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아메리카
1. 개요
미스 아메리카는 1921년 시작된 미국의 미인 대회로, 각 주 대표들이 수영복, 이브닝 드레스, 재능, 인터뷰 심사를 거쳐 우승자를 선발한다. 베스 마이어슨, 바네사 윌리엄스, 니나 다불루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우승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수영복 심사 폐지 등 대회 방식의 변화도 있었다. 2024년 현재, 매디슨 마쉬가 미스 아메리카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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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시작된 행사 -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는 당 내부 사항을 결정하고 지도부를 선출하는 중국공산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중앙위원회를 감독하며 중국 공산당 발전과 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
미국의 경연회 -
미스 USA
미스 USA는 미스 아메리카 사건을 계기로 카탈리나 수영복 회사가 만든 미국의 미인 대회로, 미스 유니버스 조직회와 함께 1952년부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미국 대표를 참가시키고 있으며, 각 주 대표 미녀들이 경쟁하여 우승자는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하며, 2024년부터는 나이 제한 없이 모든 성인 여성이 참가 가능하다. -
미국의 여성사 -
미국의 여성 참정권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여성의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사회적, 법적 장벽에 맞서 싸우며 발전하여, 1920년 미국 헌법 수정 제19조 비준으로 미국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
미국의 여성사 -
보스턴 결혼
보스턴 결혼은 결혼하지 않은 두 여성이 장기간 동거하며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관계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 특히 웰즐리 칼리지에서 흔했으며 여성들은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지지를 얻기 위해 선택했지만 사회적 시선 변화로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성 간 깊은 우정과 연대의 한 형태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2. 역사
1921년 9월 7일 뉴저지주애틀랜틱시티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된 이후,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몇 차례 중단과 전쟁 중에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1954년부터 텔레비전 중계가 시작되어 전미 네트워크에서 방송되었으며, 1979년까지 25년간 버트 파크스가 명 MC로 활약했다. 보드워크 홀 옆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1990년 70주년 기념 대회에 게스트로 특별 출연했다. 1980년대에는 게리 콜린스, 1990년대에는 레지스 필빈과 캐시 리 기포드, 2000년대 후반에는 마리오 로페스가 MC를 맡았다.
1984년 대회에서는 바네사 윌리엄스가 흑인 최초로 미스 아메리카에 선정되었으나, 펜트하우스지에 무단 게재된 사진으로 인해 타이틀을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부당 게재가 확인되어 타이틀 홀더로 인정받았고, 2위였던 슈제트 찰스도 미스 아메리카로 인정받았다.
2001년 대회에서는 하와이주 대표 필리핀계 미국인 안젤라 페레스 바라키오가 최초의 아시아계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다. 2002년 대회는 9.11 테러 직후 자숙 분위기 속에서도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ABC는 2005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계 계약을 해지했다. 2006년부터 개최 도시를 네바다주라스베이거스(플래닛 할리우드)로 옮기고, 컨트리 뮤직 텔레비전에서 중계했으나 2007년 계약이 해지되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TLC, 2011년부터 3년간은 ABC에서 방송되었다. 2014년 대회는 다시 애틀랜틱시티에서 개최되었다.
2014년 대회에서는 뉴욕주 대표 인도계 미국인 니나 다브룰리가 두 번째 아시아계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아랍계 또는 이슬람교도로 오해한 비방과 인종차별적 댓글이 잇따르며 사회 문제로 번졌다.
2018년 1월, 1989년 대회 우승자 그레첸 칼슨이 미스 아메리카 기구 회장에 취임했고, 6월에는 수영복 및 이브닝 가운 심사 폐지를 발표했다. 2020년 대회(2019년 12월)는 코네티컷주 모히건 선에서 개최되었고, 1996년 이후 처음으로 NBC에서 방영되었다.
