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투크족
1. 개요
베오투크족은 과거 뉴펀들랜드 전역에 걸쳐 살았던 원주민이다. 유럽인과의 접촉을 피하며 내륙으로 이동했으나, 자원 경쟁, 질병, 다른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인구가 급감했다. 19세기 초까지 일부 생존자가 있었으나, 마지막 생존자인 샤나우디티트의 사망 이후 절멸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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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의 역사 -
마르클란드
마르클란드는 그린란드인들의 사가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현재 캐나다 래브라도 지방 해안 일부로 추정되며, 노르드인들은 이곳을 "숲의 땅"이라 불렀고 목재를 구하기 위해 방문했으며, 콜럼버스 이전 북유럽 외 지역에서 신세계를 언급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의 역사 -
뉴펀들랜드 자치령
뉴펀들랜드 자치령은 1907년부터 1949년까지 존속했던 북아메리카의 영국 자치령으로, 경제난과 정치 부패로 영국 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다가 주민 투표를 통해 캐나다의 10번째 주로 편입되었으며, 세계 대전 참전과 전략적 위치로 경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
절멸한 민족 -
차루아족
차루아족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지역에 거주하며 스페인 정복에 저항하다가 살시푸에데스 학살로 멸망했지만, 후손들은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
절멸한 민족 -
재가승
재가승은 함경도 북부 지역에 거주하며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유지했던 가정을 가진 승려 집단을 지칭하며, 이들은 여진족의 후예로 추정되고 농업에 종사하며 불교적 생활을 했지만 일반 승려와는 다른 생활 양식을 보였다. -
캐나다의 원주민 -
도싯 문화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후 1000년경까지 캐나다 북극과 그린란드 일대에 존재했던 도싯 문화는 해양 포유류 사냥 기반의 독자적인 생활 방식과 정교한 예술품을 가진 고대 북극 원주민 문화로, 1925년 케이프 도싯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알려졌으며 쇠퇴 원인과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사카크 문화와 유전적 연속성을 가진다. -
캐나다의 원주민 -
크리족
크리족은 캐나다와 미국에 거주하며 다양한 방언과 문화를 가진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고, 크리어 보존과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생활
베오투크족은 30~55명으로 구성된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대가족 단위의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 인류학적으로 다른 수렵채집 민족들처럼 집단의 지도자는 있었을 것이나, 더 체계적인 수장의 지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1000년경 레이프 에이릭손이 이끈 바이킹족 탐험대가 만났다고 전해지는 스크렐링기의 실체 후보이다. 1497년 잉글랜드 왕이 보낸 존 캐벗의 탐험대를 시작으로 유럽의 탐험가나 정착민들의 물결이 도래하기 시작하며 유럽인과 본격적인 접촉이 시작되었다.
다른 몇몇 원주민 집단과 달리 베오투크족은 유럽인들과의 접촉을 피하려 했으며 유럽인 정착민이 늘어나자 섬 내륙 지역으로 이동했다. 베오투크족은 간간이 유럽인들이 남긴 도구, 자재 등을 줍기 위해 과거의 캠프로 돌아왔다. 정착민과 베오투크족은 연어, 물개, 새 등 천연 자원을 놓고 경쟁했으며 내륙에서는 모피 사냥꾼들이 함정을 설치하여 순록 사냥을 방해했고 베오투크족의 캠프나 물품을 약탈했다. 베오투크족은 유럽인의 정착지에서 훔치거나 약탈, 때로는 매복 공격하는 일이 빈발했다. 이러한 조우 방식은 적대감과 상호 폭력으로 이어졌고 우수한 무기를 가진 정착민이 사냥과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과 달리 베오투크족은 총기 수용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 절멸
유럽인 도래 이후 베오투크족은 전통적인 해안 정착지에서 밀려나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물고기와 물개를 잡지 못하게 되자 순록 사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는 뉴펀들랜드의 순록 개체 수 감소와 생태계 변화를 초래하여 영양실조와 기아를 불러왔다. 또한 케이프브레턴섬에서 이주해 온 미크마크족과 래브라도에서 온 이누이트족 등 다른 원주민 집단과의 경쟁도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외에도 천연두 등 유럽에서 유래한 전염병이나 풍토병이 더해져 베오투크족의 인구가 급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1. 최후의 생존자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초 북부 반도에 일부 베오투크족 생존자들이 남아있었다. 19세기 끄트머리에 남아있던 베오투크족의 인구 추정치는 150명에서 3,000명까지 다양하다. 당시 베오투크족의 상황에 대한 정보는 샤나우디티트 (데마스뒤트의 친척)라는 최후의 베오투크족 여성이 "익스플로이츠 강과 레드인디언 호수에서 겨울을 보낸 뒤 노트르담만으로 피난갔다"고 전해준 설명에 주로 기반한다. 샤나우디티트가 사망한 이후 베오투크족은 발견된 바가 없어 절멸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