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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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은 서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아리아인의 땅'을 의미하는 '이란'은 중세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되었으며, 1935년 레자 샤 팔라비에 의해 국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로, 기원전 7000년경부터 농경 사회가 시작되었으며, 엘람, 아케메네스 제국 등 고대 제국들의 중심지였다. 7세기 아랍 무슬림의 침략 이후 이슬람화되었으며, 16세기 사파비 왕조 시기 시아파가 국교로 자리 잡았다. 20세기에는 팔라비 왕조가 들어섰으나,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멸망하고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현재 이란은 혼합 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석유 매장량을 바탕으로 에너지 강국으로 부상했으나,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제 제재, 외교적 갈등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란은 다민족 국가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한다. 문화적으로는 건축, 예술,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달력을 사용한다.

이란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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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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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지도
기본 정보
공식 명칭이란 이슬람 공화국
현지 명칭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페르시아어
로마자 표기Jomhuri-ye Eslâmi-ye Irâ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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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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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장
국가 표어اَللَّٰهُ أَكْبَرُ아랍어
국가 표어 (로마자 표기)Allāhu ʾakbar
국가 표어 (의미)신은 가장 위대하다
국가 표어 (법적)de jure
국가 표어 (2)استقلال، آزادی، جمهوری اسلامی페르시아어
국가 표어 (2) (로마자 표기)Esteqlâl, Âzâdi, Jomhuri-ye Eslâmi
국가 표어 (2) (의미)독립, 자유, 이슬람 공화국
국가 표어 (2) (사실상)de facto
국가سرود ملی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페르시아어
국가 (로마자 표기)Sorud-e Melli-ye Jomhuri-ye Eslâmi-ye Irân
국가 (의미)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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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테헤란
최대 도시테헤란
공용어페르시아어
데모님이란인
정치
정부 형태단일 대통령제 신권 이슬람 공화국
최고 지도자알리 하메네이
대통령마수드 페제시키안
부통령모함마드 레자 아레프
입법부이슬람 협의회
역사
건국 형태형성
메디아 왕국기원전 678년 경
아케메네스 제국기원전 550년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7년
사산 제국224년
이란의 인터메초821년
사파비 제국1501년
아프샤르 왕조1736년
페르시아 입헌혁명1905년 12월 12일
팔라비 왕조1925년 12월 15일
이란 혁명1979년 2월 11일
현재 헌법1979년 12월 3일
지리
면적1,648,195 km²
면적 순위17위
면적 (제곱마일)636,372 mi²
수역 비율1.63% (2015년 기준)
인구
인구 추정91,567,738명 (2024년)
인구 순위17위
인구 밀도55명/km²
인구 밀도 (제곱마일)142명/mi²
인구 밀도 순위132위
경제
GDP (PPP)$1조 6,980억 (2024년)
GDP (PPP) 순위23위
1인당 GDP (PPP)$19,607 (2024년)
1인당 GDP (PPP) 순위95위
명목 GDP$4,342억 4,300만 (2024년)
명목 GDP 순위37위
1인당 명목 GDP$5,013 (2024년)
1인당 명목 GDP 순위120위
지니 계수34.8 (2022년)
지니 계수 변화감소
인간 개발 지수 (HDI)0.780 (2022년)
HDI 변화증가
HDI 순위78위
통화이란 리알
통화 코드IRR
기타 정보
시간대이란 표준시 (IRST)
UTC 오프셋+3:30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ir
ایران.
국제 전화 코드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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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명

'이란'이라는 단어는 중세 페르시아어 'Ērān'에서 유래했으며, 낙쉐 로스탐의 석비에 3세기에 처음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이란'은 '아리아인들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리아인에서 변형된 것으로 중세 파르티아어로는 '아리아(Ariya)'라고 불렸다. 이 단어는 최소한 아케메네스 왕조 이후부터 이란 지역을 부르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아르다시르 바바칸(재위 224-242)의 비문 (낙시 루스타)
낙시 루스타에 있는 아르다시르 1세(224-242년)의 암각화, "이것은 마즈다 숭배자이자 이란의 왕 아르다시르 경의 모습입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역사적으로 서방 세계는 현재 이란 지역을 '페르시아'라고 불렀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란 지역을 '페르세스'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란계 부족들이 살던 땅의 이름이 '파르사(Parsa)'였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이 이란 쪽의 모든 민족들을 '페르세스' 혹은 '페르시아'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정착된 것이다.

1900년대까지 국제사회에서는 이란 지방을 '페르시아'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35년에 레자 샤는 국제사회에 자국을 '페르시아'라고 칭하지 말고 현지에서 더 많이 쓰이는 '이란'으로 불러주기를 요청했다. 이후 '이란'이 국호로 굳어지게 되었다. 현재 '이란'은 국가의 이름을 부를 때 주로 사용하며, '페르시아'는 문화, 지방, 역사적인 서술에 더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3. 역사

이란 지역에는 최소 구석기 초창기부터 인류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7000년 전부터 초기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문명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이란은 기원전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이고 도시적인 정착지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속적인 주요 문명 중 하나의 고향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페르시아인들을 "최초의 역사적 민족"이라고 불렀다. 메디아인의 부상과 함께 시작된 이란 제국은 키루스 대왕이 건국한 아케메네스 제국(기원전 550~330년)으로 이어져 발칸 반도에서 북아프리카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다. 그 뒤를 이어 셀레우코스 제국, 파르티아 제국, 사산 왕조가 이란을 거의 1,000년 동안 통치하여 다시 한번 주요 강국으로 만들었다. 이 기간 동안 페르시아의 가장 큰 라이벌은 로마 제국과 그 계승국인 비잔티움 제국이었다.

