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바실리 코노노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바실리 코노노프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빨치산으로 활동하며 독일군 수송열차를 폭파시켰고, 전후에는 내무부에서 복무했다. 1944년 라트비아 마지에 바트 마을 주민 9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와 무죄를 반복하며 논란이 되었고, 유럽 인권 재판소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는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2011년 라트비아에서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라트비아-러시아 관계 - 압레네 지역
    압레네 지역은 한국 사회의 산업화, 민주화, 지방 분권과 관련된 지역으로 정부 주도 개발과 수출 주도형 성장을 통해 발전했으나 환경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라는 문제점에 직면해 있으며 민주당 지지율이 높고 수출 중심 성장 전략에 의존하는 특징을 가진다.
  • 라트비아-러시아 관계 - 러시아계 라트비아인
    러시아계 라트비아인은 라트비아 역사 속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겪으며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러시아 민족 구성원을 지칭하며, 중세 시대부터 러시아의 영향 아래 놓여 18세기 러시아 제국 편입 후 인구가 증가했고 독립 및 소련 시대를 거치며 시민권, 러시아어, 정치적 대표성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 독립 후에도 라트비아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라트비아의 정치 - 카를리스 울마니스
    카를리스 울마니스는 라트비아의 초대 총리를 역임하고 쿠데타로 권위주의 통치를 시작했으나 소련에 의해 해임되어 추방, 투옥되었으며, 독립의 상징과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 라트비아의 정치 - 사에이마
    사에이마는 라트비아의 단원제 의회이며, 1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4년 임기로 선출되고, 대통령과 내각은 의회에 책임을 진다.
바실리 코노노프
지도
기본 정보
원어 이름ru: Василий Макарович Кононов (바실리 마카로비치 코노노프)
lv: Vasilijs Kononovs (바실리스 코노노프스)
출생1923년 1월 1일, 글루하예
사망2011년 3월 31일 (88세), 리가
국적소련, 라트비아
활동 분야제2차 세계 대전
소속소련 파르티잔
계급중위
서훈
훈장붉은 깃발 훈장
1급 애국 전쟁 훈장
파르티잔 훈장 (1급)
기타 정보
관련 인물바실리 코노노프 사건

2. 생애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콤소몰에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며 파시스트 군대의 수송열차 14대를 폭파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내무부에서 일했다.

1944년 5월 29일, 코노노프가 이끌던 빨치산 부대는 라트비아의 마지에 바트 마을 주민 9명을 독일 국방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98년 라트비아 검찰은 코노노프를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에서는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00년 라트비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1년 라트비아 검찰은 다시 코노노프를 기소했고,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하면서 2004년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혀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후 코노노프는 유럽 인권 재판소에 제소했고, 2008년 유럽 인권 재판소는 라트비아 법원의 판결이 유럽 인권 조약을 위반했다며 무죄를 선언했다.

이에 라트비아 정부는 항소 의사를 밝혔고, 2009년 사건은 유럽 인권 재판소 대법원으로 다시 넘어갔다. 재판 기간 동안 코노노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세르게이 미로노프러시아 정부 인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2010년 유럽 인권 재판소는 판결을 다시 뒤집어 코노노프에게 최종적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코노노프는 2011년 라트비아에서 사망했다.

3. 마지 바티 사건

1944년 5월 27일[7][8] (일부 자료에서는 5월 29일[1]), 바실리 코노노프가 이끌던 소련 빨치산 부대는 라트비아의 마지 바티 마을 주민 9명을 독일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살해했다.[3][9] 이 사건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십 년이 지나 법적 문제로 비화되었다.

1998년 라트비아 검찰은 코노노프를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1심에서는 6년형이 선고되었으나, 2000년 라트비아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1] 2001년 라트비아 검찰은 코노노프를 다시 기소했고 또다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검찰의 항소로 2004년 결국 유죄가 확정되었다.[1]

코노노프는 이 판결에 불복하여 유럽 인권 재판소에 제소했고, 2008년 유럽 인권 재판소는 라트비아 법원의 판결이 유럽 인권 조약을 위반했다며 무죄를 선언했다.[1] 그러나 라트비아 정부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고, 2009년 사건은 유럽 인권 재판소 대법원으로 넘어갔다.[1] 이 기간 동안 코노노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세르게이 미로노프러시아 정부 고위 인사들의 지지를 받았다.[1]

2010년 유럽 인권 재판소 대법원은 이전 판결을 뒤집고 코노노프에게 최종적으로 유죄를 선고했다.[1] 코노노프는 2011년 라트비아에서 세상을 떠났다.[1]

