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진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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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승진은 1941년에 태어난 북한의 축구 선수로, 1966년 FIFA 월드컵에 북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했다. 그는 칠레와의 조별리그 경기와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각각 1골을 기록했다. 1966년 월드컵 이후 간첩 혐의로 12년간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2002년 영화 《기적의 11인》에 출연했다. 2011년에 사망했다.

박승진 (1941년)
기본 정보
이름박승진
출생일1941년 1월 11일
출생지원산시, 일본 제국, 한국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망일2011년 8월 5일 (향년 70세)
포지션공격수
신장168cm
몸무게68kg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알 수 없음
소속 클럽모란봉체육단
클럽 활동 기간1965-1974
출장 횟수271
득점 횟수789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 활동 기간1965-1973
국가대표 출장 횟수12
국가대표 득점 횟수6
기타 정보
유튜브 영상The Game of Their Lives
관련 웹 아카이브FIFA 월드컵 아카이브
사망 관련 기사E' morto Pak Seung-Zin Chollima Football F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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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시절

박승진은 북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6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으며, 이후 대니얼 고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천리마 축구단>에 출연했다.

탈북자 강철환은 저서 평양 수족관에서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박승진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강철환에 따르면, 1966년 이탈리아전 승리 후 선수들과 술집에서 축하한 것이 "부르주아적 타락"으로 여겨져 20년 이상 수용소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그들이 잊지 못할 경기에서 박승진과 선수들은 이를 부인했다.

월드컵 후, 간첩 혐의로 12년간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갑산파 박금철 숙청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2002년 영화 『기적의 11인 [1966년 월드컵 북한 VS 이탈리아전의 진실]』에 출연했지만, 노동당 정권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2011년에 사망했다.

2.1. 1966년 FIFA 월드컵 활약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북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하여 칠레와의 4조 조별리그 2차전과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각각 1골씩 기록하였다.

소련과의 첫 경기에서는 득점이 없었지만, 칠레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88분에 동점골을 넣었다. 이는 북한 대표팀의 월드컵 첫 골이자, 아시아 전체로도 월드컵 첫 골이었으며, 월드컵 통산 700번째 골이기도 했다。 이 골은 북한 대표팀 및 아시아의 첫 결선 토너먼트 진출로 이어졌다. 포르투갈과의 월드컵 8강전에도 출전하여 1골을 넣었다.

2.2. 훈련 방식

천리마 축구단에 출연한 한봉진의 증언에 따르면, 박승진은 발목에 고무줄을 매어 손으로 잡고 오른발 1,000번, 왼발 1,000번씩 차는 연습을 하며 하체를 단련했다고 한다.

3. 월드컵 이후

1966년 FIFA 월드컵 이후 박승진은 간첩 혐의로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2002년 영화 『기적의 11인 [1966년 월드컵 북한 VS 이탈리아전의 진실]』에 출연했지만, 노동당 정권에 대한 비판은 일절 하지 않았다. 2011년에 사망했다.

3.1. 요덕 수용소 수감 논란

1966년 FIFA 월드컵 이후 박승진이 간첩 혐의로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12년간 강제노동을 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천리마 축구단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고위층으로 출세하여 훈장을 많이 달고 있었으며 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반론도 있다.

탈북자 강철환은 자신의 저서 평양 수족관에서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박승진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강철환에 따르면, 박승진은 1966년 팀의 다른 선수들과 함께 이탈리아와의 경기 승리를 술집에서 축하한 것이 북한 관리들에게 "부르주아적 타락의 징후"로 여겨져 투옥되었으며, 20년 이상 수용소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이 잊지 못할 경기에서 박승진과 다른 선수들은 인터뷰를 통해 어떠한 보복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갑산파의 박금철 숙청의 영향으로 요덕 수용소에 12년간 수감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3.2. 갑산파 숙청 연루설

1966년 FIFA 월드컵 이후, 박승진은 간첩 혐의로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12년간 강제 노동을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천리마 축구단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고위층으로 출세하여 훈장을 많이 달고 있었고 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월드컵이 끝난 후, 박승진은 간첩 혐의로 12년간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 이는 지원을 했던 갑산파의 박금철 숙청의 영향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3.3. 사망

박승진은 월드컵이 끝난 후, 간첩 혐의로 12년간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는 그가 지원했던 갑산파의 박금철 숙청의 영향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2002년 영화 『기적의 11인 [1966년 월드컵 북한 VS 이탈리아전의 진실]』에 출연했지만, 노동당 정권에 대한 비판은 일절 하지 않았다. 2011년에 사망했다.

4. 주요 대회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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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결과
1966년 FIFA 월드컵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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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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