2020년은 코로나19 확산으로 2021년에 100주년 기념 대회로 연기되었고, 미스 아메리카 2019의 임기는 1년 연장되었다. 2022년 대회는 피콕 독점 방송되었다. 2024년 대회는 플로리다주 올랜도 월트 디즈니 극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미스 아메리카의 테마곡은 1954년부터 "There She Is"이며, 라스베이거스 개최 이후 가사 전반부가 없어졌다.
역대 최다 우승은 캘리포니아주, 오하이오주, 오클라호마주가 각각 6회이다.
2.1. 초기 (1921년 ~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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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 1일, 뉴욕시 호텔 데 자르티스트에서 열린 추 친 차우 볼에서 미인 대회가 개최되었다. 우승자 에디스 하이드 로빈스 맥카트니는 "미스 아메리카"라고 불렸지만, 이 타이틀은 1년 후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현재의 "미스 아메리카 미인 대회"와는 관련이 없었다.
"미스 아메리카 미인 대회"의 기원은 1920년 9월 25일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폴 프로릭'이라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보드워크에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매우 성공적이어서 이듬해에 미인 대회 또는 "목욕객 리뷰"로 다시 열렸다. 노동절 다음 주말에 열린 이 행사에는 지역 신문들이 후원한 지역 미인 대회 우승자들이 참가했다. "신문인" 허브 테스트는 우승자를 위한 용어인 "미스 아메리카"를 만들었다.
1921년 9월 8일, 10만 명의 사람들이 보드워크에 모여 여러 지역에서 온 참가자들을 지켜보았고, 마거릿 고먼이 "골든 머메이드"로 선정되어 100달러를 받았다.
미인 대회는 대공황과 "방종한 도덕"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중단되었다가, 1933년에 부활하여 참가자 연령이 18세에서 26세 사이로 조정되었다. 1935년에는 레노라 슬로터가 미인 대회를 "재창조"하기 위해 고용되어 32년 동안 이사로 재직했다. 1938년에는 재능 부문이 추가되었고, 참가자들은 보호자를 동반해야 했다. 1940년에는 공식적으로 "미스 아메리카 미인 대회"가 되었고, 대회는 애틀랜틱시티 컨벤션 홀에서 열렸다. 1944년에는 "미스 아메리카"에 대한 보상이 장학금으로 바뀌었다.
슬로터의 임기 초기에는 미인 대회의 일곱 번째 규칙에 따라 미국 내 인종 차별이 이루어졌다. 이 규칙은 "참가자는 건강이 좋고 백인이어야 한다"고 명시했으나, 1950년에 폐지되었다. 1945년 미스 뉴욕이었던 베스 마이어슨은 유일한 유대계 미국인 우승자로서 미스 아메리카 1945가 되었고, 미스 아메리카로 활동하는 동안 반유대주의에 직면하여 공식적인 의무가 줄어들었다. 그녀는 차별에 반대하는 강연을 했다.
마거릿 고먼은 1921년 16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욕 소녀"로 선발되었으며, 이듬해 다시 참가하여 첫 번째 "미스 아메리카"로 인정받았다. 그해 대회는 메리 캐서린 캠벨(미스 오하이오)이 우승했으며, 1923년에도 다시 우승했다.
1940년부터 밥 러셀이 대회의 첫 번째 공식 호스트로 활동했다. 1941년 미스 오클라호마인 미파운위 슈나토나는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참가자가 되었다.
1945년, 베스 마이어슨은 최초의 유대계 미국인이자 최초의 미스 뉴욕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최한 대회인 미스 뉴욕 시티로 출전)으로서 미스 아메리카 1945에서 우승했다.
