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F 피오렌티나
1. 개요
ACF 피오렌티나는 1926년 피렌체에서 창단된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이다. 세리에 A에서 2번, 코파 이탈리아에서 6번 우승했으며, 1960-61 시즌 UEFA 컵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22-23, 2023-24 시즌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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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 네임 | ACF Fiorentina S.r.l. |
|---|---|
| 약칭 | (제공된 문서에 없음) |
| 별칭 | I Viola (보라색 / 제비꽃) I Gigliati (백합) |
| 창단 | 1926년 8월 29일, Associazione Calcio Fiorentina로 창단 2002년 8월 1일, Florentia Viola로 재창단 후 ACF Fiorentina로 변경 |
| 소유주 | New ACF Fiorentina S.r.l. |
| 회장 | 로코 B. 콤미소 |
| 감독 | 라파엘레 팔라디노 |
| 리그 | 세리에 A |
| 시즌 | 2023–24 |
| 순위 | 8위 |
| 웹사이트 | acffiorentina.com |
| 홈구장 |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란키 |
| 수용 인원 | 43,147명 |
| 홈 유니폼 | pattern_la1: _fiorentina2425h pattern_b1: _fiorentina2425h pattern_ra1: _fiorentina2425h leftarm1: 5B1799 body1: 5B1799 rightarm1: 5B1799 shorts1: 5B1799 socks1: 5B1799 |
|---|---|
| 원정 유니폼 | pattern_la2: _fiorentina2425a pattern_b2: _fiorentina2425a pattern_ra2: _fiorentina2425a leftarm2: FFFFFF body2: FFFFFF rightarm2: FFFFFF shorts2: FFFFFF socks2: FFFFFF |
| 세 번째 유니폼 | pattern_la3: _fiorentina2425t pattern_b3: _fiorentina2425t pattern_ra3: _fiorentina2425t leftarm3: FF0000 body3: FF0000 rightarm3: FF0000 shorts3: FF0000 socks3: FF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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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F 피오렌티나 -
스타디오 레나토 쿠리
스타디오 레나토 쿠리는 루이지 코라디가 설계하여 1974년 페루자에 건설된 축구 경기장이며, AC 페루자의 세리에 A 승격 후 수용 능력 부족으로 인해 건설되었고, 1977년 레나토 쿠리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
ACF 피오렌티나 -
ACF 피오렌티나 (여자)
ACF 피오렌티나 (여자)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연고로 하는 여자 축구 클럽으로, 세리에 A 펨미닐레 1회, 코파 이탈리아 펨미닐레 2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펨미닐레 1회 우승을 기록하며 다양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
토스카나주의 축구단 -
피사 SC
피사 SC는 1909년에 창단된 이탈리아 축구 클럽으로, 세리에 A와 세리에 B를 오가며 활동했으며, 1994년 파산 후 재창단되어 현재는 필리포 인자기가 감독을 맡고 있다. -
토스카나주의 축구단 -
AS 리보르노 칼초
AS 리보르노 칼초는 1915년에 창단되어 세리에 A 준우승 2회 기록을 보유하고, 세리에 A, B, C를 오가며 활동하다가 구단 파산으로 해체 후 재창단되어 현재 세리에 D에 소속되어 있다. -
1926년 설립된 축구단 -
SSC 나폴리
SSC 나폴리는 1904년 창단된 이탈리아 프로 축구 클럽으로, 디에고 마라도나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파산 위기를 극복하고 2022-23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했고 현재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스타디움을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
1926년 설립된 축구단 -
레알 오비에도
레알 오비에도는 1926년에 창단된 스페인의 축구 클럽으로, 한때 라 리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재정난으로 하위 리그로 강등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활동한다.
2. 역사
AC 피오렌티나는 1926년 가을, 피렌체의 귀족이자 국가 파시스트당 당원이었던 루이지 리돌피 바이다 베라자노에 의해 창단되었다. 그는 피렌체의 두 구단인 CS 피렌체와 PG 리베르타스를 합병하여 더 강력한 축구 클럽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북부 이탈리아 클럽들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메디치 가문 시대에 성행했던 칼초 피오렌티노의 부활과 재발견도 영향을 미쳤다. 창설자 루이지 리돌피 백작은 잉글랜드에서 축구를 접한후, 팔레스트라 짐나스티카 리베르타스 와 클럽 스포르티보 피렌체 를 합병하여 1926년 8월 26일에 ACF 피오렌티나를 창설했다. 초창기 클럽 컬러는 피렌체의 시 문장과 같은 적백색 유니폼을 착용했다.
