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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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세기는 산업 혁명, 제국주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확산 등 굵직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되었고, 영국은 산업 혁명을 통해 세계 패권을 장악했다. 아시아는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격변을 겪었으며, 미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노예 제도를 폐지했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과학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 세균 감염설, 전자기학 등 획기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나타났으며, 베토벤, 고흐, 톨스토이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했다. 또한, 다양한 종교 운동이 나타나고 스포츠가 발전하는 등 다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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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근대 - 20세기
20세기는 1901년부터 2000년까지의 시기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냉전, 과학 기술의 혁신, 문화적 변화 등을 겪으며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후기 근대 - 그리스 신화의 현대적 이해
그리스 신화의 현대적 이해는 비교언어학, 정신분석학, 기원론적 관점에서 신화를 분석하고 해석하며, 19세기 이후 비교 연구,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적 해석, 고대 사회와의 관련성 탐구를 포함한다. - 19세기 - 러다이트 운동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초 영국에서 산업 혁명으로 인한 노동 환경 변화와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한 노동자들이 일으킨 기계 파괴 운동으로, 초기 노동 운동의 성격을 지니며 기술 변화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 19세기 - 19세기 철학
19세기 철학은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후기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학파와 경향이 등장했으며,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 등의 주요 사조가 20세기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일본에서는 서양 철학 유입과 함께 새로운 사상이 형성되었다. - 날짜 - 12세기
12세기는 서기 1101년부터 1200년까지의 기간으로, 유럽, 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잉글랜드의 알턴 조약 체결, 십자군 전쟁, 12세기 르네상스, 북송과 남송의 교체, 가마쿠라 막부 성립 등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다. - 날짜 - 14세기
14세기는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변동, 즉 흑사병의 유행, 백년 전쟁, 명나라와 조선의 건국, 티무르 제국의 부상, 일본의 남북조 시대 등의 주요 사건들을 포함하며, 몽골 제국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지역 강국들이 등장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정치 지형을 재편하고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겪은 시기이다.
19세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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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특징 | |
개요 | 19세기는 일반적으로 지속과 변화의 긴장이 두드러진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
개혁가 | 유럽 제도와 기술 채택을 옹호한 개혁가들은 사회의 진보적인 요소로, 20세기의 서구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용감하게 개척한 인물로 자주 묘사된다. |
보수주의자 | 이슬람 질서의 해체를 우려하고 전통을 보존하고자 했던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시대에 뒤떨어진 반동주의자로 묘사된다. |
정치 및 사회 | |
주요 사건 | 나폴레옹 전쟁 빈 회의 프랑스 7월 혁명 1848년 혁명 크림 전쟁 이탈리아 통일 미국 남북 전쟁 독일 통일 제국주의의 팽창 보어 전쟁 |
기술 및 과학 | |
발명품 | 증기 기관의 광범위한 사용 전신의 발명 전화의 발명 사진술의 발명 내연 기관의 발명 전구의 발명 |
과학 발전 | 진화론의 등장 (찰스 다윈) 세균 이론의 발전 (루이 파스퇴르) 전자기학의 발전 |
문화 | |
예술 |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
문학 | 빅토리아 시대 문학 낭만주의 문학 사실주의 문학 |
철학 | |
주요 철학 사조 | 이상주의 실증주의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 |
종교 | |
주요 변화 | 세속주의의 대두 기독교 선교 활동의 확대 |
기타 | |
관련 서적 | 윌리엄 클리블랜드의 현대 중동사 19세기 세계사 19세기 문화사 |
연도별 사건 | |
1801년 | 자다르 공성전 |
1803년 | 루이지애나 매입 |
1805년 | 트라팔가르 해전 |
1815년 | 워털루 전투 |
1820년 | 미주리 협정 |
1825년 | 러시아 12월 혁명 |
1830년 | 7월 혁명 |
1832년 | 개혁법 |
1836년 | 앨라모 전투 |
1839년 | 아편 전쟁 시작 |
1848년 | 1848년 혁명 |
1853년 | 크림 전쟁 시작 |
1857년 | 인도 세포이 항쟁 |
1861년 | 미국 남북 전쟁 시작 |
1863년 | 게티즈버그 전투 |
1865년 | 미국 남북 전쟁 종료 |
1867년 | 캐나다 자치령 형성 |
1869년 | 수에즈 운하 개통 |
1870년 | 보불 전쟁 시작 |
1871년 | 독일 제국 성립 |
1881년 |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 암살 사건 |
1885년 | 베를린 회의 |
1894년 | 청일 전쟁 시작 |
1899년 | 보어 전쟁 시작 |
2. 시대
19세기는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시대였다.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를 맞이했으며, 프랑스는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 프랑스 제2공화국, 프랑스 제2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을 거쳤다. 독일과 러시아는 각각 독일 제국과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했다.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은 오스만 제국 시대였고, 중국은 청나라, 일본은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 한국은 조선 시대였다.
19세기에는 전기 계전기(1835년), 전신과 모스 부호(1837년), 최초의 전화 통화(1876년),[2] 최초의 실용적인 전구(1878년)[3] 등 최초의 전자 기기들이 등장했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전기, 야금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져 20세기 기술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4]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북미, 일본으로 확산되었다.[5] 빅토리아 시대는 공장과 광산에서 어린이 고용이 만연했고, 엄격한 사회적 규범이 적용되었던 시대로 알려져 있다.[6]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1차 중일 전쟁에서 청나라를 패배시켰다. 의학의 발전으로 서구 세계의 인구가 급증했고,[7] 유럽 인구는 2억 명에서 4억 명 이상으로 두 배 증가했다. 철도의 도입은 도시화를 촉진했다. 런던은 1800년 100만 명에서 한 세기 후 670만 명으로 인구가 증가했다. 19세기 동안 탐험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자유주의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개혁 운동이 되었다.[8]
전 세계적으로 노예 제도가 크게 감소했다. 아이티에서의 성공적인 노예 반란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바르바리 해적과의 싸움을 강화했다. 영국의 노예 제도 폐지법은 왕립 해군에 노예 무역 종식 임무를 부여했다.[9] 1834년 영국, 1865년 미국, 1888년 브라질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고(노예 제도 폐지론 참조), 러시아에서는 1861년에 농노 제도가 폐지되었다.