1948년에는 미스 푸에르토리코인 일마 니디아 바스케스와 미스 하와이인 윤 타우 치가 각각 최초의 라틴계, 아시아계 미국인 참가자가 되었다. 미스 아메리카 1949인 재키 머서는 재임 기간 중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이후 참가자는 결혼하거나 임신한 적이 없다는 증명서에 서명해야 하는 규칙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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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대회는 9월에 계속 개최되었지만, 주최 단체는 미스 아메리카의 타이틀을 "사후 날짜"로 변경했다. 따라서 그해 대회 우승자 욜란데 베트베제는 미스 아메리카 1951이 되었고, 미스 아메리카 1950은 없었다. 1954년에는 밥 러셀의 진행으로 대회가 처음 전국적으로 텔레비전 방송되었다. 훗날 텔레비전 스타가 된 리 메리웨더는 미스 아메리카 1955로 선발되었다.
2.2. 변화와 논란 (1968년 ~ 2016년)
1968년 9월 7일, 약 200명의 뉴욕 급진 여성 회원들이 미스 아메리카 1969 선발대회에서 미스 아메리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가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미국의 군국주의를 상징한다고 비판했다. 시위대는 양에게 미스 아메리카 왕관을 씌우고, 가짜 속눈썹, 하이힐, 화장품, 거들, 코르셋, 브래지어 등 여성용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언론은 이 시위를 징병 거부자들의 징병 카드 소각에 비유하며 '브래지어 태우기'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브래지어를 태우지 않았다.
1970년, 셰릴 브라운 (미스 아이오와 1970)은 미스 아메리카 1971 선발대회에 참가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대회 기간 동안 언론과 경호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결선에 진출하지는 못했다. 이후 브라운은 베트남 전쟁에서 USO와 함께 미군 위문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83년, 바네사 윌리엄스 (미스 뉴욕 1983)는 미스 아메리카 1984에서 우승하여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재임 기간 동안 살해 위협과 혐오 메일을 받았고, 펜트하우스에 무단으로 누드 사진이 게재되면서 임기 종료 7주 전에 사임해야 했다. 미스 뉴저지 1983년 수제트 찰스가 윌리엄스를 대신하여 남은 임기를 채웠다. 2015년 9월 13일, 미스 아메리카 2016 선발대회에서 당시 미스 아메리카 CEO 샘 해스켈은 바네사 윌리엄스에게 공개 사과를 했다.
2013년 9월 15일에 열린 미스 아메리카 2014 선발대회에서, 니나 다불루리 (미스 뉴욕 2013)는 최초의 인도계 미국인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승 직후 소셜 미디어에서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무슬림이나 아랍인으로 오해하고 알 카에다와 연관 짓기도 했다. 다불루리는 이러한 반응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고, 미스 캔자스 2013년 테레사 베일은 다불루리를 지지하며 소셜 미디어의 반응을 비판했다.
2.3. 미스 아메리카 2.0 시대 (2017년 ~ 2022년)
2018년 1월, 1989년 미스 아메리카 우승자인 그레첸 칼슨이 기구의 새로운 의장으로 선출되어, 리더로 활동하는 최초의 전직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다. 캐서린 신들(미스 아메리카 1998) 또한 헤더 프렌치 헨리(2000)와 로라 카에펠러(2012)와 함께 이사회에 임명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개혁을 가져왔다. 2018년 6월, 미스 아메리카 참가자들이 더 이상 외모를 기준으로 심사받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전국 미스 아메리카 행사는 미인 대회가 아닌 경쟁으로 간주되었으며, 타이틀 보유자는 더 이상 참가자가 아닌 후보자로 불리게 되었다. 수영복 심사는 주 타이틀 보유자들이 심사위원들과 라이브 인터랙티브 세션을 갖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브닝 가운 심사도 폐지되었으며, 참가자들은 "자신감을 느끼게 하고, 개인적인 스타일을 표현하며, 미스 아메리카의 역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의상을 선택하게 되었다. 칼슨은 인터뷰에서 기구가 "여성을 위한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괄적인" 기구가 되기를 원하며, 참가자들의 재능과 장학금을 우선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이사회는 타이틀 보유자의 최대 연령을 24세에서 25세로 늘렸다. 따라서 참가자는 주 대회 연도의 12월 31일에 25세를 넘을 수 없었다. 이러한 칼슨 체제하의 새로운 조직 변화는 "미스 아메리카 2.0" 형식으로 불렸다.
