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 반
1. 개요
보비 반은 유대계 보드빌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대공황 시대의 공연을 보며 성장했다. 그는 트럼펫 연주자로 경력을 시작하여 캣킬 산맥에서 공연했으며, 1950년대 초 메트로-골드윈-메이어와 계약을 맺고 영화와 뮤지컬에 출연했다. 1960년대에는 미키 루니와 함께 코미디 작업을 했으며, 1970년대에는 게임 쇼 진행과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하며 활동했다. 1980년 뇌종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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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출생 -
프란체스코 코시가
프란체스코 코시가는 이탈리아의 내무부 장관, 총리,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알도 모로 납치 사건과 비밀 조직 글라디오 등의 논란을 거치며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중요한 논쟁을 남긴 인물이다. -
1928년 출생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7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
캘리포니아주의 민주당 당원 -
카멀라 해리스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2021년부터 제49대 부통령으로 재임 중이며,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과 상원의원을 거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
캘리포니아주의 민주당 당원 -
낸시 펠로시
낸시 펠로시는 1940년생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캘리포니아주 연방 하원 의원을 거쳐 2007년부터 2011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하원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명예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미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
윌리엄 프롤리
미국의 배우이자 보드빌리언인 윌리엄 프롤리는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시트콤 《아이 러브 루시》의 프레드 머츠 역과 《내 세 아들》의 '버브' 오케이시 역으로 특히 유명하며 《아이 러브 루시》로 다섯 차례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
미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
에드 윈
에드 윈은 독특한 코미디 스타일로 브로드웨이,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에서 활약하며 큰 인기를 얻은 미국의 배우, 코미디언, 작가, 연출가, 제작가이다.
2. 초기 생애
반은 유대계 보드빌 배우 부모에게서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많은 기억에 남는 대공황 시대의 공연들을 보며 백스테이지에서 자랐다. 원래 반은 아버지의 예명( 트리오 "고든, 리드 앤 킹"에서 유래)을 따서 "킹"을 예명으로 사용했다. 그는 마침내 누나의 침실에 걸려 있는 반 존슨 포스터를 보고 "반"으로 예명을 정했다. 1976년 인터뷰에서 반은 '스타인'에서 '반'으로 이름을 법적으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3. 경력
보비 밴은 원래 트럼펫 연주자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으나, 캣킬 산맥에서의 한 공연을 계기로 노래와 춤 실력을 인정받아 솔로 공연가로 나서게 되었다. 이후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 섰다.
1950년대 초에는 메트로-골드윈-메이어와 계약을 맺고 영화계로 진출하여 도비 길리스의 사건(1953), 비코즈 유어 마인, 나를 깨물어 줘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스몰 타운 걸(1953)에서 보여준 독특하고 열정적인 춤은 그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기억된다.
1960년대에는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미키 루니와 함께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으며, 루니의 시트콤 미키에도 출연했다.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안무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활동 영역을 넓혀 Tattletales, 매치 게임 등 여러 게임 쇼에 아내 일레인 조이스와 함께 출연했으며, Showoffs, The Fun Factory, Make Me Laugh 등 게임 쇼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같은 시기 브로드웨이로 복귀하여 1971년 뮤지컬 노, 노, 나네트 재공연에 출연해 토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뮤지컬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1973)에 출연했으며, 그의 인상적인 춤 장면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파트 II(1976)에 포함되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에디 카프라 미스터리(1978), 배틀스타 갈락티카(1979), 러브 보트(1979) 등에도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뮤지컬 Anything Goes(1977)와 댐 양키스(1979) 등 무대 공연에도 참여했다.
3.1. 초기 경력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밴은 트럼펫 연주자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밴드와 함께 캣킬 산맥에서 공연했는데, 한 공연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 역할을 대신 맡게 되었다. 그의 무대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솔로 라이브 공연에 나서게 되었다. 이후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 섰다.