하부 리그에서 세 시즌을 보낸 후, 피오렌티나는 1931년 세리에 A로 승격하였다. 같은 해,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란키가 개장되었는데, 초기에는 파시스트 정치인 조반니 베르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경기장은 당시 공학 기술의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1930-31 시즌의 세리에 B에서 우승하여, 1931-32 시즌부터 세리에 A에 참가했다. 피오렌티나는 이탈리아 최고의 팀들과 경쟁하기 위해 우루과이 출신의 공격수 페드로 페트로네를 영입하는 등 선수단을 강화했다. 1930년 월드컵 우승 멤버였던 페드로 페트로는 리그 득점왕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첫해에 18개 팀 중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 강등되었지만, 곧바로 세리에 A로 복귀하였다. 1938-39 시즌에 세리에 B로 강등되었지만, 한 시즌 만에 세리에 A로 복귀했다. 1939-40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제노아를 결승에서 꺾고 클럽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2.1. 창단과 초기 (1926년 ~ 1940년대)
AC 피오렌티나는 1926년 가을, 피렌체의 귀족이자 국가 파시스트당 당원이었던 루이지 리돌피 바이다 베라자노에 의해 창단되었다. 그는 피렌체의 두 구단인 CS 피렌체와 PG 리베르타스를 합병하여 더 강력한 축구 클럽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북부 이탈리아 클럽들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메디치 가문 시대에 성행했던 칼초 피오렌티노의 부활과 재발견도 영향을 미쳤다. 창설자 루이지 리돌피 백작은 잉글랜드에서 축구를 접한후, 팔레스트라 짐나스티카 리베르타스 와 클럽 스포르티보 피렌체 를 합병하여 1926년 8월 26일에 ACF 피오렌티나를 창설했다. 초창기 클럽 컬러는 피렌체의 시 문장과 같은 적백색 유니폼을 착용했다.
하부 리그에서 세 시즌을 보낸 후, 피오렌티나는 1931년 세리에 A로 승격하였다. 같은 해,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란키가 개장되었는데, 초기에는 파시스트 정치인 조반니 베르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경기장은 당시 공학 기술의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1930-31 시즌의 세리에 B에서 우승하여, 1931-32 시즌부터 세리에 A에 참가했다. 피오렌티나는 이탈리아 최고의 팀들과 경쟁하기 위해 우루과이 출신의 공격수 페드로 페트로네를 영입하는 등 선수단을 강화했다. 1930년 월드컵 우승 멤버였던 페드로 페트로는 리그 득점왕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첫해에 18개 팀 중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 강등되었지만, 곧바로 세리에 A로 복귀하였다. 1938-39 시즌에 세리에 B로 강등되었지만, 한 시즌 만에 세리에 A로 복귀했다. 1939-40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제노아를 결승에서 꺾고 클럽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2.2. 전성기 (1950년대 ~ 1960년대)
1950년, 피오렌티나는 국내 리그에서 꾸준히 상위 5위 안에 드는 성적을 거두었다. 선수단에는 줄리아노 사르티, 세르조 체르바토, 귀도 그라톤, 주세페 키아펠라, 브라질 출신 줄리뉴, 아르헨티나 출신 미겔 몬투오리 등이 있었다. 이들은 1955-56 시즌에 2위 밀란을 승점 12점 차로 따돌리고 피오렌티나의 첫 스쿠데토를 획득했다.
다음 해, 피오렌티나는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 진출한 최초의 이탈리아 팀이 되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0-2로 패했다. 이후 세 시즌 동안 준우승을 차지했다. 1960-61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고, UEFA 컵위너스컵에서 레인저스를 꺾고 우승했다. 이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의 유럽 타이틀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피오렌티나는 리그에서 4위에서 6위 사이를 오가며 다소 주춤했지만, 1966년에 코파 이탈리아와 미트로파컵에서 우승했다.
2.3. 체키 고리 시대 (1980년대 ~ 2002년)
체키 고리 가문이 ACF 피오렌티나를 소유한 첫 시즌은 안정화 기간이었다. 브리안 라우드루프, 슈테판 에펜베르크, 프란체스코 바리아노와 같은 좋은 선수들과, 1990년대 팀의 아이콘이었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영입되었다. 하지만 1993년 체키 고리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비토리오 체키 고리가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시즌 초반은 좋았으나, 아탈란타에게 패한 후 루이지 라디체 감독이 경질되고 알도 아그로피가 그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 결과, 팀은 순위가 하락하여 시즌 마지막 날에 강등되는 처참한 결과를 맞았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1993-1994 시즌에 팀을 맡아 세리에 B를 제패하고, 세리에 A로 복귀시켰다. 라니에리는 벤피카에서 영입한 후이 코스타와 브라질 국가대표 수비수 마르시우 산투스, 그리고 바티스투타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피오렌티나는 리그 10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음 시즌, 체키 고리는 스테판 슈바르스를 영입했다. 클럽은 코파 이탈리아에서 아탈란타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세리에 A를 3위로 마감했다. 여름에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밀란을 2-1로 꺾고 우승했다.
1996-1997 시즌, 피오렌티나는 리그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뒀지만, UEFA 컵위너스컵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대회 우승팀인 바르셀로나에게 패했다.(원정 0-0, 홈 0-2). 이 시즌에 루이스 올리베이라와 안드레이 칸첼스키스가 영입되었으나, 칸첼스키스는 잦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발렌시아로 떠났고, 알베르토 말레사니가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피오렌티나는 UEFA컵 진출권을 확보했지만, 약팀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말레사니는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고,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트라파토니의 지도와 바티스투타의 득점에 힘입어 피오렌티나는 1998-89 시즌 리그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3위로 마감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다음 해, 피오렌티나는 세리에 A에서는 실망스러웠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옛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아스널을 1-0, 피렌체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0으로 이기는 역사적인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2차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시즌 종료 후, 트라파토니는 팀을 떠났고 파티흐 테림가 감독직을 맡았다. 바티스투타는 로마로 이적했고, 로마는 1년 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피오렌티나는 2000-2001 시즌을 잘 운영했고, 테림이 도중에 사임하고 로베르토 만치니가 부임했지만, 시즌 전반기에 1위를 유지했다. 또한,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달성했다.