그러나 2018년 8월, 미스 아메리카 2018 캐라 문드는 The Press of Atlantic City와의 인터뷰에서 "힘든 한 해였다"라고 말했다. 몇 주 후, 문드는 자신의 발언을 설명하기 위해 전직 미스 아메리카들에게 공개 서한을 썼다. 서한에서 그녀는 현재의 리더십이 "나를 침묵시키고, 축소시키고, 소외시키고, 미스 아메리카로서의 역할을 사실상 지워버렸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리더십은 내 목소리를 듣거나 원하지 않으며, 내가 누구인지, 나의 경험이 기구를 미래에 대비하는 데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칼슨은 문드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미스 아메리카 2019 대회가 시작될 무렵, 51개 주 기구 중 46개 (23명의 전직 미스 아메리카 우승자 포함)가 칼슨과 CEO 레지나 호퍼의 미스 아메리카 기구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2019년 6월 5일, 미스 사우스다코타 1997이자 전 사우스다코타 주 국무장관인 샨텔 크레브스가 칼슨의 뒤를 이어 미스 아메리카 기구 이사회 의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2.4. 현재 (2023년 ~ )
2023년 1월, 로빈 플레밍이 미스 아메리카 기구의 새로운 소유주 겸 CEO가 되면서 "새로운 미스 아메리카 기회"를 표방하며 대회 형식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플레밍은 기업가, 의상 디자이너, 텔레비전 프로듀서이며, 이전에는 9년 이상 주(州) 수준의 미스 USA 선발 대회를 감독했다.
플레밍의 새로운 행정부는 용어를 포함하여 "미스 아메리카 2.0"의 일부 변경 사항을 되돌렸다. 2023년부터 대회 참가자는 '후보'가 아닌 '참가자'로 다시 지칭되며, 참가자의 외모를 기준으로 심사하지 않기로 한 결정(2018년 수영복 심사 폐지로 발생)을 번복했다. 수영복 심사 대신, 참가자들은 이제 활동복을 입고 피트니스를 선보이며 심사를 받게 된다.
1938년부터 미스 아메리카 대회의 일부였던 재능 경연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참가자들은 "HER Story"라는 카테고리에서 자신의 재능으로 "스토리텔링을 통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참가자 연령 제한 또한 18~25세에서 18~28세로 상향 조정되었다.
2023년 7월 10일, A&E는 과거 우승자, 참가자 및 직원들을 인터뷰하여 미스 아메리카 기구의 역사적 문제(체중 조롱, 인종 차별, 참가자 및 우승자에 대한 "심리적 전쟁")에 대해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미스 아메리카의 비밀"을 방영했다.
2024년 11월, 미스 아메리카 운영자는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3. 대회 방식
미스 아메리카는 17세부터 24세까지의 미국 국적을 가진 미혼 여성이 참가할 수 있는 미인 대회이다. 각 주를 대표하는 지역 예선과 미스 아메리카 각 주 대표 대회를 통과해야 하며, 전미 50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를 포함하여 총 52명의 대표가 참가한다.
대회는 수영복, 이브닝 드레스, 탤런트, 인터뷰 심사를 거쳐 우승자를 결정한다. 각 예선 대회 입상자에게는 장학금이 수여되며, 미스 아메리카 대회 우승자에게는 50000USD, 2위에게는 25000USD, 3위에게는 20000USD가 수여된다. 100주년 기념 대회였던 2022년 대회 우승자에게는 100000USD의 장학금이 수여되었다.