이란은 고대 마케도니아인, 이슬람에 의한 페르시아 정복, 튀르크계 민족, 몽골의 침략을 겪었으나, 끊임없이 국가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독립적인 정치적, 문화적 실체로 발전했다. 이슬람에 의한 페르시아 정복(632~654년)은 사산 왕조를 끝내고 이란 역사의 전환점이 되어 8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이란의 이슬람화와 조로아스터교의 쇠퇴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전 페르시아 문명의 업적은 새로운 이슬람 황금기 정체성에 흡수되었다. 후기 중세와 근세 초기 동안 유목민 부족의 침략을 받아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501년 사파비 왕조에 의해 독립 국가로 재통일되었고, 시아파를 제국의 공식 종교로 확립하여 이슬람의 역사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란은 특히 오스만 제국과의 경쟁에서 다시 한번 세계 주요 강국으로 기능했다. 19세기에 이란은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이후 러시아 제국캅카스의 상당한 영토를 잃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군주제가 폐지되고 이슬람 공화국이 되었다. 루홀라 호메이니를 최고 지도자로 하는 정치 체제가 수립되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미국과의 지속적인 긴장, 핵 프로그램 등으로 국제 외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3.1. 고대

이란 지역은 기원전 4000년 경부터 고대 문명이 발달하고 거대한 도시들이 들어섰다. 엘람, 자얀데루드, 지로프트 등 다양한 고대 문명들이 번영했으며, 이 중 가장 세력이 컸던 엘람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근방에서 번영을 누렸고 이란계 제국들이 들어서기 전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엘람에서는 수메르의 영향을 받아 기원전 3000년 경에 쓰기와 쐐기 문자가 도입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고대 이란인들이 유라시아 스텝을 거쳐 이란 지방에 정착했다. 이들은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협력을 하기도 하며 점차 이란 지방의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기원전 728년 경에는 메디아인들이 데이오세스 왕 하에 통합되어 메디아 제국을 세웠다.

아케메네스 제국의 최대 판도
아케메네스 제국의 최대 판도

기원전 550년에는 키루스 대제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세워 고대 세계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했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바빌론에 갇혀있던 유대인들을 풀어주었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했다. 이후 이란 지방은 셀레우코스 제국, 파르티아 제국, 사산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사산 제국은 이란 문화와 국력의 최절정기로 여겨진다.

3.2. 중세

7세기경 아랍 무슬림들의 침입으로 사산 제국이 멸망하고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조로아스터교 중심 사회에서 이슬람 중심 사회로 변모하였으며, 조로아스터교의 배화신전과 도서관들이 불에 타고 이슬람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특별세가 부과되었다.

아바스 칼리파조 시대에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문학, 철학, 수학, 약학, 천문학, 예술 등 다양한 학문이 발전했다. 이 시기 페르시아는 세계 과학의 중심지였으며, '이슬람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이슬람 문화가 절정에 달했다.

10세기에는 중앙아시아에서 튀르크계 민족들이 이란고원 지방으로 이주해왔다. 이들은 맘루크로 활용되었고, 군사력을 독점하며 가즈나 제국, 셀주크 제국, 화레즘 제국 등 튀르크계 제국을 세웠다. 튀르크인들은 페르시아 문화를 적극 수용, 장려하여 튀르크-페르시아 문화가 발흥했다.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칭기즈 칸의 침입으로 1,000만 명에서 1,500만 명이 사망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인구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는 추정도 있다.

1256년에는 훌라구 칸일 칸국을 건국했다. 1370년에는 티무르티무르 제국을 세웠다. 이스파한에서는 7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학살당했다. 일 칸국과 티무르 제국 모두 페르시아 문화를 받아들여 동화되었다.

3.3. 근대

1500년 초, 아르다빌 출신의 이스마일 1세사파비 왕조를 세우고 수도를 타브리즈에 두었다. 이스마일 1세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하여 이란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를 국교로 삼고, 이란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로 인해 이란은 현재까지도 주요 이슬람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시아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국가이다. 아바스 1세의 재위기에는 오스만 제국을 넘어 서부 유라시아 지역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며 과학, 예술 등을 선도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722년 파슈툰인 반란군에게 수도 이스파한이 함락되며 멸망했다.

1729년, 코라산의 장군 나디르 샤가 파슈툰 반란 세력을 몰아내고 이란을 재통일하여 아프샤르 왕조를 개창했다. 나디르 샤의 재위기에 이란은 사산 제국 이래 최대 영토를 정복하며 서부와 중부 아시아 최강의 제국 중 하나로 명성을 누렸다. 1730년대 후반에는 인도를 침공하여 델리를 약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디르 샤 사후 이란은 혼란에 빠졌다가, 1750년 카림 칸이 잔드 왕조를 세우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1794년, 아가 모하마드 칸이 카자르 왕조를 세웠다. 1795년에는 러시아와 손잡은 조지아를 정벌하고 트빌리시를 점령하며 캅카스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19세기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캅카스 지방의 영토를 상실했다. 1870년대 초에는 대기근으로 150만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905년, 서구 열강에게 이권을 내주는 카자르 왕조에 반발하여 입헌 혁명이 일어났다. 1906년에는 첫 이란 헌법이 제정되고 국회가 열렸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란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영국에 의해 점령당했다.

