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창
1. 개요
병창은 전한 시대의 인물이다. 관내후를 이어받았고, 중랑장을 지내다가 박양후에 봉해졌다. 원수 2년에는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원시 2년 동군태수로 좌천된 후 사망했다. 시호는 강이며, 작위는 아들 병병이 이었다.
-
2년 사망 -
루키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는 아우구스투스의 손자이자 양자로서 형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 양육되었으나, 기원후 2년 갑작스럽게 병사하여 로마 제국의 후계 구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
2년 사망 -
반첩여
반첩여는 한나라 성제의 후궁 첩여로, 뛰어난 미모와 문학적 재능을 지녔으나 조비연 자매로 인해 쇠퇴한 삶을 살았으며, 시와 왕정군과의 협력을 통해 억울함을 극복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전한의 중랑장 -
위관 (전한)
수레 기예로 발탁되어 중랑장까지 오른 위관은 오초칠국의 난 평정 공으로 건릉후에 봉해지고 경제의 신임으로 태자태부, 어사대부, 승상을 역임했으나 무제 즉위 후 면직되었으며, 사후 경 또는 애 시호를 받았다. -
전한의 중랑장 -
유잠
유잠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양성후, 제조, 중랑장, 성문교위, 태상, 종정을 역임했으며, 《한서》에 기록이 남아 있고 아들 유립이 작위를 이었다. -
전한의 은택후 -
곽거병
곽거병은 전한 무제 시대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명장으로, 젊은 나이에 표기장군과 대사마에 오르며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24세에 병사했으며, 그의 묘는 흉노를 짓밟는 말의 석상으로 유명하다. -
전한의 은택후 -
여록
여록은 전한 고황후 시기에 고황후의 신임을 받아 군권을 장악하고 조왕에 봉해지는 등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나,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주살된 여씨 일족의 핵심 인물이다.
2. 생애
병현은 관내후를 이었고, 중랑장을 지내던 중 박양후(博陽侯)에 봉해졌다. 박양후는 본래 병길이 받았던 작위로, 뒤를 이은 병현이 죄를 지어 박탈당했었는데, 성제가 병길의 생전의 공적을 추념하여 회복시켜 주었다. 원수 2년(기원전 1년)에 태상에 임명되었고, 원시 2년(2년) 동군태수로 좌천되어 그 해에 죽었다. 시호는 강(康)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병병이 이었다.
2.1. 관직 임명
관내후를 이어받았고, 중랑장을 지내던 중 박양후(博陽侯)에 봉해졌다. 박양후는 본래 병길이 받았던 작위로, 뒤를 이은 병현이 죄를 지어 박탈당했었는데, 성제가 병길의 생전의 공적을 추념하여 회복시켜 주었다.
원수 2년(기원전 1년), 태상에 임명되었다.
2.2. 주요 관직 역임
원수 2년(기원전 1년), 태상에 임명되었다.
원시 2년(2년), 동군태수로 좌천되었고 그 해에 죽었다. 시호를 강(康)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병병이 이었다.
2.3. 사망과 사후
원시 2년(2년), 동군태수로 좌천되었고 그 해에 사망하였다. 시호를 강(康)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병병이 이었다.
3. 평가
병현은 관내후 작위를 이어받았고, 중랑장을 지내던 중 박양후에 봉해졌다. 박양후는 본래 아버지 병길이 받았던 작위였으나, 병현이 죄를 지어 박탈당했었다. 성제가 병길의 생전 공적을 기려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당시 정치 상황과 병현 가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4. 가계
병현은 아버지 병길이 받았던 작위인 관내후를 이어받았고,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이후 박양후(博陽侯)에 봉해졌는데, 이 작위는 본래 아버지 병길의 것이었으나 병현이 죄를 지어 박탈당했었다. 성제가 병길의 공적을 기려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원수 2년(기원전 1년), 태상에 임명되었다. 원시 2년(2년), 동군태수로 좌천되었고 그 해에 사망했다. 시호는 강(康)이고, 작위는 아들 병병이 이었다.
5. 출전
반고의 한서 권18 외척은택후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권74 위상병길전에 관련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