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나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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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나원루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역원공영제도에 의해 예안현에 속했던 부라원의 2층 누각 건물이다. 안동 지방에 30여 개 정도의 원이 있었지만, 부나원루는 당시 누각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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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나원루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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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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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39 |
지정일 | 1973년 8월 31일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산84-1번지 |
시대 | 미상 |
관리 | 안동시 |
2. 역사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역원공영제도에 의해 예안현에 부라원이 운영되었다. 안동 지방에는 『영가지』에 의하면 30여 개의 원(院)이 있었다고 하나, 당시의 누각이 남아있는 것은 부라원이 유일하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 본래 위치에서 이전되었다.
2. 1. 역원공영제도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역원공영제도가 시행되었는데, 부라원은 이 제도에 의해 예안현에 속했던 2층 누각 건물이다.『영가지』에 따르면 안동 지방에는 30여 개의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누각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부라원이 유일하다. 부라원의 본래 건물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으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누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판은 명필 한석봉이 썼다.
2. 2. 예안이원역과 부라원
예안이원역과 부라원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시행된 역원공영제도에 따라 예안현에 설치되었던 역원이다. 부라원은 2층 누각 건물 형태로 남아있다.『영가지』에 따르면, 안동 지역에는 30여 개의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누각이 남아있는 곳은 부라원이 유일하다. 원래 건물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으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부라원 누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판은 명필 한석봉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건축
부나원루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운영된 역원공영제도에 따라 예안현에 설치되었던 누각 건물이다. 안동 지방에는 30여 개의 원(院)이 있었다고 영가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누각은 부나원루가 유일하다.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3. 1. 구조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오던 역원공영제도에 의해 예안현에 속해있던 부라원의 2층 누각 건물이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판은 명필 한석봉이 썼다.
3. 2. 현판
현판은 명필 한석봉이 썼다.4. 이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누각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
4. 1. 이전 배경
부라원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오던 역원공영제도에 의해 예안현에 속해있던 원(院)이다. 영가지에 따르면 안동 지방에는 30여 개의 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누각이 남아있는 것은 부라원이 유일하다. 안동댐 건설로 인해 원의 본래 건물은 없어지고 누각만이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4. 2. 이전 과정
'''부나원루'''(富羅院樓)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예안현에 설치되었던 역원공영제도에 속한 부라원의 2층 누각 건물이다.영가지에 따르면, 안동 지방에는 30여 개의 원(院)이 있었다고 하나, 그 당시의 누각이 남아있는 것은 부나원루가 유일하다. 본래 원의 건물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부나원루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지붕 옆면은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현판은 한석봉이 쓴 글씨라고 전해진다.
5. 문화재적 가치
안동 지방에 남아 있는 유일한 원의 누각 건물이다.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예안현에 속해 있던 부라원의 2층 누각 건물로 역원공영제도와 관련이 있다.
영가지에 따르면 당시 안동 지방에는 30여 개의 원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원의 본래 건물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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