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병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박양후에 봉해졌으나 종묘에서 부정한 행위로 관내후로 강등되었다. 이후 태복, 건장위위를 역임하고 영광 원년에 다시 태복이 되었으나 부정부패로 인해 관직을 잃었다. 성문교위를 지내다 죽었으며, 아들 병창이 관내후를 이었다. 그의 아버지 병길은 병현의 종묘에서의 부주의한 행동을 보고 집안의 작위를 끊을 인물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병현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전한의 관내후 - 병창
    병창은 전한 시대에 관내후를 계승하고 중랑장, 박양후, 태상을 지냈으나 동군태수로 좌천되어 사망한 인물로, 그의 행적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 전한의 관내후 - 이저
    이저는 전한 시대 경제를 섬긴 인물로, 무제 시기 강노장군으로서 흉노 정벌에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여러 전투에서 흉노를 무찌르고 좌풍익을 지냈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은택후 - 곽거병
    곽거병은 전한 무제 시대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명장으로, 젊은 나이에 표기장군과 대사마에 오르며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24세에 병사했으며, 그의 묘는 흉노를 짓밟는 말의 석상으로 유명하다.
  • 전한의 은택후 - 여록
    여록은 전한 고황후 시기에 고황후의 신임을 받아 군권을 장악하고 조왕에 봉해지는 등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나,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주살된 여씨 일족의 핵심 인물이다.

2. 행적

병현은 병길의 아들로, 감로 연간에 죄를 지어 박양(博陽侯)에서 관내후로 강등되었다. 이후 태복, 건장위위(建章衛尉)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영광 원년(기원전 43년), 다시 태복에 임명되었으나, 부정한 이득을 취하여 원제에게 처벌받았다. 이후 성문교위(城門校尉)를 지내던 중 죽었고, 아들 병창이 관내후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작위 계승

박양 였던 아버지 병길의 뒤를 이어 박양후에 봉해졌으나, 감로 연간에 말을 타고 종묘에 드나든 죄로 관내후로 강등되었다.

2.2. 작위 강등과 관직 변동

감로 연간에 말을 타고 종묘에 드나든 죄로 관내후로 강등되었다. 이후 태복, 건장위위(建章衛尉)를 역임하였다.

영광 원년(기원전 43년), 다시 태복에 임명되었다. 재임 중 속관들을 부려 부정한 이득을 취하였는데, 숨긴 것이 10 전에 이르렀다. 사례교위 창(昌)이 이를 탄핵하여 잡아들일 것을 상주하였으나, 원제병길이 생전에 세운 공적을 생각하여 죽이지 않는 대신 관직을 빼앗고 식읍 4백 호를 몰수하였다.

이후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성문교위(城門校尉)를 지내던 중 죽었고, 관내후는 아들 병창이 이었다.

2.3. 부정부패와 몰락

영광 원년(기원전 43년), 다시 태복에 임명되었다. 재임 중 속관들을 부려 부정한 이득을 취하였는데, 숨긴 것이 10에 이르렀다. 사례교위 창(昌)이 이를 탄핵하여 잡아들일 것을 상주하였으나, 원제병길이 생전에 세운 공적을 생각하여 죽이지 않는 대신 관직을 빼앗고 식읍 4백 호를 몰수하였다.

2.4. 이후 행적과 죽음

박양에서 관내후로 강등된 후, 태복·건장위위(建章衛尉)를 역임하였다.

영광 원년(기원전 43년) 다시 태복에 임명되었으나, 재임 중 속관들을 부려 부정한 이득을 취하여 숨긴 것이 10에 이르렀다. 사례교위 창(昌)이 이를 탄핵하여 잡아들일 것을 상주하였으나, 원제는 아버지 병길이 생전에 세운 공적을 생각하여 죽이지 않는 대신 관직을 빼앗고 식읍 4백 호를 몰수하였다.

이후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성문교위(城門校尉)를 지내던 중 죽었고, 관내후는 아들 병창이 이었다.

3. 일화

병현은 젊은 시절 아버지 병길과 함께 고제의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게으름을 피워 저녁이 되어서야 옷을 갖춰 입었다. 이를 본 병길은 크게 화를 내며 "우리 집안의 작위를 끊을 놈은 필시 병현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훗날 병현은 부정을 저질러 실제로 작위를 잃어, 아버지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다.

3.1. 아버지 병길의 경고

젊어서 제조(諸曹)였을 때, 병길을 따라 고제의 종묘에 제사를 지낸 적이 있었다. 이때 병현은 게으름을 피워 저녁이 되어서야 옷을 차려입고 나왔는데, 병길은 크게 노하여 아내에게 말하였다.

:"지엄한 종묘에서 경거망동하다니, 우리 집안의 작위를 끊을 놈은 필시 병현일 것이오."

과연 병길의 말대로 병현은 부정을 저질러 작위를 잃었다.

4. 출전

* 반고의 《한서》
권18 외척은택후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 권74 위상병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