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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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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사덕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1대, 12대, 14대, 15대, 16대,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영주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해병대 사병으로 복무했으며, 민주한국당, 신민당, 민주당, 한나라당, 친박연대 등 여러 정당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1980년대 '이민우 구상'에 관여했으며, 국회 부의장, 한나라당 원내총무 등을 지냈다. 2012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2020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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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
기본 정보
이름홍사덕
한자 표기洪思德
국적대한민국
출생일1943년 3월 5일
출생지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주군 순흥면 내죽리
사망일2020년 6월 17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력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본관남양
배우자임경미
자녀홍재선, 홍은진, 홍세나, 홍지선
친인척임문환
직책
직책제16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임기2000년 6월 5일 ~ 2001년 6월 4일
의정 활동
의원 선수6
의원 대수11, 12, 14, 15, 16, 18
정당
정당무소속
경력
경력제24대 정무제1장관, 제16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지역구
지역구경북 영주시·영풍군·영양군·봉화군(11·12), 서울 강남구 을(14·15), (16), 대구 서구(18)
웹사이트

2. 학력

3. 생애

홍사덕은 1943년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태어났다. 영주국민학교(1955년 졸업), 영주중학교(1958년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1961년 졸업)를 거쳐 1968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1]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해병대에 자원입대(130기)하여 2년간 사병으로 복무했다.[5]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민주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6] 이후 신한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부총재 및 대변인 등을 역임하였다.[6] 1980년대 중반 '이민우 구상'으로 신한민주당을 와해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7]

1985년 12대 총선 이후 신한민주당(신민당)은 직선제 개헌을 내걸고 제5공화국에 대한 투쟁을 선언하였다. 김영삼, 김대중 양김 씨가 정치 규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이민우 총재 밑에서 당 대변인을 맡아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1986년 '이민우 구상'을 주도하였으나 양김 씨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1986년 양김 씨는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홍사덕은 1988년 13대 대선 이후 반(反) 양김 노선을 주장하다가 14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하여 김대중 후보 진영의 대변인으로 활약했다.[3]

1990년 노무현, 박찬종 등과 함께 3당 합당을 거부한 이기택의 민주당에 참여하였고, 1991년 통합 민주당 창당에 합류하여 제14대 국회의원(서울 강남을)에 당선되었다. 노태우 정부로부터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 중 한 사람으로 감시를 받았다.[8]

1995년 김대중의 정계 복귀와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발하여 무소속으로 남았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3] 1997년 문민정부의 마지막 정무장관을 지냈고,[9] 1999년 운석 장면 기념회 감사를 지냈다.

2000년 1월 '무지개연합' 창당을 선언했으나 8일 만에 해체하고,[7]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3][11][12]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와 함께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 부의장이 되었다.[13]

2004년 한나라당 원내총무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에게 패배하였다.[14] 2005년 경기도 광주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정진섭이 전략공천되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15]

2007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16] 이명박 후보 측의 반대로 복당이 무산되자[18] '이명박 필패론'을 말했다.[7] 2008년 '친박연대'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고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대구 서구에 출마하여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20]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종로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21]

3. 1. 학창시절

홍사덕은 1955년 영주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영주중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하여 1968년에 졸업했다.[1]

3. 2. 병역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재학 중이던 1962년 해병대에 자원 입대(130기)하여 2년간 사병(의장대원)으로 복무하였으며, 서울대 출신으로는 첫 해병대 사병이었다. 홍사덕의 아들도 해병대 702기 출신이다.[5]

3. 3. 정치 입문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민주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6] 1980년대 중반에는 '이민우 구상'으로 신한민주당을 와해시켰다는 평가도 있다.[7] 그 후 신한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부총재, 민주당 대변인 등을 역임하였다.[6]