2001년, 클럽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며 큰 변화가 예고되었다. 임금 지불이 불가능했고, 5천만 달러의 빚이 있었다. 비토리오 체키 고리는 자본을 투입했으나, 클럽을 유지하기에는 불충분했다. 클럽은 2001-02 시즌을 끝으로 강등되었고, 2002년 6월에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이 파산으로 인해 2002-03 시즌 세리에 B 참가가 거부되었고, 결과적으로 사실상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2.4. 델라 발레 시대 (2002년 ~ 2019년)
클럽은 2002년 8월, 신발 및 가죽 사업가인 디에고 델라 발레를 새 구단주로 영입하여 ACF 피오렌티나 e 플로렌티아 비올라라는 이름으로 재창단되었고, 세리에 C2에 참가했다. 재창단 당시 클럽에 남은 유일한 선수는 안젤로 디 리비오였다. 디 리비오와 공격수 크리스티안 리가노의 활약으로 세리에 C2를 우승하고 세리에 C1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카소 카타니아 (카타니아 케이스)라는 특이한 사건으로 인해 이탈리아 축구 협회가 세리에 B의 참가팀을 20개에서 24개로 늘리면서 피오렌티나는 세리에 C1을 건너뛰고 세리에 B에 참가하게 되었다. 2003년 오프 시즌에 클럽은 피오렌티나 명칭과 유니폼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다시 사들여 ACF 피오렌티나(ACF Fiorentina)로 재개명하였다. 클럽은 2003-04 시즌 6위로 마감하고, 페루자와의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1부 리그로 복귀했다.
세리에 A 복귀 첫 시즌, 클럽은 강등을 피하기 위해 고전했고, 시즌 마지막 날까지 볼로냐와 파르마와 강등권 싸움을 벌였다. 2005년, 델라 발레는 판탈레오 코르비노를 새 단장으로, 체사레 프란델리를 다음 시즌 감독으로 임명했다. 클럽은 여름 이적 시장에 루카 토니와 세바스티앵 프레이를 영입했다. 이 과감한 영입으로 승점 74점을 기록하며 리그 4위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었다. 토니는 38경기에서 31골을 넣어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다. 하지만 2006년 7월 14일, 피오렌티나는 2006년 축구 스캔들로 인해 세리에 B로 강등되었고 승점 12점을 감점당했다. 피오렌티나는 항소를 통해 세리에 A에 복귀했지만, 2006-07 시즌에 승점 19점 감점을 당했고,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취소되었다. 시즌 시작 후, 피오렌티나의 징계는 이탈리아 법원에 항소하여 -19점에서 -15점으로 감소하였다. 징계에도 불구하고, 피오렌티나는 UEFA 컵 진출권을 확보하였다.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토니에도 불구하고, 피오렌티나는 2007-08 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였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였다. 유럽 대항전에서는 UEFA 컵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레인저스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였다. 2008-09 시즌에도 4위를 차지하며 2010년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확보하는 등 성공을 이어나갔다. 유럽 대항전에선 32강전에서 아약스에게 탈락하였다.
2009-2010 시즌, 피오렌티나는 정규 리그에서 부진하기 전까지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후반에 중위권으로 추락하였다.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는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올랭피크 리옹에 패배한 후, 남은 5경기를 모두 연승하며 다크호스임을 증명하였다. 특히 리버풀 홈, 원정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비올라는 조별예선을 통과했지만, 원정 다득점으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했다. 하지만 16강전은 1차전에서 오프사이드 상황이었던 골을 인정한 톰 헨닝 외브레뵈의 심판 결정 실수로 논란이 되었다. 바이에른은 결국 결승전까지 진출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럽대항전과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오렌티나는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하였다.
2009년 9월 24일, 안드레아 델라 발레는 피오렌티나 회장직을 사임하였고 부회장 마리오 코니니(Mario Cognini)가 임시로 회장직을 이행한다고 발표했다.
2010년 6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된 체사레 프란델리와 작별하고, 카타니아의 감독 시니샤 미하일로비치가 그를 대신하여 선임되었다. 2010-11 시즌 초반, 피오렌티나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주전 골키퍼 세바스티앵 프레이와 스테반 요베티치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즌 후반 팀의 경기력이 향상되어 9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011-12 시즌에도 미하일로비치는 팀에 남았지만, 세바스티앵 프레이와 아드리안 무투 등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리그에서의 부진과 키에보에게 1-0 패배를 당하면서, 미하일로비치는 경질되고 델리오 로시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로시 감독 부임 후 잠시 팀이 호전되는 듯했으나, 다시 강등권 싸움에 빠지게 되었다. 2012년 초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를 잃었고, 유벤투스에게 홈에서 5-0으로 대패하자 단장 판탈레오 코르비노가 경질되었다. 리카르도 몬톨리보가 팀을 떠날 준비를 하는 가운데, 로마와 밀란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며 잔류를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노바라와의 홈경기에서 0-2로 뒤지던 중, 감독 델리오 로시는 아뎀 랴이치를 교체했고, 랴이치가 비꼬는 박수를 치자 로시가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로시 감독은 해고되었고, 임시감독 빈첸초 구에리니가 팀을 이끌어 13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2년 여름, 델라 발레 가문은 팀 재건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다니엘레 프라데를 단장으로 임명하고, 빈첸초 몬텔라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마티아스 페르난데스, 보르하 발레로, 알베르토 아퀼라니, 다비드 피사로 등 17명의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며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팀은 2012년이 끝날 때쯤 3위를 기록했고, UEFA 유로파리그 2013-14 진출권을 획득하며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피오렌티나는 말라가에서 호아킨 산체스를, 볼턴 원더러스에서 마르코스 알론소를 영입했다. 또한 올렉산드르 야코벤코, 마르코 바키치, 구스타보 무누아를 영입했다. 마티아 카사니, 후안 마누엘 바르가스, 루벤 올리베라는 임대에서 복귀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마리오 고메스를 영입했지만, 스테반 요베티치를 맨체스터 시티로, 루카 토니를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시켰다.