카자르 왕조는 오랜 기간 정세 불안과 중앙 통제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21년, 영국이 배후에서 주도한 쿠데타로 레자 샤 팔라비가 팔라비 왕조를 개창하면서 카자르 왕조는 멸망했다.

3.3.1. 팔라비 왕조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6월, 나치 독일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기습적으로 침공하였다. 소련은 즉시 연합국과 동맹을 맺었고, 영국은 이란에게 독일인들을 추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레자 샤는 이를 거부하였고, 1941년 8월 25일에 영국과 소련이 이란을 침공하였다. 레자 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하였고, 1941년 9월 16일에 퇴위하여,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1951년, 모하마드 모사데그가 총리에 취임하여 석유 국유화를 단행하였으나, 1953년 쿠데타로 실각하였다.

1973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공식 초상화, 그는 이란의 마지막 샤였다.
1973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공식 초상화, 그는 이란의 마지막 샤였다.


이후, 팔라비 국왕은 백색혁명을 추진하였으나, 비밀경찰 SAVAK을 동원한 독재 정치로 비판받았다. 이 과정에서 루홀라 호메이니는 팔레비 국왕의 반대파로 부상하였으나, 결국 이란에서 추방되었다.

1970년대 후반, 경제 침체와 부정부패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팔라비 왕조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었다.

3.4. 현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루홀라 호메이니가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1979년 4월, 국민투표를 거쳐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했다. 같은 해 11월 4일에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하여 52명의 외교관과 시민들이 인질로 잡혔다. 이 사건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재선 실패에 영향을 미쳤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 직후 인질들이 풀려나면서 마무리되었다.

1980년 9월 22일, 이라크 군이 이란 서부를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초기에는 이라크군이 우세했으나, 1982년 중반부터 전세가 역전되어 이란군이 공세를 펼쳤다. 전쟁은 1988년 이라크가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이라크의 패배로 끝났다.

1989년,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춘 친기업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국내적으로 자유 시장을 지지하고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으며, 국제적으로는 온건한 입장을 선호했다. 1997년, 라프산자니의 뒤를 이어 중도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취임했다. 하타미 정부는 표현의 자유유럽 연합과의 건설적인 외교 관계, 자유 시장과 외국인 투자를 지원하는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2005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적인 포퓰리즘 성향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9년 대통령 선거는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로 인해 '녹색 혁명'이라 불리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발생했다. 2013년, 중도파이자 개혁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취임하여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2015년에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체결되어 이란의 농축 우라늄 생산 제한과 경제 제재 해제가 이루어졌으나, 2018년 트럼프 행정부 하의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하면서 새로운 제재가 부과되었다.

2020년 1월 3일, 이슬람 혁명 수비대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이 미국에 의해 암살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란은 이라크 주둔 미군 공군 기지에 대한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2021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라이시의 집권 기간 동안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강화하고, 국제 사찰을 방해하고, SCOBRICS에 가입하고, 러시아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2024년 4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영사관에서 IRGC 사령관이 사망하자, 이란은 보복으로 UAV, 순항 미사일,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2024년 5월, 라이시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했고, 이란은 6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4. 지리 및 기후

이란의 총 국토 면적은 약 1648195km2이며, 세계에서 18번째로 넓다. 이란은 북위 24°와 40° 사이, 동경 44°와 64°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아르메니아(35km), 나흐치반 아제르바이잔 자치구(179km), 아제르바이잔 공화국(611km)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카스피해, 북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992km),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936km)과 파키스탄(909km), 남쪽으로는 페르시아 만과 오만 만, 서쪽으로는 이라크(1458km)과 튀르키예(499km)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란 국토의 대부분은 이란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쿠제스탄 일대와 카스피 해를 접하고 있는 일부 해안 지대만이 예외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가장 산악 지형이 많은 국가이며, 험준한 산맥들이 상대적으로 평평한 분지들을 갈라놓고 있다. 특히 산이 많은 서부 지방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카프카스 산맥, 자그로스 산맥, 엘브르즈 산맥 등 수많은 산맥들이 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란의 최고봉은 다마반드 산으로, 높이가 5610m에 달하여 아시아에서 힌두쿠시 산맥 서쪽에 있는 산들 중 가장 해발고도가 높다.