3. 1. 사건의 배경

1944년 2월 29일, 라트비아의 마지 바티(러시아 자료: 마리 바티, Malye Batyru) 마을 주민들은 소련 정찰-파괴 부대 소속 대원 12명에게 헛간에서 머물도록 허락했다. 다음 날인 3월 1일 오전 6시, 독일군은 이 헛간에 불을 지르고 기관총으로 공격했으며, 이 공격으로 추구노프 소령과 그의 아내 안토니나, 생후 7개월 된 아들을 포함한 빨치산 12명 전원이 사망했다.[5][6] 바실리 코노노프는 마을 주민들이 독일군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빨치산이 공격받았다고 의심했다.

같은 해 5월 27일, 코노노프가 이끄는 소련 제1 라트비아 빨치산 대대는 마지 바티 마을을 상대로 보복 작전을 개시했다. 코노노프 부대는 앞선 2월 사건의 책임이 있다며 9명의 마을 주민을 "독일 협력자"로 지목했다. 당시 라트비아에서는 소련 점령에 대한 무장 저항이 있었고, 일부는 1941년 독일 침략 당시 협력하기도 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코노노프 부대는 임시 군사 재판소의 판결을 집행한다는 명분으로 마을 주민들을 체포하러 갔다.[7][8]

코노노프와 그의 부대는 마을 주민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 독일 국방군 군복을 입고 마을에 접근했다. 이 과정에서 9명의 마을 주민이 살해되었는데, 희생자 중에는 임신 말기의 여성을 포함한 여성 3명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임신부는 산 채로 불태워졌다. 마을의 건물들도 불에 탔다.[3][9]

3. 2. 작전 수행

1944년 2월 29일, 라트비아의 마지 바티(러시아 자료: 마리 바티) 마을 주민들은 소련 정찰-파괴 부대 소속 12명의 남성에게 헛간에서 머물도록 허락했다. 다음 날 오전 6시, 독일군은 이 헛간에 불을 지르고 기관총으로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추구노프 소령과 그의 아내 안토니나, 생후 7개월 된 아들을 포함한 빨치산 12명 전원이 사망했다.[5][6] 코노노프는 마을 사람들이 이 빨치산들을 도왔다고 의심했다.

같은 해 5월 27일, 코노노프가 이끄는 소련 제1 라트비아 빨치산 대대는 마지 바티 마을을 상대로 이른바 "반격 작전"을 펼쳤다. 코노노프는 이전 사건의 책임자로 9명의 마을 주민들을 "독일 협력자"로 지목했다. 당시 라트비아의 대소련 점령에 대한 무장 저항은 1941년 나치 독일 침략자들과 협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코노노프의 부대는 임시 군사 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이들 마을 주민들을 체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주장했다.[7][8]

코노노프와 그의 부대는 마을 주민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독일 국방군 군복을 입고 작전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9명의 마을 주민이 살해되었는데, 그중에는 임신 말기의 여성이 산 채로 불태워졌으며, 다른 여성 2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을 건물들도 불에 탔다.[3][9]

4. 전쟁 범죄 기소 및 재판

제2차 세계 대전 중 빨치산 활동을 했던 바실리 코노노프는 전후 라트비아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오랜 법정 공방을 겪었다. 기소의 발단은 1944년 5월 29일, 코노노프가 이끌던 빨치산 부대가 라트비아의 마지에 바트 마을 주민 9명을 독일 국방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살해한 사건이었다.[3]

1998년 라트비아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코노노프를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은 매우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징역 6년)을 받았으나, 2000년 라트비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로 뒤집혔다.[3] 그러나 2001년 검찰의 재기소로 다시 재판이 시작되었고, 2004년 결국 유죄가 확정되었다.[3]

코노노프는 라트비아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유럽 인권 재판소에 제소했다. 2008년 유럽 인권 재판소는 라트비아 법원의 판결이 유럽 인권 협약을 위반했다며 코노노프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13] 하지만 라트비아 정부가 이에 항소하면서 사건은 유럽 인권 재판소 대심판부로 넘어갔다.[14][15] 이 과정에서 코노노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러시아 정부 고위 인사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2010년, 유럽 인권 재판소 대심판부는 이전 판결을 뒤집고 최종적으로 코노노프의 유죄를 확정했다. 코노노프는 2011년 라트비아에서 사망했다.

