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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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수천은 부산광역시 서구와 중구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과거에는 법수천 등으로 불렸다. 19세기에는 보수천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불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개항 이전에는 부평동 지역을 넓히는 역할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식수 공급을 위해 사용되었다. 현재는 복개되어 하천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과거에는 맑은 물로 인해 주민들의 빨래터로 사용되기도 했다. 길이는 3.80km, 유역 면적은 8.17km²이며, 하류에는 서구 동대신동과 서대신동이 위치하고, 주변에는 동대신공원과 구덕산, 구덕고개가 있다.

보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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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름의 유래

옛날에는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는데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3. 역사

1876년 개항 전 보수천은 침식곡을 따라 흐르며, 홍수 때면 부평동 쪽으로 돌과 자갈을 밀어내 퇴적 지형을 형성했다. 당시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1890년 일본인들은 보수천 상류에서 대나무 홈통(죽관, 竹管)을 이용해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다 썼으나, 일본인 인구 증가로 물이 부족했다.

1894년 보수천 상류의 물을 대청동 배수지로 모아 일본 거류민에게 공급하는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었다. 이는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의 시초가 되었다. 1900년~1902년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가 건설되어 하루 2000ton의 물을 생산했다.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 시절에는 맑은 물이 흘러 주민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었지만, 현재는 복개되어 하천 모습을 보기 어렵다.

길이는 3.8km, 유역 면적은 8.17km2이다. 하천 하류에는 넓은 충적지가 있으며, 서구 동대신동과 서대신동이 있다. 엄광산(504m) 계곡에는 동대신공원이, 구덕산(565m) 계곡과 구덕고개는 경치가 아름답다.

3.1. 개항 이전

1876년 개항 이전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따라 흐르며, 홍수 때면 부평동 쪽으로 돌과 자갈을 밀어내 퇴적 지형을 형성했다. 당시에는 현재 토성상가가 위치한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1890년 일본인들은 보수천 상류에서 대나무 홈통(죽관, 竹管)을 이용하여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다 썼다. 그러나 일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1894년에는 보수천 상류의 물을 대청동의 배수지로 모아 일본 거류민에게 공급하는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었다. 이는 일본인들을 위한 시설이었지만, 부산 상수도의 시초가 되었다. 1900년부터 1902년 사이에는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가 본격적으로 건설되어 하루 2천 톤의 물을 생산했다.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 시절에는 맑은 물이 흘러 주민들의 빨래터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복개되어 하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3.2. 일제강점기

개항(1876년) 이후 일본인들은 1890년 보수천 상류로부터 대에 홈을 파서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늘어나는 일본인들은 그 죽관(竹管)의 물도 모자랐다.

1894년에는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지를 설치하여 일본 거류민에게 공급했다. 이 배수장치가 상수도 장치였고,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의 효시가 되었다. 보수천의 원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를 본격적으로 축조한 것은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의 일로, 그 생산량은 1일 2000ton이었다.

3.3. 광복 이후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90년 보수천 상류로부터 대에 홈을 파서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 그러나 불어나는 일본인은 그 죽관(竹管)의 물도 모자랐다.

1894년에는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지를 설치하여 일본 거류민에게 공급했다. 이 배수장치가 상수도 장치이고 보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의 효시가 되었다.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를 본격적으로 축조한 것은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의 일로 그 생산량은 1일 2000ton이나 되었다.

지금은 복개되어 외견상으로는 하천의 위치조차 분간하기 어렵지만 6.25전쟁 때 임시 수도 이전만 해도 물이 맑아 주위 주민들의 좋은 빨래터가 되었다.

길이 3.80km, 유역면적 8.17km2이다. 하천의 하류에는 넓은 충적지가 이루어져 있으며, 그곳에 서구 동대신동과 서대신동이 위치한다. 보수천을 따라 엄광산(504m)에 이르는 계곡 일대에는 동대신공원이 펼쳐지며, 구덕산(565m)에 이르는 계곡과 구덕고개는 경치가 아름답다.

3.4. 현재

지금은 복개되어 겉으로 봐서는 하천의 위치조차 알기 어렵지만, 6.25 전쟁 때 임시 수도 이전만 해도 물이 맑아 주위 주민들의 좋은 빨래터가 되었다.

길이는 3.8km, 유역 면적은 8.17km2이다. 하천의 하류에는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곳에 서구 동대신동과 서대신동이 위치한다. 보수천을 따라 엄광산(504m)에 이르는 계곡 일대에는 동대신공원이 펼쳐지며, 구덕산(565m)에 이르는 계곡과 구덕고개는 경치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