3. 4. 5공, 6공화국 시절

1985년 12대 총선 이후 사실상의 관제 야당이었던 민한당을 흡수한 신한민주당(신민당)은 100여 석의 거대 야당으로 탈바꿈하여 직선제 개헌을 모토로 내걸고 제5공화국에 대한 선명 투쟁을 선언하였다. 당시 김영삼, 김대중 양김 씨가 정치 규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신민당의 총재는 이민우가 맡고 있었지만, 실권은 거의 없었다. 홍사덕은 이런 이민우 총재 밑에서 당 대변인을 맡아 소장파 재선 의원이지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1986년 민정당의 내각제와 신민당의 직선제 개헌안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정국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신민당 총재인 이민우는 "민주화 조치가 선행되면 내각제도 수용할 수 있다"는 소위 '이민우 구상'을 들고 나왔다. 이는 사실상 홍사덕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내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양김 씨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러한 불협화음은 곧 진정되었으나 이민우, 이철승과 같은 대여 타협파와 양김 씨가 주도한 선명 투쟁파 간의 알력은 심화되어 당내 내분은 증폭되었다. 결국 1986년 양김 씨는 더 이상 신민당 내의 대여 타협론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소속 의원들을 탈당시켜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88년 13대 대선 이후에는 반(反) 양김 노선을 주장했다가 14대 대선을 앞두고는 민주당에 입당하여 김대중 후보 진영의 대변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3]

직선제 개헌 이후 양김이 분열하자, 홍사덕은 무소속 의원으로 있다가 13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구 을에 출마해 이태섭에게 패하고 원외로 밀려났다. 그러던 중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한 이기택이 주도하는 민주당(소위 꼬마민주당)에 노무현, 박찬종 등과 함께 참여하였고, 1991년 민주당과 김대중이 이끄는 신민당과 합당하여 통합 민주당을 창당하자 이에 합류하여 제14대 국회의원(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되었다.

한편 그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 중 한 사람이 되어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당하였는데, 1990년 10월 4일 오후 6시 40분쯤 외국어대 재학 중 민학투련 출신이었던, 탈영병 윤석양 이병의 폭로에 의해 밝혀졌다.[8] 윤석양은 탈영 후 서울시 연지동 기독교회관 7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통해 탈영 당시 보안사에서 갖고 나온 동향 파악 대상자 개인색인표 신상철, 이들 내용이 입력된 컴퓨터 디스킷을 공개했다.[8]

3. 5. 1990년대 이후

1995년 지방선거 이후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탈당시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홍사덕은 이에 반발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남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3]

1997년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문민정부의 마지막 정무장관을 지냈으나,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는 입당하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2000년 초까지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했다.[9] 1999년 운석 장면 기념회 감사를 지냈다.

3. 6. 한나라당 입당 이후

2000년 1월 19일 장기표와 함께 '1인 보스정치와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가칭 '무지개연합' 창당을 선언했으나,[10] 8일 만에 해체되었다.[7] 같은 해 1월 27일 돌연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3][11][12] 이를 두고 홍사덕이 주장해온 1인 보스정치 청산의 종착역이 한나라당이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2]

입당 직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와 함께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2000년 6월 5일 국회 부의장이 되었다.[13]

2004년 한나라당 원내총무로서 민주당 유용태 원내총무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한명숙 후보에게 근소한 표차로 패배하였다.[14]

2005년 경기도 광주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한나라당이 탄핵 역풍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진섭을 전략공천하자 이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였다.[15]

2007년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와 함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16] 그러나 탈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선거 운동 당시 그 자격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같은 해 7월 복당 신청을 하였으나[17] 이명박 후보 측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8] 2007년 7월 30일, 대통령 후보자 이명박은 반드시 진다는 '이명박 필패론'을 말했다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 박형준 대변인에게 '망당(亡黨)전문가 홍사덕, 정권 교체를 또 가로막나'라는 말을 들었다.[7]

2008년 3월, '친박연대'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고,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 서구에 출마하자, 한나라당과 진보신당 대구지부로부터 '정치 도의를 모른다', '철새다' 등의 맹비난을 받았다.[19]

이후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종현 후보를 6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20]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울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12년 10월 29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21]