19세기에는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새로운 이주민 정착지가 형성되었다. 미국의 시카고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은 세기 말까지 각각 미국과 영국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약 7천만 명의 사람들이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10]
협회 축구, 럭비 유니온, 야구 등 많은 스포츠가 19세기에 개발되었고, 크리켓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여성 패션은 발목을 보이는 것이 스캔들로 여겨질 만큼 민감한 주제였다.
발칸 반도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무너지고, 세르비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가 탄생했다.
2. 1. 유럽
서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되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 반동적인 빈 체제, 「민족의 봄」과 수많은 시민 혁명의 발발 이후,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독일, 이탈리아 등 새로운 통합된 강력한 국가가 등장했다.- 산업혁명
- 유럽 제국주의
- 영국 계몽 시대, 빅토리아 시대 (영국, 영국 제국)
- 부르봉 왕정 복고, 7월 왕정, 프랑스 제2공화국, 프랑스 제2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프랑스)
- 리스조르지멘토 (이탈리아)
- 벨 에포크 (유럽)
- 1810년
- * 나폴레옹이 합스부르크 황녀 마리 르와즈와 결혼.
- * 베를린 대학교가 설립됨.
- * 멕시코 독립 운동의 선구자 미겔 이달고의 「돌로레스의 외침」.
- * 카메하메하 1세가 하와이 제도를 통일하고 하와이 왕국을 건국.
- * 스웨덴 왕세자 카를 아우구스트가 사고사, 스톡홀름의 폭동으로 페르센이 참살됨.
- * 러시아에서 미하일 스페란스키에 의해 국무회의가 설치됨.

- 1811년
- * 영국 국왕 조지 3세가 정신 질환으로 인해 왕세자 조지가 섭정이 됨 (섭정 시대 - 1820년).
- * 영국에서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 발생.
- * 무함마드 알리에 의한 「시타델 학살(참극)」.
- * 고로닌 사건. 마지막 조선 통신사가 쓰시마에 도착(이지 빙례).
- 1814년
- * 킬 조약으로 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
- * 퐁텐블로 조약에 의해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 유배됨.
- * 루이 18세가 귀환하여 프랑스 국왕이 됨 (부르봉 복고 왕정). 「1814년 헌장」이 공포됨.
- * 빈 회의 개최.
- * 구르카 전쟁 ( - 1816년).
- * 영국인 래플스가 자바 섬의 보로부두르 유적을 발견.
- * 교황 피우스 7세의 회칙에 의한 예수회의 부흥.

- 1815년
- *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산이 대분화.
- *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패배, 백일 천하가 끝나고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됨.
- * 빈 의정서 체결, 빈 체제 ( - 1848년) 성립.
- * 영국에서 리버풀 내각이 곡물법을 제정.

- 1816년
- * 전년도 탐보라 산 분화의 영향으로 각지가 한랭화되어 「여름 없는 해」라고 불린다.
- * 세계 최초로 영국이 금본위제를 도입.
- * 영국 전권으로 애머스트가 청에 무역 확대를 요구하지만 거절됨.
- * 아르헨티나(라플라타 연합)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 이후, 중남미 여러 나라의 독립이 잇따름 (→ 아메리카 대륙 여러 나라의 독립 연표).
- * 모리타니 해안에서 메두사호 좌초 사건.
- 1817년
- * 엘긴 경의 파르테논 신전 조각 (엘긴 마블)을 대영 박물관에서 공개.
- * 미국 대통령에 먼로가 취임. 당파 대립이 거의 없는 「좋은 감정의 시대」를 맞이함.
- * 광격 천황이 양위하고, 제120대 닌코 천황이 즉위.
- * 「관정의 유로」에서 로쥬 수좌의 마쓰다이라 노부아키 사망, 미즈노 다다나리가 로쥬 수좌가 됨.
- * 세르비아 공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
- * 인도의 콜카타에서 세계 최초의 콜레라 대유행이 발생 ( - 1823년).
- 1818년
- * 스웨덴에서 카를 14세가 즉위하고, 새로운 왕조 베르나도테 왕조 시작.
- * 아헨 회의에서 사국 동맹에 프랑스가 가입하여 오국 동맹이 될 것이 결정됨.
- * 이집트가 제1차 사우드 왕국을 공략하여 멸망시킴.
- * 칠레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1819년
- * 영국에서 피터루 학살 사건.
- * 영국인 래플스에 의해 싱가포르 개항.
- * 독일 학생 운동 부르셴샤프트를 단속하는 칼스바드 결의가 성립.
- * 애덤스-오니스 조약으로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매입.
- * 시크 왕국의 란지트 싱이 카슈미르 지방을 점령.
- * 문정의 개주.
2. 2. 아시아
조선은 조선 시대였다.전 세계적으로 노예 제도가 크게 감소했다. 아이티에서의 성공적인 노예 반란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바르바리 해적과의 싸움을 강화하여 유럽인들의 노예화를 중단시켰다. 영국의 노예 제도 폐지법은 영국 왕립 해군에 세계적인 노예 무역을 종식시키는 임무를 부여했다.[9] 이 세기 최초로 노예 제도를 폐지한 식민 제국은 1834년에 노예 제도를 폐지한 영국이었다.
일본은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한 근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청나라 통치하의 중국을 제1차 중일 전쟁에서 패배시켰다.
중국은 청나라 시대였다.