1921년 9월 7일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된 이래, 대공황 시기 등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개최되었다. 1954년부터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기 시작했으며, 1979년까지 25년간 버트 파크스가 MC를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보드워크 홀 옆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1984년 대회에서는 바네사 윌리엄스가 흑인 최초로 미스 아메리카에 선정되었으나, 사진 스캔들로 인해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동의 없이 사진이 게재된 것이 밝혀지면서 타이틀은 유지되었다. 2001년 대회는 9.11 테러 직후 개최되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2005년 이후 중계권 계약이 여러 차례 변경되었으며, 2014년 대회는 다시 애틀랜틱시티에서 개최되었다. 2014년 대회에서는 인도계 미국인 니나 다브룰리가 우승했는데, 이를 두고 인터넷상에서 인종차별적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대회는 연기되었다가 2021년에 100주년 기념 대회가 개최되었다.
3.1. 참가 자격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17세부터 24세까지의 미국 국적을 가진 미혼 여성이 참가할 수 있다. 각 주 대표 선발전과 미스 아메리카 각 주 대표 대회를 통과해야 한다. 전미 50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 대표 52명이 참가한다.
1933년에 미인대회 참가자들의 연령이 18세에서 26세 사이가 되도록 변경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17세에서 24세까지로 참가 자격 연령이 변경되었다.
대회는 수영복, 이브닝 드레스, 탤런트, 인터뷰 심사를 거쳐 우승자를 결정한다. 각 예선 대회 입상자에게는 장학금이 수여된다. 또한, 미스 아메리카 대회 우승자에게는 50000USD의 장학금이, 2위에게는 25000USD, 3위에게는 20000USD가 수여된다. 단, 100주년 대회인 2022년 대회 우승자에게는 100000USD의 장학금이 수여되었다.
3.2. 심사 기준
초기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외모 심사가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재능, 인터뷰, 사회적 영향력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1938년에는 재능 부문이 추가되었고, 1944년부터는 "미스 아메리카"에 대한 보상이 장학금으로 바뀌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수영복 심사가 폐지되고 사회적 영향력 심사가 강화되었으나, 2023년부터는 활동복 심사가 부활하고 'HER Story'라는 스토리텔링 재능 심사가 도입되었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수영복, 이브닝 드레스, 탤런트, 인터뷰 심사를 거쳐 우승자를 결정한다. 각 예비 콘테스트 입상자에게는 장학금이 수여된다. 콘테스트 우승자에게는 50000USD의 장학금이, 2위에게는 25000USD, 3위에게는 20000USD가 수여된다. 단, 100주년 대회인 2022년 대회 우승자에게는 100000USD의 장학금이 수여되었다.
3.3. 진행 방식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여러 단계를 거쳐 우승자를 선발한다. 초기에는 지역 미인 대회를 통해 선발된 대표들이 애틀랜틱 시티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하는 방식이었다. 1938년에는 재능 부문이 추가되었고, 1944년부터는 장학금이 수여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미스 아메리카 2.0'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도입되어 참가자들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고 수영복 심사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2023년에 이러한 변화는 번복되었다.
현재는 17세부터 24세까지의 미국 국적을 가진 미혼 여성이 참가 자격을 가지며, 각 주 대표와 컬럼비아 특별구,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대표를 포함하여 총 52명이 참가한다. 대회는 수영복, 이브닝 드레스, 탤런트, 인터뷰 심사를 통해 우승자를 결정하며, 입상자에게는 장학금이 수여된다. 장학금은 우승자에게 50000USD, 2위와 3위에게는 각각 25000USD, 20000USD가 수여된다. 2022년 대회 우승자에게는 100000USD의 장학금이 수여되었다.
4. 역대 우승자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1921년 뉴저지주애틀랜틱시티에서 처음 개최된 이래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초기에는 "목욕객 리뷰"라고 불렸으며, 노동절 다음 주말에 열려 여름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한 행사였다. 1921년 첫 대회에는 10만 명의 관중이 모였으며, 워싱턴 D.C. 출신의 16세 마거릿 고먼이 초대 우승자로 선정되어 "골든 머메이드"라는 칭호와 함께 100달러를 받았다.