4. 의정 활동

임기정당지역구소속 위원회
제11대민한당경북 영주시, 영풍군, 봉화군, 영양군
제12대신민당경북 영주시, 영풍군, 봉화군, 영양군국회운영위원회
제14대민주당서울 강남구을국회노동위원회
제15대한나라당서울 강남구을
제16대한나라당비례대표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제18대새누리당대구 서구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 제12대 국회의원 시절 신민당 대변인, 제14대 국회의원 시절 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1]
  • 민주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1]
  • 정무제1장관을 역임하였다.[1]
  • 제15대 국회의원 시절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1]
  • 제16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1]
  • 한나라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1]

5. 논란 및 평가

홍사덕은 정치 활동 기간 동안 여러 논란에 휩싸였으며, 그의 언행과 정치적 행보는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 유신 옹호 발언: 2012년 8월 2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대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라고 발언했다.[22]
  • 5·16 군사정변 관련 발언: 2012년 7월 11일, "5·16 군사정변에 관한 평가를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묻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게 역성혁명이냐 군사쿠데타냐고 묻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23]
  • 박근혜 주변 인물 관련 발언: 2012년 7월, "박근혜 전 위원장 반경 몇 미터 안에 김종인 위원장을 빼고는 55세 이상을 들이지 말아라"라고 발언했다.[24]


그의 저서, 연설, 국회 발언 등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 평화통일: 무력이나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통일을 이루어야 하며, 간도 지역의 우리 민족과 땅도 평화적으로 수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8년 저서)
  • 경제 개혁: 평화통일을 위해 경제 개혁이 필수적이며, '불공정한 불평등'은 국민 통합을 저해한다고 보았다. (1988년 저서)
  • 복지: 전국민 의무교육, 의료보험, 국민연금을 통해 실질적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8년 저서)
  • 지역감정: 지역감정은 민족 화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경상도전라도의 화해가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1989년 저서)
  • 청년: 청년들에게 꿈과 도전 정신을 강조하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것을 독려했다. (1991년, 1996년 저서, 1998년 청소년과의 대화)
  • 사랑: 우리 민족을 이어온 힘은 사랑이며, 사랑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 저서)
  • 연변: 연변은 우리 민족이 개척한 영토이므로, 통일 후에는 연변 수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6년 저서)
  • 정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청렴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1996년 선거 연설)
  • 민주주의: 민주주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지방자치제 실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1982년 국회 발언)


하지만, 잦은 당적 변경, 박정희와 유신에 대한 옹호 발언,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행적은 그의 이러한 주장과 가치관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위 섹션 내용 참조)

5. 1. 잦은 당적 변경

홍사덕은 1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민주정의당에 입당했다가, 12대 총선 직전 민주한국당으로 옮겨 당선되었다.[22] 이후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민주당, 한나라당, 무소속, 새천년민주당, 다시 한나라당, 친박연대, 새누리당 등 여러 정당을 거쳤다.[23] 이러한 잦은 당적 변경은 정치적 소신보다는 상황에 따른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24]

5. 2. 박근혜 탄핵 찬성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홍사덕은 박근혜 후보에 대해 언급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은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했다.[22] 또한 5·16 군사정변에 대한 평가를 박근혜에게 묻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 역성혁명인지 군사 쿠데타인지 묻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23]

5. 3. 정치자금법 위반

홍사덕한국어은 2012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22]

5. 4. 언행


  • 2012년 8월 29일 "유신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22]
  • 2012년 7월 11일 "5·16에 관한 평가를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묻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게 역성혁명이냐 군사쿠데타냐고 묻는 것과 같다"[23]
  • 2012년 7월 "박근혜 전 위원장 반경 몇 미터 안에 김종인 위원장을 빼고는 55세 이상을 들이지 말아라"[24]


'''1988년 저서 ‘새롭고 하나된 조국에의 길, 나의 꿈 나의 도전’'''

  • 무력이나 전쟁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이야말로 반드시 성취해야 할 전민족적인 과제다. 남의 손과 무력에 의해 분단되었던 이 민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하고, 남의 통치하에 있는 간도의 우리 민족과 땅도 반드시 평화적으로 수복해야 한다.
  •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개혁을 해야 한다. 특히 ‘공정한 불평등’과 달리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불공정한 불평등’은 국민적 통합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 전국민 의무교육과 의료보험 그리고 노후대책으로서의 국민연금이야말로 실질적 평등의 기초가 되는 통일 대한민국 복지의 핵심이어야 한다.


