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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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냐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증기 목욕 시설로, 다양한 종류와 구조를 가지며, 러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사교 및 휴식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바냐는 일반적으로 증기실, 세척실, 입구실로 구성되며, 검은 바냐와 흰 바냐로 구분된다. 핀란드 사우나, 터키의 하맘 등 다른 문화권의 유사 시설과 비교되기도 한다. 바냐는 슬라브 신화에서 목욕탕 정령인 반니크가 존재하는 곳으로 여겨지며, 목욕 의식과 사교 활동, 민간 신앙 등 러시아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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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유형 | 증기탕 |
발상지 | 러시아 |
데르자바 | 러시아 |
관련 문화 | 슬라브족 |
기타 이름 | 러시아 사우나 |
특징 | 뜨겁고 습한 공기 |
주요 구성 요소 | 스토브 돌 물 증기 벤니크 (나뭇가지 묶음) |
전통적인 특징 | 자작나무 또는 참나무 가지로 몸을 때리는 의식 |
일반적인 온도 | 60-90°C (140-194°F) |
역사 | |
기원 | 고대 슬라브족의 전통 |
발전 |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 |
문화적 중요성 | |
역할 | 사회적 교류의 장소 건강 관리 정화 의식 |
민간 요법 | 다양한 질병 치료에 사용 |
관련 속담 | 사우나는 두 번째 어머니이다. |
시설 및 장비 | |
주요 시설 | 증기탕 탈의실 샤워실 |
스토브 종류 | 장작 스토브 (전통적) |
재료 | 나무, 돌, 벽돌 |
건강 및 안전 | |
건강 상의 이점 | 혈액 순환 개선 근육 이완 스트레스 해소 |
안전 주의 사항 | 과도한 노출 피하기 수분 유지 음주 피하기 |
금기 사항 | 심혈관 질환, 임신 등 |
지역별 차이 | |
러시아 | 다양한 스타일과 전통 존재 |
기타 국가 |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유사한 형태 존재 |
대중 문화 | |
영화 | 다양한 영화에 등장 |
문학 | 러시아 문학 작품에 묘사 |
추가 정보 | |
관련 용어 | 사우나 한증막 온천 |
2. 역사
''바냐''는 러시아의 전통 증기 목욕탕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냐에 대한 초기 역사, 중세 및 근세 시대의 역사는 각각 #초기 역사, #중세 및 근세 하위 섹션을 참조하면 된다.
현대에 들어서도 바냐는 여전히 러시아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냐의 어원은 남유럽어 계통의 외래어와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2. 1. 초기 역사
라지빌 연대기의 945년 기사에는 슬라브 부족인 드레블리아인에게 남편 키예프 대공 이고르를 살해당한 키예프의 올가 공주가 복수하는 과정에서 ''바냐''가 언급된다. 드레블리아인의 지도자가 과부 올가에게 청혼하며 사절을 보내자, 올가는 "씻고 나에게 오라"며 목욕을 준비시킨다. 드레블리아인들이 목욕탕에 들어가자 올가의 부하들은 문을 잠그고 불을 질러 모두 태워 죽였다.[4]1113년 동슬라브의 원초 연대기에는 ''바냐''에 대한 초기 묘사가 등장한다.[4] 사도 안드레아가 흑해의 그리스 식민지를 방문한 후, 훗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되는 지역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안드레아는 드니프로강 하구를 지나 키예프가 세워질 언덕과 고대 도시 노브고로드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안드레아는 "슬라브족의 땅에서 나무 목욕탕을 보았는데, 극도로 뜨겁게 데운 후 옷을 벗고 수지를 바른 다음 어린 갈대로 몸을 채찍질했다. 거의 죽을 만큼 격렬하게 채찍질한 후 찬물로 몸을 되살리는 것을 매일 반복하며, 단순한 씻기가 아니라 고문을 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5]
최초의 목욕탕은 낮은 나무 구조물 안에 불을 지펴 열을 냈다. 구석의 스토브는 둥근 돌로 만들어졌고, 돌이 가열되면 쇠 막대로 들어 나무 통에 넣었다. 불을 땐 후에는 불을 제거하고 연기를 뺀 다음 목욕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을음과 "검은 목욕탕"(''체르나야 바냐'')이라는 용어가 생겼다.[6]
1779년 러시아 궁정 의사였던 포르투갈의 안토니오 누네스 리베이로 산체스는 저서 De Cura Variolarum Vaporarii Ope apud Russosla[7]를 통해 서방 의사들에게 바냐의 효과를 알렸다.