대회는 대공황 시기인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일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이후 재개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35년에는 레노라 슬로터가 미인 대회를 재창조하기 위해 고용되어 32년간 이사로 재직했다. 1938년에는 재능 부문이 추가되었고, 1940년에는 공식적으로 "미스 아메리카 미인 대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44년부터는 장학금이 수여되기 시작했다.
1954년부터 텔레비전 중계가 시작되면서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1955년부터 1979년까지는 버트 파크스가 사회를 맡아 오랫동안 대회의 상징적인 인물로 활약했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사회 변화와 함께 여러 논란과 변화를 겪었다. 초기에는 "참가자는 건강이 좋고 백인이어야 한다"는 인종 차별적인 규정이 존재했으나, 1950년에 폐지되었다. 1945년에는 베스 마이어슨이 최초의 유대계 미국인 미스 아메리카로 선정되었으나, 반유대주의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70년에는 셰릴 브라운이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참가자로 출전했다. 1984년에는 바네사 윌리엄스가 최초의 흑인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으나, 사진 스캔들로 인해 타이틀을 반납해야 했다. 2014년에는 니나 다불루리가 최초의 인도계 미국인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으나,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2018년에는 그레첸 칼슨 회장의 주도로 "미스 아메리카 2.0"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도입되어 수영복 심사가 폐지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2023년에는 다시 이전 형식으로 복귀하는 변화가 있었다.
역대 미스 아메리카 우승자들은 다음과 같다. (1921년~1999년)
| 연도 | 미스 아메리카 | 주 대표 |
|---|---|---|
| 1921 | 마가렛 고먼 | 워싱턴 D.C. |
| 1922 | 메리 캐서린 캠벨 | 오하이오주콜럼버스 |
| 1923 | 메리 캐서린 캠벨 |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
| 1924 | 루스 말콤슨 |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 1925 | 페이 램피어 | 캘리포니아주 |
| 1926 | 노르마 스몰우드 | 오클라호마주털사 |
| 1927 | 로이스 델라너 | 일리노이주 |
| 1932 | 도로시 한 | 뉴저지주 |
| 1933 | 매리언 버거론 | 코네티컷주 |
| 1935 | 헨리에타 리버 |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
| 1936 | 로즈 코일 |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 1937 | 베티 쿠퍼 | 뉴저지주 |
| 1938 | 마릴린 메세케 | 오하이오주 |
| 1939 | 패트리샤 도넬리 | 미시간주 |
| 1940 | 프랜시스 마리 버크 |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 1941 | 로즈마리 라플랑셰 | 캘리포니아주 |
| 1942 | 조-캐럴 데니슨 | 텍사스주 |
| 1943 | 진 바르텔 | 캘리포니아주 |
| 1944 | 비너스 래미 | 워싱턴 D.C. |
| 1945 | 베스 마이어슨 | 뉴욕주 |
| 1946 | 마릴린 버퍼드 | 캘리포니아주 |
| 1947 | 바바라 조 워커 | 테네시주멤피스 |
| 1948 | 비비 쇼프 | 미네소타주 |
| 1949 | 자크 머서 | 애리조나주 |
| 1951 | 욜란데 벳베제 | 앨라배마주 |
| 1952 | 콜린 케이 허친스 | 유타주 |
| 1953 | 네바 제인 랭글리 | 조지아주 |