연도 | 사건 |
---|---|
1820년 | 청의 도광제가 제8대 황제로 즉위. |
1826년 | 도스트 무함마드에 의해 바라크자이 왕조 아프가니스탄이 성립됨. |
1827년 | 영국으로부터 청나라로의 아편 무역액이 청나라로부터 영국으로의 차 무역액을 처음으로 상회함. |
1829년 | 아드리아노폴리스 조약. 그리스의 독립이 승인됨. |
1830년 | 네덜란드령 동인도 총독 요하네스 판 덴 보쉬가 취임하여 강제 재배 제도를 도입. |
1838년 | 제1차 아프간 전쟁 (- 1842년). |
1839년 | 오스만 황제 압둘 메지트 1세가 궐령을 발표 (탄지마트). |
이름 | 출생-사망 | 주요 내용 |
---|---|---|
가경제(嘉慶帝) | (1760년 - 1820년) | 청나라 제7대 황제(재위 1796년 - 1820년) · 전임 황제의 총신 혜선(和珅)(ヘシェン)을 처벌하고 綱紀粛正(강기숙정)에 힘씀 |
도광제(道光帝) | (1782년 - 1850년) | 청나라 제8대 황제(재위 1820년 - 1850년) · 아편의 밀수 증대와 은의 유출에 고통받음 |
임칙서(林則徐)(林則徐) | (1785년 - 1850년) | 청나라 정치가 · 흠차대신으로 영국으로부터 밀수된 아편을 처분함 · 아편 전쟁의 발단이 됨 |
함풍제(咸豊帝) | (1831년 - 1861년) | 청나라 제9대 황제(재위 1850년 - 1861년) · 아로우 전쟁의 혼란으로 북경을 탈출하여 열하에서 사망함 |
공친왕 혁흔(愛新覺羅奕訢) | (1833년 - 1898년) | 청나라 함풍제의 동생 · 신유정변에서 승리하여 아로우 전쟁 이후의 동치 중흥의 정국을 지도함 · 총리아문을 설치함 |
서태후(西太后) | (1835년 - 1908년) | 청나라 함풍제의 비로 동치제의 어머니 · 동치제에서 광서제까지 단속적으로 「수렴청정」을 행하여 권력을 장악함 |
동치제(同治帝) | (1856년 - 1875년) | 청나라 제10대 황제(재위 1861년 - 1875년) · 동태후와 서태후의 「수렴청정」으로 동치 중흥을 맞이함 |
광서제(光緒帝) | (1871년 - 1908년) | 청나라 제11대 황제(재위 1875년 - 1908년) · 무술의 변법을 지지하나 정변으로 영대에 유폐됨 |
자륭제(嘉隆帝)(阮福映) | (1762년 - 1820년) | 阮朝 베트남의 초대 황제(재위 1802년 - 1820년) · 서산朝(西山朝)를 무너뜨리고 국가를 통일 |
2. 3. 기타
19세기에는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를 맞이했고, 프랑스는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 프랑스 제2공화국, 프랑스 제2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을 거쳤다. 독일과 러시아는 각각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했다.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은 오스만 제국 시대였고, 중국은 청나라, 일본은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 한국은 조선 시대였다.19세기에는 전기 계전기(1835년), 전신과 모스 부호(1837년), 최초의 전화 통화(1876년),[2] 최초의 실용적인 전구(1878년)[3] 등 최초의 전자 기기들이 등장했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전기, 야금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져 20세기 기술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4]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북미, 일본으로 확산되었다.[5] 빅토리아 시대는 공장과 광산에서 어린이 고용이 만연했고, 엄격한 사회적 규범이 적용되었던 것으로 악명 높다.[6]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1차 중일 전쟁에서 청나라를 패배시켰다. 의학의 발전으로 서구 세계의 인구가 급증했고,[7] 유럽 인구는 2억 명에서 4억 명 이상으로 두 배 증가했다. 철도의 도입은 도시화 운동을 촉진했다. 런던은 1800년 100만 명에서 한 세기 후 670만 명으로 인구가 증가했다. 19세기 동안 탐험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자유주의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개혁 운동이 되었다.[8]
전 세계적으로 노예 제도가 크게 감소했다. 아이티에서의 성공적인 노예 반란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바르바리 해적과의 싸움을 강화했다. 영국의 노예 제도 폐지법은 왕립 해군에 노예 무역 종식 임무를 부여했다.[9] 1834년 영국, 1865년 미국, 1888년 브라질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고(노예 제도 폐지론 참조), 러시아에서는 1861년에 농노 제도가 폐지되었다.
19세기에는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새로운 이주민 정착지가 형성되었다. 미국의 시카고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은 세기 말까지 각각 미국과 영국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약 7천만 명의 사람들이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10]
협회 축구, 럭비 유니온, 야구 등 많은 스포츠가 19세기에 개발되었고, 크리켓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여성 패션은 발목을 보이는 것이 스캔들로 여겨질 만큼 민감한 주제였다.
발칸 반도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무너지고, 세르비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가 탄생했다.
영국에서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개발되었고, 탄광에서 깊은 굴착이 가능해져 석탄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세상이 크게 변화했다.[38]
3. 주요 사건
- 1801년 - 조선에서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 1811년 - 조선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 1839년 - 청 - 영국 사이에 제1차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 1842년 - 청 - 영국 사이에 난징 조약이 체결되었다.
- 1856년 - 제2차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 1862년 - 조선에서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났다.
- 1866년 - 조선 - 프랑스 사이에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 1867년 - 일본 대정봉환으로 막부 정치가 붕괴.
- 1871년 - 미국 - 조선 사이에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 1876년 - 조선 - 일본 사이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다.
- 1882년 -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 1884년 -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 1885년 -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세워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았다.
- 1897년 -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
- 1899년 - 대한제국 경인선 개통.
