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호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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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명호(1896년)는 일제강점기에는 교육자, 관료, 기업가로 활동했고, 해방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경성고등보통학교 부설 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경상북도 고령공립보통학교 훈도로 시작하여, 1925년부터 조선총독부 관리로 전직하여 함경남도, 평안남도 등에서 근무했으며, 1934년 군수로 승진하여 녕원군, 덕천군 군수를 역임했다. 1940년 관직에서 물러난 후 평양에서 기업가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대한민국 제5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문명호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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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문명호는 일제강점기 초기 경성고등보통학교 부설 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경상북도 고령군의 고령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경북 지역에서 보통학교 훈도를 지낸 교육인이었다. 1925년부터 조선총독부 관리로 전직하여 함경남도 함흥군과 평안남도 평양, 강동군, 개천군에서 근무했다. 1934년 총독부 군수로 승진, 녕원군과 덕천군 군수를 역임했다. 1940년 관직에서 물러나 평안사업 전무취체역을 지내는 등 평양 지역에서 기업가로 활동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미군정 지역으로 월남하여 정치인이 되었다. 대한민국 제2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였고, 대한민국 제3대 총선에서는 등록 방해 사건으로 경찰서장을 상대로 고소까지 한 일이 있다. 4·19 혁명 직후 대한민국 제5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본래 구파동지회 회원으로 윤보선의 구파 계열에 속해 있었으나, 김도연의 국무총리 추인이 부결된 뒤 장면의 신파로 이동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2.1. 일제 강점기 활동

일제강점기 초기에 경성고등보통학교 부설 교원양성소를 졸업했다. 경상북도 고령군의 고령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경북 지역에서 보통학교 훈도를 지낸 교육인이었다. 1925년부터 조선총독부 관리로 전직한 뒤 함경남도 함흥군과 평안남도 평양, 강동군, 개천군에서 차례로 근무했다. 1934년에 총독부 군수로 승진하여, 평남 녕원군과 덕천군 군수를 역임했다. 덕천군수이던 1939년을 기준으로 정7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1940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평안사업 전무취체역을 지내는 등 평양 지역에서 기업가로 일했다.

2.2. 해방 이후 정치 활동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미군정 지역으로 월남하여 정치인이 되었다. 한국 전쟁 직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2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였고, 대한민국 제3대 총선에서는 등록 방해 사건으로 경찰서장을 상대로 고소까지 한 일이 있다. 4·19 혁명 직후 대한민국 제5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본래 구파동지회 회원으로 윤보선의 구파 계열에 속해 있었으나, 김도연의 국무총리 추인이 부결된 뒤 장면의 신파로 이동했다.

3. 친일 행적 논란

일제강점기 초기에 경성고등보통학교 부설 교원양성소를 졸업했다. 경상북도 고령군의 고령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경북 지역에서 보통학교 훈도를 지낸 교육인이었다. 1925년부터 조선총독부 관리로 전직한 뒤 함경남도 함흥군과 평안남도 평양, 강동군, 개천군에서 차례로 근무했다. 1934년에 총독부 군수로 승진하여, 평남 녕원군과 덕천군 군수를 역임했다. 덕천군수이던 1939년을 기준으로 정7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1940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평안사업 전무취체역을 지내는 등 평양 지역에서 기업가로 일했다.

2008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4.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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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60년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민주당6,709표 (23.36%)1위당선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