| 1954 | 에블린 마거릿 에이 | 펜실베이니아주 |
| 1955 | 리 메리웨더 | 캘리포니아주 |
| 1956 | 샤론 리치 | 콜로라도주 |
| 1957 | 매리언 맥나이트 | 사우스캐롤라이나주 |
| 1958 | 마릴린 반 데르버 | 콜로라도주 덴버 |
| 1959 | 메리 앤 모블리 | 미시시피주 |
| 1960 | 린다 리 미드 | 미시시피주 |
| 1961 | 낸시 플레밍 | 미시간주 |
| 1962 | 마리아 플레처 | 노스캐롤라이나주 |
| 1963 | 재클린 메이어 | 오하이오주 |
| 1964 | 도나 악섬 | 아칸소주 |
| 1965 | 본다 케이 반 다이크 | 애리조나주 |
| 1966 | 데보라 이렌 브라이언트 | 캔자스주 |
| 1967 | 제인 앤 제이로 | 오클라호마주 |
| 1968 | 데브라 데인 반스 | 캔자스주 |
| 1969 | 주디스 앤 포드 | 일리노이주 |
| 1970 | 파멜라 앤 엘드레드 | 미시간주 |
| 1971 | 필리스 앤 조지 | 텍사스주 |
| 1972 | 로리 리 셰퍼 | 오하이오주 |
| 1973 | 테리 앤 미우센 | 위스콘신주 |
| 1974 | 레베카 앤 킹 | 콜로라도주 |
| 1975 | 셜리 코스란 | 텍사스주 |
| 1976 | 토니 일레인 고딘 | 뉴욕주 |
| 1977 | 도로시 캐슬린 베넘 | 미네소타주 |
| 1978 | 수잔 퍼킨스 | 오하이오주 |
| 1979 | 카일린 바커 | 버지니아주 |
| 1980 | 셰릴 프리윗 | 미시시피주 |
| 1981 | 수잔 파월 | 오클라호마주 |
| 1982 | 엘리자베스 워드 | 아칸소주 |
| 1983 | 데브라 매펫 | 캘리포니아주 |
| 1984 | 바네사 윌리엄스 | 뉴욕주 |
| 수젯 찰스 | 뉴저지주 | |
| 1985 | 셜린 웰스 | 유타주 |
| 1986 | 수잔 아킨 | 미시시피주 |
| 1987 | 켈리 캐시 | 테네시주 멤피스 |
| 1988 | 케이 라니 레이 라프코 | 미시간주 |
| 1989 | 그레첸 칼슨 | 미네소타주 |
| 1990 | 데비 터너 | 미주리주멕시코 |
| 1991 | 마조리 주디스 빈센트 | 일리노이주 |
| 1992 | 캐롤린 수잔 샙 | 하와이주카일루아-코나 |
| 1993 | 레안자 코넷 | 플로리다주잭슨빌 |
| 1994 | 킴벌리 클라리스 아이컨 | 사우스캐롤라이나주 |
| 1995 | 헤더 화이트스톤 | 앨라배마주 |
| 1996 | 숀텔 스미스 | 오클라호마주 |
| 1997 | 타라 던 크리스텐슨 | 캔자스주 |
| 1998 | 캐서린 신들 | 일리노이주 |
| 1999 | 니콜 존슨 | 버지니아주 |
2000년 이후의 역대 우승자는 '최근 우승자'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
4.1. 최근 우승자
| 연도 | 이름 | 주 |
|---|---|---|
| 2024 | 매디슨 마쉬 | 콜로라도 |
| 2023 | 그레이스 스탠키 | 위스콘신 |
| 2022 | 에마 브로일스 | 알래스카 |
| 2020 | 카밀 슈라이어 | 버지니아 |
| 2019 | 니아 프랭클린 | 뉴욕 |
| 2018 | 카라 문드 | 노스다코타 |
| 2017 | 새비 실즈 | 아칸소 |
| 2016 | 베티 칸트렐 | 조지아 |
| 2015 | 키라 카잔체프 | 뉴욕 |
| 2014 | 니나 다불루리 | 뉴욕 |
| 2013 | 맬러리 헤이건 | 뉴욕 |
| 2012 | 로라 캐펠러 | 위스콘신 |
| 2011 | 테레사 스캔랜 | 네브래스카 |
| 2010 | 카레사 카메론 | 버지니아 |
| 2009 | 케이티 스템 | 인디애나 |
| 2008 | 키얼스틴 해글런드 | 미시간 |
| 2007 | 로렌 넬슨 | 오클라호마 |
| 2006 | 제니퍼 베리 | 오클라호마 |
| 2005 | 데이더 다운즈 | 앨라배마 |
| 2004 | 에리카 던랩 | 플로리다 |
| 2003 | 에리카 해롤드 | 일리노이 |
| 2002 | 케이티 허맨 | 오리건 |
| 2001 | 안젤라 페레즈 바라퀴오 | 하와이 |
| 2000 | 헤더 프렌치 | 켄터키 |
| 1999 | 니콜 존슨 | 버지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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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주목할 만한 우승자
베스 마이어슨 (1945): 최초의 유대계 미국인 미스 아메리카이다. 미스 아메리카 활동 중 반유대주의에 직면하여 공식적인 의무가 줄어들었다.