3. 1. 유럽/아메리카


19세기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9년 프랑스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1804년에 스스로 프랑스 황제로 즉위했다.[2] 1805년 프랑스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격파하여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을 종식시켰고, 프레스부르크 조약의 결과로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다.[2] 그러나 이후 반도 전쟁에서 프랑스는 조세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국왕으로 세우려는 시도가 실패했고, 1812년 프랑스의 러시아 원정은 프랑스군에게 막대한 사상자를 내며 나폴레옹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다.[2]
1814년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퇴위하여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으나, 그해 후반 탈출하여 백일천하를 시작했지만, 결국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되었다.[2] 나폴레옹의 패배 후, 새로운 국경을 결정하기 위해 빈 회의가 열렸고, 이 국경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 연합이 설립되었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었다.[2]

1830년 프랑스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나고,[2] 1832년에는 6월 봉기가 일어났다.[2] 1848년에는 유럽 전역에서 1848년 혁명이라 불리는 일련의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다.[2] 이 혁명들은 민주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구 군주제 구조를 제거하고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2] 최초의 혁명은 1월 시칠리아에서 시작되었고, 2월 프랑스에서 별도의 혁명이 시작되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2] 50개국 이상이 영향을 받았지만, 각 혁명가들 사이에는 조정이나 협력이 없었다.[2] 주요 원인 중 일부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 정부와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 증대 요구, 언론 자유 요구, 노동 계급의 요구, 민족주의의 급증, 그리고 기존 정부 세력의 재편성이었다.[2]
1870년에는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났고,[2] 1871년에는 파리 코뮌이 결성되나 진압되었다.[2] 같은 해,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을 선포했다.[2]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의 대부분 국가는 19세기 동안 식민 지배자들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2] 1804년, 아이티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얻었고,[2] 멕시코에서는 멕시코 독립 전쟁이 10년 동안 지속된 분쟁으로, 1821년 멕시코의 독립으로 끝났다.[2]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포르투갈 왕실은 1808년부터 1821년까지 브라질로 이전했고, 이로 인해 브라질은 포르투갈과는 별개의 군주국을 가지게 되었다.[2]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은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1823년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2] 여러 차례의 반란 끝에 1841년에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의 독립 국가들로 연방이 해체되었다.[2] 1830년, 후식민지 국가인 대콜롬비아가 해체되고 콜롬비아(현재의 파나마 포함), 에콰도르, 베네수엘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2]

19세기에는 노예 제도가 크게 감소했다.[2] 아이티에서의 성공적인 노예 반란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바르바리 해적과의 싸움을 강화하여 유럽인들의 노예화를 중단시켰다.[2] 영국의 노예 제도 폐지법은 영국 왕립 해군에 세계적인 노예 무역을 종식시키는 임무를 부여했다.[2] 이 세기 최초로 노예 제도를 폐지한 식민 제국은 1834년에 노예 제도를 폐지한 영국이었다.[2] 미국의 수정 제13조는 남북 전쟁 이후 1865년에 노예 제도를 폐지했으며, 브라질에서는 1888년에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다(노예 제도 폐지론 참조).[2]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는 1861년에 농노 제도가 폐지되었다.[2]
미국의 폐지론은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2] 프레더릭 더글러스와 해리엇 터브먼은 노예 제도에 맞선 싸움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한 많은 미국 폐지론자들 중 두 명이었다.[2] 더글러스는 능변한 연설가이자 반노예제도 작가였으며, 터브먼은 지하철도로 알려진 반노예제도 활동가들과 안전가옥 네트워크와 함께 일했다.[2]
미국 남북 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일어났다.[2] 주로 노예 제도와 관련된 우려로 인해 11개의 남부 주가 미국에서 탈퇴했다.[2]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2] 링컨은 1862년 9월 22일에 예비 선언[13]을 발표하여 1863년 1월 1일까지 반란을 계속하는 모든 주들(남부 연합)의 노예들을 "그때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선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14] 그는 그렇게 했다.[15] 1865년에 비준된 헌법 수정 조항 13조[16]는 전국적으로 노예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2]
로버트 E. 리가 버지니아주 애포매톡스 법원에서 항복한 지 5일 후, 링컨은 배우이자 남부 연합 동조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암살되었다.[2]



19세기에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대륙, 북미, 일본으로 확산되었다.[2] 빅토리아 시대는 공장과 광산에서 어린이 고용이 만연했고, 엄격한 사회적 규범이 겸손과 성 역할에 관해 적용되었던 것으로 악명 높다.[2] 19세기 유럽의 인구는 약 2억 명에서 4억 명 이상으로 두 배 증가했다.[2] 철도의 도입은 수 세기 만에 최초의 주요 육상 운송 발전을 가져왔으며,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물품 획득 방식을 변화시켰고,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주요 도시화 운동을 촉진했다.[2]
19세기에는 특히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새로운 이주민 정착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으며, 두 대륙의 가장 큰 도시 중 상당수가 이 세기 중 어느 시점에 건설되었다.[2] 미국의 시카고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은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세기 말까지 미국과 영국 제국에서 각각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2] 19세기에는 약 7천만 명의 사람들이 유럽을 떠났으며, 대부분이 미국으로 이주했다.[10]
아프리카에서는 유럽의 탐험과 기술이 1898년까지 거의 전 대륙의 식민지화로 이어졌다.[2] 퀴닌과 같은 새로운 의약품과 더 발전된 화기 덕분에 유럽 국가들은 원주민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2] 아프리카 분할의 동기에는 국가적 자부심, 원자재에 대한 욕구, 기독교 선교 활동이 포함되었다.[2] 영국은 수에즈 운하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집트를 장악했지만, 에티오피아는 아드와 전투에서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쳤다.[2]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독일도 상당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2] 1884년부터 1885년까지 열린 베를린 회의는 아프리카의 식민지 경계에 대한 합의를 시도했지만, 유럽 열강들 사이와 원주민들의 저항으로 인해 분쟁은 계속되었다.[2]
1867년, 남아프리카의 킴벌리 지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2] 1886년에는 트란스발에서 금이 발견되었다.[2] 이는 영국과 세실 로즈가 이끄는 사업적 이해관계에 의한 남아프리카의 식민지화로 이어졌다.[2]
1848년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의 조카임을 자처하며 국민투표로 대통령이 되었다.[2] 1853년에는 미국 - 도쿠가와 막부 사이에 가나가와 조약이 체결되었다.[2]
3. 2. 아시아
발생년도 | 사건 |
---|---|
1801년 | 조선에서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
1811년 | 조선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
1839년 | 청 - 영국 사이에 제1차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
1842년 | 청 - 영국 사이에 난징 조약이 체결되었다. |
1853년 | 미국 - 도쿠가와 막부 사이에 가나가와 조약이 체결되었다. |
1856년 | 제2차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
1862년 | 조선에서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났다. |
1866년 | 조선 - 프랑스 사이에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
1867년 | 일본에서 대정봉환으로 막부 정치가 붕괴되었다. |
1871년 | 미국 - 조선 사이에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
1876년 | 조선 - 일본 사이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다. |
1882년 |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
1884년 |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
1885년 |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세워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았다. |
1889년 | 청나라의 국기가 황룡기로 채택되었다. |
1897년 |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
1899년 | 대한제국에서 경인선이 개통되었다. |
1900년 | 타카미네 조이치(高峰 譲吉)가 아드레날린을 발견했다. |
태평천국 운동은 19세기 최대의 유혈 사태로, 약 2,000만 명에서 3,00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지도자 홍수전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고 선포하고 배상제회라는 새로운 중국 종교를 창시했다. 1851년 태평천국 건립을 선포한 후, 태평군은 중국 대부분을 정복하고 1853년 남경을 함락시켰다. 1864년 홍수전 사망 후 청나라군이 남경을 탈환하면서 반란은 종식되었다.[19]
에도 시대 동안 일본은 대체로 쇄국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1853년, 미국 해군의 매슈 페리(Matthew C. Perry) 제독은 군함으로 일본의 수도 에도를 위협하며 통상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통상 관계의 개시로 이어졌고, 1854년에 쇄국 정책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1872년까지, 메이지 천황 치하의 일본 정부는 ''다이묘'' 제도를 폐지하고 강력한 중앙 정부를 수립했다. 그 밖의 개혁에는 사무라이 계급의 폐지, 급속한 산업화 및 유럽 모델을 밀접하게 따른 정부의 근대화가 포함되었다.[20]
- 1817년 – 1819년: 영국 제국이 제3차 영마라타 전쟁 이후 마라타 제국(Maratha Confederacy)을 합병했다.