이란 북부 지방은 카스피 해의 영향을 받아 카스피 히르카니아 숲이 발달해 있다. 동부 지방은 대체로 카비르 사막, 루트 사막과 같이 거대한 사막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염호도 찾아볼 수 있다. 루트 사막은 지구 표면에서 가장 높은 기온이 기록된 곳으로, 2005년에 70.7 °C가 기록되었다. 이란에서 큰 평원은 카스피 해 근처와 페르시아 만 쪽 해안 북쪽 근방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나머지 소규모 평원들은 대부분 산맥에 의하여 갈라지고 쪼개진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에서는 대평원이라고 할 만한 지형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란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 속하는데, 평균적으로 리히터 규모 7의 강진이 매 10년 마다 한 번 꼴로 일어난다. 이란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지진은 천발 지진이며, 이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여 2003년 밤 지진과 같은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쾨펜의 기후 구분
쾨펜의 기후 구분

이란은 사막 기후부터 아열대 기후까지 약 11개의 다양한 기후대가 나타나는 국가이다. 카스피 해 연안의 이란 북부 지방은 겨울에는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며, 1년 내내 카스피 해의 영향으로 습한 기후를 띠고, 여름에는 29°C까지 올라간다. 서쪽 자그로스 분지는 기온이 낮은 편이며, 혹독한 겨울 날씨와 많은 강설량이 특징이다. 동부와 중앙 분지는 사막 기후를 띠며, 연 강수량이 200mm 미만으로 매우 건조하다. 이 곳의 평균 여름 기온은 38°C이다. 페르시아 만과 오만 만 연안의 이란 남부 지대는 북부 지방보다 기온이 온난하여 겨울이 춥지 않고, 여름은 매우 덥고 습하다. 남부 지방의 연 강우량은 135mm에서 355mm 정도이다.

이란은 사막화 등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심각한 국가 중 하나이나, 파리 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5. 정치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혁명의 지도자' 또는 '최고 지도자'라고 불리는 이슬람 성직자(라흐바르)가 국가 최고 권력을 가진다. 현재 최고 지도자는 알리 하메네이이다. 최고 지도자는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며, 전쟁 선포나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국영 방송사와 텔레비전 기업, 사법부 수뇌부, 경찰과 군대 수뇌부, 수호자 평의회 위원 등을 임명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지만, 최고 지도자에 비해 권한이 제한적이다.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하고, 주요 결정을 최고 지도자의 재가를 받고 시행한다. 대통령 후보나 국회의원 후보는 선거 전에 수호자 평의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란 의회는 단원제로, 4년 임기의 의원 290명으로 구성된다. 의회는 법률을 제정하고, 국제 조약을 비준하며, 국가 예산을 승인한다. 모든 의회 후보 및 의회의 법률은 수호자 평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문가 평의회는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며, 최고 지도자를 해임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전문가 평의회에서 최고 지도자의 결정에 반발하거나 해임을 시도한 적은 없다.

1979년에 제정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 헌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으며, 국가 수반인 최고 지도자의 지위는 종교 법학자에게 부여되어 있다. 헌법 제4조에서는 모든 법률 및 규정이 이슬람의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헌법에서는 삼권 분립이 규정되어 있으며, 입법권은 국회,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최고 지도자가 삼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체제는 권위주의적이며, 인권과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약과 침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154위로 "독재 정치 체제"로 분류되며(2022년), 국경 없는 기자회세계 언론 자유 지수는 177위로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로 분류된다(2023년).

5.1. 외교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후, 외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제3지대 국가들과의 교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이란은 유엔 회원국 중 99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미국과 이스라엘과는 수교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G-77, IAEA, IBRD, IDA, IFC, ILO, IMO, 인터폴, OIC, OPEC, WHO, UN의 회원국이며, WTO의 옵서버 국가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종교적,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인정하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지지한다.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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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관계
대한민국1962년 10월 23일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73년에 수교하였으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을 군사적으로 지원한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을 보인다. 2016년 초 이란에 대한 국제 제재 해제로 인해 양국 간 교류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러시아소련 시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소련이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8년간 적대 관계였던 시기를 제외하면 현재까지도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슬람 혁명 이전에는 미국과 외교 관계가 있었으나, 혁명 이후 반미 정부가 들어서면서 단교하였다. 이란 핵협상 타결로 관계 개선의 여지가 있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관계가 악화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이란 내 아제르바이잔계 주민의 분리독립 요구 및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영유권 주장 우려로 인해 관계가 좋지 않다. 이란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 관계에 있으며, 핵 문제까지 겹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과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등에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6. 경제

이란의 경제는 이란 국영석유회사와 같은 국영 대기업, 농촌 지역의 농업, 소규모 상업 및 서비스업 등으로 이루어진 혼합경제이다. 서비스업이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광업 및 제조업, 농업이 그 뒤를 잇는다. 정부는 석유 의존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 항공우주 산업, 가전 제조업, 석유화학 산업, 핵 기술 등에 투자하고 있다. 차바하르, 키슈 섬 등 자유무역지역을 통해 외국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현대 이란의 중산층은 두텁고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문제이다. 2022년 실업률은 9%였다. 재정적자는 만성적인 문제인데, 이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원인 중 하나이다. 2010년 경제 개혁 계획은 보조금을 점진적으로 삭감하고 표적화된 사회 지원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이란은 OPEC 제2위의 석유 생산국으로, 세계 석유 매장량의 10%를 차지하며 에너지 강국이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이다. 원유 수출은 중요한 외화 획득 수단이다.

농업은 국가 투자와 생산 자유화로 활성화되었으며, 대추야자, 피스타치오, 화훼 등 수출용 농산물 확대로 1990년대에 빠르게 성장했다. 농업은 여전히 이란의 최대 고용 부문이다.

이란은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의약품 제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주요 무역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이다. 시리아, 인도, 쿠바,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개발도상국과의 경제 협력도 진행하고 있으며, 터키, 파키스탄과 통상을 확대하고 있다.

