수 없지만, 무덤 외에 제단이나 묘비의 기능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제단의 기능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탁자식 고인돌은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고, 받침돌의 웅장한 모습, 무덤을 만들기 어려운 받침돌의 구조 등을 근거로 무덤보다는 제단의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30]

또한 고인돌 군집의 경우, 다른 고인돌에 비해 유난히 크거나 방향이 다른 고인돌이 보이는데, 이는 무덤을 만든 집단의 권위와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단순한 기능으로 추정된다.[31]

6. 2. 제단 및 묘표석

1967년 충청북도 제천시 황석리 고인돌에서 완전한 인골이 발견되면서 고인돌이 무덤으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29]

그러나 일부에서는 무덤 기능 외에 제단이나 묘표석의 기능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탁자식 고인돌은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고, 받침돌의 웅장한 모습, 무덤을 만들기 어려운 받침돌의 구조 등을 근거로 무덤보다는 제단의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30]

또한 고인돌 군집에서 다른 고인돌에 비해 유난히 크거나 방향이 다른 고인돌이 보이는데, 이는 무덤을 만든 집단의 권위와 위세를 드러내기 위한 묘표석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31]

7. 피장자와 신분

고인돌 유적에서 발굴된 인골의 예로는 충청북도 제천의 황석리, 강원도 춘천, 대구의 진천동, 경상남도 진양의 대평리가 있다. 인골의 발견은 고인돌 축조 당시의 장례 풍습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상 및 종교적 측면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32]

특히 황석리 고인돌에서 발견된 인골은 거의 완벽한 형태였으며, 키는 약 176cm로 추정된다. 두개골 형태는 오늘날의 한국인과 다르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형태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차이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33]

고인돌에 묻힌 사람이 부족장과 같은 권력자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외에도 통치자와 그 가족의 무덤, 혈연 집단의 합장묘, 전쟁에서 공헌한 인물의 무덤 등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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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웹인용 강화군 홈페이지 - 강화 대산리 고인돌 내용 http://www.ganghwa.g[...] 2018-12-19
[46] 웹인용 강화군 홈페이지 - 강화부근리점골고인돌 내용 http://www.ganghwa.g[...]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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