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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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봉선사는 969년 승려 탄문이 운악산 자락에 창건한 운악사에서 유래한 사찰이다. 1469년 조선 예종 때 세조의 능을 광릉으로 이장하고,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선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었으나 재건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31본산에 지정되었다. 한국 전쟁으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이후 중건되었다. 남양주 봉선사 동종(보물 제397호),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보물 제1792호) 등 여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큰법당 현판과 주련은 한글로 작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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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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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한자 표기 | 奉先寺 |
로마자 표기 | Bongseonsa |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
일반 정보 | |
산 이름 | 주엽산 (운악산) |
종파 | 조계종 (교종 -> 조계종) |
사찰 구분 |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
역사적 구분 | 조선 31본산 (일제강점기 시대) |
본존불 | 석가모니불 |
창건 연도 | 1469년 (조선 예종 원년) |
창건 주체 | 정희왕후 (세조의 왕후) |
역사 | |
창건 시기 | 고려 광종 20년 (969년) |
2. 역사
969년(고려 광종 20년) 승려 탄문이 운악산 자락에 절을 창건하고 '''운악사'''라 부른 것이 봉선사의 전신이라고 전해진다. 1469년(조선 예종 원년) 정희왕후가 죽은 남편 세조의 능을 광릉으로 이장하고, 이 절을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선왕을 받든다'는 뜻의 봉선사로 개칭했다. 1551년 (명종 6년)에는 교종의 으뜸 사찰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복구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어 현대에 복원한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태허 스님, 운허 스님이 머물렀고, 운허의 친척 형이 되는 이광수도 은거한 일이 있다.
1504년 (연산군 10년) 불교 탄압으로 선종 총본산 흥천사와 교종 총본산 흥덕사가 폐사되었으나, 1551년 선교 양종이 부흥하면서 봉선사는 교종 총본산, 봉은사는 선종 총본산으로 선정되었다.
한국 전쟁으로 소실된 후, 1956년 범종각, 1961년~1963년 운하당, 1969년 법당, 1977년 영각을 중건했다.
2. 1. 창건과 조선 시대
969년(고려 광종 20년) 승려 탄문이 운악산 자락에 절을 창건하고 '''운악사'''라 부른 것이 봉선사의 전신이라고 전해진다.1469년 (조선 예종 때) 왕의 어머니인 정희대비가 죽은 남편 세조의 능을 운악산으로 이장하여 광릉이라 하고, 이 절을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종은 친필 현판을 하사하기도 했다. 1551년에는 교종의 으뜸 사찰로 지정되는 등 사세가 번창했다.[3]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그 이듬해 주지 낭혜대사가 재건했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었으나, 그 이듬해 주지 계민대사가 재건했다.
2. 2.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태허(운암 김성숙) 스님, 운허 스님이 봉선사에 머물렀고, 운허의 친척 형이 되는 이광수도 은거한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절 입구에 이광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3] 1911년 사찰령 시행 규칙 (7월 8일자)에 의해 봉선사는 조선 31본산에 지정되었다.한국 전쟁 때 법당 등 150여 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1956년 화엄이 범종각을, 1961년부터 1963년에 걸쳐 운하당을 중건했다. 1969년에는 운허가 법당을 중건했고, 1977년에는 월운이 영각을 중건했다.
3. 문화재
명칭 | 지정 번호 |
---|---|
남양주 봉선사 동종 | 보물 제397호 |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 | 보물 제1792호 |
남양주 봉선사 목조불좌상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3호 |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4호 |
남양주 봉선사 독성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5호 |
남양주 봉선사 큰법당 | 등록문화재 제522호 |
4. 큰법당
봉선사의 대웅전 건물의 현판은 다른 사찰과 다르게 한글로 '큰법당'이라고 쓰여 있다. 기둥에 걸린 주련도 모두 한글이다. 이 현판과 주련의 글씨는 서예가인 봉화 금씨 운봉(雲峯) 금인석(琴仁錫: 1921~1992)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불교 대중화를 위해 앞장섰던 운허 스님이 서예가 금인석에게 청하여 쓴 것이다.
참조
[1]
웹사이트
Bongseonsa Temple
https://artsandcultu[...]
2024-05-15
[2]
웹사이트
봉선사
https://terms.naver.[...]
2019-05-31
[3]
웹사이트
大韓仏教曹渓宗 奉先寺
http://jp.koreanbu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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