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절
1. 개요
백문절은 신라 간관 백중학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의 문신이다. 1238년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중서사인, 이부시랑, 국자좨주 등을 역임했다. 충렬왕 때 낭사 파직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복직하여 국학대사성, 보문각학사를 거쳐 1280년 동지공거로 과거를 주관했다. 1282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문간이다. 그는 원종 복위 시 임연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간언하여 지조를 보여주었으며, 문장력이 뛰어나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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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 백씨 -
백이정
백이정은 고려 후기 안향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연구하고 보급하여 도학과 예학 발전에 공헌한 문신으로, 충선왕 때 도감사를 지내고 상당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헌이다. -
고려 후기의 문신 -
이순우 (고려)
이순우는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문과에 장원 급제 후 명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최충헌 제거 모의에 연루되어 살해되었으며, 이규보와 시를 주고받는 등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
고려 후기의 문신 -
백원항
백원항은 고려 후기 문신으로 국자감시에 장원 급제 후 관직에 나아가 선군 설치 별감사, 전교령, 동지공거 등을 역임하며 활동했으며, 충선왕 환국 청원 상소, 행궁 여비 착복 등 공과가 공존하고 그의 시는 동문선에 전해진다. -
1282년 사망 -
니치렌
니치렌은 13세기 일본의 승려로, 법화경 중심의 불교를 주창하며 새로운 종파를 창시하고,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사회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현실주의적 구원관과 실천적 신앙을 강조한 인물이다. -
1282년 사망 -
아바카 칸
아바카 칸은 훌라구의 아들이자 일 칸국의 제2대 칸으로, 킵차크 칸국, 차카타이 칸국과의 전쟁과 서방 기독교 세력과의 외교 관계 추진, 이란 지역 통치 정비, 몽골 제국 영향력 확장 등의 활동을 펼쳤다.
2. 생애
신라 백중학의 후손으로 남포군 사람이다. 1238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고, 여러 관직을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이르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과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했다.
충렬왕 때 사의대부(司議大夫)가 되었는데, 당시 아무 공훈도 없는데다 집안에 결함이 있는 자가 벼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낭사(郞舍)가 임명장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왕이 거듭 재촉했으나 명을 따르지 않자, 어떤 자가 원한을 품고 왕의 측근들을 들쑤셔 왕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마침 승지(承旨) 이존비(李尊庇)가 감찰사(監察司)의 장계를 바치려 하자, 왕은 첨의부(僉議府)의 장계라고 생각해 크게 성을 내어 꾸짖으며 이존비를 쫓아냈으며, 이어 쿠치(忽赤) 최숭(崔崇)을 시켜 백문절 등의 낭사를 체포하게 했다. 이존비가 사실을 밝히려고 다시 나아가자 왕이 낭사를 구하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꾸짖어 멈추게 한 다음 바로 백문절 등을 파직시켰다. 이에 이존비가 큰 소리로 “군왕이 신하의 마음을 몰라주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왕명의 출납을 맡겠습니까? 당장 저를 파면해 주소서!”라고 외치니 이지저(李之氐)가 나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그 장계를 받아 살펴본 후 후회하며 모두를 석방하였다.
얼마 뒤에 백문절은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로 승진했고, 1280년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하여 이백기 등 35명을 급제시켰다.
1282년 졸(卒)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고려사에 열전이 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신라 간관(諫官) 백중학의 후손으로 남포군 사람이다. 1238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고, 여러 관직을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이르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과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했다.
2.2. 낭사 파직 사건과 복직
충렬왕 때 사의대부(司議大夫)가 되었는데, 당시 아무 공훈도 없는데다 집안에 결함이 있는 자가 벼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낭사(郞舍)가 임명장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왕이 거듭 재촉했으나 명을 따르지 않자, 어떤 자가 원한을 품고 왕의 측근들을 들쑤셔 왕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마침 승지(承旨) 이존비(李尊庇)가 감찰사(監察司)의 장계를 바치려 하자, 왕은 첨의부의 장계라고 생각해 크게 성을 내어 꾸짖으며 이존비를 쫓아냈으며, 이어 쿠치(忽赤) 최숭(崔崇)을 시켜 백문절 등의 낭사를 체포하게 했다. 이존비가 사실을 밝히려고 다시 나아가자 왕이 낭사를 구하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꾸짖어 멈추게 한 다음 바로 백문절 등을 파직시켰다. 이에 이존비가 큰 소리로 “군왕이 신하의 마음을 몰라주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왕명의 출납을 맡겠습니까? 당장 저를 파면해 주소서!”라고 외치니 이지저(李之氐)가 나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그 장계를 받아 살펴본 후 후회하며 모두를 석방하였다.