바네사 윌리엄스 (1984): 최초의 흑인 미스 아메리카이다. 펜트하우스지에 무단으로 게재된 사진을 둘러싼 스캔들로 인해 타이틀을 반납했으나, 동의 없는 부당한 게재였음이 확인되어 타이틀 홀더로 인정받았다.
니나 다불루리 (2014): 최초의 인도계 미국인 미스 아메리카이다.
그레첸 칼슨 (1989): 미스 아메리카 회장을 역임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5. 미스 아메리카를 둘러싼 논란
미스 아메리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논란에 휩싸여 왔다. 주요 논란은 다음과 같다:
* 성차별: 1960년대 제2의 물결 페미니즘 운동은 미스 아메리카가 여성을 상품화하고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1968년 미스 아메리카 시위에서는 여성들이 브래지어, 거들, 화장품 등 여성 억압의 상징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인종차별: 미스 아메리카는 오랫동안 백인 여성만을 위한 대회로 여겨졌다. 1950년까지 참가 자격을 "백인"으로 제한하는 규칙이 존재했다. 1970년 최초의 흑인 참가자 셰릴 브라운이 등장했지만, 1983년 바네사 윌리엄스가 최초의 흑인 미스 아메리카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4년 인도계 니나 다불루리가 우승하자 외국인 혐오 및 인종차별적인 소셜 미디어 반응이 나타났다.
* 군국주의: 미스 아메리카는 베트남 전쟁 당시 군 위문 공연에 참여하여 '살인 마스코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 외모지상주의: 2018년 미스 아메리카는 "미스 아메리카 2.0"을 표방하며 수영복 심사를 폐지하고 참가자들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2023년 다시 외모 심사를 부활시켰다.
* 기타 논란:
* 1984년 바네사 윌리엄스는 누드 사진 스캔들로 인해 왕관을 반납해야 했다.
* 2014년 미스 아메리카 조직은 장학금 규모를 과장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 2017년 CEO 샘 해스켈의 여성 혐오 이메일이 폭로되어 논란이 되었다.
* 2022년 최초의 트랜스젠더 참가자가 등장했다.
이러한 논란들은 미스 아메리카가 단순한 미인 대회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임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 사회는 외모 지상주의,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미스 아메리카의 논란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6. 미스 아메리카의 미래
미스 아메리카는 시대 변화에 따라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18년에는 '미스 아메리카 2.0'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여 참가자들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고 수영복 심사를 폐지하는 등 큰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2023년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변화는 번복되었고, 활동복 심사가 도입되고 참가자 연령 제한이 상향 조정되는 등 다시 한번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미스 아메리카가 단순히 외모를 평가하는 대회를 넘어, 참가자들의 재능, 지성, 사회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특히 1938년부터 대회의 일부였던 재능 경연에 'HER Story'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추가되어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인 재능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미인 대회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스 아메리카가 추구하는 변화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한국에서 미인 대회가 필요하다면, 외모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다양한 역량과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미스 아메리카는 역사적으로 인종 차별, 체중 조롱, 참가자에 대한 심리적 압박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