러시아 연대기에 따르면 10세기경 노브고로드 근처에 러시아 고유의 증기 목욕탕이 있었다고 한다. 1089년에는 예프렘 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스 수도원의 생활 방식을 가져오면서 교회 내에 증기 목욕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러시아 최초의 공중 목욕탕이라고 한다.
북부 러시아에서는 목욕탕이 부정함을 씻는 장소로 여겨져 출산이나 혼례 등 중요한 의례가 행해지기도 했다.
2. 2. 중세 및 근세
라지빌 연대기에는 945년 드레블리아인에 의해 남편인 키예프 대공 이고르가 살해된 것에 대한 키예프의 올가 공주의 복수 이야기에 ''바냐''에 대한 언급이 있다. 드레블리아인의 지도자는 과부 올가와 결혼하길 바라며 사절을 보냈는데, 올가는 그들을 위해 목욕을 준비하라고 명령하고, 씻고 오라고 했다. 목욕탕이 데워지자 드레블리아인들은 들어가서 몸을 씻기 시작했고, 올가의 부하들은 그들 뒤에서 목욕탕을 닫고 문에서 불을 지르라고 명령하여 모두 불태워 죽였다.[4]''바냐''에 대한 초기 묘사는 1113년 동슬라브의 원초 연대기에서 나온다.[4] 연대기에 따르면, 사도 안드레아는 흑해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를 방문하는 동안 나중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될 영토를 방문했다. 안드레아는 드니프로강 입구에서 동슬라브 영토를 지나 키예프가 나중에 세워질 언덕을 지나 고대 도시인 노브고로드까지 북쪽으로 갔다고 한다.
안드레아는 "나는 슬라브족의 땅을 보았고,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그들의 나무 목욕탕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것을 극도로 뜨겁게 데운 다음 옷을 벗고, 수지를 바른 후, 어린 갈대를 들고 몸을 채찍질한다. 그들은 실제로 너무 격렬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거의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다음 찬물에 적셔 몸을 되살린다. 그들은 이것을 매일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실제로 스스로에게 그런 자발적인 고문을 가한다. 그들은 단순히 씻는 행위가 아니라 진정한 고문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5]
최초의 목욕탕은 안에 불을 지펴 열을 내는 독립된 낮은 나무 구조물이었다. 구석에 있는 스토브는 둥근 큰 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돌이 가열되면 쇠 막대기로 들어 올려 나무 통에 넣는다. 불을 지핀 후 목욕하는 사람은 불을 제거하고 연기를 밖으로 뺀 다음 목욕을 시작했다. 따라서 그을음과 "검은 목욕탕"(''체르나야 바냐'')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6]
러시아의 궁정 의사인 포르투갈의 안토니오 누네스 리베이로 산체스는 1779년 그의 저서를 통해 서방 의사들에게 바냐의 효과를 알렸다.[7]
러시아의 연대기에 따르면 10세기 무렵에는 러시아 고유의 증기 목욕탕이 노브고로드 근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예프렘 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스 수도원의 생활 방식을 가져왔을 때, 그중 하나로 1089년에 교회 내에 만들어진 증기 목욕탕이 러시아 최초의 공중 목욕탕이라고 한다.
북부 러시아에서는 목욕탕은 부정함을 멀리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출산이나 혼례 등 인생의 중요한 의례가 행해지는 장소로 여겨졌다.
2. 3. 현대
러시아의 연대기에 따르면 10세기 무렵에는 러시아 고유의 증기 목욕탕이 노브고로드 근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프렘 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스 수도원의 생활 방식을 가져왔을 때, 그중 하나로 1089년에 교회 내에 만들어진 증기 목욕탕은 러시아 최초의 공중 목욕탕이라고 한다.북부 러시아에서는 목욕탕을 부정함을 멀리하는 장소로 여겨 출산이나 혼례 등 인생의 중요한 의례를 행하기도 했다.
3. 종류 및 구조
러시아식 증기욕은 먼저 물을 끼얹고, 증기욕을 하면서 다타키(ハタキ)로 몸을 때린 다음, 깨끗한 물로 씻는 것이 기본이다.