2014-2015 시즌도 4위로 마쳐 UEFA 유로파리그 2015-16에 참가하게 되었다. 빈첸초 몬텔라 감독은 팀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과 구단과의 불화로 2015년 6월 9일 경질되었고, 2015년 6월 21일 파울루 소자 감독이 새롭게 임명되었다. 파울루 소자 감독은 팀을 안정시키고 노쇠화된 스쿼드를 리빌딩했다. 네투, 마이카 리차즈, 무함마드 살라흐를 떠나보내고,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알레산드로 디아만티를 원소속팀으로 복귀시켰다. 후안 마누엘 바르가스, 다비드 피사로, 알베르토 아퀼라니, 크리스티아노 루파텔리, 안드레아 라차리, 무니르 엘 함다우이, 호세 마리아 바산타, 마리오 고메스 등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고, 스테판 사비치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보내면서 마리오 수아레스를 영입했다. 니콜라 칼리니치, 지우베르투를 영입하고,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 루이지 세페, 다비데 아스토리를 임대로 영입했다.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 안테 레비치, 쿠마 바바카르 등 유망주를 1군에 기용하며 평균 연령을 낮췄다.
2.5. 코미소 시대 (2019년 ~ 현재)
로코 코미소가 이끄는 ACF 피오렌티나의 새로운 시대는 2019년에 시작되었다. 델라 발레 가문은 17년간 구단을 운영한 후, 케이블 TV 회사 미디어콤을 운영하는 미국계 이탈리아인 로코 코미소에게 클럽을 매각했다.
새로운 시대의 첫 시즌 감독으로는 빈첸초 몬텔라가 유임되었으나, 피오렌티나는 이전 시즌의 부진을 이어가며 시즌 대부분을 중위권에서 보냈다. 몬텔라 감독은 7경기 무승 행진으로 구단이 15위에 머물자 2020년 12월 21일 경질되었고, 주세페 야키니가 그를 대신했다. 2020년 11월, 체사레 프란델리가 주세페 야키니를 대신하여 피오렌티나로 복귀했다.
2019-20 시즌, 프랭크 리베리를 비롯해 에릭 풀가, 마르틴 카세레스 등이 영입되었다. 주세페 야키니 감독 부임 이후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최종 순위는 10위로 마감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8강에서 인테르에게 패했다.
2020-21 시즌에는 자코모 보나벤투라, 호세 카예혼, 보르하 발레로가 자유 계약으로 합류했다. 발레로는 3년 만에 복귀였다. 조르당 베레투와 조반니 시메오네는 각각 로마와 칼리아리로 완전 이적했다. 클럽의 상징과 같았던 페데리코 키에사는 유벤투스로 임대 이적하여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7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부진한 성적으로 야키니 감독이 해임되고 체사레 프란델리가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프란델리 감독은 두산 블라호비치를 각성시키고, 유벤투스를 3-0으로 꺾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성적 부진으로 3월 23일 사임했다. 야키니 감독이 다시 복귀했고, 리그는 13위로 마쳤다. 코파 이탈리아는 16강에서 인테르에게 패했다.
3시즌 연속 리그 하위권을 맴돌자, 2021-22 시즌을 앞두고 젠나로 가투소 감독이 선임되었으나, 구단 수뇌부와의 대립으로 23일 만에 사임했다. 이후 스페치아와 계약을 연장한 빈첸초 이탈리아노 감독이 부임했다. 니콜라스 곤잘레스, 마티야 나스타시치, 유수프 말레가 영입되었고, 루카스 토레이라와 알바로 오드리오솔라는 임대로 합류했다. 두산 블라호비치의 맹활약으로 10승 2무 7패, 7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조나탕 이코네, 크시슈토프 피옹테크를 영입하며 공격진을 강화했으나, 두산 블라호비치는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그의 대체자로 아르투르 카브랄이 영입되었다.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에서 유벤투스에게 패했지만, 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7위를 기록, 6년 만에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022-23 시즌에는 도도, 롤란도 만드라고라, 루카 요비치가 영입되었고, 피에를루이지 골리니가 임대로 합류했다. 유벤투스로 임대 중이던 페데리코 키에사는 완전 이적했고, 에릭 풀가와 바르토미에이 드롱고프스키는 팀을 떠났다.
