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1990년 대한민국)
1. 개요
민주당 (1990년 대한민국)은 1990년 6월 15일, 3당 합당에 반대하여 통일민주당 잔류 세력과 무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창당되었다. 이택기를 초대 총재로 출범한 민주당은 야권 통합을 목표로 평화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실패하고, 이후 민주연합과의 통합을 통해 이기택이 총재로 복귀했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신민주연합당과 통합하여 김대중과 이기택 공동 대표 체제의 민주당 (1991년)으로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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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칭 | DP |
|---|---|
| 비공식 약칭 | 꼬마 민주당 |
| 국가 | 대한민국 |
| 창당 | 1990년 6월 15일 |
| 해산 | 1991년 9월 16일 |
| 합병 대상 | 민주당 |
| 이념 | 자유주의 (대한민국) 중도개혁주의 |
| 정치적 위치 | 중도주의 |
| 색상 | 빨간색 |
| 선행 조직 | 통일민주당 잔류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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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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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90년 1월 22일, 통일민주당이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하자, 이에 반대한 이기택 중심 세력은 합류를 거부하고 6월 15일 민주당을 창당했다. 당 지도부 선거에서 이기택이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의석 수가 적었던 민주당은 김대중이 이끌던 제1야당 평화민주당(1991년 4월 15일부터 새민주연합)과 합당을 추진했다. 이기택은 첫 번째 합당 시도가 실패한 후 1990년 11월 16일 위원장직에서 물러났으나, 1991년 2월 3일 다시 복귀했다.
1991년 대한민국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고, 이후 새민주연합과 다시 협상하여 9월 11일 합당에 합의, 9월 16일 통합 민주당을 창당했다.
2.1. 창당 이전
* 1985년 1월 22일: 신한민주당 창당
* 1987년 5월 1일: 김영삼, 김대중 등이 신한민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 창당
* 1987년 11월 12일: 통일민주당 탈당파들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을 총재 및 대통령선거 후보로 추대
* 1990년 1월 22일: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을 이끌고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류, 민주자유당으로 신설 합당 (3당 합당)
2.2. 창당 과정
1990년 6월 15일, 3당 합당에 반대한 통일민주당 잔류 세력과 박찬종, 이철 등 무소속 의원들이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들은 민주주의 세력의 대동단결, 당 운영 체질 개선, 세대교체, 야권 통합을 4대 창당 원칙으로 내걸었다. 초대 총재로는 이기택이 선출되었다.
2.3. 야권 통합 노력과 좌절
민주당은 창당 초기부터 야권 통합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1991년 4월 15일부터 새민주연합으로 변경) 및 재야 세력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1990년 7월 20일에는 김대중(평민당 총재), 이기택(민주당 총재), 김관석 목사(재야, 통합추진회의 대표)가 회담을 갖고, "통합 수임 정당" 결성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총재의 1선 후퇴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평민당과의 통합은 무산되었다. 이는 민주당 측의 김대중에 대한 불신이 강함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평민당 및 재야 세력과의 통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기택은 1990년 11월 16일에 당 총재직을 사임했다.
이후 민주당은 독자적으로 재야 세력과의 통합을 추진, 1991년 2월 이부영이 이끄는 민주연합추진위원회(민주연합)와 합동하여 이기택이 총재로 복귀하였다.
2.4. 1991년 지방선거 참패와 통합 민주당 출범
1991년 6월 20일에 실시된 광역의회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 866석 중 21석을 얻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특히 이기택 총재의 지역구인 부산광역시에서도 51석 중 1석밖에 얻지 못하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과 김대중이 이끌던 평화민주당(1991년 4월 15일부터 새민주연합으로 명칭 변경)은 위기감을 느끼고 다시 한번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양당은 여러 차례 회동을 거쳐 다음과 같은 사항에 합의했다.
1991년 9월 16일, 양당은 합동 회의를 열고 통합을 공식 선언했으며, 김대중·이기택 공동대표 체제의 통합 [[민주당 (1991년)|민주당]]이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찬종, 김광일 의원 등은 통합에 반대하며 합류하지 않았다.
3. 역대 지도부
3.1. 역대 총재
4. 주요 선거 결과
| 선거 | 대표 | 지방 의회 |
|---|---|---|
| 1991년 | 이택기 |
4.1. 지방선거
| 선거 | 대표 | 지방 의회 |
|---|---|---|
| 1991년 | 이택기 |
1991년 6월 20일, 5·16 군사 쿠데타로 중단되었던 지방 자치 제도 부활의 발판으로 지방 의회 선거의 후반전인 광역 자치 단체 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 866명 중 21석, 이택기의 지역구인 부산광역시에서조차 51석 중 단 1석을 얻는 등, 전국에서 564석을 획득한 민자당에 큰 격차로 패배하는 어려운 결과를 맞이했다(득표율 14%).
5. 역대 전당대회
민주당은 1990년 6월 15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여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골자로 한 당헌당규를 통과시키고 대통령중심제 유지와 남북상호승인 및 UN 동시가입 등을 담은 정강정책을 채택하였다. 1991년 2월 3일에는 민주연합과의 통합을 선언하고 집단지도체제를 골자로 한 당헌 개정안을 채택한 제2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이기택 전 총재를 총재로 추대하고, 구 민주당 측 부총재 3명과 민주연합 측 2명을 부총재로 선출하였다. 또한, 야권통합에 대한 결정권을 정무위원회에 위임했다. 1991년 9월 11일, 신민주연합당 김대중 총재와 민주당 총재의 합의에 따라 양당의 통합을 추인했다.
5.1. 민주당 창당대회 (1990년 6월 15일)
1990년 6월 15일, 통일민주당 잔류파가 주축이 된 민주당 창당대회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골자로 한 당헌당규를 통과시키고 대통령중심제 유지와 남북상호승인 및 UN 동시가입 등의 내용을 담은 정강정책을 채택한 뒤 총재 선출에 들어갔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경선을 통해 이기택 창당준비위원장을 총재로 선출하고 김현규, 홍사덕 의원 등을 부총재로 선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