입욕 후에는 냉수를 끼얹거나 찬 공기에 노출시켜 급격하게 몸을 차갑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겨울철에는 얼음이 언 강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습관은 건강에 좋다는 주장과 나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장 마비 등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 북부, 북서부, 시베리아 지방에서는 전용 바냐에서 입욕하고, 남부에서는 집의 페치카를 사용하여 증기욕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왔지만, 엄밀히 말하면 어느 지방에서나 행해지고 있다. 시설에서의 증기욕과 페치카에서의 증기욕 중 어느 쪽이 러시아식 증기욕의 기원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다.
3. 1. 종류
"검은 ''바냐''"(по-чёрному|포-쵸르노무ru)에서는 연기가 천장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반면, "흰 ''바냐''"(по-белому|포-벨로무ru)에는 연기를 배출하는 배기 파이프가 있다. 전자의 경우, 빠져나가는 연기는 ''바냐''의 내부 목재를 검게 만든다.두 스타일 모두 뜨거운 물을 위한 돌, 흙 공, 대형 솥과 물을 데우는 탱크가 있는 돌 스토브가 특징이다. 장작은 보통 자작나무이다. 검은 ''바냐''는 흰 ''바냐''보다 더 기본적인 형태이다.
바냐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욕 시설이다. 공중 목욕탕이나 사저 부지 내에 지어지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
많은 바냐에는 스팀 배스(steam bath)가 있는 방, 세탁실, 입구의 방, 이렇게 3개의 방이 있다. 입구의 방에는 옷을 걸어두는 못이나 휴식을 위한 벤치가 있다. 세탁실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적절한 온도로 세탁하기 위한 찬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바냐는 욕실에 돌로 쌓은 화덕이 있으며, 화덕의 돌에 물이나 맥주, 크바스 등의 술을 뿌리거나, 달궈진 돌을 꺼내 물을 채운 통에 넣어 증기를 일으킨다.
시골의 바냐는 중세의 주거와 같은 양식의 통나무집이 많고, 굴뚝이 없는 것은 실내에 그을음이 가득 차기 때문에 "검은 목욕"이라고 불린다.
3. 2. 구조
''바냐'' 건물은 다양한 목욕 공간[11]을 갖춘 상당히 큰 규모일 수도 있고, 전통적인 핀란드식 코티지 사우나처럼 단순한 나무 오두막일 수도 있다.[12] 러시아 ''바냐''는 보통 증기실, 세척실, 입구실의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된다. 입구실은 ''프레드바니크''(предбанник) 또는 목욕 전 방이라고 불리며, 옷을 걸 수 있는 옷걸이와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 세척실에는 증기실 난로로 데운 물을 사용하는 온수 수도꼭지와, 씻기에 적절한 온도로 물을 섞을 수 있는 냉수 용기 또는 수도꼭지가 있다. 난방기에는 세 개의 칸이 있는데, 입구실에서 불을 지피는 화실, 물을 부을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는 돌 방, 맨 위에 물탱크가 있다. 물탱크 상단은 일반적으로 증기가 ''바냐''에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닫혀 있다. 물통의 물을 난로의 뜨거운 돌 위에 붓는다. 방 전체에 나무 벤치가 있다. 사람들은 난로가 뜨거울 때, 하지만 돌에 물을 붓기 전에 증기실로 들어간다. 땀을 충분히 내는 것은 피부를 증기로부터 보호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많은 바냐에는 스팀 배스(steam bath)가 있는 방, 세탁실, 입구의 방, 이렇게 3개의 방이 있다. 입구의 방에는 옷을 걸어두는 못이나 휴식을 위한 벤치가 있다. 세탁실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적절한 온도로 세탁하기 위한 찬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바냐는 욕실에 돌로 쌓은 화덕이 있으며, 화덕의 돌에 물이나 맥주, 크바스 등의 술을 뿌리거나, 달궈진 돌을 꺼내 물을 채운 통에 넣어 증기를 일으킨다.
시골의 바냐는 중세의 주거와 같은 양식의 통나무집이 많고, 굴뚝이 없는 것은 실내에 그을음이 가득 차기 때문에 "검은 목욕"이라고 불린다.