빈첸초 이탈리아노 감독 체제에서 피오렌티나는 2022-23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와 2023-24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 두 번 연속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이는 이 대회 역사상 두 번 연속 결승 진출을 기록한 최초의 클럽이며, S.L. 벤피카가 2013년과 2014년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패배한 이후 두 번 연속 유럽 대회 결승에서 패배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3. 경기장
4.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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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2024-25 시즌 개막 포메이션
;2024년 8월 30일 현재
| 번호 | 포지션 | 이름 |
|---|---|---|
| 1 | GK | 피에트로 테라치아노 |
| 2 | DF | 도도 |
| 3 | DF | 크리스티아노 비라기 (주장) |
| 5 | DF | 마린 포그라치치 |
| 6 | DF | 루카 라니에리 |
| 7 | FW | 리카르도 소틸 |
| 8 | MF | 롤란도 만드라고라 |
| 9 | FW | 루카스 벨트란 |
| 11 | FW | 조나탕 이코네 |
| 15 | DF | 피에트로 코무초 |
| 19 | MF | 지노 인판티노 |
| 20 | FW | 모이즈 킨 |
| 23 | MF | 안드레아 콜파니 |
| 24 | MF | 아미르 리차드슨 |
| 28 | DF | 루카스 마르티네스 콰르타 |
| 29 | MF | 야신 아드리 |
| 30 | GK | 토마소 마르티넬리 |
| 33 | DF | 마이클 카요데 |
| 43 | GK | 다비드 데 헤아 |
| 53 | GK | 올리버 크리스텐센 |
| 65 | DF | 파비아노 파리시 |
| 72 | MF | 안토닌 바라크 |
| 77 | FW | 요십 브레칼로 |
| 99 | FW | 크리스티안 쿠아메 |
| DF | 마티아스 모레노 | |
| DF | 디모 크라스테프 | |
| MF | 압델하미드 사비리 | |
| MF | 다닐로 카탈디 | |
| MF | 에두아르도 보베 | |
| MF | 로빈 고젠스 | |
| FW | 알베르트 구드문드손 |
; 감독
* 라파엘레 팔라디노
4.1. 현재 선수 명단 (2024년 9월 7일 기준)
2024년 9월 7일 기준 현재 ACF 피오렌티나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번호 | 포지션 | 이름 |
|---|---|---|
| 1 | GK | 피에트로 테라차노 |
| 2 | DF | 도도 |
| 3 | DF | 크리스티아노 비라기 (주장) |
| 4 | MF | 에도아르도 보베 (AS 로마에서 임대) |
| 5 | DF | 마린 폰그라치치 |
| 6 | DF | 루카 라니에리 |
| 7 | FW | 리카르도 소틸 |
| 8 | MF | 롤란도 만드라고라 |
| 9 | FW | 루카스 벨트란 |
| 10 | FW | 알베르트 그뷔드뮌손 (제노아에서 임대) |
| 11 | FW | 조나탕 이코네 |
| 15 | DF | 피에트로 코무초 |
| 19 | MF | 히노 인판티노 |
| 20 | FW | 모이스 켄 |
| 21 | MF | 로빈 고젠스 (우니온 베를린에서 임대) |
| 22 | DF | 마티아스 모레노 |
| 23 | MF | 안드레아 콜파니 (몬차에서 임대) |
| 24 | MF | 아미르 리샤르송 |
| 27 | MF | 압델하미드 사비리 |
| 28 | DF | 루카스 마르티네스 콰르타 (부주장) |
| 29 | MF | 야신 아들리 (밀란에서 임대) |
| 30 | GK | 토마소 마르티넬리 |
| 32 | MF | 다닐로 카탈디 (라치오에서 임대) |
| 33 | DF | 미카엘 카요데 |
| 43 | GK | 다비드 데 헤아 |
| 53 | GK | 올리베르 크리스텐센 |
| 65 | DF | 파비아노 파리시 |
| 99 | FW | 크리스티앙 쿠아메 |
4.2. 임대 선수 명단
2024년 10월 1일 현재 ACF 피오렌티나에서 임대 선수로 활동 중인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포지션 | 선수 | 임대 구단 |
|---|---|---|
| DF | 크리스티안 비아게티 | 프로 베르첼리 |
| DF | 에두아르드 두투 | 피네토 |
| DF | 다비데 겐틸레 | 살레르니타나 |
| DF | 로렌초 루케시 | 레자나 |
| DF | 디모 크라체프 | 테르나나 |
| DF | 에도아르도 피에로치 | 페스카라 |
| DF | 브루노 프라티 | 프라토 |
| MF | 로렌초 아마투치 | 살레르니타나 |
| MF | 소피안 암라바트 | 페네르바흐체 |
| MF | 안토닌 바라크 | 카슴파샤 |
| MF | 알레산드로 비안코 | 몬차 |
| MF | 콘스탄티노 파바술리 | 바리 |
| MF | 니콜로 포르티니 | 유베 스타비아 |
| MF | 니콜로 나르디 | 카르피 |
| MF | 로렌초 비지아니 | 프로 베르첼리 |
| FW | 요시프 브레칼로 | 카슴파샤 |
| FW | 필리포 디스테파노 | 프로시노네 |
| FW | 니콜라스 곤살레스 | 유벤투스 |
| FW | 필리포 귀도발디 | 라퀼라 |
| FW | 음발라 은졸라 | 랑스 |
| FW | 팔루 세네 | 프로시노네 |
| FW | 엘리온 토치 | 프로 파트리아 |
4.3. 역대 주요 선수
ACF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한 주요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 잔카를로 안토뇨니는 피오렌티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1972년부터 1987년까지 활약하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 쿠르트 함린은 1958년부터 1967년까지 활약하며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는 1991년부터 1999년까지 팀의 주포로 활약하며 1995-9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96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끌었다.
* 프란체스코 그라치아니는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활약했으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 멤버이다.
