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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량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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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량풍은 백제 시덕 관등의 채약사로, 554년 왜국에 파견되었다. 왜국은 553년 백제에 사신을 보내 약재와 학자 파견을 요청했고, 백제는 이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보냈다. 일본서기에는 513년 백제가 오경박사 단양이를 보냈으나 3년 후 귀국시키고 한고안무를 보냈으며, 554년에는 마정안, 왕도량, 왕류귀, 왕보손, 왕유타, 반량풍, 정유타를 왜국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마에카와 아키히사는 오경박사의 헌상이 임나 할양에 대한 대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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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량풍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반량풍
원어 이름潘量豐
로마자 표기Ban Ryangpung
국적백제
직업채약사
활동 시기백제 성왕 시대

2. 생애

553년 6월 왜국백제에 사신을 보내 약재와 여러 분야의 학자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백제는 다음 해인 554년 2월 전문가들을 파견하였으며, 이때 반량풍은 시덕 관등의 채약사로서 파견단(시신단, 施身但)에 포함되어 왜국으로 건너갔다.

2. 1. 왜국 파견

553년 6월, 왜국백제에 사신을 보내 약재와 여러 분야의 학자 파견을 요청했다.[2] 이에 백제는 다음 해인 554년 2월, 요청에 따라 전문가들을 왜국에 파견하였다. 이때 반량풍은 시덕 관등의 채약사로서 파견단(시신단, 施身但)에 포함되어 왜국으로 갔다.[2]

일본서기』는 513년백제오경박사 단양이를 보냈다가 3년 후 귀국시키고 대신 한고안무를 보냈으며, 554년에는 고덕 마정안을 비롯하여 역박사 왕도량, 오경박사 왕류귀, 역박사 왕보손, 의박사 왕유타, 그리고 채약사인 반량풍과 정유타왜국에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일본서기』는 이러한 파견을 백제가 왜국에 '공물을 바쳤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2]

한편, 일본 학자 마에카와 아키히사는 513년백제오경박사 단양이를 보낸 것에 대해, 512년부터 513년 사이 임나 지역 할양 문제와 관련하여 영토를 조정한 백제가 야마토 조정에 제공한 대가 성격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2. 2. 일본서기 기록

553년 6월 왜국이 약재 및 여러 분야의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자, 백제는 다음 해인 554년 2월에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이때 반량풍은 시덕 관등의 채약사로서 파견단에 포함되었다.

일본서기』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513년에 백제가 오경박사 단양이를 보냈다가 3년 후 귀국시키고 대신 한고안무를 보낸 사실과, 554년에는 고덕 마정안, 역박사 왕도량, 오경박사 왕류귀, 역박사 왕보손, 의박사 왕유타, 채약사 반량풍, 정유타 등을 왜국에 보낸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2] 주목할 점은 『일본서기』가 이러한 파견을 백제가 왜국에 '공물을 바쳤다'(貢上)는 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2]

일본의 역사학자 마에카와 아키히사는 오경박사 등의 파견이 512년부터 513년 사이 임나 지역 할양을 통해 영토를 확장한 백제가 그 대가로 야마토 조정에 행한 것이라는 해석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는 당시 백제와 왜의 관계 및 교류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논의될 수 있는 관점 중 하나이다.

참조

[1] 뉴스 한국 고대사회 外來人의 존재양태와 사회적 역할 https://cms.dankook.[...]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院 2017-07
[2] 서적 日本医学史研究余話 https://books.google[...] 과학서원 198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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