3. 3. 야영 바냐

''포호드나야 반야''(походная баня)는 러시아어로 "야영 ''반야''"를 뜻하며, 러시아 군인, 등산가, 험난한 환경에서 장기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13] 야영 ''반야''는 작은 임시 텐트 안에 설치된 돌 가마솥으로 구성된다. 보통 호숫가나 강가 근처에서 만들어지는데, ''반야'' 가마솥을 만들 수 있는 크고 둥근 돌이 많고, 목욕을 위한 시원한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큰 돌을 사용하여 지름 1m~4m, 높이 0.5m~1m의 돔 모양 원형 가마솥을 만든다. 가마솥 내부에는 큰 불을 지필 공간을 남겨둔다. 이 임시 난로에서 장작을 몇 시간 동안 태우면 돌 표면이 뜨거워져 물을 부을 때 수증기가 발생한다. 돌무더기 주변에 천막을 쳐서 작은 텐트를 만들고, 내부가 매우 뜨거워지고 수증기가 많이 생기면 ''반야''가 준비된다. 근처 자작나무나 참나무에서 신선한 ''베니크''(아래 "목욕 의식" 참조)를 잘라낼 수 있으며, 목욕하는 사람들은 차가운 산 물에서 번갈아 가며 몸을 식힐 수 있다.
4. 이용 문화
고대부터 '바냐'는 러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소로 여겨져 왔다.[8] 러시아 역사 전체에 걸쳐 마을 주민과 귀족을 포함한 러시아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 바냐를 사용하였다.[9] 마을과 도시에서 공동 목욕탕은 매우 흔했다.[9] 또한 현재 러시아 사업가와 정치인들이 만나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10]
바냐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욕 시설로, 공중 목욕탕이나 사저 부지 내에 지어지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 전통적인 바냐는 욕실에 돌로 쌓은 화덕이 있으며, 화덕의 돌에 물이나 맥주, 크바스 등의 술을 뿌려 증기를 일으킨다. 시골의 바냐는 중세 주거와 같은 양식의 통나무집이 많고, 굴뚝이 없는 것은 실내에 그을음이 가득 차기 때문에 "검은 목욕"이라고 불린다.
러시아 북부·북서부·시베리아 지방에서는 전용 바냐에서 입욕하고, 남부에서는 집의 페치카를 사용하여 증기욕을 한다고 알려졌지만, 어느 지방에서나 행해지고 있다. 시설에서의 증기욕과 페치카에서의 증기욕 중 어느 쪽이 러시아식 증기욕의 기원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4. 1. 목욕 의식
바냐의 온도는 종종 93°C를 넘어가며, 펠트나 양모 모자는 이 강렬한 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고 머리카락이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적으로 착용한다. 뜨거운 나무와 실내 벤치의 못으로부터 맨살을 보호하고 위생적인 이유로, 바냐에 가져온 작은 매트 위에 앉는 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에서는 증기수에 넣을 추출물과 함께 펠트 장갑 세트로 특수 펠트 모자를 흔히 판매한다. 집에서 만든 허브 추출물과 맥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말린 쑥은 벽에 걸어둘 수도 있다. 자작나무, 참나무 또는 유칼립투스의 마른 가지와 잎 묶음(''반늬 베니크'', банный веник, "바냐 빗자루")은 마사지 및 뜨거운 공기에서 몸으로의 열 전달을 용이하게 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말린 가지는 사용 전에 매우 뜨거운 물로 적셔진다. 때로는 여름에는 신선한 가지를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베니크를 말리는 대신 신선한 잎이 있는 여름에 얼린 다음 사용 전에 해동하기도 한다.첫 번째 땀이 난 후에는 야외에서 바람을 쐬거나 호수나 강에서 찬물에 뛰어드는 것이 관례이다. 겨울에는 옷을 입지 않고 눈 속에서 구르거나 얼음에 구멍을 낸 호수에 몸을 담그기도 한다. 그런 다음 바냐에 다시 들어가 암석에 소량의 물을 뿌린다. 너무 많은 물을 한 번에 사용하면 증기는 끈적한 느낌으로 차가워진다. 충분히 뜨거운 암석에 소량의 물을 뿌리면 빠르게 증발하여 작은 증기 입자로 구성된 증기가 생성된다. 베니크를 흔들면 대류열이 발생한다. 두 번째 땀은 일반적으로 베니크가 처음 사용되는 시기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세 번째 세션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각 땀을 흘린 후 냉각을 반복하며, 사람들은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맥주, 차 또는 기타 음료를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 증기실의 부속실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바냐에는 사람들이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바가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가벼운 식사도 제공된다.
러시아식 증기욕은 먼저 물을 끼얹고, 다음으로 증기욕을 하면서 다타키(ハタキ)로 몸을 때리고,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로 씻는 과정이 기본이다.