'''1989년 저서 ‘홍사덕 칼럼’'''

  • 지도자의 말은 모두 약속이다. 지도자가 자기의 말을 지켜내면 국민도 자기 자리를 지켜낸다.
  • 지역감정은 언젠가 민족 전체의 화해까지 가로막을, 적절한 표현이 없을 정도로 나쁜 장애물이며 망국의 병폐다. 경상도전라도가 화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앗아갔던 함경도평안도 사람들과 어찌 통일과 화합을 논하겠는가.
  • 책임지는 사회는 반드시 국민들의 반성과 자각 뒤에야 따라온다. 무책임은 국민과 공직자의 공동 책임이다.
  • 우리 문화의 특징은 전통적으로 인본주의와 자연과의 조화에 있다. 그러므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되살리는 것은 미래 어느 시대의 시대정신과도 결코 어긋나거나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1991년 저서 ‘홍사덕이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 평화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한, 가장 중요한 통일 준비는 넉넉하고 윤택한 국민경제의 건설이다.
  • 따뜻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그리고 서로 나누는 사회를 건설해야 민주화건 통일이건 해결될 수 있다.
  • 통일이란 경제적 측면에서 말한다면 남북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체제가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하나로 아우른다는 것이 남북통일의 진정한 의의인 것이다.
  • 민족 간의 관계에서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 민족 간의 관계에는 오로지 이해관계가 있을 뿐이다.
  • 나쁜 제도나 법률을 고치는 일은 오직 국민의 투표권 행사로만 바꿀 수 있다.
  • 위대한 꿈만이 위대한 도전을 가능하게 하고 위대한 결과를 낳는다.


'''1996년 저서 ‘지금, 잠이 옵니까?’'''

  • 꿈이 없는 인생이 죽은 인생이듯 꿈이 없는 나라는 죽은 나라다.
  • 서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우리보다 못한 이웃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베풀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나와는 다른 생각과 신념을 허용할 줄 아는 마음, 이 세 가지는 21세기를 담당할 세대들의 선도적 역할이 있을 때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 진정한 의미의 통일 준비는 한반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고 하나의 정부 아래 놓이더라도 고통받는 사람들의 숫자를 줄여가는 작업이다.
  • 연변은 숙종 무렵부터 우리 민족이 피와 땀으로 개척한 우리의 영토다. 따라서 반도 통일이 이루어진 후 연변까지 수복이 되어야 진정한 민족 통일이 완결되는 것이다. 연변은 우리의 영토적 야심이 아닌 민족적 양심으로 수복해야 하는 땅이다.
  • 우리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난 건 2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이전의 한반도 역사는 굶주림과 기아와의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 고유의 역사를 이어온 힘은 바로 사랑이었다. 베풀 줄 아는 마음이 민족 공동체를 유지하게 했고, 국난의 위기 때마다 함께 떨쳐 일어나게 했다.
  • 여러분들 가운데 1백만 명의 새로운 사장이 나와야 한다. 제도적 미흡을 탓하거나 겁내지 말라. 결단하라. 이 나라의 장래는 1백만 명의 새로운 사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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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 국력이 탄탄해지면 반드시 문화 활동도 왕성해져야 한다.
  • 알렉산더 대왕은 부왕인 필립이 주변 여러 나라를 정복하자 “이러다가 내가 할 일이 다 없어지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했다. 그와 같은 기백이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나는 하늘에 떠 있는 혼백으로라도 이 땅 위에서 그처럼 위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꼭 보고 싶다.