이란 경제제재는 이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 제재로 이란 리알 가치가 폭락했다. 2016년 1월 16일 이란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잘 이행하여 경제 제재가 해제되었다. 이란은 상하이 협력 기구, 브릭스에 가입했다.

7. 사회

1500년대이스마일 1세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은 사파비 왕조를 세우면서 이란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이전까지 수니파가 주류였던 페르시아는 시아파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져 이란은 주요 이슬람 국가 중 시아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사파비 왕조아바스 1세 시기(1500년대 후반~1600년대 초)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오스만 제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코카서스 인종이 이란 사회에 대규모로 동화되기 시작하여, 이후 이란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1600년대 중후반부터 국력이 쇠퇴하여 1722년 파슈툰인 반란군에 의해 멸망한다.

1729년 나디르 샤카자르 왕조를 세워 이란을 재통일하고 사산 제국 이래 최대 영토를 회복했다. 그러나 나디르 샤 암살 이후 혼란이 이어지다가 1750년 잔드 왕조의 카림 칸이 다시 통일을 이루었다.

1951년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가 석유 국유화를 단행하여 국민적 지지를 얻었으나, 1953년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팔라비 왕조의 백색혁명으로 서구화와 세속화가 추진되었으나, 비밀경찰 SAVAK를 동원한 독재 정치와 부정부패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 최고 지도자가 되면서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 전환을 하였다. 그러나 새 이슬람 정부는 반대파를 탄압하고 급진 이슬람 정책을 강행하여, 초기 혁명 동지였던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까지 숙청했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1979년)과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으로 이란은 국제적 고립을 겪었다. 종전 후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와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경제 복구와 개혁을 추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화가 강화되었고, 2009년 부정선거 의혹으로 대규모 시위('녹색 혁명')가 발생했다. 2013년 하산 로하니 대통령 취임 후 국제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나, 경제난과 정부 통제에 대한 불만으로 2017년, 2018년, 2019년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2019년 시위는 정부의 인터넷 차단과 강경 진압으로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를 낳았다.

2020년 가셈 솔레이마니 암살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란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건은 국제적 비난을 초래했다.

7.1. 인구

이란의 인구는 1956년 약 1,900만 명에서 2023년 2월 약 8,500만 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란의 합계출산율은 20년 전 여성 1인당 6.5명에서 약 1.7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2018년 현재 인구 증가율은 약 1.39%이다. 젊은 인구 때문에 연구에 따르면 인구 증가는 2050년까지 약 1억 500만 명으로 안정될 때까지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은 거의 100만 명에 달하는, 대부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출신인 대규모 난민 인구를 수용하고 있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성장률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1950년부터 2002년까지 도시 인구 비율은 27%에서 60%로 증가했다. 이란의 인구는 특히 북부, 북서부 및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서부에 집중되어 있다.

약 94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테헤란은 이란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마슈하드는 약 34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라자비 호라산 주의 주도이다. 이스파한은 약 22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란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7.2. 민족 구성

이란은 다민족 국가로, 페르시아인, 아제리인, 쿠르드인, 루르족, 발루치족, 아랍족, 투르크멘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란 내 민족 구성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며,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이란 인구의 약 79%가 다양한 인도유럽계 민족언어 집단이며, 페르시아인(마잔데라니인과 길라키인 포함)이 61%, 쿠르드인 10%, 루르인 6%, 발루치인 2%를 차지한다. 다른 민족언어 집단의 사람들은 나머지 21%를 차지하며, 아제르바이잔인이 16%, 아랍인 2%, 투르크멘인 및 기타 튀르크 부족이 2%, 기타(예: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체르케스인, 아시리아인)가 1%를 차지한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페르시아인(마잔데라니인, 길라키인, 탈리시인 포함) 65%, 아제르바이잔인 16%, 쿠르드인 7%, 루르인 6%, 발루치인 2%, 튀르크 부족 집단(가슈가이족과 투르크멘인 포함) 1%, 비이란계, 비튀르크계 집단(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아시리아인, 체르케스인, 아랍인 포함) 3% 미만으로 추산한다.

주요 민족은 다음과 같다.

* 페르시아인: 이란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기원전 12세기에서 9세기까지 지금의 이란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아리아인의 대표적인 무리였다. 파르스 지방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명으로부터 페르시아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쿠르드족과 같이 인도유럽어족의 일원이며, 이란 역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흔히 '이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바로 페르시아인을 뜻한다.

* 마잔다란인과 길라키인: 이란 북중부 카스피해 연안의 마잔다란 주와 길란 주에 많이 거주하며, 페르시아어와 유사한 마잔다란어길라키어를 쓴다. 언어와 혈통적으로 페르시아인과 큰 차이가 없다.

* 아제리족: 이란에서 두 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튀르키예인과 같은 튀르크족의 일파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리족이 사용하는 언어와 같으며, 원주민들은 터키 사람들과 통역 없이도 어느 정도 의사전달이 가능할 정도이다. 주로 이란 북서부의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고 있다.

* 쿠르드족: 자신의 국가를 가지지 못한 쿠르드족은 서부의 산악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이란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약 800만 명에 달한다.

* 투르크멘족 및 기타 소수 민족: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한 후라산 지역에는 투르크멘족이 살고 있으며, 이란 남부 지역에는 여러 소수 민족이 아직도 유목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밖에도 북서부 지역에는 소수의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도 거주한다.

