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이
1. 개요
단양이는 513년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인물이다. 백제가 야마토 정권에 임나 사현을 할양하고 기문과 대사를 하사한 것에 대한 답례로 파견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와 신라에 대항하기 위한 백제의 외교 정책의 일환이었다. 516년 한고안무와 교대되어 귀국했다. 단양의 파견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도 존재한다.
| 한자 | 段楊爾 |
|---|---|
| 로마자 표기 | Dan Yang-i |
| 국적 | 백제 |
|---|---|
| 활동 시기 | 6세기 |
| 주요 활동 | 백제 관료 왜와의 외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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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유학자 -
왕인
왕인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학문을 가르친 백제의 학자로, 실존 여부와 출신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일본에 문물을 전파한 인물로 숭상받는다. -
백제의 유학자 -
고안무
고안무는 백제가 일본에 파견한 오경박사를 지칭하며, 516년 게이타이 천황 시대에 파견되었으나 일본서기 기록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통해 파견 전승의 사실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다. -
무령왕 -
서동요
서동요는 백제 무왕의 아명인 서동이 신라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노래를 지어 퍼뜨린 설화로, 미륵사 창건, 익산 천도 등과 연결되어 다양한 해석과 논란을 낳고 있다. -
무령왕 -
동성왕
동성왕은 백제 제22대 왕으로 왕권 강화, 활발한 외교, 탐라 정벌 등 국력 신장에 기여했으나 말년의 폭정으로 암살당했으며, 무령왕과의 관계는 기록이 엇갈려 논쟁거리가 된다. -
6세기 사람 -
진평왕
진평왕은 신라의 제26대 왕으로, 중앙 관제 정비, 불교 장려, 수·당과의 외교 관계 수립, 백제·고구려 침략에 대한 국방 강화, 김유신 등용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사후 딸 덕만이 선덕여왕으로 즉위하였다. -
6세기 사람 -
법흥왕
법흥왕은 신라의 제23대 왕으로, 율령 반포, 불교 공인, 군사 제도 개혁, 가야 정복 등을 통해 왕권 강화와 국가 체제 정비에 힘썼으며,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자주적인 국가임을 천명했다.
2. 인물
단양이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513년 백제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다. 호즈미노 오시야마가 백제에서 귀국할 때 姐弥文貴(사미몬키)・州利即爾(츠리소니) 두 장군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2.1. 임나 사현 할양 문제와 단양이 파견
513년(게이타이 천황 7년) 6월, 호즈미노 오시야마가 백제에서 귀국할 때 姐弥文貴(사미몬키)・州利即爾(츠리소니) 두 장군과 함께 동행했다。
전년 12월, 호즈미노 오시야마는 백제에 대한 "임나 사현 할양" 문제로 오오무라지오오토모노 카네무라의 찬동을 얻어 사현에 대한 백제의 진출을 허용했다。 같은 해 11월, 야마토 정권은 단양이가 내일(來日)하자 기문(己汶)・대사(帯沙)를 백제에 하사했다。 이는 단양이의 내일에 대한 답례로 볼 수 있으며, 단순 귀화가 아닌 공상・교대 제도였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고구려나 신라에 대항하기 위한 백제의 외교 정책 중 하나였다고도 볼 수 있다.
516년(게이타이 천황 10년) 9월, 백제의 요청에 의해 한고안무와 교대되어 귀국했다。 한편, 『일본서기』의 역사 구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문헌학적 비판에서는 게이타이킨메이조에 오경 박사가 백제로부터 교대 파견되었다는 오경 박사 전설전승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