- 1823년 – 1887년: 영국 제국이 세 차례의 영-버마 전쟁 이후 버마(현재 미얀마)를 합병했다.
- 1848년 – 1849년: 제2차 영시크 전쟁에서 시크 제국이 패배했다. 따라서 전체 인도 아대륙이 영국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 1862년: 프랑스는 동남아시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고, 1863년에는 캄보디아를 합병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되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 반동적인 빈 체제, 「민족의 봄」과 수많은 시민 혁명의 발발 이후,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독일, 이탈리아 등 새로운 통합된 강력한 국가가 등장했다.
또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1810년대부터 1820년대에는 스페인,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라틴 아메리카 여러 국가가 각지에서 독립하였다. 하지만 대토지 소유자의 우대와 단일 경작으로 인해 독립 후에도 근대화는 진전되지 않았고, 유럽과 미국 열강에 대한 종속이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비공식 제국).
19세기 중엽에 프랑스, 프로이센 왕국을 중심으로 한 독일 여러邦, 미국은 영국에 이어 산업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후진 산업국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주도 아래 산업 육성이 이루어졌다. 19세기 말에는 자원이 풍부한 미국과 중화학공업 분야가 성장한 독일의 발전이 두드러져 사실상 영국의 패권이 무너졌다(제2차 산업혁명 참조). 이에 따라 1870년대 러시아-튀르키예 전쟁 전후부터 19세기 말에 걸쳐 열강의 식민지 쟁탈 경쟁이 벌어졌다. 일본도 청일전쟁 등을 통해 이러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년도 | 국가/사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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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 일본 | |
1802년 | 일본 | |
1802년 | 베트남 | 태국(タイ王国)의 원조로 응우옌푹잉(阮福映)(가륭제)가 베트남(越南) 전토를 통일하고 베트남 응우옌 왕조(阮朝)가 성립했다. |
1803년 | 일본 | |
1804년 | 일본 | |
1805년 | 일본 | |
1806년 | 일본 | 분카 침략(文化露寇)(후보스트프 사건). 에도에서 분카 대화재(文化の大火)(병인(丙寅)의 대화재). |
1807년 | 일본 | |
1808년 | 일본 | |
1809년 | 일본 | 마쓰마에 부교(松前奉行)에 의한 산탄 교역(山丹交易) 개혁. |
1821년 | 일본 | |
1822년 | 일본 | 분정 5년의 콜레라 유행. |
1825년 | 일본 | 분정의 이국선 몰아내는 법령. 쓰루야 남북 "도카이도 시라야가이 단" 초연. |
1827년 | 일본 | |
1828년 | 일본 | 시볼트 사건. |
3. 3. 조선
1801년 조선에서 신유박해가 일어났다.[1] 1811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2] 1862년에는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났다.[3] 1866년에는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병인양요가 일어났고,[4] 1871년에는 미국과 조선 사이에 신미양요가 일어났다.[5] 1876년에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고,[6] 같은 해에 조선과 미국 사이에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7] 1882년에는 임오군란이,[8] 1884년에는 갑신정변과 고부농민봉기가 일어났다.[9][10]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고,[11] 1899년에는 경인선이 개통되었다.[12]4. 주요 인물
19세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 정치/경제:
- 산업 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북미, 일본으로 확산되었다.[5]
- 자유주의가 유럽의 주요 개혁 운동으로 부상했다.[8]
- 1848년 혁명으로 빈 체제가 붕괴되었다.
- 영국은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1834년), 미국은 남북 전쟁 이후(1865년), 브라질은 1888년에 노예 제도를 폐지했다.[9]
- 오스만 제국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등이 독립했다.
-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하여 청나라를 청일 전쟁에서 격파했다.
-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시카고와 멜버른 같은 새로운 대도시들이 성장했다.
- 사회/문화:
- 철도의 등장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물품 획득 방식을 변화시키고 도시화를 촉진했다.
- 빅토리아 시대에는 엄격한 사회적 규범이 적용되었다.[6]
- 여성 패션에서 여성이 발목을 보이는 것은 스캔들로 여겨질 만큼 민감한 주제였다.
- 과학/기술:
- 전자 계전기(1835년), 전신과 모스 부호(1837년), 최초의 전화 통화(1876년),[2] 최초의 실용적인 전구(1878년)[3] 등 전자 기기들이 등장했다.
-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전기, 야금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졌다.[4]
- 의학 발전과 인체 해부학 및 질병 예방에 대한 이해로 서구 세계의 인구가 급증했다.[7]
주요 인물
4. 1. 조선
조선은 19세기 동안 여러 중요한 변화와 사건들을 겪었다.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김옥균(1851년 ~ 1894년), 대한제국 고종(1852년 ~ 1919년), 명성황후(1851년 ~ 1895년)가 이 시기에 태어났다.1830년대에는 덴포의 대기근(1833년 ~ 1839년)이 발생했다. 1837년에는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 이쿠타 만의 난이 일어났고, 모리슨 호 사건이 발생했다. 1838년에는 오가타 코안이 적숙을 열었고(1868년까지), 다카노 나가히데가 『무술몽 이야기』를 집필했다.