입욕 후에는 냉수를 끼얹거나 찬 공기에 노출되어 급격하게 몸을 차갑게 하는 것이 습관이다. 겨울철에는 얼음이 언 강에 뛰어드는 사람도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습관에 대해서는 건강에 좋다는 주장과 건강에 나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적어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장 마비 등의 장애를 일으킬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
4. 2. 사교 및 휴식
고대부터 '바냐'는 러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소로 여겨져 왔다.[8] 러시아 역사 전체에 걸쳐, 마을 주민과 귀족을 포함한 러시아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 바냐를 사용하였다.[9] 공동 목욕탕은 마을과 도시에서 매우 흔했다.[9] 또한 현재 러시아 사업가와 정치인들이 만나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10]바냐는 공중 목욕탕이나 사저 부지 내에 지어지는 등 종류가 다양하며, 많은 바냐에는 스팀 배스가 있는 방, 세탁실, 입구의 방, 이렇게 3개의 방이 있다. 입구의 방에는 옷을 걸어두는 못이나 휴식을 위한 벤치가 있고, 세탁실에는 온수와 냉수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다.
5. 민간 신앙 및 의례
라지빌 연대기에 따르면 945년 슬라브 부족인 드레블리아인에 의해 남편인 키예프 대공 이고르가 살해된 것에 대한 키예프의 올가 공주의 복수 이야기에서 ''바냐''(banya)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드레블리아인의 지도자는 과부 올가와 결혼하길 바라며 사절을 보냈는데, 올가는 그들을 위해 목욕을 준비하라고 명령했고, 드레블리아인들이 씻는 동안 부하들을 시켜 목욕탕에 불을 질러 모두 태워 죽였다.[4]
1113년 동슬라브의 원초 연대기에는 사도 안드레아가 흑해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를 방문하는 동안 훗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될 영토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드레아는 드니프로강 입구에서 동슬라브 영토를 지나 키예프가 세워질 언덕을 지나 노브고로드까지 북쪽으로 갔다고 한다.[4] 그는 슬라브족의 나무 목욕탕을 보고, 사람들이 뜨겁게 데운 목욕탕에서 옷을 벗고 몸을 채찍질하며, 찬물에 적셔 몸을 되살리는 모습을 묘사하며, 이를 단순한 씻는 행위가 아닌 고문이라고 표현했다.[5]
최초의 목욕탕은 안에 불을 지펴 열을 내는 낮은 나무 구조물이었다. 구석의 스토브는 둥근 큰 돌로 만들어졌고, 돌이 가열되면 쇠 막대기로 들어 올려 나무 통에 넣었다. 불을 지핀 후 목욕하는 사람은 불을 제거하고 연기를 밖으로 뺀 다음 목욕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을음과 "검은 목욕탕"(''체르나야 바냐'')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6]
러시아의 궁정 의사인 포르투갈의 안토니오 누네스 리베이로 산체스는 1779년 자신의 저서를 통해 서방 의사들에게 바냐의 효과를 알렸다.[7]
러시아 연대기에 따르면 10세기 무렵에는 러시아 고유의 증기 목욕탕이 노브고로드 근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예프렘 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스 수도원의 생활 방식을 가져왔을 때, 그중 하나로 1089년에 교회 내에 만들어진 증기 목욕탕이 러시아 최초의 공중 목욕탕이라고 한다.
북부 러시아에서는 목욕탕은 부정함을 멀리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출산이나 혼례 등 인생의 중요한 의례가 행해지는 장소로 여겨졌다.
바냐의 어원은 유사점이 많은 남유럽어 계통의 외래어라고 생각된다.