'''1996년 3월 31일, 제16대 강남을 국회의원 선거 후보 연설'''

  • 나는 이번 선거 후 당리당략과 지역으로 갈라진 당을 국가적 신념과 철학으로 하나 되게 재편하여 국민에게 돌려주는 데에 앞장설 것이다.
  • 나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나이가 될 무렵 대한민국이 세계 5위의 경제 문화 대국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해낼 것을 확신한다.
  • 나의 선거 공약 1호는 언제나 동일하다. 바로 ‘내 이름의 명예를 지킴으로써 나를 선택해 준 국민들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1996년 4월 7일, 제16대 강남을 국회의원 선거 후보 연설'''

  • 나 홍사덕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환경에 무릎 꿇지 않는 이 나라 미래의 주인공, 정의로운 청년들과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제가 앞장서서 그들의 앞길에 횃불과 등대가 되어주겠다.
  • 나는 첫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때 아무도 없는 영주 어느 성당에 들러 간절한 서원을 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정치를 하는 동안 절대로 재산을 늘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나는 이 서원이 오늘의 홍사덕을 있게 해주었다고 믿는다. 이 홍사덕이 돈이 아닌 신념과 철학으로 청렴의 정치를 해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길 바란다.


'''1996년 8월 15일, 개포동에서 홍사덕과 청소년과의 대화'''

  • 정치인의 전략과 능력 또는 이데올로기적 승부가 아니라 북한 동포를 대하는 여러분들의 마음가짐에 평화통일 여부가 달려있다. 겨레 사랑 외에는 평화통일과 화합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
  • 여러분들은 한반도 5천 년 역사에 축적된 모든 싱그러운 결실을 따도록 약속되어 있는 세대이다. 분명히 말씀드린다. 여러분들이 할 일은 기회나 가능성처럼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약속된 것이다. 가슴을 펴고 당당히 그 결실을 요구하라.


'''1998년 8월 15일, 대학로에서 홍사덕과 청소년과의 대화'''

  • 어려운 시기지만 나는 더 어려운 당부를 해야겠다. 같은 또래이자 같은 일을 하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의 청년들에게 지거나 뒤처지지 마라. 학력이나 학벌, IMF 구제금융 같은 잠시 잠깐의 걸림돌에 좌절하지 말고, 드높은 기개로 21세기의 찬란한 대한민국을 준비해 달라.


'''2000년 6월 5일 제212회 국회 본회의, 국회부의장 당선 인사'''

  • 국회가 더 많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의장님을 도우며 열심히 일하겠다.


'''1981년 10월 12일 제108회 국회 본회의, 경제에 관한 대정부질문 서두'''

  • 본 의원은 오늘 새 시대를 열기 전에 정치적으로는 반민주주의와 독재의 청산, 경제적으로는 불공정한 분배의 정상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다.


'''1982년 10월 22일 제114회 국회 본회의, 2차 예결산특별위원회 대정부질문'''

  • 민주주의의 토착화에는 만국 공통의 정석이 있다. 바로 지방자치제의 실시 여부이다. 전체 국가 예산 중 지방자치제의 연구와 관련된 예산이 단돈 몇만 원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민주주의의 토착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엄중히 묻는 바이다.

6. 저서


  • 《지금, 잠이 옵니까?》[25]
  • 《나의 꿈, 나의 도전》

7. 가족 관계

관계이름
배우자임경미
아들홍재선
며느리정해인
장녀홍은진
첫째 사위손욱
차녀홍세나
둘째 사위조정익
삼녀홍지선
장인임문환


8. 역대 선거 결과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81년총선민주한국당21,199표 (14.78%)2위당선초선
1985년총선신한민주당35,828표 (24.10%)2위당선재선
1988년총선무소속34,746표 (30.39%)2위낙선
1992년총선민주당199164,201표 (52.24%)1위당선3선
1996년총선무소속30,601표 (26.06%)1위당선4선
2000년총선한나라당8,083,609표 (37.9%)비례대표 2번당선5선
2004년총선한나라당45,936표 (46.61%)2위낙선
2005년10.26 재보궐선거무소속17,812표 (30.85%)2위낙선
2008년총선친박연대52,713표 (61.77%)1위당선6선
2012년총선새누리당36,641표 (45.89%)2위낙선