* 둥가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활약하며 중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루카 토니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활약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고, 2005-06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했다.
* 마리오 피치올로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멤버이다.
* 조반니 갈리,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다니엘레 마사로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 다니엘 파사레야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멤버이다.
이 외에도 엔리코 키에사, 엔리코 알베르토지, 다비데 아스토리, 다니엘 베르토니, 프란체스코 톨도, 크리스티안 비에리, 스테판 요베티치, 모하메드 살라 등 많은 선수들이 피오렌티나를 거쳐갔다.
5. 역대 감독
ACF 피오렌티나는 1926년 창단 이후 현재까지 많은 감독들이 거쳐갔다.
| 이름 | 국적 | 연도 |
|---|---|---|
| 카로이 첩커이 | 1926–28 | |
| 카로이 첩커이 펠드먼 줄러 | 1928–30 | |
| 펠드먼 줄러 | 1930–31 | |
| 헤르만 펠슈너 | 1931–33 | |
| 빌헬름 러지 | 1933 | |
| 요제프 긴그 | 1933–34 | |
| 구이도 아라 | 1934–37 | |
| 오타비오 바카니 | 1937–38 | |
| 페렌츠 몰나르 | 1938 | |
| 루돌프 조우체크 | 1938–39 | |
| 주세페 갈루치 | 1939–45 | |
| 구이도 아라 | 1946 | |
| 렌초 말리 | 1946–47 | |
| 임레 셴케이 | 1947 | |
| 루이지 페레로 | 1947–51 | |
| 렌초 말리 | 1951–53 | |
| 풀비오 베르나르디니 | 1953–58 | |
| 러요시 체이즐레르 | 1958–59 | |
| 루이지 페레로 | 1959 | |
| 루이스 카르니글리아 | 1959–60 | |
| 주세페 키아펠라 | 1960 | |
| 난도르 히데그쿠티 | 1960–62 | |
| 페루초 발카레지 | 1962–64 | |
| 주세페 키아펠라 | 1964–67 | |
| 루이지 페레로 | 1967–68 | |
| 안드레아 바시 | 1968 | |
| 브루노 페사올라 | 1968–71 | |
| 오론초 풀리에세 | 1971 | |
| 닐스 리에드홀름 | 1971–73 | |
| 루이지 라디체 | 1973–74 | |
| 네레오 로코 | 1974–75 | |
| 카를로 마초네 | 1975–77 | |
| 마리오 마초니 | 1977–78 | |
| 주세페 키아펠라 | 1978 | |
| 파올로 카로시 | 1978–81 | |
| 잔카를로 데 시스티 | 1981–85 | |
| 페루초 발카레지 | 1985 | |
| 알도 아그로피 | 1985–86 | |
| 에우제니오 베르셀리니 | 1986–87 | |
| 스벤예란 에릭손 | 1987–1989 | |
| 브루노 조르지 | 1989–1990 | |
| 프란체스코 그라치아니 (int.) | 1990 | |
| 세바스치앙 라자로니 | 1990–1991 | |
| 루이지 라디체 | 1991–1993 | |
| 알도 아그로피 | 1993 | |
| 루차노 키아루지 (int.) | 1993 | |
|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 1993–1997 | |
| 알베르토 말레사니 | 1997–1998 | |
| 조반니 트라파토니 | 1998–2000 | |
| 파티흐 테림 | 2000–2001 | |
| 루차노 키아루지 | 2001 | |
| 로베르토 만치니 | 2001–2002 | |
| 오타비오 비안키 | 2002 | |
| 루차노 키아루지 (int.) | 2002 | |
| 에우제니오 파셰티 | 2002 | |
|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 2002 | |
| 알베르토 카바신 | 2002–2004 | |
| 에밀리아노 몬도니코 | 2004 | |
| 세르조 부소 | 2004–2005 | |
| 디노 초프 | 2005 | |
| 체사레 프란델리 | 2005–2010 | |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 2010–2011 | |
| 델리오 로시 | 2011–2012 | |
| 빈첸초 구에리니 (int.) | 2012 | |
| 빈첸초 몬텔라 | 2012–2015 | |
| 파울루 소자 | 2015-2017 | |
| 스테파노 피올리 | 2017-2019 | |
| 빈첸초 몬텔라 | 2019 | |
| 주세페 이아키니 | 2019-2020 | |
| 체사레 프란델리 | 2020-2021 | |
| 주세페 이아키니 | 2021 | |
| 젠나로 가투소 | 2021 | |
| 빈첸초 이탈리아노 | 2021-2024 | |
| 라파엘레 팔라디노 | 2024- |
6. 클럽 관련 디자인
6.1. 엠블럼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플뢰르 드 리스가 그려져 있는 피렌체 시의 공식 문장은 클럽의 모든 상징물에 중심이 되었다. 클럽의 긴 역사 기간동안에, 몇 번의 앰블럼 변화가 있었지만, 피렌체의 플뢰르 드 리스는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첫 번째로 만들어진 앰블럼은 하얀색 바탕에 붉은 플뢰르 드 리스가 새겨진, 피렌체 시의 문장과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이는 곳 곧 양식화가 되어서, 플뢰르 드 리스는 항상 붉은색이고 때때로는 하얀색 바탕이 빠지기도 하였다. 20년간 채택된 가장 평범한 상징물에는 하얀색 마름모 안쪽에 꽃이 새져있었다. 그 기간 와중에 피오렌티나는 이탈리아 챔피언이 되었고, 마름모는 사라지게 되고 꽃은 스쿠데토 위에 겹쳐 사용되었다.
