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시에흐 나이사레크
1. 개요
보이시에흐 나이사레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갈리치아 출신으로,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 참전하고 철도원으로 근무하다가, 1937년 그단스크-베스터플라테 역의 역장이 되었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베스터플라테 군사 기지로 향하는 독일군을 발견하고 중기관총에 맞아 사망, 베스터플라테 전투의 첫 번째 폴란드 희생자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첫 번째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사후 폴란드 최고 무공 훈장인 비르투티 밀리타리를 수여받았으며, 그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영화 《베스터플라테》에서 유제프 로진스키가 그를 연기했다.
| 이름 | 보이치에흐 나이사레크 |
|---|---|
| 출생일 | 1900년 4월 22일 |
| 사망일 | 1939년 9월 1일 (향년 39세) |
| 출생지 | 야치미에시, 오스트리아-헝가리 |
| 사망지 | 베스테르플라테, 폴란드 |
| 배우자 | 마리아 (결혼 전 성씨: 오스트로프스카) |
| 소속 | 제2 폴란드 공화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920년 - 1939년 |
| 계급 | 수석 상사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베스테르플라테 전투 |
| 훈장 | 비르투티 밀리타리 훈장 |
-
폴란드의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관련자 -
스타니스와프 미코와이치크
스타니스와프 미코와이치크는 폴란드의 정치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망명 정부에서 활동하고 전후 폴란드로 돌아와 부총리를 지냈으나 공산주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활동하다 사망했다. -
폴란드의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관련자 -
알렉산데르 프리스토르
-
1900년 출생 -
살로테 투포우 3세
살로테 투포우 3세는 1900년 통가에서 태어나 1918년 즉위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중 통가를 이끌었고, 문화 보존과 학술 연구를 지원하다 1965년 사망한 통가의 여왕이다. -
1900년 출생 -
김동인
김동인은 '약한 자의 슬픔'으로 시작하여 '감자'와 같은 작품을 통해 사실주의를 개척하고, 《창조》를 창간했으며, 사후 동인문학상이 제정되었다. -
1939년 사망 -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는 체코 출신의 화가이자 장식 예술가로,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와 장식 패널, 특히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 상업 광고 포스터, '사계', '꽃', '예술'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파리 만국 박람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관 벽화 제작, 보석 및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도 활동했고, 프라하 귀환 후에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대작 '슬라브 서사시' 제작에 몰두했다. -
1939년 사망 -
하워드 카터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이집트학 학자인 하워드 카터는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발굴 과정에서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과학적인 고고학 연구를 강조했다.
2. 생애
보이시에흐 나이사레크는 1900년 4월 22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갈리치아 지역 사노크 근처에서 태어났다. 1920년 폴란드 육군에 자원하여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 참전했으며, 제대 후에는 폴란드 국영 철도에서 근무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1937년, 단치히 자유시의 베스터플라테 군사 기지 인근에 위치한 그단스크-베스터플라테 역의 역장으로 부임했다.
1939년 9월 1일 새벽,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마자 그는 역 주변에서 독일군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상황을 확인하러 나섰다가 중기관총 공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는 베스터플라테 전투의 첫 폴란드인 희생자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초기 희생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1945년 폴란드 최고 무공 훈장인 비르투티 밀리타리가 사후 추서되었고, 1970년대에는 그가 사망한 장소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2.1. 초기 생애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참전
보이시에흐 나이사레크는 1900년 4월 22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갈리치아의 야츠미에시 근처 사노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역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 폴란드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 참전했다. 제대 후 폴란드 국영 철도에 입사하여 동시에 학업을 계속했다. 1926년, 마리아 오스트로프스카와 결혼했다.
2.2. 철도원 생활과 베스터플라테 부임
보이시에흐 나이사레크는 1900년 4월 22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갈리치아의 야츠미에시 근처 사노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역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 폴란드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 참전했다. 제대 후 폴란드 국영 철도에 입사하여 동시에 학업을 계속했다. 1926년, 마리아 오스트로프스카와 결혼했다.
1933년, 그는 브제스크나드부곰에 있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포즈난에서 철도 관리자를 위한 1년 과정 교육을 받았다. 이후 레다 철도역에서 역장으로 근무했다. 1937년 4월 19일, 그는 단치히 자유시 내 폴란드의 무역 전초 기지였던 그단스크-베스터플라테 역의 역장으로 부임했다. 이 역은 베스터플라테의 군사 기지와 바로 인접해 있었다. 동시에 그는 스타르시 시에르잔트(상사에 해당하는) 군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
2.3. 베스터플라테 전투와 죽음
1939년 9월 1일 오전 4시 50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5분 만에 나이사레크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초 기지를 나섰다. 그는 근처 베스터플라테 군사 기지로 향하는 독일 군대를 발견했다. 그는 수많은 중기관총 사격으로 인한 부상을 입고 즉사했다. 이로써 그는 베스터플라테 전투의 첫 번째 폴란드 희생자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첫 번째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45년, 그는 폴란드의 최고 무공 훈장인 비르투티 밀리타리를 사후에 수여받았다. 1970년대에는 그가 사망한 장소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영화 베스터플라테에서는 배우 유제프 로진스키가 나이사레크 역을 연기했다.
3. 사후
(내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