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페체이
1. 개요
브루노 페체이는 오스트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FC 포어알베르크, FC 바커 인스브루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베르더 브레멘 등에서 활약했다. 바커 인스브루크 소속으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는 UEFA컵과 DFB-포칼 우승을 경험했다.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으로 1978년과 198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84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1994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소년 시절 구단은 훈련장에 그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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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브루노 에드문트 페체이 |
|---|---|
| 키 | 1.88m |
| 포지션 | 수비수 |
| 출생일 | 1955년 2월 3일 |
| 출생지 | 라우테라흐, 오스트리아 |
| 사망일 | 1994년 12월 31일 (향년 39세) |
| 사망지 | 인스브루크, 오스트리아 |
| 유소년 클럽 | 1965–1973: FC 라우테라흐 |
|---|---|
| 선수 경력 | 1973–1974: FC 포어아를베르크 (28경기 3골) 1974–1978: 바커 인스브루크 (129경기 19골) 1978–1983: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41경기 27골) 1983–1987: 베르더 브레멘 (114경기 18골) 1987–1990: 스바로프스키 티롤 (86경기 6골) |
| 총 출장 (골) | 498경기 (73골) |
| 국가대표팀 | 오스트리아 |
|---|---|
| 국가대표 연도 | 1975–1990 |
| 국가대표 출장 (골) | 84경기 (9골) |
| 감독 연도 | 1991–1993: 오스트리아 U-21 (수석 코치) 1993–1994: 오스트리아 U-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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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에 거주한 오스트리아인 -
펠릭스 라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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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에 거주한 오스트리아인 -
라인홀트 힌터마이어
오스트리아의 전직 축구 선수인 라인홀트 힌터마이어는 푀슈트 린츠에서 프로 데뷔 후 오스트리아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오스트리아 국가대표로 1982년 FIFA 월드컵에 출전, 은퇴 후 유소년팀 감독을 맡았다. -
FC 스바로프스키 티롤의 축구 선수 -
미하엘 바우어
미하엘 바우어는 오스트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선수 시절 리베로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커 인스브루크에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4회 등을 달성했고,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했으며, 은퇴 후에는 LASK 린츠 코치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II 등의 감독을 역임했다. -
FC 스바로프스키 티롤의 축구 선수 -
쿠르트 벨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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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2. 클럽 경력
오스트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페체이는 고향 클럽 FC 포어아를베르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1년 후 FC 바커 인스브루크로 이적하여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2회와 ÖFB 컵 우승 1회를 경험했다.
1978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여 UEFA컵과 DFB-포칼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4시즌을 보냈으나 우승은 없었고, 리그 준우승 2회를 기록했다. 1987년 친정팀 인스브루크(당시 FC 스와로브스키 티롤)로 복귀하여 리그 2회, 컵 대회 1회 우승을 추가한 뒤 1990년 은퇴했다.
페체이의 클럽 경력은 다음과 같다.
| 기간 | 클럽 | 리그 |
|---|---|---|
| 1973–1974 | FC 포어아를베르크 | 오스트리아 |
| 1974–1978 | FC 바커 인스브루크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
| 1978–1983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분데스리가 |
| 1983–1987 | SV 베르더 브레멘 | 분데스리가 |
| 1987–1990 | FC 스와로브스키 티롤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
2.1. FC 바커 인스브루크 (1기)
1974년, 고향 클럽 FC 포어아를베르크에서 한 시즌을 보낸 페체이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커 인스브루크로 이적했다. 그는 곧바로 팀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1978년까지 활동하는 동안 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페체이는 바커 인스브루크 소속으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2회와 오스트리아 컵 (ÖFB 컵) 우승 1회를 경험하며 팀의 성공에 기여했다. 또한 UEFA 챔피언스컵에서도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78년,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며 인스브루크에서의 첫 번째 시기를 마감했다.
2.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8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파 리그 우승과 DFB-포칼 우승에 기여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1979년에는 FIFA 세계 선발팀에, 1982년에는 UEFA 유럽 선발팀에 선출되는 등 세계적인 수준의 수비수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1979년부터 1982년까지 4년 연속으로 발롱도르 후보에 올랐으며, 모두 10위 안에 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수비수라는 포지션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페체이는 1983년까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뛰었다.
2.3. 베르더 브레멘
1983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했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4년 동안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오스트리아에는 페체이가 있다"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도 여러 차례 선정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1987년 친정팀인 FC 바커 인스브루크로 복귀했다.
2.4. FC 바커 인스브루크 (2기)
1987년, 페체이는 이전에 활약했던 FC 바커 인스브루크(당시 FC 스와로브스키 티롤)로 복귀했다. 그는 명장 에른스트 하펠 감독의 지도 아래 팀에 합류하여 리그 2회 우승과 컵 대회 1회 우승을 다시 경험하며 팀의 성공에 기여했다. 페체이는 1990년 이 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페체이는 1975년 6월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5년 동안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핵심 선수이자 수비진의 리더로서 활약하며, 1978년 FIFA 월드컵과 198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전 경기에 출전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이전 대회 우승국인 서독을 꺾고 코르도바의 기적을 실현한 팀의 일원이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마드리드의 비센테 칼데론에서 열린 북아일랜드와의 2차 조별 리그 경기(2-2 무승부)에서 후반 5분 뒤꿈치 킥으로 오스트리아의 첫 골을 기록했다.
페체이는 총 84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2024년을 기준으로 프리드리히 콘칠리아, 율리안 바움가르틀링거와 함께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 공동 최다 출전 8위에 해당한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90년 8월에 열린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였다. 그는 오스트리아 20세기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4. 사망과 유산
페체이는 1994년 12월 31일,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전한 후 40번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인스브루크의 병원에서 심장 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족으로 배우자와 두 딸을 남겼다. 그가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FC 라우터라흐는 그를 기리기 위해 훈련장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페체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최고의 수비수로 현재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20세기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5. 수상 내역
선수 시절 동안 UEFA컵 1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4회, 오스트리아 컵 2회, 독일 컵 1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2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5.1. 클럽
오스트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페체이는 고향인 포어아를베르크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년 뒤 바커 인스브루크로 이적하여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2회와 ÖFB 컵 우승 1회를 달성했다.
1978년, 최후방 수비수였던 페체이는 서독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했다.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UEFA컵과 DFB-포칼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베르더 브레멘에서 4년을 보냈으나, 분데스리가 준우승 2회(1984–85, 1985–86)가 최고 성적이었다. 1987년에는 친정팀 인스브루크(당시 스바로프스키 티롤)로 복귀하여 리그 2회, 컵 대회 1회 우승을 더하며 선수 생활 후반기를 성공적으로 보냈다.
| 클럽 | 대회 | 기록 |
|---|---|---|
| FC 바커 인스브루크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 우승: 1974–75, 1976–77 |
| ÖFB 컵 | 우승: 1974–75 | |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UEFA컵 | 우승: 1979–80 |
| DFB-포칼 | 우승: 1980–81 | |
| SV 베르더 브레멘 | 분데스리가 | 준우승: 1984–85, 1985–86 |
| 스바로프스키 티롤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 우승: 1988–89, 1989–90 |
| ÖFB 컵 | 우승: 1988–89 |
| 상 | 선정 연도 |
|---|---|
| 스포츠 이데알 유럽 모범 11인 | 1979 |
|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 1980–81, 1985–86 |
5.2. 개인
* 스포츠 이데알 유럽 모범 11인: 1979
*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1980-81, 198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