1980년대 구단주였던 플라비오 폰텔로가 도입시킨 앰블럼은 피렌체 시의 문장의 절반과 피오렌티나의 F의 절반으로 이루어져 특히 뚜렷하였다. 이 앰블럼이 도입되었을때, 사람들은 그것을 상업적인 결정이라고 믿었으며, 무엇보다도 플뢰르 드 리스보다 핼버드처럼 보여서 싫어하였다.
오늘날의 앰블럼은 황금색 태두리를 가진 두개의 마름모 연모양을 하고 있다. 바깥족의 마름모는 보라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AC" 글자와 클럽 이름을 나타내는 글자인 "F"가 붉은색으로 새겨져있다. 안쪽 마름모는 황금색 태두리로 되어있고 바탕은 하얀색이며 피렌체의 붉은 플뢰르 드 리스가 있다.이 앰블럼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사용됐지만, 재정 위기 이후와 새로 세워진 클럽은 그 로고를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피렌체의 코무네는 대신에 피오렌티아 비올라가 다른 도시의 문장을 사용하는걸 인정해주었다. 디에고 델라 발레는 현재의 로고를 최근에 법원 경매에서 250만 유로를 주고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가장 비싼 로고를 구입하여 사용권을 획득하였다.
6.2. 유니폼과 색
피오렌티나는 1926년 창단 당시 피렌체 시의 문장에서 유래한 붉은색과 하얀색이 반반씩 섞인 유니폼을 입었다. 1928년부터 현재까지 사용되는 보라색 유니폼은 La Viola ("보라색 (팀)")라는 별명을 가져다주었다. 이 보라색 유니폼은 오래된 붉은색과 하얀색 유니폼을 강에서 세탁하던 중 생긴 사고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정 유니폼은 대부분 하얀색이며, 붉은색이나 보라색이 들어가거나 전부 하얀색인 경우도 있었다. 홈 유니폼의 하의가 하얀색일 경우 보라색 하의를 사용했다. 피오렌티나는 1995-96 시즌에 처음으로 서드 유니폼을 선보였는데, 보라색 테두리에 양쪽 어깨에 백합이 하나씩 있는 붉은색 유니폼이었다. 붉은색 유니폼은 주로 서드 유니폼으로 사용되었지만, 노란색 유니폼(1997-98, 1999-00, 2010-11 시즌)이 사용된 적도 있다.
| 연도 | 제조사 | 가슴 스폰서 |
|---|---|---|
| 1993 | 로또(lotto) | 7up(セブンアップ) |
| 1994 | Uhlsport | |
| 1995 | SAMMONTANA | |
| 1996-1997 | Reebok | |
| 1998-1999 | FILA | Nintendo |
| 2000 | TOYOTA | |
| 2001 | DIADORA | |
| 2002 | MIZUNO | |
| 2003 | Fondiaria-Sai | |
| 2004 | Adidas | |
| 2005 | TOYOTA | |
| 2006–2010 | lotto | |
| 2011 | Save The Children | |
| 2012 | MAZDA | |
| 2013-2014 | Joma | |
| 2015 | Volkswagen Save The Children | |
| 2016 | Le Coq | |
| 2017- | Folletto |
7. 주요 성적
세리에 A에서 1955-56, 1968-69 시즌에 우승하였고, 1956-57, 1957-58, 1958-59, 1959-60, 1981-82 시즌에 준우승을 기록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1960-61, 1965-66, 1974-75, 1995-96, 2000-01 시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57-58, 1959-60, 1998-99, 2013-14, 2022-23 시즌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ACF 피오렌티나는 1960-61 시즌 UEFA 컵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56-57 시즌 유러피언컵에서 준우승을, 1961-62 시즌 UEFA 컵위너스컵에서 준우승을, 1989-90 시즌 UEFA 유로파리그에서 준우승을, 2022-23 시즌과 2023-24 시즌 UEFA 유로파컨퍼런스리그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07-08 시즌 UEFA 컵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했고,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했다.
2013-14 시즌부터 2016-17 시즌까지는 UEFA 유로파리그에 참가했다. 2014-15 시즌에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최근 2022-23 시즌과 2023-24 시즌에는 UEFA 유로파컨퍼런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다.
7.1. 국내 대회
세리에 A에서 1955-56, 1968-69 시즌에 우승하였고, 5번의 준우승 기록이 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6번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1939-40, 1960-61, 1965-66, 1974-75, 1995-96, 2000-01 시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5번의 준우승 기록도 가지고 있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는 1996 시즌에 우승하였고, 2001 시즌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7.2. 유럽 대회
ACF 피오렌티나는 1960-61 시즌 UEFA 컵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56-57 시즌 유러피언컵에서 준우승을, 1961-62 시즌 UEFA 컵위너스컵에서 준우승을, 1989-90 시즌 UEFA 유로파리그에서 준우승을, 2022-23 시즌과 2023-24 시즌 UEFA 유로파컨퍼런스리그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00-01 시즌부터 2023-24 시즌까지 피오렌티나는 UEFA 주관 대회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 2007-08 시즌 UEFA 컵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레인저스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여 각각 조별리그와 16강에서 탈락했다.