1840년대에는 아편전쟁(1840년 ~ 1842년)의 영향으로 덴포 11년의 삼방영지바꾸기부터 덴포의민사건이 일어났다. 1841년 미즈노 타다쿠니에 의한 덴포의 개혁(1841년 ~ 1843년)이 추진되었으나, 상지령 발포와 철회, 미즈노 타다쿠니 파면으로 끝났다. 1842년 덴포의 땔나무 물 공급령이 내려졌다. 1844년 네덜란드 국왕 빌럼 2세가 개국을 권고했다. 1846년 고메이 천황이 즉위했다. 1847년 교토 고쇼에 학습소가 개강했다(후의 학습원대학).
1850년대에는 흑선 내항으로 일본이 개국했다. 1851년 존 만지로가 귀국했고, 국정 충지가 처형되었다. 오유라 소동으로 시마즈 나리아키가 사쓰마 번주가 되었다. 1853년 페리가 우라가에 내항하고, 푸차친이 나가사키에 입항했다. 1854년 페리의 재내항으로 일미화친조약이 체결되었고, 안세이 동해 지진, 안세이 남해 지진이 발생했다. 1855년 안세이 에도 지진이 발생했고, 교토 고쇼가 재건되었다(안세이 조영). 1858년 일미 수호 통상 조약 등 안세이 5개국 조약이 체결되었고, 안세이 대옥이 시작되었으며, 후쿠자와 유키치가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기반이 되는 란학塾을 창설했다.

4. 2. 일본
메이지 유신에도 시대 동안 일본은 대체로 쇄국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1853년, 미국 해군의 매슈 페리(Matthew C. Perry) 제독은 군함으로 일본의 수도 에도를 위협하며 통상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통상 관계의 개시로 이어졌고, 1854년에 쇄국 정책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20]
1872년까지, 메이지 천황 치하의 일본 정부는 ''다이묘'' 제도를 폐지하고 강력한 중앙 정부를 수립했다. 그 밖의 개혁에는 사무라이 계급의 폐지, 급속한 산업화 및 유럽 모델을 밀접하게 따른 정부의 근대화가 포함되었다.[20]
일본도 청일전쟁 등을 통해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 1860년
- * 사쿠라다몬 외의 변에서 대로이이 나오스케가 미토 낭인에게 암살당함.
- ** 안도 노부마사·쿠세 히로스미 정권 성립. 만엔 원년 遣米 사절단.
- 1862년
- * 장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와 황녀 가즈노미야의 결혼, 사카시타몬 외의 변.
- ** 사쓰마 번주 아버지 시마즈 히사미쓰의 상경, 데라다야 사건.
- ** 시마즈 히사미쓰의 막정 참여에 의한 분큐 개혁, 나마무기 사건, 분큐 遣欧 사절단.
- 1863년
- * 장군 이에모치의 상락, 신센구미의 설치, 8월 18일의 정변, 사쓰에이 전쟁.
- 1864년
- * 참예 회의의 붕괴, 시모노세키 전쟁, 이케다야 사건, 금문의 변, 일회 桑 정권 성립, 텐구토의 난, 제1차 조슈 정벌, 요코하마 쇄항 담판 사절단.
- 1865년
- * 나가사키오우라 천주당에서 「숨어 사는 기리시탄의 발견(가톨릭 신자 발견)」.
- * 시바타 고우츄 遣仏영 사절
- 1866년
- * 제2차 조슈 정벌, 그 도중에 장군 이에모치가 오사카성에서 사망하고 공격은 중지.
- ** 도쿠가와 케이키가 에도 막부 제14대 장군이 되고, 케이키 주도로 게이오 개혁을 실시.
- ** 프랑스 공사 레옹 로슈에 의한 대일 차관 계약 체결. 사쓰마-쵸슈 동맹 결성.
- * 코이데 히데사네 사할린 국경획정협상 유로 사절
- 1867년
- * 파리 만국 박람회 개최. 일본 최초 참가, 사절단 파견.
- * 오노 토고로 遣米 사절
- * 고메이 천황이 사망하고, 122대 메이지 천황이 즉위.
- ** 사후 회의의 붕괴, 타도의 밀칙, 도쿠가와 케이키가 조정에 대정봉환.
- ** 사카모토 료마·나카오카 신타로 암살당함(오미야 사건).
- ** 「에에쟈나이카」의 대유행.
- 1868년
- * 메이지 유신.
- ** 왕정 복고의 대호령.
막부·섭정·관백을 폐지, 총재·의정·참여 설치.
왕정 복고를 각국 공사에 통고. 소고쇼 회의.
- ** 오가조의 맹서. 오봉의 게시. 신불 분리령(폐불훼석).
- ** 메이지 천황 즉위식을 올린다. 개원하고 일세 일대의 제도를 정한다.
- **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에도성을 황궁으로 하고 도쿄성으로 개칭(도쿄 천도).
- * 보신 전쟁.
- ** 도바-후시미 전투. 도쿠가와 케이키의 은거. 사이고 다카모리와 가쓰 가이슈의 회담.
- ** 에도성 개성. 우에노 전쟁. 도에이산 간에이지 화재. 도쿠가와씨를 슨푸로 이봉.
- ** 오우에쓰 열번 동맹과 신정부군의 싸움. 아이즈번·쇼나이번 항복.
- ** 에노모토 다케아키 등 에조치를 점령, 고료카쿠을 본영으로 한다.
- * 하와이 왕국에 최초의 일본인 이민(원년자)이 도착.
- 1869년
- * 하코다테 전쟁 (고류각 전투)에서 구막부군이 항복. 판적봉환. 화족 제도의 창설.