7.3. 언어

이란의 공용어는 페르시아어이다. 인구 대부분이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이란의 국가 언어이기도 하다. 페르시아어 외에도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다른 이란어군 언어들과 다른 민족의 언어들이 사용된다.

길라키어와 마잔데라니어는 이란 북부의 길란과 마잔데란에서 널리 사용된다. 탈리시어는 길란의 일부 지역에서 사용된다. 여러 종류의 쿠르드어는 쿠르디스탄과 그 주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후제스탄에서는 페르시아어의 여러 방언이 사용된다. 이란 남부에는 루리어와 라리어가 사용된다.

아제르바이잔어는 이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수민족 언어이며, 다른 튀르크어족 언어와 방언들은 여러 지역, 특히 아제르바이잔에서 발견된다. 주목할 만한 소수민족 언어로는 아르메니아어, 조지아어, 신아람어, 아랍어가 있다. 후제스타니 아랍어는 후제스탄의 아랍인들과 더 넓은 이란 아랍인 집단에 의해 사용된다. 체르케스어 또한 한때 많은 체르케스 소수민족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지만, 동화로 인해 상당수의 체르케스인들이 더 이상 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 언어의 비율은 계속해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특히 이란에서 가장 크고 두 번째로 큰 민족인 페르시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에 관한 비율이 그렇다. CIA의 월드 팩트북에서 제시된 비율은 페르시아어 53%, 아제르바이잔어 16%, 쿠르드어 10%, 마잔데라니어와 길라키어 7%, 루리어 7%, 투르크멘어 2%, 발루치어 2%, 아랍어 2%, 나머지 2%는 아르메니아어, 조지아어, 신아람어, 체르케스어이다.

7.4.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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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인구조사 기준 종교
종교비율인구
이슬람교99.4%74,682,938
기독교0.2%117,704
조로아스터교0.03%25,271
유대교0.01%8,756
기타0.07%49,101
무응답0.4%265,899


이란의 국교는 시아파 열두 이맘파이며, 전체 인구의 90~95%가 믿는다. 인구의 4~8%는 수니파 무슬림이며, 주로 쿠르드족과 발루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2%는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바하이 신앙 등 비무슬림이다.

이란 정부는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수니파 이슬람교를 공인하며, 이란 의회에 의석을 배정한다. 역사적으로 조로아스터교마니교 등 고대 이란 종교가 메디아, 아케메네스 제국, 파르티아, 사산 제국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사산 제국 멸망 후 이슬람화가 진행되었고, 16세기 사파비 왕조의 시아파 개종 명령 전까지는 수니파가 다수였다. 16세기 이후 시아파가 주류가 되면서 이란은 시아파의 중심 국가가 되었다.

아케메네스 제국키루스 대제바빌로니아를 침공하여 유대인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기록이 성경에 있을 정도로 유대교는 이란과 깊은 관계가 있다. 현재 이란에는 8,700~25,000명의 유대인이 거주하며, 중동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다. 기독교는 약 25~37만 명으로, 이슬람교를 제외한 공인 종교 중 가장 신도가 많다. 대부분 아르메니아인이나, 정부와 사회의 압력으로 시아파로 개종하는 경우도 많다.

이란 내 바하이 신앙은 정부의 공인을 받지 못하고 탄압받는다. 35만 명의 신도로 이슬람 다음으로 크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사형, 강제 개종, 시민권 거부 등 탄압을 받고 있다.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을 금하며,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한다.

8. 문화

이란은 건축, 석공, 금속가공, 직조, 도예, 서예,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달된 예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 강국으로서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고대 이란 예술은 스키타이 양식에 영향을 주었으며,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수용하여 페르시아 양식으로 재창조하면서 고대 이란 문화의 황금기를 맞았다. 이 시기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페르세폴리스파사르가다에 등이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아케메네스 제국이 멸망하고 셀레우코스 제국이 들어서면서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었다. 이후 사산 제국 시대에는 '이란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가 크게 발전했다.



유럽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쇠퇴하던 중세 시대에도 사산 제국은 그 성세를 유지하며 유럽과 아시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당시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서 이슬람 약학, 건축,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사파비 왕조 시대에는 정치, 경제 혁명을 통해 페르시아, 즉 이란의 정체성이 확립되었으며, 인근의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등 강대국에 문화를 전파했다. 또한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유럽에 화려한 정원 문화를 전파하기도 했다.

이란의 현대 예술은 카자르 왕조 시대의 유명한 사실주의 화가인 카말올몰크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1928년에는 그가 직접 이란 예술학교를 창립하기도 했다. 1900년대 초중반의 이란 현대 예술품들은 대부분 단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띠어 '커피하우스 양식'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1940년대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서구 양식이 유입되자 모더니즘 예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1949년 9월에는 테헤란에 첫 현대예술 갤러리가 개관하기도 했다. 모더니즘 계열의 현대미술은 1950년대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급격히 성장하였으나, 이슬람 혁명 이후에는 회화와 예술을 꺼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풍조로 인해 쇠퇴하였다.

