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송정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봉송정은 영해 박씨 문중에서 고려가 멸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박구(朴球, 1357~1396)를 기리기 위해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건립한 정자이다. 봉송정은 계중지봉 임중지송(鷄中之鳳 林中之松)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 건물은 1916년에 영해에서 옮겨온 것을 보수한 것이다. 20세기 초반 전통 양식의 유형을 보여주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봉송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봉송정 정보
이름봉송정
한자 표기鳳松亭
봉송정
봉송정
위치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697
문화유산 정보
국가대한민국
위치안동시
유형문화유산
지정 번호18
지정일2009년 1월 21일
시대미상
소유자영해박씨문중
관리자미상
참고미상
면적미상
수량미상
전승지미상
전승자미상
웹사이트미상
문화재청미상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영해 박씨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영해 박씨 - 박구일
    박구일은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군인 출신으로,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통일국민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제14대,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 안동시의 문화유산 - 안동소주
    안동소주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전통 증류주로, 조옥화, 박재서 두 명인의 제조 방식이 있으며, 높은 도수와 깊은 풍미, 숙취가 적은 특징을 가지며, 신라 시대 기원설과 원나라 침입 관련설이 있고, 주세법 개정으로 생산 중단 후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재개되었다.
  • 안동시의 문화유산 - 징비록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전말과 원인, 자신의 과오 등을 기록하여 반성하고 후대에 같은 전란을 경계하고자 한 책으로, 임진왜란 전모를 기록한 귀중한 사료이다.
  • 대한민국의 문화에 관한 - 새마을 운동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정부 주도로 1970년에 시작된 지역사회 개발 운동으로,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농촌 근대화, 소득 증대, 환경 개선을 목표로 추진되었으나,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수단 활용, 전통문화 탄압 등의 비판도 있으며, 현재는 생명살림운동으로 변화를 모색 중이다.
  • 대한민국의 문화에 관한 - 부산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은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동부 지역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국으로, 1959년 한국문화방송 부산방송국으로 개국하여 TV 방송을 개국했으며, 언론 통폐합을 거쳐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

2. 건립 배경 및 인물

박구(朴球, 1357년 ~ 1396년)는 자는 경옥(景玉), 호는 돈옹(遯翁)이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안동 지실촌으로 왔다. 운봉현감(雲峯縣監) 겸 권농병마훈련판관(勸濃兵馬訓練判官)을 지냈다. 영해 박씨 문중에서는 박구를 기리기 위해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697번지(독실마을)에 봉송정(鳳松亭)을 건립하였다. 봉송정은 계중지봉 임중지송(鷄中之鳳 林中之松)에서 따온 것이다.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697번지(독실마을)에 위치한 봉송정(鳳松亭)은 영해 박씨 문중 소유로,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독실 마을에 숨어 여생을 보낸 박구(朴球, 1357~1396, 자는 경옥(景玉), 호는 돈옹(遯翁))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박구는 운봉현감(雲峯縣監) 겸 권농병마훈련판관(勸濃兵馬訓練判官)을 지냈으나, 고려가 멸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안동 지실촌으로 왔다.

봉송정의 뜻은 계중지봉 임중지송(鷄中之鳳 林中之松)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영해에 있던 건물을 1916년에 옮겨 온 것을 보수한 것이다.

2.1. 박구(朴球)

박구(朴球, 1357년 ~ 1396년)는 자는 경옥(景玉), 호는 돈옹(遯翁)이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안동 지실촌으로 왔다. 운봉현감(雲峯縣監) 겸 권농병마훈련판관(勸濃兵馬訓練判官)을 지냈다. 영해박씨 문중에서는 박구를 기리기 위해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697번지(독실마을)에 봉송정(鳳松亭)을 건립하였다. 봉송정은 계중지봉 임중지송(鷄中之鳳 林中之松)에서 따온 것이다.

봉송정 건물은 영해에 있던 것을 1916년에 옮겨 온 것이다.

2.2. 건립 배경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697번지(독실마을)에 위치한 봉송정(鳳松亭)은 영해 박씨 문중 소유로,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독실 마을에 숨어 여생을 보낸 박구(朴球, 1357~1396, 자는 경옥(景玉), 호는 돈옹(遯翁))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박구는 운봉현감(雲峯縣監) 겸 권농병마훈련판관(勸濃兵馬訓練判官)을 지냈으나, 고려가 멸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안동 지실촌으로 왔다.

봉송정의 뜻은 계중지봉 임중지송(鷄中之鳳 林中之松)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영해에 있던 건물을 1916년에 옮겨 온 것을 보수한 것이다.

3. 건축 양식 및 특징

3.1. 위치 및 구조

3.2. 건축 양식

4. 지정 사유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697번지(독실마을)에 위치한 봉송정(鳳松亭)은 영해 박씨 문중 소유로,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독실 마을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낸 박구(朴球, 1357~1396, 자는 경옥(景玉), 호는 돈옹(遯翁))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박구는 운봉현감(雲峯縣監) 겸 권농병마훈련판관(勸濃兵馬訓練判官)을 지냈다.

지금의 건물은 영해에 있던 것을 1916년에 옮겨 온 것을 보수한 것이다. 봉송정의 명칭은 계중지봉 임중지송(鷄中之鳳 林中之松)에서 유래했다.

봉송정은 서후면 성곡리 독실마을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구릉지를 평탄하게 정지하여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주위에는 블록 담장을 쌓았으며, 마당 우측에는 대문채를 두었다.

봉송정은 건물의 구조 양식은 특징이 없지만, 20세기 초반의 전통 양식의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