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 코야르
1. 개요
엔리케 코야르는 스페인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주로 왼쪽 측면에서 활약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959-60 시즌부터 2시즌 연속 코파 델 레이 우승, 1961-62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1965-66 시즌에는 라리가 우승을 달성했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196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52년 UEFA U-18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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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엔리케 코야르 몬테루비오 |
|---|---|
| 출생일 | 1934년 11월 2일 |
| 출생지 | 안달루시아 지방 산후안데아스날파라체 |
| 포지션 | 좌측 윙어 |
| 별칭 | 타잔 |
| 유소년 클럽 | 임페리알 페냐 노리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49–1952) |
|---|---|
| 주요 클럽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52–1969) |
| 임대 클럽 | 카디스 (1952–1953) 무르시아 (1954) |
| 기타 클럽 | 발렌시아 (1969–1970) |
| 클럽 출전 횟수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470회 (71골) 카디스 CF: 20회 (7골) 레알 무르시아: 11회 (7골) 발렌시아 CF: 15회 (1골) |
| 총 출전 횟수 | 516회 (86골) |
| 청소년 대표팀 | 스페인 U-18 (1952, 2경기 1골) |
|---|---|
| B팀 | 스페인 B (1955–1959, 7경기 1골)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1955–1963, 16경기 4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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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도 출신 -
파코 차파로
파코 차파로는 스페인의 축구 감독이자 전 축구 선수로, 선수 시절 라요 바예카노에서 뛰었으며 은퇴 후 엑스트레마두라를 시작으로 여러 하부 리그 팀을 지도했고 레알 베티스에서는 유소년팀과 1군 감독을 역임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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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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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2. 클럽 경력
엔리케 코야르는 1949년 안달루시아 주 임페리얼 CF와 마드리드 페냐 노리아를 거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1952년 형 안토니오 코야르와 함께 테르세라 디비시온(3부 리그) 카디스 CF로 임대되어 프로 1년 차에 리그 7골을 기록했다.
1953-54 시즌 RCD 에스파뇰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아틀레티코 1군 데뷔를 했으나, 출전 기회가 적어 공식 경기 4경기에 출전했다. 다음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 레알 무르시아로 임대되어 11경기 7골을 기록하며 활약 후 겨울에 아틀레티코로 복귀했다. 무르시아는 시즌 후 프리메라리가로 승격했다.
아틀레티코 복귀 후 주전으로 1959-60 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현 코파 델 레이) 우승, 1961-62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었다. 호아킨 페이로와 Ala infernal(지옥의 날개)로 불리며 1960년대 스페인 대표 콤비로 활약했다.
1965-66 시즌 리그 우승에 기여하고 1968-69 시즌 후 클럽을 떠났다. 34세로 은퇴를 고려했으나, 발렌시아 CF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15경기 1골의 저조한 성적 후 은퇴했다.
2.1. 유소년 시절
안달루시아 주의 임페리얼 CF와 마드리드에 거점을 둔 페냐 노리아를 거쳐 194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1952년 형인 안토니오 코야르 등과 함께 당시 테르세라 디비시온 (3부)에 소속되어 있던 카디스 CF로 임대되었다. 카디스에서는 프로 1년차임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 7골을 기록했다.
2.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안달루시아 주 임페리얼 CF와 마드리드 페냐 노리아를 거쳐 194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1952년 형 안토니오 코야르 등과 함께 테르세라 디비시온 (3부) 카디스 CF로 임대되어 프로 1년차임에도 리그에서 7골을 기록했다.
1953-54 시즌 RCD 에스파뇰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아틀레티코 1군 데뷔를 했으나, 이후 출전 기회가 제한되어 시즌 공식 경기 출전은 4경기에 그쳤다. 다음 시즌에도 세군다 디비시온 레알 무르시아로 임대되어 11경기 7골을 기록하는 등 핵심 선수로 활약하고 겨울에 아틀레티코로 복귀했다. 무르시아는 시즌 종료 후 프리메라로 승격했다.
아틀레티코 복귀 후 주전으로 1959-60 시즌부터 2시즌 연속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현 코파 델 레이) 우승, 1961-62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경험했다. FIFA 월드컵 스페인 대표팀 1경기에 출전했다. 호아킨 페이로와 Ala infernal(지옥의 날개)로 불리며 1960년대 스페인 대표 콤비가 되었다.
1965-66 시즌 클럽의 5번째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68-69 시즌 종료 후 클럽을 떠났다.
2.3. 말년
코야르는 34세였기 때문에 현역 은퇴도 예상되었지만, 현역 마지막 시즌으로 정하고 발렌시아 CF로 이적했다. 그러나 발렌시아에서는 시즌 15경기 1골로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엔리케 코야르는 1955년 6월 19일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62년 FIFA 월드컵과 1964년 유럽 네이션스컵에 참가했다. 다만, 1962년 월드컵에서는 한 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고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3.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아래의 점수에서 왼쪽의 점수가 스페인의 점수이다.
4. 수상 내역
4.1. 클럽
코야르는 안달루시아 주의 임페리얼 CF와 마드리드의 페냐 노리아를 거쳐 194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1952년 형인 안토니오 코야르 등과 함께 당시 3부 리그인 테르세라 디비시온 소속 카디스 CF로 임대되어 프로 1년차임에도 리그에서 7골을 기록했다.
임대 복귀 후 1953-54 시즌, RCD 에스파뇰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아틀레티코 1군 데뷔를 했다. 그러나 출전 기회가 적어 시즌 공식 경기 출전은 4경기에 그쳤다. 다음 시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세군다 디비시온의 레알 무르시아로 임대 이적했다. 무르시아에서 11경기 7골을 기록하는 등 핵심 선수로 활약했고, 겨울에 아틀레티코로 복귀했다. 무르시아는 해당 시즌 종료 후 프리메라리가로 승격했다.
아틀레티코 복귀 후 주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1959-60 시즌부터 2시즌 연속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고, 1961-62 시즌에는 UEFA 컵위너스컵 우승을 경험했다. 호아킨 페이로와 함께 Ala infernal(지옥의 날개)이라고 불리며 1960년대 스페인을 대표하는 콤비가 되었다.
1965-66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1968-69 시즌까지 아틀레티코에서 활약한 후, 발렌시아 CF로 이적했지만, 시즌 15경기 1골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은퇴했다.
| 소속팀 | 대회 | 우승 기록 |
|---|---|---|
| 무르시아 | 세군다 디비시온 | 1954-55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UEFA 컵위너스컵 | 1961–62 |
| 라리가 | 1965–66 | |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 1959–60, 1960–61, 1964–65 |
4.2. 국가대표팀
코야르는 1955년 6월 19일,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62년 FIFA 월드컵과 1964년 유럽 네이션스컵에 참가했지만, 월드컵에서는 1경기에 출전하여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