8.1. 건축

이란에서는 최소한 기원전 7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축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페르시아인들은 건축에 처음으로 수학, 기하학, 천문학이라는 학문을 도입한 민족이기도 하다. 이란 건축물들은 주로 이란고원 지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중질의 점토나 사암을 주로 사용하여 만들어졌으며, 석회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접착하였다. 또한 건축에서 기하학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여 원과 사각형, 반복적인 패턴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또한 정원을 굉장히 중요시하여 주로 직사각형 모양의 안뜰과 대칭적인 모양의 안채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현재 이란은 유네스코에 7번째로 많은 수의 고대 건축물 유적들을 가지고 있다.

체헬 소툰 궁전 (Chehel Sotoun Palace)은 이스파한에 위치하며, 사파비 왕조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탈라르의 예시와 세계유산을 보여준다.
체헬 소툰 궁전 (Chehel Sotoun Palace)은 이스파한에 위치하며, 사파비 왕조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탈라르의 예시와 세계유산을 보여준다.

페르세폴리스 유적
페르세폴리스 유적

8.2. 요리

이란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고, 다양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식문화가 매우 다채롭다. 허브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며, 복숭아, 석류, 마르멜루, 살구, 건포도 등 과일을 음식에 넣기도 한다. 사프란, 말린 라임, 계피, 파슬리 등 향신료도 많이 사용하며, 양파와 마늘은 대부분의 요리에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재료들을 피클로 만들거나 생으로 먹기도 한다.

이란 요리는 카바브(케밥), 폴로(필라프), 스튜, 오믈렛, 밥, 난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쌀로 만든 여러 요리들을 주식으로 먹으며, 보통 식사에는 플레인 요구르트를 곁들인다. 요구르트와 소금, 허브 등을 섞어 만든 수프인 마스트-오-키아르, 허브와 바실, 파슬리 등으로 만든 샐러드인 사브지, 이란 전통 샐러드인 시라즈 샐러드, 피클인 토르쉬 등을 같이 먹는다. 애피타이저로는 시금치와 요구르트로 만든 요리인 보라니, 탄두리 양식으로 만든 요리인 미르자 카세미 등을 곁들이기도 한다.

이란에서는 차를 매우 즐겨 마신다. 이란은 세계 7대 차 생산국 중 하나이며, 손님을 대접할 때 차를 반드시 대접할 정도로 차 문화가 발달했다. 이란의 대표적인 디저트 중 하나는 팔루데인데, 장미수 시럽에 넣어 조린 파스타로 만든 요리로 기원전 4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사프란을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도 유명하며, 당근 주스와 함께 디저트를 즐기기도 한다. 이란은 캐비어로도 유명하다.

첼로 케밥 (밥과 케밥), 이란의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
첼로 케밥 (밥과 케밥), 이란의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


전형적인 이란 요리는 쌀과 고기, 채소, 견과류를 조합하여 만든다. 허브를 자주 사용하며, 자두, 석류, 모과, 말린 자두, 살구, 건포도 같은 과일도 사용한다. 사프란, 카다멈, 말린 라임과 기타 신맛을 내는 재료, 계피, 울금, 파슬리 같은 향신료와 조미료를 혼합하여 다양한 요리에 사용한다.

페르시아 요리 연구가 나지미예 바트만글리지(Najmieh Batmanglij)는 저서 『New Food of Life』에서 "이란 요리는 페르시아 융단처럼 색채가 풍부하고 복잡하다. 다른 중동 요리와 공통되는 부분이 많지만, 가장 세련되고 독창성이 풍부하다"라고 서술했다.

8.3. 달력

이란은 독자적인 달력 체계인 '헤지라 태양력' 혹은 '페르시아 태양력'을 사용한다. 이 달력은 이슬람이 페르시아 지방에 전파된 621년을 원년으로 하며, 춘분을 1년의 시작으로 한다. 1925년 3월 31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2개의 달로 이루어져 있고 각 달의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 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1월은 파르바딘, 2월은 오르디베헤스트, 3월은 초르다드, 4월은 티르, 5월은 아모르다드, 6월은 사리바르, 7월은 메흐르, 8월은 아반, 9월은 아자르, 10월은 데이, 11월은 바흐만, 12월은 에스판드이다.

이란에서는 이슬람 음력도 함께 사용하는데, 중요한 이슬람 행사들의 날짜는 이슬람 음력을 기준으로 한다. 서양력(그레고리력)은 민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국제적인 외교 행사 등에서만 간혹 사용된다.

이란의 법정 공휴일은 이란 태양력과 이슬람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매년 7월부터 8월까지의 라마단 금식 기간은 공휴일은 아니지만, 많은 관청과 은행이 문을 닫고, 무슬림들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며 무함마드의 고행을 되새긴다.