인물 | 설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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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다다아키(伊能忠敬) | 1745년 - 1818년, 에도 시대 후기의 상인이자 측량가로서 일본 전국을 측량하여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図)」를 완성하였다. | ||||||||||||||||||||||||||||||||||||||||||||||||||||||||||||||||||||||||||||||||||||||||||||||||||||||||||||||||||||||||||||||||||||||||||||||||||||||||||||||||||||||||||||||||||||||||||||||||||||||||||||||||||||||||||||||||||||||||||||||||||||||||||||||||||||||||||||||||||||||||||||||||||||||||||||||||||||||||||||||||||||||||||||||||||||||||||||||||||||||||||||||||||||||||||||||||||||||||||||||||||||||||||||||||||||||||||||||||||||||||||||||||||||||||||||||||||||||||||||||||||||||||||||||||||||||||||||||||||||||||||||||||||||||||||||||||||||||||||||||||||||||||||||||||||||||||||||||||||||||||||||||||||||||||||||||||||||||||||||||||||||||||||||||||||||||||||||||||||||||||||||||||
스가에 마스미(菅江真澄) | 1754년 - 1829년, 에도 시대 후기의 여행가이자 박물학자로,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을 두루 여행하며 방대한 「스가에 마스미 유람기(菅江真澄遊覧記)」를 남겼다. | ||||||||||||||||||||||||||||||||||||||||||||||||||||||||||||||||||||||||||||||||||||||||||||||||||||||||||||||||||||||||||||||||||||||||||||||||||||||||||||||||||||||||||||||||||||||||||||||||||||||||||||||||||||||||||||||||||||||||||||||||||||||||||||||||||||||||||||||||||||||||||||||||||||||||||||||||||||||||||||||||||||||||||||||||||||||||||||||||||||||||||||||||||||||||||||||||||||||||||||||||||||||||||||||||||||||||||||||||||||||||||||||||||||||||||||||||||||||||||||||||||||||||||||||||||||||||||||||||||||||||||||||||||||||||||||||||||||||||||||||||||||||||||||||||||||||||||||||||||||||||||||||||||||||||||||||||||||||||||||||||||||||||||||||||||||||||||||||||||||||||||||||||
쓰루야 난보쿠(4대)(鶴屋南北 (4代目)) | 1755년 - 1829년, 에도 시대 후기 가부키 작가. 대표작으로 「도카이도 욧카이단(東海道四谷怪談)」이 있다. | ||||||||||||||||||||||||||||||||||||||||||||||||||||||||||||||||||||||||||||||||||||||||||||||||||||||||||||||||||||||||||||||||||||||||||||||||||||||||||||||||||||||||||||||||||||||||||||||||||||||||||||||||||||||||||||||||||||||||||||||||||||||||||||||||||||||||||||||||||||||||||||||||||||||||||||||||||||||||||||||||||||||||||||||||||||||||||||||||||||||||||||||||||||||||||||||||||||||||||||||||||||||||||||||||||||||||||||||||||||||||||||||||||||||||||||||||||||||||||||||||||||||||||||||||||||||||||||||||||||||||||||||||||||||||||||||||||||||||||||||||||||||||||||||||||||||||||||||||||||||||||||||||||||||||||||||||||||||||||||||||||||||||||||||||||||||||||||||||||||||||||||||||
료칸(良寛) | 1758년 - 1831년, 에도 시대 후기 조동종 승려, 가인, 서예가. 정신니(貞信尼)에 의해 「연의 이슬(蓮の露)」에 그 작품이 정리되어 있다. | ||||||||||||||||||||||||||||||||||||||||||||||||||||||||||||||||||||||||||||||||||||||||||||||||||||||||||||||||||||||||||||||||||||||||||||||||||||||||||||||||||||||||||||||||||||||||||||||||||||||||||||||||||||||||||||||||||||||||||||||||||||||||||||||||||||||||||||||||||||||||||||||||||||||||||||||||||||||||||||||||||||||||||||||||||||||||||||||||||||||||||||||||||||||||||||||||||||||||||||||||||||||||||||||||||||||||||||||||||||||||||||||||||||||||||||||||||||||||||||||||||||||||||||||||||||||||||||||||||||||||||||||||||||||||||||||||||||||||||||||||||||||||||||||||||||||||||||||||||||||||||||||||||||||||||||||||||||||||||||||||||||||||||||||||||||||||||||||||||||||||||||||||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青洲) | 1760년 - 1835년, 에도 시대 후기 외과 의사. 세계 최초로 전신 마취를 이용한 유방암 수술에 성공하였다. | ||||||||||||||||||||||||||||||||||||||||||||||||||||||||||||||||||||||||||||||||||||||||||||||||||||||||||||||||||||||||||||||||||||||||||||||||||||||||||||||||||||||||||||||||||||||||||||||||||||||||||||||||||||||||||||||||||||||||||||||||||||||||||||||||||||||||||||||||||||||||||||||||||||||||||||||||||||||||||||||||||||||||||||||||||||||||||||||||||||||||||||||||||||||||||||||||||||||||||||||||||||||||||||||||||||||||||||||||||||||||||||||||||||||||||||||||||||||||||||||||||||||||||||||||||||||||||||||||||||||||||||||||||||||||||||||||||||||||||||||||||||||||||||||||||||||||||||||||||||||||||||||||||||||||||||||||||||||||||||||||||||||||||||||||||||||||||||||||||||||||||||||||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 1760년 - 1849년, 에도 시대 후기의 우키요에(浮世絵) 화가. 대표작으로 「후가쿠 산주롯케이(富嶽三十六景)」과 「호쿠사이 망가(北斎漫画)」가 있다. | ||||||||||||||||||||||||||||||||||||||||||||||||||||||||||||||||||||||||||||||||||||||||||||||||||||||||||||||||||||||||||||||||||||||||||||||||||||||||||||||||||||||||||||||||||||||||||||||||||||||||||||||||||||||||||||||||||||||||||||||||||||||||||||||||||||||||||||||||||||||||||||||||||||||||||||||||||||||||||||||||||||||||||||||||||||||||||||||||||||||||||||||||||||||||||||||||||||||||||||||||||||||||||||||||||||||||||||||||||||||||||||||||||||||||||||||||||||||||||||||||||||||||||||||||||||||||||||||||||||||||||||||||||||||||||||||||||||||||||||||||||||||||||||||||||||||||||||||||||||||||||||||||||||||||||||||||||||||||||||||||||||||||||||||||||||||||||||||||||||||||||||||||
마쓰우라 시즈야마(松浦静山) | 1760년 - 1849년,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4. 3. 유럽19세기 유럽은 과학, 기술,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은 격동의 시기였다.