5. 1. 반니크
슬라브 신화, 특히 동슬라브 신화에서 모든 ''바냐''(목욕탕)에는 반니크라는 슬라브 목욕탕 정령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반니크는 흰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고 긴 수염, 긴 손톱과 털이 많은 손을 가진 쪼글쪼글한 작은 남자로 묘사된다. 그는 난로 뒤에 살며, 그의 성질은 매우 변덕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바냐''의 희미한 빛 때문에 그는 때때로 악의적인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화가 나면 뜨거운 물을 뿌리거나 심지어 목욕탕을 불태울 수도 있다고 한다.[14][15]반니크는 목욕하는 사람들, 특히 옷을 벗은 여성들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는데, 등을 목욕탕의 반쯤 열린 문에 노출시킨 채 서서 그에게 상담을 했다. 미래가 좋으면 사랑스럽게 등을 쓰다듬고, 나쁜 징조가 있으면 발톱으로 등을 긁었다.[14][15]

5. 2. 의례
고대부터 '바냐'는 러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소로 여겨져 왔다.[8] 러시아 역사 전체에 걸쳐, '바냐'는 마을 주민과 귀족을 포함한 러시아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 사용되었다.[9] 공동 목욕탕은 마을과 도시에서 매우 흔했다.[9] 또한 현재 러시아 사업가와 정치인들이 만나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10]
'바냐'의 온도는 종종 93°C를 넘어가며, 펠트나 양모 모자는 이 강렬한 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고 머리카락이 뜨거워져 화상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착용한다. 뜨거운 나무와 실내 벤치의 못으로부터 맨살을 보호하고 위생적인 이유로, '바냐'에 가져온 작은 매트 위에 앉는 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에서는 증기수에 넣을 추출물과 함께 펠트 장갑, 특수 펠트 모자를 흔히 판매한다. 집에서 만든 허브 추출물과 맥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말린 쑥은 벽에 걸어둘 수도 있다. 자작나무, 참나무 또는 유칼립투스의 마른 가지와 잎 묶음(''banny venik'', банный веник, "'바냐' 빗자루")은 마사지 및 뜨거운 공기에서 몸으로의 열 전달을 용이하게 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말린 가지는 사용 전에 매우 뜨거운 물에 적신다. 때로는 여름에는 신선한 가지를 대신 사용하기도 하고, 베니크를 말리는 대신 신선한 잎이 있는 여름에 얼린 다음 사용 전에 해동하기도 한다.
첫 땀이 난 후에는 야외에서 바람을 쐬거나 호수나 강에서 찬물에 뛰어드는 것이 관례이다. 겨울에는 옷을 입지 않고 눈 속에서 구르거나 얼음에 구멍을 낸 호수에 몸을 담그기도 한다. 그런 다음 '바냐'에 다시 들어가 암석에 소량의 물을 뿌린다. 너무 많은 물을 한 번에 사용하면 증기는 끈적한 느낌으로 차가워진다. 충분히 뜨거운 암석에 소량의 물을 뿌리면 빠르게 증발하여 작은 증기 입자로 구성된 증기가 생성된다. 베니크를 흔들면 대류열이 발생한다. 보통 두 번째 땀을 흘릴 때 베니크를 처음 사용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세 번째 세션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각 땀을 흘린 후에는 냉각을 반복하며, 사람들은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맥주, 차 또는 기타 음료를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 증기실의 부속실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바냐'에는 사람들이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바가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가벼운 식사도 제공된다.
러시아의 연대기에 따르면 10세기 무렵에는 러시아 고유의 증기 목욕탕이 노브고로드 근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예프렘 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스 수도원의 생활 방식을 가져왔을 때, 그중 하나로 1089년에 교회 내에 만들어진 증기 목욕탕이 러시아 최초의 공중 목욕탕이라고 한다.
북부 러시아에서는 목욕탕이 부정함을 멀리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출산이나 혼례 등 인생의 중요한 의례가 행해지는 장소로 여겨졌다.
6. 다른 문화권의 유사 시설
북아메리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수테지 사용은 핀란드의 연기 사우나나 검은색 ''바냐''와 개념적으로 유사하며, 1643년경부터 기록되었다.[18]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테마스칼과 같은 수테지의 사용에 대한 증거가 메소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다.
바냐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욕 시설로, 공중 목욕탕이나 사저 부지 내에 지어지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 많은 바냐에는 스팀 배스(steam bath)가 있는 방, 세탁실, 입구의 방 등 3개의 방이 있다. 입구의 방에는 옷을 걸어두는 못이나 휴식을 위한 벤치가 있고, 세탁실에는 온수를 위한 수도꼭지와 적절한 온도로 세탁하기 위한 찬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바냐는 욕실에 돌로 쌓은 화덕이 있으며, 화덕의 돌에 물이나 맥주, 크바스 등의 술을 뿌리거나, 달궈진 돌을 꺼내 물을 채운 통에 넣어 증기를 일으킨다. 시골의 바냐는 중세 주거와 같은 양식의 통나무집이 많고, 굴뚝이 없는 것은 실내에 그을음이 가득 차기 때문에 "검은 목욕"이라고 불린다. 러시아식 증기욕은 먼저 물을 끼얹고, 다음으로 증기욕을 하면서 다타키(ハタキ)로 몸을 때리고,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로 씻는 것이 기본이다.