1950년대 초반에는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와 계약을 체결했다. 1953년에는 영화 도비 길리스의 사건에서 주연을 맡았고, 뮤지컬 영화 비코즈 유어 마인과 나를 깨물어 줘에도 출연했다. 특히 1953년작 스몰 타운 걸에서 보여준 열정적인 춤은 오랫동안 회자되었는데, 평론가 할 에릭슨은 2010년에 "마치 인간 포고 스틱처럼 보였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3.2. MGM과의 계약 및 영화 활동 (1950년대)
1950년대 초, 밴은 메트로-골드윈-메이어와 계약을 맺었다. 1953년에는 영화 도비 길리스의 사건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았으며, 같은 해 뮤지컬 비코즈 유어 마인과 나를 깨물어 줘에도 출연했다. 특히 1953년 작 스몰 타운 걸에서는 마치 인간 포고 스틱처럼 행동하는 독특한 춤 장면을 선보였다. 2010년 평론가 할 에릭슨은 이 장면에 대해 언급하며 밴이 "열광적인 젊은이"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했다.
3.3. 텔레비전 및 코미디 활동 (1960년대)
1960년대에 밴은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미키 루니와 함께 코미디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루니가 주연한 시트콤 미키의 세 에피소드에 출연하여 얹혀사는 처남 역할을 맡았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안무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3.4. 게임 쇼 및 브로드웨이 활동 (1970년대)
1970년대에 밴은 다양한 게임 쇼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두 번째 부인인 일레인 조이스와 함께 Tattletales와 매치 게임과 같은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다. 또한 게임 쇼 Showoffs, The Fun Factory의 진행을 맡았으며, 1979년부터 1980년까지는 신디케이트 방식으로 부활한 Make Me Laugh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71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재공연된 뮤지컬 노, 노, 나네트에 출연하여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1977년 6월에는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켄리 플레이어스 극단에서 공연된 뮤지컬 Anything Goes에서 빌리 크로커 역을 맡았다. 1979년 8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의 산호세 시민 라이트 오페라에서 공연된 뮤지컬 댐 양키스에서 영 조(Young Joe) 역할을 연기했으며, 당시 상대역은 배우 밴 존슨이었다.
영화와 텔레비전 분야에서도 꾸준히 활동했다. 1973년에는 뮤지컬 리메이크작 잃어버린 지평선에 출연했는데, 이것이 그가 자신의 전통적인 노래와 춤의 인물을 스크린에 가져온 마지막 기회였다. 그의 스몰 타운 걸(1953)의 독특한 댄스 넘버는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파트 II(1976)에 실렸다. 1978년에는 NBC 범죄 드라마 시리즈 에디 카프라 미스터리 에피소드 "2백만 달러 밀수범"에서 사기꾼 워렌 커스터를 연기했다. 1979년에는 오리지널 배틀스타 갈락티카 에피소드 "지구에서 온 인사"에서 로봇 헥터로 출연하여 베테랑 노래와 춤꾼 레이 볼거 (벡터)와 함께 작업했다. 바비 밴과 그의 아내 일레인 조이스는 러브 보트 S2 E16 "고퍼의 기회"에서 고퍼를 고용하고 싶어하는 호텔리어 필과 멜로디 리빙스턴으로 출연했다. 해당 에피소드는 1979년 1월 20일에 처음 방영되었다.
3.5. 후기 활동 (1978년 ~ 1980년)
1978년에는 NBC 범죄 드라마 시리즈 에디 카프라 미스터리의 "2백만 달러 밀수범" 에피소드에서 사기꾼 워렌 커스터를 연기했다. 1979년 1월 20일에 방영된 러브 보트 시즌 2 에피소드 16 "고퍼의 기회"에서는 아내 일레인 조이스와 함께 호텔리어 필과 멜로디 리빙스턴으로 출연하여 고퍼를 고용하려는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 8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의 산호세 시민 라이트 오페라에서 공연된 뮤지컬 댐 양키스에 영 조 역으로 출연했으며, 상대역은 밴 존슨이었다. 또한 1979년에는 오리지널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지구에서 온 인사" 에피소드에서 로봇 헥터 역으로 출연하여 베테랑 배우 레이 볼거(벡터 역)와 호흡을 맞췄다. 1979년부터 1980년 시즌 동안에는 게임 쇼 Make Me Laugh의 신디케이트 부활 버전을 진행했다.