참조

[1] 웹사이트 홍사덕 프로필 http://www.saduk.net[...]
[2] 뉴스 프로필 홍사덕 국회부의장 https://news.naver.c[...] 네이버 뉴스
[3] 뉴스 국회부의장 2인 한나라 홍사덕 부의장 https://news.naver.c[...] 네이버 뉴스
[4] 뉴스 얼굴 홍사덕 국회부의장 https://news.naver.c[...] 네이버 뉴스
[5] 뉴스 서울대 해병 사병1호, 홍사덕이 뿔났다 http://www.etoday.co[...] 이투데이 2010-11-25
[6] 웹사이트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 홍사덕② 13, 15대 총선 무소속 출마, 3당통합,무지개 연합 구상, 한나라당 입당, 노무현 탄핵, 17대 총선, 친박연대에 얽힌 사연 http://polinews.co.k[...]
[7] 뉴스 First-Class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 파이낸셜뉴스
[8] 뉴스 보안사, 저명인사 1300명 사찰 http://www.cathright[...] 천주교인권위 1990-10-05
[9] 뉴스인용 여당 단독 국회개회. 홍사덕 의원, 편파사정 발언 http://imnews.imbc.c[...] MBC 1998-09-25
[10] 뉴스인용 '무지개연합' 홍사덕·장기표씨 '무지개연합' 창당선언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00-01-19
[11] 뉴스인용 80년대 ‘이민우 구상’ 주도 한나라 입당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04-01-05
[12] 뉴스인용 '무지개연합' 홍사덕 의원 '무지개연합' 이탈 안팍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00-01-26
[13] 뉴스인용 국회의장에 이만섭씨 / 부의장 홍사덕·김종호씨 http://www4.hankooki[...] 한국일보 2000-06-05
[14] 뉴스인용 탄핵 주도 4인방 몰락/ 조순형·홍사덕·유용태 낙선… 최병렬은 출마조차 못해 http://news.hankooki[...] 한국일보 2004-04-16
[15] 뉴스인용 홍사덕, 정치생명 끝? 또 다시 재기? / 10.26 재보선 '탄핵' 벽 못 넘어…한나라 재입당 사실상 불가능 http://news.hankooki[...] 한국일보 2005-10-27
[16] 뉴스인용 박근혜 선대위 '안병훈·홍사덕' 투톱체제 http://news.hankooki[...] 한국일보 2007-06-11
[17] 뉴스인용 朴캠프 홍사덕 선대위장 재입당 신청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7-07-17
[18] 뉴스인용 한나라, 비리혐의-공천탈락 옛 정치인들 복당 움직임 고민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7-10-11
[19] 뉴스 대구 한나라.진보신당, 홍사덕 출마 강력 비난 https://news.naver.c[...] 네이버 뉴스
[20] 뉴스인용 홍사덕 "5년후 박근혜 대통령 만들겠다" http://app.yonhapnew[...] 연합뉴스 2008-03-23
[21] 뉴스인용 검찰, 홍사덕 전 의원 불구속 기소 http://www.hankyung.[...] 한국경제 2012-10-29
[22] 뉴스 홍사덕 "유신은 100억불 수출 위한 조치" 논란 https://news.v.daum.[...] 한국일보 2012-08-30
[23] 뉴스 홍사덕 "박근혜에 5·16 묻는 것 세종에게...", SNS "퇴행적"비판 https://news.v.daum.[...] 머니투데이 2012-07-12
[24] 뉴스 대선특집-가상대결④ 박근혜 vs 안철수 http://www.ilyoseoul[...] 일요서울 2012-07-31
[25] 문서 이 책은 원고지 1100매 분량을 5일만에 써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쓴 책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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