2013-14 시즌부터 2016-17 시즌까지는 UEFA 유로파리그에 꾸준히 참가했다. 2014-15 시즌에는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세비야에게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최근 2022-23 시즌과 2023-24 시즌에는 UEFA 유로파컨퍼런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각각 웨스트햄과 올림피아코스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7.3. 기타 대회
* 세리에 B
우승: 1930-31, 1938-39, 1993-94
* 세리에 C2
우승: 2002-03
* 코파 그라스호퍼스
우승: 1957
* 앵글로-이탈리안 리그컵
우승: 1975
8. UEFA 클럽 계수
2016년 2월 24일 기준 UEFA 클럽 계수는 다음과 같다.
9. 기업으로서의 ACF 피오렌티나
AC 피오렌티나는 2002년 재창단 이후, 세리에 A와 유럽 클럽 대항전 참가를 위해 재정적 자립을 추구해왔다. 2005년 €19,519,789의 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2006년에는 선수단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인해 무형 자산(선수 계약) 상각액이 증가했지만, 2006년 이탈리아 축구 스캔들로 인해 유럽 대항전 진출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에는 순손실을 €3,704,953으로 줄이며 거의 손익분기점에 도달했고, UEFA 컵 2007-08 참가를 통해 TV 중계권 수익이 증가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증가로 인해 TV 중계권 수익 증가 효과가 상쇄되어 2008년에는 €9,179,484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펠리피 멜루, 잠파올로 파치니, 즈드라브코 쿠즈마노비치 등 주요 선수들을 매각하여 €4,442,803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선수 판매 감가상각 (€6,062,545)으로 상쇄되었다.
2010년에는 유럽 대회 진출 실패와 선수 판매 이익 감소로 인해 매출이 감소하고 순손실이 발생했다. 2011년에는 선수 판매로 인한 자본 이익 부족과 2009–10 UEFA 유로파 리그 참가에 대한 UEFA 분할금 감소로 인해 매출이 더욱 감소했다. 또한, 경기장 수입 감소, 선수 이적료 상각 증가, 선수 판매 감가상각 등의 요인으로 인해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다.
2012년에는 마티야 나스타시치와 발론 베라미를, 2013년에는 스테반 요베티치와 아뎀 랴이치를 매각하며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2014년에는 선수 판매로 인한 예상치 못한 이익 감소로 인해 재창단 이후 최악의 재정적 결과를 기록했다.
UEFA 재정적 페어 플레이 규정에 따라, 피오렌티나는 2013-14 시즌 첫 평가 기간에 마이너스 1950만 유로의 관련 축구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허용 한도 내에 있었다. 2015년 1월 후안 콰드라도를 첼시에 매각하여 2016-17 UEFA 대회 참가 자격을 얻었다.
과거 A.C. 피오렌티나 S.p.A. 시절, 1999년 에밀리아노 비기카와 주세페 탈리아라텔라의 스왑, 2000년 마르코 로시 영입과 로렌초 콜라키오니의 살레르니타나 이적 등 선수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었지만, 2000-01 시즌에는 큰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2001년 프란체스코 톨도와 루이 코스타를 매각하여 이익을 얻었지만, 구단주 비토리오 체키 고리의 재정 지원 부족으로 인해 결국 파산했다.
| 회계 연도 | 매출액 | 결과 | 총 자산 | 순 자산 | 자본 재조달 |
|---|---|---|---|---|---|
| A.C. 피오렌티나 S.p.A. (PI 0039250485) 환율 1유로 = 리라 1936.27 | |||||
| 1999–2000 | €85,586,138# | €5,550,939 | €184,898,223 | €13,956,954 | |
| 2000–01 | €61,698,625# | €9,557,318 | €219,996,389 | €23,514,272 | €0 |
| 2001–02 | 파산으로 인해 사용 불가 | ||||
| ACF 피오렌티나 S.p.A. (PI 05248440488) 시작 자본: €7,500,000 | |||||
| 2002–03 | €5,256,451 | €420만 | |||
| 2003 (7월–12월) | €6,370,483 | €500만 | |||
| 2004 | €33,336,444 | €99,357,403 | €11,019,231 | €1490만 8000 | |
| 2005 | €57,646,361 | €107,504,630 | €35,951,875 | €3409만 2000 | |
| 2006 | €60,961,502 | €123,327,412 | €51,132,086 | €3470만 | |
| 2007 | €88,627,385 | €142,484,422 | €67,427,133 | €2000만 | |
| 2008 | €108,521,983 | €171,220,969 | €78,247,649 | #redirect €2000만 | |
| 2009 | €140,040,713 | €4,442,803 | €173,675,641 | €92,690,451 | €1000만 |
| 2010 | €79,854,927 | €178,314,364 | €83,086,099 | €0 | |
| 2011 | €67,076,953 | €156,972,324 | €50,612,014 | #redirect €0 | |
| 2012 | €109,060,686 | €1,155,691 | €182,081,303 | €75,667,705 | €2390만 |
| 2013 | €121,044,126 | €1,448,376 | €217,891,659 | €92,216,081 | €1510만 |
| 2014 | €94,339,505 | €188,847,357 | €77,192,851 | €2200만 | |
| 합계 | / | / | €20390만 | ||
| 평균 | €58,149,609 | €1631만 2000 | |||
| 참고: #선수 판매로 인한 예상치 못한 이익 제외 이탈리아 회계 기준은 수년에 걸쳐 변경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