4. 사생활
미국 민주당원이었던 반은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애들레이 스티븐슨을 지지했다.
반은 1952년 9월 배우 다이앤 개릿과 결혼했으나, 이 사실은 1953년 1월까지 비밀로 유지되었다. 부부는 몇 년간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으며, 1956년 유산을 겪은 후 1961년 생후 5일 된 아들 피터를 입양했다.
1959년, 반과 개릿은 차를 타고 가던 중 뒤에서 추돌당하는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그들은 상대 운전자를 상대로 107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개릿은 사고 후 3주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고 증언했으며, 두 사람 모두 허리 부상을 주장했다. 법원은 반에게 1500USD, 개릿에게 5000USD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반의 차에 함께 타고 있던 주디 갈랜드가 법정에서 그들을 위해 증언했다.
반과 개릿 부부는 1964년 1월 별거에 들어갔고, 같은 해 7월 재결합을 고려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결국 1966년 9월 27일 이혼이 확정되었다. 반은 아들의 응급 엉덩이 수술 때문에 잠시 돌아왔지만, 재결합 목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1964년 11월,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은 반이 "(12년 만에 이혼한 후) 배우 에멀린 헨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이후 반은 1968년 브로드웨이 배우 엘레인 조이스와 재혼했다.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67년 10월 30일에 결혼 발표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결혼하지 않았고, 11월에는 원래 12월 2일에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조이스의 오빠 결혼식 날짜와 겹쳐 다른 날짜를 택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968년 2월에는 3월 2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결혼할 것이라고 다시 발표되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1968년 5월 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결혼 일주일 후, 반은 "사기"와 결혼 생활 미완성을 이유로 결혼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조이스가 결혼을 유도하기 위해 아이를 갖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기사에 따르면, 반은 조이스가 "너무 불행하고 불안감을 느껴서 결혼 무효 소송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68년 엘레인 조이스(출생명 엘레인 J. 핀쇼트, 1945년생)에 대한 예비 이혼 서류가 접수되었으나, 이혼은 최종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부는 1980년 반이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1976년 딸 테일러를 낳았다.
5. 질병 및 사망
1980년 2월, 반은 2주 동안 지속되는 두통을 겪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혈관 조영술 검사를 받은 결과, 악성 뇌종양으로 인한 뇌압 상승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의사들은 그의 상태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반은 자신의 병을 숨기기로 결정하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활동을 계속했으며, 그 해 미시즈 아메리카 미인 대회의 사회를 맡기도 했다. 이후 왼쪽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약 6개월간의 암 투병 끝에, 반은 1980년 7월 3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유대교 묘지인 마운트 시나이 메모리얼 파크 묘지에 안장되었다. 1981년 12월 인터뷰에서 그의 아내 조이스는 "보비와 나는 영원히 결혼했을 겁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6. 출연 작품
보비 밴은 원래 트럼펫 연주자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으나, 캣킬 산맥에서 공연하던 중 우연히 노래와 춤을 선보일 기회를 얻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1950년대 초에는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와 계약을 맺고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53년 작 스몰 타운 걸에서 보여준 역동적인 춤은 그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기억된다. 1960년대에는 코미디언 미키 루니와 함께 영화 및 텔레비전에서 활동했으며, 안무가로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텔레비전 분야에서는 시트콤 출연 외에도 197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는데, 두 번째 부인 일레인 조이스와 함께 게임 쇼에 자주 출연했으며, Showoffs, The Fun Factory, Make Me Laugh 등의 게임 쇼 진행을 맡기도 했다.