4. 4. 미국19세기의 미국은 노예제 폐지 운동과 미국 남북 전쟁, 그리고 서부 개척 시대로 대표되는 격동의 시기였다.폐지론 운동은 19세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서양 노예 무역은 1808년 미국에서 폐지되었고, 세기 말까지 거의 모든 정부가 노예 제도를 금지하였다.[9] 미국의 폐지론은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와 해리엇 터브먼은 노예 제도에 맞선 싸움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더글러스는 능변가이자 반노예제도 작가였으며, 터브먼은 지하철도로 알려진 반노예제도 활동가들과 안전가옥 네트워크와 함께 일했다.[9] 미국 남북 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일어났다. 주로 노예 제도와 관련된 우려로 인해 11개의 남부 주가 미국에서 탈퇴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 링컨은 1862년 9월 22일에 예비 선언[13]을 발표하여 1863년 1월 1일까지 반란을 계속하는 모든 주(남부 연합)의 노예들을 "그때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선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14] 1865년에 비준된 헌법 수정 조항 13조[16]는 전국적으로 노예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로버트 E. 리가 버지니아주 애포매톡스 법원에서 항복한 지 5일 후, 링컨은 배우이자 남부 연합 동조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암살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노예 제도가 크게 감소했다. 아이티에서의 성공적인 노예 반란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바르바리 해적과의 싸움을 강화하여 유럽인들의 노예화를 중단시켰다. 영국의 노예 제도 폐지법은 영국 왕립 해군에 세계적인 노예 무역을 종식시키는 임무를 부여했다.[9] 1834년 영국은 노예 제도를 폐지했고, 미국의 수정 제13조는 남북 전쟁 이후 1865년에 노예 제도를 폐지했으며, 브라질에서는 1888년에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다. 19세기에는 특히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새로운 이주민 정착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으며, 두 대륙의 가장 큰 도시 중 상당수가 이 세기 중 어느 시점에 건설되었다. 미국의 시카고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은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세기 말까지 미국과 영국 제국에서 각각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19세기에는 약 7천만 명의 사람들이 유럽을 떠났으며, 대부분이 미국으로 이주했다.[10] 19세기 미국 주요 사건
19세기 미국 주요 인물
4. 5. 기타
5. 과학과 기술
19세기는 과학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은 시대였다. "과학자(scientist)"라는 용어는 1833년 윌리엄 휴얼[23]에 의해 만들어졌고, 곧 이전의 "자연 철학자(natural philosopher)"라는 용어를 대체했다.
5. 1. 의학19세기에는 의학의 발전과 인체 해부학 및 질병 예방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서구 세계의 인구 증가를 급속히 가속화하는 데 일부 기여했다.[7]![]()
5. 2. 발명19세기에는 전기 계전기(1835년), 전신과 모스 부호 프로토콜(1837년), 최초의 전화 통화(1876년),[2] 최초의 실용적인 전구(1878년)[3] 등 최초의 전자 기기들이 등장했다.19세기는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전기, 야금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20세기 기술 발전의 기반을 마련한 과학 발견과 발명이 급속도로 가속화된 시대였다.[4]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대륙, 북미, 일본으로 확산되었다.[5] ![]()
6. 문화
19세기는 과학, 문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과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6. 1. 문학19세기 문학은 18세기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낭만주의가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낭만주의는 산업혁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전하였는데, 증기 기관과 철도가 자연에 가져온 극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영국에서 새로운 문학 사조를 개척한 인물로 여겨진다. 대륙에서는 독일의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운동이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예술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잠시 주춤했지만, 이후 급속히 발전하여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28]프랑스의 곤쿠르 형제(에드몽 드 곤쿠르, 쥘 드 곤쿠르)와 에밀 졸라, 이탈리아의 조반니 베르가는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들을 썼다. 특히 이탈리아 자연주의 소설은 당시까지 자신의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을 거의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새롭게 통일된 이탈리아의 사회적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19세기에는 수많은 문학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주요 작가로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콜라이 고골, 레프 톨스토이, 안톤 체홉,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영국의 찰스 디킨스, 존 키츠, 알프레드 테니슨, 제인 오스틴, 스코틀랜드의 월터 스콧, 토머스 칼라일,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캐릭터 창시자), 아일랜드의 오스카 와일드,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 랄프 왈도 에머슨, 마크 트웨인,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오노레 드 발자크, 쥘 베른, 알렉상드르 뒤마, 샤를 보들레르 등이 있다.[29] 미국의 주요 문학 작가, 시인, 소설가로는 월트 휘트먼, 마크 트웨인, 해리엇 앤 제이콥스, 내털리 호손, 랄프 왈도 에머슨, 허먼 멜빌, 프레더릭 더글러스, 해리엇 비처 스토우, 조엘 챈들러 해리스, 에밀리 디킨슨 등이 있다.
6. 2. 음악소나타 형식은 고전주의 시대에 성숙하여 19세기 내내 기악 작곡의 주요 형식이 되었다. 19세기의 많은 음악은 낭만파 음악 스타일로 불렸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리스트, 프레데리크 쇼팽,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리하르트 바그너와 같은 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이 시대를 거쳤다.19세기 주요 작곡가들은 다음과 같다.
6. 3. 미술![]() ![]() ![]() 19세기 초 사실주의와 낭만주의는 세기 후반에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로 이어졌으며, 파리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다. 미국에서는 허드슨 강파가 두각을 나타냈다. 19세기 주요 화가들은 다음과 같다.[4]
6. 4. 종교
6. 5. 스포츠19세기에는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많은 스포츠가 빠르게 만들어지고 발전했으며, 체계화되었다. 협회 축구, 럭비 유니온, 야구 등 많은 스포츠들이 19세기에 개발되었고, 영국 제국은 크리켓과 같은 스포츠가 전 세계 여러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10]
참조
[1]
서적
A History of the Modern Middle East
https://www.taylorf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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