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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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경박사는 중국 한나라와 백제에서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담당했던 박사들을 지칭한다. 한나라에서는 무제 때 오경박사 제도가 처음 설치되었으며, 후한 시대에는 14명의 박사가 있었다. 백제는 일찍부터 오경박사 제도를 운영했으며, 이들은 일본에 초빙되어 문명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백제는 513년부터 여러 오경 박사들을 일본에 파견했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오경박사
오경박사
국가한나라
분야유학
임명 시기기원전 136년
폐지 시기수나라
관련 항목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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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국의 오경박사

박사는 진나라 출신의 관리로, 고금에 통달하여 여러 의견을 구하는 자가 많았다. 한나라 초기에는 유가의 경전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백가의 경전도 학관으로 세워졌다고 여겨진다. 문제·경제 시기에는 『시경』, 『주역』, 『춘추』가 이미 학관에 세워져 있었다.

건원 5년 (기원전 136년), 무제가 동중서의 헌책 (천인삼책)을 받아들여 오경박사를 두었다.

유교에서는 이를 다른 제자백가를 물리치고 유가만을 채택한 것 (소위 유교의 국교화)으로 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박사관에 단순히 오경박사를 증원한 것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처음에는 5명뿐이었으며, 선제 시기에 12명으로 증원되었다. 오경박사 아래에는 박사 제자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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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박사
시기춘추
문제조조한생rowspan="2" |
신공
경제rowspan="2" | 원고생동중서
호무생
무제장생한상공손홍
공안국서언저대
노사장숙
소제하후승채의소광
공패위현
구양고강옹
선제장우하후건의천대성공우
시수구양지여왕식엄팽조
임존장장안주경
공패설광덕정성
장산부식자공
왕길
후창

2.1. 후한의 14박사

후한에서는 14명의 박사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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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14박사
시구역, 맹희역, 양구역, 경방역
구양상서, 대하후상서, 소하후상서
노시(신공), 제시(원고생), 한시(한생)
대대례(대덕), 소대례(대성)
춘추엄씨춘추, 안씨춘추(공양전)

3. 백제의 오경박사

백제는 일찍부터 박사 제도를 운영했으며, 오경박사 외에도 여러 명칭의 박사가 있었으나 그중 오경박사가 가장 중요시되었다. 이들은 특히 일본에 초빙되어 문명을 전파하는 데 공헌하였다.일본서기』에 따르면, 513년 백제왜국에 오경 박사 단양얼을 공헌했지만, 3년 후에 단양얼을 귀국시키고 대신 한고안무를 공헌했으며, 554년에 마정안으로 바꾸어 왕도량, 왕류귀, 왕보손, 왕유타, 반량풍, 정유타왜국에 공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1. 백제 오경박사 파견에 대한 여러 해석

백제는 일찍부터 박사 제도를 운영했는데, 그중 오경박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들은 특히 일본에 초빙되어 문명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13년 백제는 왜국에 오경박사 단양얼을 보냈지만, 3년 후 단양얼을 귀국시키고 한고안무를 보냈다. 554년에는 마정안으로 교체되었고, 왕도량, 왕류귀, 왕보손, 왕유타, 반량풍, 정유타왜국에 파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오경박사의 파견은 512년부터 513년에 왜국이 백제에 임나를 할양한 것에 대한 답례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역사 구성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도 존재한다. 게이타이·긴메이 시대에 오경박사가 백제에서 교대로 파견되었다는 전설은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이들 오경박사는 조선사료인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백제가 왜국에 파견한 오경박사인 단양얼, 한고안무, 마정안, 왕도량, 왕류귀, 왕보손, 왕유타, 반량풍, 정유타 등은 모두 백제에 귀화중국인들이다.

오경박사 파견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 백제가 영토(임나)를 확장한 대가로 일본에 관인과 오경박사를 파견했다.
* 중국인이 일본에 와서 교대로 근무했다.
* 백제가 일본에 보내는 인질이 제도화되었다.

히라노 쿠니오는 "오경박사를 이끈 백제 관인을 제외하고는 남조인이다"라고 언급하며 두 번째 견해를 보충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