무대 활동 역시 꾸준히 이어가 1971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뮤지컬 노, 노, 나네트로 토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 지역 극장 무대에 출연하며 배우이자 엔터테이너로서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그의 상세한 출연 목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6.1. 영화
1950년대 초, 밴은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와 계약을 맺고 영화 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53년에는 도비 길리스의 사건에서 주연인 도비 길리스 역을 맡았으며, 같은 해 뮤지컬 영화 너는 내 것이기에와 나를 키스해 줘, 케이트에도 출연했다. 특히 1953년 작 스몰 타운 걸에서 보여준, 마치 인간 포고 스틱처럼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는 댄스 장면은 그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 독특한 댄스 장면은 후일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파트 II(1976)에도 포함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키 루니와 함께 코미디 영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 안무가로도 활동했다. 1973년에는 뮤지컬 리메이크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에 출연하여 그의 장기인 노래와 춤 실력을 스크린에서 선보였는데, 이는 그의 마지막 주요 뮤지컬 영화 출연 중 하나가 되었다.
| 년도 | 제목 | 배역 | 비고 |
|---|---|---|---|
| 1952 | 스커츠 아호이!(Skirts Ahoy!) | 본인 | 크레딧 없음 |
| 너는 내 것이기에(Because You're Mine) | 아티 필서 | ||
| 1953 | 스몰 타운 걸(Small Town Girl) | 루드비히 슐레머 | |
| 도비 길리스의 사건(The Affairs of Dobie Gillis) | 도비 길리스 | ||
| 나를 키스해 줘, 케이트(Kiss Me Kate) | '그레미오' | ||
| 1961 | 레이디스 맨(The Ladies Man) | 안무가 | |
| 1961 | 이브 몽탕 브로드웨이(Yves Montand on Broadway) | 본인 | 게스트 출연 |
| 1962 | 그건 단지 돈일 뿐이야(It's Only Money) | 안무가 | |
| 1966 | 해군 대 야간 괴물(The Navy vs. the Night Monsters) | 엔사인 러더포드 챈들러 | |
| 1972 | 둠스데이 머신(Doomsday Machine) | 대니 | |
| 1973 |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 해리 러벳 | |
| 1975 | 사자 다시 포효하다 (The Lion Roars Again) | MGM 단편 |
6.2. 텔레비전
1960년대에 밴은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미키 루니와 코미디 작업을 함께 했다. 그는 루니가 주연한 시트콤 미키의 세 에피소드에 얹혀사는 처남 역할로 출연했다.
밴은 1970년대에 게임 쇼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특히 Tattletales와 매치 게임과 같은 프로그램에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일레인 조이스와 함께 자주 출연했다. 또한, 밴은 Showoffs, The Fun Factory, 그리고 Make Me Laugh와 같은 게임 쇼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1978년에는 NBC의 범죄 드라마 시리즈 에디 카프라 미스터리의 "2백만 달러 밀수범" 에피소드에서 사기꾼 워렌 커스터 역을 연기했다. 1979년에는 오리지널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지구에서 온 인사" 에피소드에서 로봇 헥터 역으로 출연하여, 베테랑 배우이자 댄서인 레이 볼거 (벡터 역)와 호흡을 맞췄다. 밴은 또한 1979년부터 1980년 시즌 동안 게임 쇼 Make Me Laugh의 신디케이트 부활 버전 진행을 맡았다.
바비 밴과 그의 아내 일레인 조이스는 러브 보트 시즌 2 에피소드 16 "고퍼의 기회"에 호텔리어 필과 멜로디 리빙스턴 부부로 출연하여 고퍼 스미스를 고용하려는 모습을 연기했다. 이 에피소드는 1979년 1월 20일에 처음 방영되었다.