이란의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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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공휴일
날짜한국어 표기현지어 표기비고
이슬람력
무하람(1월) 9일
타수아제3대 이맘인 호세인이 우마이야 칼리파국 군에 포위되어 부상당한 날
이슬람력
무하람 10일
아슈라“정의가 악에 패한 날”
제3대 이맘 호세인의 순교를 추모한다.
이슬람력
사파르(2월) 20일
알바인아슈라 후 40일간의 상이 끝나는 날
이슬람력
사파르 28일
예언자 무함마드 승천일마지막 예언자무함마드의 서거일
이슬람력
사파르 28일
이맘 하산 모지타바 순교 기념일제2대 이맘의 서거일
이슬람력
사파르 29일
이맘 레자 순교 기념일제8대 이맘의 서거일
이슬람력
라비 알 아왈(3월) 17일
예언자 무함마드 탄생일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 축제
이슬람력
자마디 알 사니(6월) 3일
파티마 자흐라 순교 추도 기념일예언자 무함마드의 딸이자 초대 이맘 알리의 아내, 제2대 하산, 제3대 호세인의 어머니의 서거일
(서거일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이란에서는 이 날이 공식 공휴일)
이슬람력
라자브(7월) 13일
이맘 알리 탄생일초대 이맘의 탄생 축제
이슬람력
라자브 27일
마부아스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예언자로 임명받은 날
이슬람력
샤반(8월) 15일
니마예 샤반제12대 이맘 마흐디(잠재 이맘)의 탄생 축제
이슬람력
라마단(9월) 21일
이맘 알리 순교 기념일초대 이맘의 서거일
이슬람력
샤왈(10월) 1일
에이드 알 피트르단식 후 축제
이슬람력
샤왈 25일
이맘 자파르 사데그 순교 기념일제6대 이맘의 서거일
이슬람력
줄 알 카다(11월) 11일
이맘 레자 탄생일제8대 이맘의 탄생 축제
이슬람력
줄 알 히즈자(12월) 10일
에이드 알 아드하희생제. 가축을 희생하여 알라를 찬미한다.
이슬람력
줄 알 히즈자 18일
에이드 알 가디르 훔초대 이맘 알리가 예언자 무함마드로부터 계승자로 임명받은 날
이란력
팔르바르딘(1월) 1~4일
노루즈설날(춘분, 그레고리력3월 21일 경)
이란력
팔르바르딘 12일
이란 이슬람 공화국 기념일1979년 이란 이슬람 공화국 건국을 기념한다.
이란력
팔르바르딘 13일
시즈다 베 달“설날 13일” 집에 있는 것은 불길하다고 여겨진다.
이란력
호르다드(3월) 14일
이맘 호메이니 사망 기념일이란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의 서거일
이란력
호르다드 15일
호르다드 15일의 유혈 봉기 기념일1963년, 호메이니가 황제를 비난하고 체포된 것에 반발한 국민들의 폭동을 기념한다.
이란력
바흐만(11월) 22일
이란 이슬람 혁명 기념일1979년 이슬람 혁명에 의한 팔라비 왕조 붕괴를 기념한다.
이란력
에스판드(12월) 29일
석유 국유화 기념일1951년영국 자본 앵글로-이란 석유회사(AIOC)의 국유화를 기념한다.


이란의 새해춘분에 축하되는 노루즈 축제이며, 2009년 유네스코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8.4. 스포츠

폴로는 이란에서 유래했으며, 현지에서는 '코우간'이라고 부른다. 이란의 국민 스포츠는 레슬링이며, 세계적인 경기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이란의 전통 레슬링인 '코스티 에 팔레바니'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스키, 스노보드, 하이킹, 암벽 등반 등 산악 스포츠가 대중적이다. 토칼, 디진, 셈샤크 등의 산악 도시에는 여러 스키 리조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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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AFC 아시안컵에서 3회 우승했다. 남자 축구 대표팀FIFA 랭킹에서 2024년 4월 기준 20위를 기록하고 있다. 알리 다에이는 A매치 109골을 기록했다.

배구는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이란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2011년과 2013년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24년 1월 기준 FIVB 세계 랭킹 15위이다. 농구도 인기가 있으며, 이란 농구 국가대표팀은 2007년 이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3회 우승했다.

8.5. 언론

이란은 언론자유지수가 2018년 기준으로 180개국 중 164위에 오를 정도로 언론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이란의 언론을 총괄하는 부서는 '이슬람지도문화부'이며, 이 부서는 언론을 탄압하고 정부에 반하는 언론인들을 수감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란의 첫 신문은 19세기 중반 카자르 왕조 시대에 발간되었다. 대부분의 신문은 페르시아어로 발행되며, 테헤란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신문으로는 '에테마드', '에텔라트', '카이한', '함샤흐리', '레살라트', '샤르' 등이 있다. 이란에 본사를 둔 영자 신문으로는 테헤란 타임스, 이란 데일리, 파이낸셜 트리뷴 등이 있다.

이란의 국영 방송인 (IRIB)
이란의 국영 방송인 (IRIB)


텔레비전은 1958년에 이란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1978년에 전국적으로 컬러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이란의 최대 방송사는 (IRIB)이다. 이란은 현재까지도 텔레비전과 방송사에 엄격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수도 인구의 65%, 지방 인구의 30%~40%가 위성 통신을 통해 외국 방송에 자유롭게 접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은 1993년에 인터넷이 개통되었으며, 2017년 기준 이란 인구의 69.1%가 인터넷을 사용한다. 이란은 인터넷 사용자 수에서 17위를 차지하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검색 엔진은 구글이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페이스북을 포함한 많은 전 세계 주요 웹사이트에 대한 직접 접근이 2009년부터 차단되었으나, 이는 유명무실해져 2017년 기준 4천만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이란 내에 있다고 한다. 이란의 온라인 경제의 90%가량은 이란의 상거래 홈페이지인 ‘디기칼라’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매일 7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여 중동 전역에서 가장 많이 찾는 전자 상거래 사이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