4. 1. 1차 기소 및 무죄 판결

1998년 7월, 라트비아 수석 검찰청은 코노노프에 대한 첫 소송 절차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 8월에 공식 기소, 12월에 최종 기소하였다.[3] 코노노프는 1999년 1월 시작된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법원은 코노노프가 국제 군사 재판소 헌장(IMT), 1907년 헤이그 협약(IV), 1949년 제네바 협약(IV)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여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3]

그러나 2000년 4월 25일, 라트비아 형사부는 코노노프가 점령지에서 작전을 수행했는지, 그와 부하들이 전투원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마을 사람들이 독일군에 협력하여 전쟁 포로로 취급될 수 있는지 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했다.[3] 이어 2000년 6월 27일, 라트비아 대법원은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코노노프는 최종적으로 석방되었다.[3]

4. 2. 2차 기소 및 유죄 확정

2001년 5월 17일, 새로운 조사가 시작된 후 코노노프는 라트비아 검찰에 의해 다시 기소되었다. 이 재기소 과정에서 남성 6명의 살해는 정당한 행위로 간주되었으나, 여성 3명의 살해는 법을 위반한 강도 행위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공소 시효 만료로 인해 기소되지 않았다.[3] 검찰은 이에 항소했고, 2004년 4월 30일 하급 법원의 판결이 뒤집히면서 코노노프는 전쟁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었다.[3] 같은 해 9월 28일, 라트비아 대법원은 코노노프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3]

4. 3. 유럽 인권 재판소 제소

2004년 라트비아 대법원에서 유죄가 최종 확정되자, 코노노프는 유럽 인권 재판소에 이 판결이 부당하다며 제소했다.

2008년 6월 19일, 코노노프의 변호사 미하일 이오페는 유럽 인권 재판소가 라트비아 법원의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고 발표했다.[10] 그는 코노노프가 라트비아 감옥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518.7만유로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11][12]

같은 해 7월 24일, 유럽 인권 재판소는 보도 자료를 통해 재판관 4 대 3의 의견으로 코노노프 사건에 대한 라트비아 법원의 판결이 유럽 인권 협약 제7조(소급 처벌 금지 원칙)를 위반했다고 판결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코노노프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금으로 3만유로를 받게 되었다.[13]

그러나 2008년 10월 14일, 라트비아 정부는 유럽 인권 재판소의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기로 결정했다.[14] 결국 2009년 2월 9일, "코노노프 대 라트비아" 사건은 더 높은 심급인 유럽 인권 재판소 대심판부에 회부되었다.[15] 2009년 5월에는 리투아니아 정부도 이 사건에 참여할 권리를 행사하여 라트비아 측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16]

이 재판 과정 동안 코노노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세르게이 미로노프러시아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공개적인 지지를 받는 등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5. 러시아의 지원과 반응

바실리 코노노프는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러시아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원을 받았다. 2000년 4월, 라트비아 대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에게 러시아 연방 시민권을 제안했다. 코노노프는 이 제안을 수락했으며, 이는 그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라트비아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18] 2003년 그의 80번째 생일에 코노노프는 리가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개인적인 축하 인사를 받았다.[19]

유럽 인권 재판소(ECHR)에서 열린 그의 재판에서 러시아는 제3자 역할을 수행했다.[20] 세르게이 미로노프 러시아 연방 의회 의장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역사 진실 위원회가 코노노프 사건에도 관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21]

5. 1. 뉘른베르크 재판과의 관계

코노노프의 변호인단과 러시아의 유럽 인권 재판소 대표인 게오르기 마튜시킨 법무부 차관은 해당 판결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의 법적 유산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22] 마튜시킨은 "뉘른베르크 절차의 결과를 수정하려는 시도의 조짐이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23] 반면, 유럽 인권 재판소 재판에서 라트비아 측 변호인으로 참여한 윌리엄 섀버스는 소수의견이 뉘른베르크 판결이 유럽 인권 협약 제7조에 위배된다고 보았다고 지적했다.[24]

6. 사망

코노노프는 2011년 3월 31일 라트비아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코노노프의 가족에게 보낸 전보에서 "바실리 코노노프는 위대한 조국 전쟁(독소 전쟁) 기간 동안 나치 침략자들과 헌신적으로 싸웠습니다. 그는 전투에서 맺어진 끈을 충실히 지켰고, 평생 동안 그 해의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옹호했습니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7. 수상

그의 전쟁 중 공헌을 기리기 위해, 소련은 코노노프에게 다음과 같은 다양한 훈장을 수여했다.