입욕 후에는 냉수를 끼얹거나 찬 공기에 노출되어 급격하게 몸을 차갑게 하는 것이 습관이다. 겨울철에는 얼음이 언 강에 뛰어드는 사람도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습관에 대해서는 건강에 좋다는 주장과 나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적어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장 마비 등의 장애를 일으킬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
러시아 북부·북서부·시베리아 지방에서는 전용 바냐에서 입욕하고, 남부에서는 집의 페치카를 사용하여 증기욕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느 지방에서나 행해지고 있다. 시설에서의 증기욕과 페치카에서의 증기욕 중 어느 쪽이 러시아식 증기욕의 기원이 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6. 1. 고대 로마의 테르마이
고대 로마인들은 목욕 문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서로 인사할 때 "땀은 좀 나십니까?"라고 말할 정도였다.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사교 활동, 그림 감상, 시 낭독, 노래, 연회 등을 즐기는 장소였다. 목욕탕에는 마사지실, 체육관, 도서관도 있었다.[16] 부유한 시민들은 하루에 두 번씩 목욕탕을 찾았다. 개인 목욕탕과 공공 목욕탕 모두 매우 화려했는데, 수영장은 귀한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세면대 장식에는 은과 금을 사용했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는 약 150개의 테르마이가 있었다.증기실은 러시아의 바냐와 핀란드 사우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데워졌다. 구석에 설치된 화덕에서 뜨겁게 달궈진 숯 위에 청동 틀에 돌을 놓았다. 건식 및 습식 증기실을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뜨거운 공기는 바닥 아래 파이프를 통해 들어왔다. 테르마이의 구조는 복잡했는데, 옷을 갈아입고 목욕 후 휴식을 취하는 방, 첫 목욕을 위한 수영장, 따뜻한 물과 뜨거운 물로 씻는 방, 마지막으로 건식 증기 및 습식 목욕을 위한 방 등 5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17]
6. 2. 핀란드의 사우나
러시아의 바냐는 핀란드 사우나와 가장 가깝다. 현대 러시아에서 사우나는 종종 "핀란드 ''바냐''"라고 불리는데, 이는 터키식 목욕탕으로 불리는 터키 ''바냐''와 같은 다른 민족의 고온 목욕 시설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유럽과 우랄 민족 사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사우나는 핀란드인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다.[17]6. 3. 스웨덴의 바스투
'바스투'는 "목욕"을 뜻하는 'Bad'와 "오두막"을 뜻하는 'stuga'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17]바스투는 중세에 도시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나, 도시에 너무 많은 바스투가 있었기 때문에 몇 년 동안 금지되기도 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목욕을 즐겼으며, 16세기와 17세기 동안 인기가 있었다. 스웨덴 사우나 건물은 육류와 곡물을 건조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목욕에도 사용되었다.[17]
스포츠 경기장, 체육관, 수영장 및 경기장에서 바스투를 흔히 볼 수 있다. 공공 바스투는 수영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각 성별에 따라 분리되어 있지만,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혼합될 수 있다.[17]
6. 4. 터키의 하맘

''하맘''(터키식 사우나/목욕탕)은 종종 로마 시대 목욕탕만큼 화려하다. 목욕탕에 들어온 방문객은 넓은 홀에서 옷을 벗고, 계단을 내려가 좁고 긴 복도를 지나 비누 룸으로 들어간다. 이 방에는 목욕을 위한 여러 개의 틈새 공간과 증기탕, 더 시원한 방, 휴식 홀로 이어지는 세 개의 좁은 문이 있다. 이것이 목욕 절차의 순서이다. 이 과정을 모두 마친 후에는 마사지사에게 간다. 증기의 원천은 벽 안에 있는 거대한 물통이다. 증기는 벽의 구멍을 통해 나온다. 또한 욕조 전체는 대리석 바닥 아래에 있는 특수 파이프를 통해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로 데워진다. 목욕하는 사람은 뜨거운 돌 위에 누워 땀을 흘린다. 땀이 많이 나면 마사지가 시작된다.[17]
6. 5.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테지
북아메리카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수테지 사용은 핀란드의 연기 사우나나 검은색 ''바냐''와 개념적으로 유사하며, 1643년경부터 기록되었다.[18]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테마스칼과 같은 수테지의 사용에 대한 증거가 메소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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