|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
| 1957 | 조지 고벨 쇼(The George Gobel Show) | 본인 | 시즌 4, 에피소드 4 |
| 1960 | 레블론 리뷰(The Revlon Revue) | 본인 | 시즌 1, 에피소드 5 |
| 1962 |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 본인 | 1 에피소드 (잭 파와 조니 카슨 사이 진행) |
| 1963, 1976 | 조니 카슨의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Starring Johnny Carson) | 본인 | 2 에피소드 |
| 1969 | 조나단 윈터스 쇼(The Jonathan Winters Show) | 본인 | 시즌 2, 에피소드 14 |
| 1975 | 제29회 토니상 시상식(29th Annual Tony Awards) | 본인 | 여러 진행자 중 한 명 |
| 1975 | 투명 인간(The Invisible Man) | 토니 버나드 | 에피소드: "Eyes Only" |
| 1976 | 원더우먼(Wonder Woman) | 몬티 번스 | 에피소드: "Beauty on Parade" |
| 1978 | 하디 보이즈/낸시 드루 미스터리(The Hardy Boys/Nancy Drew Mysteries) | 톰 | 시즌 3, 2 에피소드 |
| 1978 | CHiPs | 에디 | 에피소드: "Trick or Trick" |
| 1978 | 베가스(Vega$) | 에디 배닝 | 에피소드: "Love, Laugh, and Die" |
| 1978 | 플라잉 하이(Flying High) | 멜처 | 에피소드: "The Marcy Connection" |
| 1979 | 배틀스타 갈락티카(Battlestar Galactica) | 헥터 | 에피소드: "Greetings from Earth" |
| 1979 | 러브 보트(The Love Boat) | 필 리빙스턴 | 에피소드: "Gopher's Opportunity" |
| 1980 | 비욘드 웨스트월드(Beyond Westworld) | 대니 | 에피소드: "My Brother's Keeper" |
| 1980 | 머슬 비치 사기꾼(The Hustler of Muscle Beach) | 사회자 | TV 영화 |
| 1980 | 미세스 아메리카(Mrs. America Pageant) | 본인 | 진행자 |
6.3. 무대
밴은 원래 트럼펫 연주자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캣킬 산맥에서 밴드와 함께 공연하던 중, 다른 공연자를 대신해 노래하고 춤을 춰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의 공연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밴은 솔로 라이브 공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1950년대 초, 밴은 메트로-골드윈-메이어와 계약을 맺었다. 1953년에는 영화 도비 길리스의 사건에서 주연을 맡았고, 뮤지컬 영화 비코즈 유어 마인과 나를 깨물어 줘에도 출연했다. 특히 1953년작 스몰 타운 걸에서 보여준 열정적인 춤은 오랫동안 회자되었는데, 2010년 평론가 할 에릭슨은 "밴은 항상 스몰 타운 걸의 광범위한 프로덕션 넘버 동안 인간 포고 스틱처럼 뛰어다니던 열광적인 젊은이로 기억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코미디언 미키 루니와 함께 작업했다. 그는 루니가 주연한 시트콤 미키의 세 에피소드에 얹혀사는 처남 역할로 출연했다. 또한, 수년 전 그의 아버지처럼 안무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당시 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배우 일레인 조이스와 함께 게임 쇼 Tattletales와 매치 게임 등에 자주 출연했다. 또한 직접 게임 쇼 Showoffs, The Fun Factory, 그리고 Make Me Laugh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밴은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재공연된 뮤지컬 노, 노, 나네트에 출연하여 토니상 후보에 오르는 등 무대에서도 꾸준히 활동했다. 1973년에는 뮤지컬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에 출연했는데, 이는 그가 전통적인 노래와 춤 실력을 스크린에서 선보인 마지막 주요 작품이 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춤 장면 중 하나인 스몰 타운 걸(1953)의 독특한 댄스 넘버는 1976년 영화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파트 II에 포함되기도 했다. 1978년에는 NBC의 범죄 드라마 시리즈 에디 카프라 미스터리의 "2백만 달러 밀수범" 에피소드에서 사기꾼 워렌 커스터 역을 연기했다. 1979년에는 SF 시리즈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지구에서 온 인사" 에피소드에서 로봇 헥터 역으로 출연하여 베테랑 배우이자 댄서인 레이 볼거(벡터 역)와 호흡을 맞췄다. 또한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신디케이트로 부활한 게임 쇼 Make Me Laugh의 진행을 맡았다.
지역 극장 무대에도 꾸준히 섰다. 1977년 6월에는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켄리 플레이어스 극장에서 뮤지컬 Anything Goes의 빌리 크로커 역으로 출연했고, 1979년 8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의 산호세 시빅 라이트 오페라에서 뮤지컬 댐 양키스의 영 조 역을 맡았다. 이 공연에서는 밴 존슨이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 1월 20일 방영된 TV 시리즈 러브 보트 시즌 2 16화 "고퍼의 기회"에서는 아내 일레인 조이스와 함께 호텔리어 필과 멜로디 리빙스턴 부부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