8. 평가 및 영향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빨치산 활동 중 독일 국방군 협력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는 전후 코노노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8년 라트비아 검찰은 코노노프를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했으며, 이후 그의 유무죄를 둘러싼 법적 공방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1][2]

1심 유죄 판결 후 2000년 라트비아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2001년 재기소되어 다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로 2004년 판결이 뒤집혀 유죄가 확정되었다.[1][2] 코노노프는 이에 불복하여 2008년 유럽 인권 재판소에서 라트비아 법원의 판결이 유럽 인권 조약 위반이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아냈으나, 라트비아 정부의 항소로 사건은 2009년 유럽 인권 재판소에 다시 상정되었다.[1][2][3]

이 과정에서 코노노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러시아 정부 고위 인사들의 공개적인 지지를 받으며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1][2] 이는 코노노프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전쟁범죄 재판을 넘어, 라트비아러시아 간의 역사 인식 및 정치적 갈등과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2010년 유럽 인권 재판소는 최종적으로 판결을 다시 뒤집어 코노노프의 유죄를 확정했으며, 그는 2011년 라트비아에서 사망했다.[1][2][4]

참조

[1] 문서 ECtHR usage
[2] 웹사이트 Augstākās tiesas pārstāvji Strasbūrā gūst ieskatu cilvēktiesību aizsardzībā http://at.gov.lv/lv/[...] Augstākās Tiesa 2015-04-02
[3] 웹사이트 CASE OF KONONOV v. LATVIA http://cmiskp.echr.c[...]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2010-05-17
[4] 웹사이트 Amid V-Day Festivities, Soviet Partisan Braces For War Crimes Verdict http://www.rferl.org[...] Radio Free Europe 2010-05-07
[5] 간행물 Interview with Kononov's lawyer, Mikhail Ioffe, and others http://www.ruvr.ru/m[...] 2007-12-19
[6] 뉴스 Европейский суд принял жалобу латвийского партизана Василия Кононова http://www.newsru.co[...] News.ru 2009-04-16
[7] 서적 Between Stalin and Hitler: Race War and Class War on the Dvina, 1940-46 https://books.google[...] RoutledgeCruzon
[8] 웹사이트 Последний бой ветерана Кононова http://www.echr.ru/n[...] echr.ru 2009-04-16
[9] 뉴스 ECHR favors Latvia in final Kononov ruling http://www.baltictim[...] Baltic Times 2010-05-17
[10] 뉴스 Латвия расстанется с миллионами евро: И отдаст их российскому пенсионеру http://mk.ru/blogs/M[...] 2008-07-24
[11] 뉴스 Европейский суд по правам человека удовлетворил иск ветерана войны к Латвии http://www.interfax.[...] Interfax 2009-04-16
[12] 뉴스 Kononova advokāts: bijušais partizāns Eiropas Cilvēktiesību tiesā uzvarējis Latviju http://www.nra.lv/zi[...] 2008-07-24
[13] 간행물 Chamber Judgment: Kononov v. Latvia http://cmiskp.echr.c[...]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2009-04-16
[14] 뉴스 Pārsūdzēs ECT spriedumu Kononova lietā http://www.diena.lv/[...] 2008-10-15
[15] 간행물 Cases Accepted for Referral to the Grand Chamber http://cmiskp.echr.c[...]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2009-04-16
[16] 뉴스 Литва получила статус "третьей стороны" по делу Кононова http://www.gazeta.ru[...] 2010-01-22
[17] 웹사이트 Grand Chamber judgment in case Kononov v. Latvia http://cmiskp.echr.c[...]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2010-05-17
[18] 뉴스 Партизан Кононов отказался от гражданства Латвии http://www.lenta.ru/[...] Lenta.Ru 2009-04-16
[19] 뉴스 Василия Кононова ждут в российском посольстве на торжественную церемонию Первый канал 2009-04-16
[20] 간행물 Russian MFA Information and Press Department Commentary on ECHR Ruling in Favor of Vasiliy Kononov in WWII Veteran's Case vs. Latvia http://www.mid.ru/br[...]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Russian Federation 2009-04-16
[21] 뉴스 Кремлевская комиссия займется делом Кононова 2009-05-24
[22] 웹사이트 Strasbourg sides with Nazis http://english.ruvr.[...] Voice of Russia 2010-05-17
[23] 웹사이트 Strasbourg court verdict to Soviet WWII veteran arouses regret in Russia ITAR-TASS 2010-05-17
[24] 웹사이트 Kononov War Crimes Judgment Issued by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Grand Chamber
[25] 서적 PSRS kaujinieki Latvijā (1941–1945) LU žurnāla "Latvijas Vēsture" fonds
[26] 뉴스 Condolences to family of Great Patriotic War veteran Vasily Kononov http://eng.kremlin.r[...] Presidential Press and Information Office 2011-09-0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