얼마 뒤에 백문절은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로 승진했고, 1280년(충렬왕 6)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하여 이백기(李伯琪) 등 35명을 급제시켰다.
2.3. 관직 생활과 사망
신라 간관(諫官) 백중학(白仲鶴)의 후손으로 남포군 사람이다. 1238년(고종 25)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고, 관직을 두루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이르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과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했다.
충렬왕(忠烈王)조에 사의대부(司議大夫)가 되었는데, 당시 아무 공훈도 없는데다 집안에 결함이 있는 자가 벼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낭사(郞舍)가 임명장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왕이 거듭 재촉했으나 명을 따르지 않자, 어떤 자가 원한을 품고 왕의 측근들을 들쑤셔 왕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마침 승지(承旨) 이존비(李尊庇)가 감찰사(監察司)의 장계를 바치려 하자, 왕은 첨의부의 장계라고 생각해 크게 성을 내어 꾸짖으며 이존비를 쫓아냈으며, 이어 쿠치(忽赤) 최숭(崔崇)을 시켜 백문절 등의 낭사를 체포하게 했다. 이존비가 사실을 밝히려고 다시 나아가자 왕이 낭사를 구해 보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꾸짖어 멈추게 한 다음 바로 백문절 등을 파직시켰다. 이에 이존비가 큰 소리로 “군왕이 신하의 마음을 몰라주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왕명의 출납을 맡겠습니까? 당장 저를 파면해 주소서!”라고 외치니 이지저(李之氐)가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이 그 장계를 받아 살펴본 후 후회하며 모두를 석방하였다.
얼마 뒤에 백문절은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로 승진했고, 1280년(충렬왕 6)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하여 이백기(李伯琪) 등 35명을 급제시켰다.
1282년(충렬왕 8) 졸(卒)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고려사에 열전이 있다.
3. 일화와 평가
1269년(원종 10년) 원종 복위와 관련한 일화에서, 백문절은 평소 나약하게 보였으나 붓을 던지고 왕에게 간언하는 모습으로 지조와 절개가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고려사』는 백문절에 대해 "문장력이 풍부해 물이 콸콸 쏟아지듯 글을 써내려갔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나, 재주를 가지고 뽐낸 적이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3.1. 원종 복위 건의
1269년 원종이 복위해 원나라로 가게 되자, 임연은 아들 임유간(林惟幹)과 심복들을 시켜 왕을 호종하게 함으로써 왕을 폐위한 사건에 대해 절대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원종이 백문절에게 병으로 왕위에서 물러났다는 내용의 표문을 짓게 하자 백문절은 붓을 던지고 울면서 간언했고, 이에 원종이 느낀 바 있어 황제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했다. 백문절이 늘 나약한 듯이 보였으나, 이런 일이 있자 사람들은 그가 지조와 절개가 있는 사람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3.2. 평가
는 백문절에 대해 그의 열전에서 "백문절은 문장력이 풍부하여 글을 쓸 때 물이 콸콸 쏟아지듯 막힘이 없었기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지만, 자신의 재주를 뽐낸 적이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1269년(원종 10년) 원나라로 가게 된 원종이 백문절에게 병으로 왕위에서 물러났다는 내용의 표문을 짓게 하자, 백문절은 붓을 던지고 울면서 간언했다. 이에 원종이 느낀 바 있어 황제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했다. 이 일로 사람들은 평소 나약하게 보였던 백문절에게 지조와 절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4. 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증조부 | 백광우(白光宇) |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郎) |
| 조부 | 백여주(白汝舟) | 좌승선(左承宣)·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지제고(知制誥) |
| 아버지 | 백경선(白景瑄) | 예부낭중(禮部郞中), 증(贈) 우복야(右僕射) |
| 초배 | 전주 이씨(全州李氏) | |
| 계배 | 성주 이씨(星州李氏) | 이세주(李世柱)의 딸 |
| 장남 | 백이정(白頤正) |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 상당군(上黨君) 문헌공(文憲公) |
| 장자부 | 구 안동 김씨(舊 安東金氏) | 중대광(重大匡) (上洛君) 김순(金恂)의 2녀 |
| 차남 | 백효주(白孝珠) | 대호군(大護軍) |
| 차자부 | 평양 조씨(平壤趙氏) |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양군(平壤君) 조인규(趙仁規)의 3녀 |
| 매부 | 이진(李瑨) | 문과에 급제했으나 벼슬하지 않음 |
| 생질 | 이존비(李尊庇) |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