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존스
1. 개요
미겔 존스는 스페인령 기니에서 태어나 빌바오에서 성장한 스페인 축구 선수였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라리가 1회 우승,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회 우승을 차지했다. 1967년 오사수나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며, 은퇴 후에는 SD 인다우추의 단장을 역임했다. 2020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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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코로나19로 죽은 사람 -
로렌소 산스
스페인의 사업가 로렌소 산스는 부동산 개발로 재산을 모았고, 레알 마드리드 회장으로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포함한 여러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후 말라가 CF를 인수하고 코로나19로 사망했다. -
스페인에서 코로나19로 죽은 사람 -
그레고리오 베니토
그레고리오 베니토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6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달성하고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이다. -
적도 기니계 스페인인 -
라민 야말
라민 야말은 FC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윙어로 뛰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 라 마시아 출신이며 각종 최연소 기록을 경신하고 UEFA 유로 2024에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
적도 기니계 스페인인 -
에밀리오 은수에
에밀리오 은수에는 스페인 태생 적도 기니 축구 선수로, RCD 마요르카에서 프로 데뷔 후 여러 팀에서 임대 생활을 거쳐 잉글랜드 무대도 경험했으며,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적도 기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FIFA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
적도 기니의 남자 축구 선수 -
에밀리오 은수에
에밀리오 은수에는 스페인 태생 적도 기니 축구 선수로, RCD 마요르카에서 프로 데뷔 후 여러 팀에서 임대 생활을 거쳐 잉글랜드 무대도 경험했으며,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적도 기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FIFA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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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친
호세 마친은 적도 기니 출신의 축구 선수로, FC 바르셀로나와 AS 로마 유스팀을 거쳐 여러 클럽에서 임대 생활을 했으며, 현재 AC 몬차에서 활약하며 적도 기니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 유년 시절
미겔 존스는 스페인령 기니(현재 적도 기니)에서 태어났지만, 빌바오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계 조부는 시에라리온에서 페르난도 푸로 이주한 해방 아프리카인의 후손이었기에, 그는 일부 크리오 페르난디노 혈통이었다. 그의 모계인 카스티요는 쿠바계였다.
3. 축구 경력
미겔 존스는 스페인령 기니(현 적도 기니) 출신이나, 빌바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인근 바라칼도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인다우추를 거쳤는데, 당시 그는 노장 레사마와 신예 추스 페레다와 한배를 탔다. 존스와 페레다, 그리고 또다른 인다우추 선수였던 호세 에울로히오 가라테는 아틀레틱 빌바오의 구단 영입 정책에 따라 입단이 거절되었는데, 모두 비스카이아 도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존스는 백인 선수들만 입단되어 존스의 입단이 거절되었다는 생각과 다르게, 자신은 인종 문제로 입단이 거절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존스는 결국 호세 비얄롱가가 지도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입단하여 엔리케 코야르나 아델라르도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했다. 그는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2연패의 주역으로 아틀레티코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결승전에서 1960년과 1961년 결승전에 모두 승리하는데 일조했다. 아틀레티코가 코파 2연패를 달성하는 과정에 존스는 1960년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3-1 승리를 견인했다. 존스는 1964년 대회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 아틀레티코는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1-2로 패했다. 존스는 아틀레티코 선수단 일원으로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도 1962년과 1963년에 2대회 연속 결승전에 출전했다. 그는 1962년 대회 결승전에 득점을 올려 아틀레티코가 피오렌티나를 재경기 끝에 3-0으로 이기도록 도왔으나, 1963년에는 토트넘 홋스퍼에게 1-5로 패했다. 그는 1966년에 라 리가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1967년 10월, 존스는 오사수나와 1년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에 축구화를 벗었다.
3.1. 클럽 경력
미겔 존스는 스페인령 기니(현 적도 기니) 출신이나, 빌바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인근 바라칼도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인다우추를 거쳤는데, 당시 그는 노장 레사마와 신예 추스 페레다와 한배를 탔다. 존스와 페레다, 그리고 또다른 인다우추 선수였던 호세 에울로히오 가라테는 아틀레틱 빌바오의 구단 영입 정책에 따라 입단이 거절되었는데, 모두 비스카이아 도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존스는 백인 선수들만 입단되어 존스의 입단이 거절되었다는 생각과 다르게, 자신은 인종 문제로 입단이 거절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존스는 결국 호세 비얄롱가가 지도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입단하여 엔리케 코야르나 아델라르도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했다. 그는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2연패의 주역으로 아틀레티코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결승전에서 1960년과 1961년 결승전에 모두 승리하는데 일조했다. 아틀레티코가 코파 2연패를 달성하는 과정에 존스는 1960년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3-1 승리를 견인했다. 존스는 1964년 대회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 아틀레티코는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1-2로 패했다. 존스는 아틀레티코 선수단 일원으로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도 1962년과 1963년에 2대회 연속 결승전에 출전했다. 그는 1962년 대회 결승전에 득점을 올려 아틀레티코가 피오렌티나를 재경기 끝에 3-0으로 이기도록 도왔으나, 1963년에는 토트넘 홋스퍼에게 1-5로 패했다. 그는 1966년에 라 리가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1967년 10월, 존스는 오사수나와 1년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에 축구화를 벗었다.
4. 은퇴 후
현역 은퇴 후, 존스는 빌바오로 돌아가 인다우추의 단장을 맡았다. 그는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동료로 절친한 사이였다. 2004년에 아라고네스 감독이 인종차별 의혹이 불거지자, 존스는 아라고네스와의 우정을 언급하며 그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존스는 2020년 4월 8일 향년 81세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이 한창인 와중에 빌바오에서 오랜 기간 암 투병 중이었다.
5. 사망
선수 은퇴 후 미겔 존스는 빌바오로 돌아와 거주하며 SD 인다우추의 이사로 재직했다. 그는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팀 동료이자 친구였다. 2004년 스페인 대표팀 감독이 인종차별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그는 존스와의 우정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증거로 제시했다.
미겔 존스는 2020년 4월 8일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기간 동안 빌바오에서 사망하기 전 오랫동안 암을 앓았다.
6. 수상 내역
미겔 존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면서 라 리가 1965-66 우승,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3회 ((1959-60, 1960-61, 1964-65) 우승,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961-62 우승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