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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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르틸로스는 기원전 270년경 디라키온과 아폴로니아 배후 지역을 통치했던 일리리아 왕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청동 동전을 주조했으며, 이는 그가 도시를 통제했음을 보여준다. 미틸루스는 폼페이우스 트로구스와 프론티누스의 기록에 등장하며, 기원전 270년경 피로스의 후계자인 알렉산더 2세와 전쟁을 벌였다. 그는 알렉산더 2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두레스에서 권력을 유지했으며, 에피루스 영토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로마는 발칸 반도에 처음으로 개입했다.

미르틸로스
기본 정보
칭호
통치 기간기원전 270년경 – 231년경
선임자모우니오스
추정 아버지모우니오스
이름
그리스어Μύτιλος (뮈틸로스)
라틴어Mytilus (뮈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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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미르틸로스는 디라키온과 아폴로니아 배후지에서 통치한 일리리아의 왕이었다. 기원전 270년경부터 자신의 청동 동전을 주조했으며, 동전에는 디라키온의 상징과 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폴로니아에서 발견된 동전에는 그의 모노그램과 함께 에피루스의 적대 세력인 아이톨리아 동맹의 상징과 유사한 상징이 새겨져 있었다. 청동 동전 앞면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가, 뒷면에는 헤라클레스의 상징인 화살통, 활, 철퇴와 함께 ΒΑΣΙΛΕΩΣ ΜΥΤΙΛ (바실레오스 미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폼페이우스 트로구스(기원전 1세기)와 프론티누스(서기 1세기)는 미르틸로스가 기원전 270년경 피로스의 후계자인 알렉산더 2세와 전쟁을 벌였다고 기록했다.

2.1. 통치

미틸루스는 디라키온과 아폴로니아 배후지에서 통치했다. 기원전 270년경부터 자신의 청동 동전을 주조했으며, 동전에는 디라키온의 상징과 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동전이 디라키온의 도시 조폐창에서 주조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어느 정도 도시를 통제했음을 보여준다. 모니니우스 이후 미틸루스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동전을 주조한 두 번째 일리리아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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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틸로스는 고대 작가 폼페이우스 트로구스 (기원전 1세기)와 프론티누스 (서기 1세기)의 역사 기록에도 등장하며, 이들은 그가 기원전 270년경 피로스의 후계자인 알렉산더 2세와 벌인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미틸루스는 알렉산더 2세가 기원전 270년경 자신의 영토를 침략한 후에도 두레스에서 권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레스와 아폴로니아의 통치는 미틸루스 시대에 일리리아인들이 글라우키아스 시대에 누렸던 권위와 세력을 되찾았음을 의미한다. 미틸루스는 심지어 에피루스의 영토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2.2. 주화

미틸루스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동전을 주조한 두 번째 일리리아 왕이다. 기원전 270년경부터 주조된 그의 청동 동전에는 디라키온의 상징과 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폴로니아에서 발견된 동전에는 그의 모노그램과 함께 에피루스의 적대 세력인 아이톨리아 동맹의 상징과 유사한 상징이 새겨져 있었다.

미틸루스 청동 동전의 앞면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가, 뒷면에는 헤라클레스의 상징인 화살통, 활, 철퇴와 함께 ΒΑΣΙΛΕΩΣ ΜΥΤΙΛ (바실레오스 미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일리리아 동전의 사본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3. 에피루스와의 전쟁

폼페이우스 트로구스(기원전 1세기)와 프론티누스(서기 1세기)는 미르틸로스가 피로스의 후계자인 알렉산더 2세와 벌인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미틸루스는 알렉산더 2세가 기원전 270년경 자신의 영토를 침략한 후에도 두레스에서 권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번은 일부 에피로테인들이 일리리아 옷을 입고 자기 땅을 약탈하게 했다. 의심하지 않은 일리리아인들은 방어 태세를 풀고 그들을 따라 하려고 달려들었는데, 눈앞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색 부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에피루스의 쉬운 희생양이 되었다. 두레스와 아폴로니아 통치는 미틸루스 시대에 일리리아인들이 글라우키아스 시대에 누렸던 권위와 세력을 되찾았음을 의미한다. 미틸루스는 심지어 에피루스 영토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로마가 처음으로 발칸 반도의 일리리아인, 에피로테인, 아이톨리아인에 대한 개입을 요청받았다.

3. 역사적 기록

폼페이우스 트로구스(기원전 1세기)와 프론티누스(서기 1세기)는 미틸루스가 기원전 270년경 피로스의 후계자인 알렉산더 2세와 벌인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미틸루스는 알렉산더 2세가 기원전 270년경 자신의 영토를 침략한 후에도 두레스에서 권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번은 일부 에피로테인들이 일리리아 옷을 입고 자기 땅을 약탈하게 했는데, 의심하지 않은 일리리아인들은 방어 태세를 풀고 그들을 따라 하려고 달려들었다. 이는 눈앞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색 부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에피루스의 쉬운 희생양이 되었다. 두레스와 아폴로니아의 통치는 미틸루스 시대에 일리리아인들이 글라우키아스 시대에 누렸던 권위와 세력을 되찾았음을 의미한다. 미틸루스는 심지어 에피루스의 영토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4.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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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zino, Danijel영어 (2010). 《Illyricum in Roman Politics, 229 BC–AD 68영어》 (영어).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ISBN 978-0-521-19419-8.

Mesihović, Salmedin보스니아어; Šačić, Amra보스니아어 (2015). 《Historija Ilira보스니아어》 (보스니아어). 사라예보: Univerzitet u Sarajevu보스니아어. ISBN 978-9958-60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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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kes, John영어 (1992). 《The Illyrians영어》 (영어). 와일리-블랙웰. ISBN 0-631-19807-5.

Winnifrith, Tom영어 (2020). 《Nobody's Kingdom: A History of Northern Albania영어》 (영어). 시그널 북스. ISBN 978190993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