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슬라프 3세
1. 개요
블라디슬라프 3세는 보헤미아 공작 블라디슬라프 2세의 아들이자 오타카르 1세의 동생이다. 1191년부터 1194년까지 브르노와 즈노이모 공작을 역임했으며, 1197년 보헤미아 공작이 되었으나 오타카르 1세를 지지하는 반란으로 인해 같은 해 모라바 변경백으로 물러났다. 그는 왕위를 포기함으로써 프르제미슬 왕조의 왕위 다툼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1212년 시칠리아 금인칙서를 통해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 지위를 인정받았다. 블라디슬라프는 모라비아를 통치하며, 자신의 고해 신부를 프라하 주교로 임명하는 등 통치를 강화했다. 그는 후손 없이 사망했으며, 모라바 변경백령은 오타카르 1세에게 돌아갔다.
| 이름 | 블라디슬라프 3세 |
|---|---|
| 원어 이름 | Vladislav Jindřich (블라디슬라프 힌드르지흐) |
| 다른 이름 | Vladislav III. (블라디슬라프 3세) |
| 출생 | 대략 1160년 |
| 사망 | 1222년 8월 12일 |
| 사망 장소 | 즈노이모, 모라비아 |
| 매장 장소 | 벨레흐라트 수도원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 |
| 왕조 | 프르셰미슬 |
|---|---|
| 아버지 | 블라디슬라프 2세 |
| 어머니 | 튀링겐의 유디트 |
| 배우자 | 하일비다 |
| 자녀 | 없음 |
| 직함 | 보헤미아 공작 |
|---|---|
| 통치 시작 | 1197년 6월 22일 |
| 통치 종료 | 1197년 12월 6일 |
| 선임자 | 브르제티슬라프 3세 |
| 후임자 | 오타카르 1세 |
| 즉위식 | 알 수 없음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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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년 사망 -
알렉시오스 1세 (트라페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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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년 사망 -
선정왕후 (신종)
선정왕후는 고려 문종의 손녀이자 신종의 비로, 신종 즉위 후 원비에 책봉되었고 아들 희종 즉위 후에는 대비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1222년 사망 후 진릉에 안장, 고종 때 신헌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고려 공양왕은 그녀와 신종의 둘째 아들 양양공의 후손이다. -
1160년 출생 -
베르톨트 5세 폰 체링겐 공작
베르톨트 5세는 1186년 체링겐 공작이 되어 부르고뉴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베른을 건설하여 팽창 정책을 추진했지만, 울리헨 전투에서 패배하고 1218년 사망하며 체링겐 가문의 남계는 단절되었다. -
1160년 출생 -
고노에 모토미치
고노에 모토미치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섭관가를 계승했지만, 정치적 어려움으로 인해 섭정 지위를 바로 얻지 못하고, 섭관과 관백을 역임하며 여러 차례 해임된 후 1198년 섭정이 되었으며, 1233년에 사망했다. -
보헤미아 공작 -
블라디슬라프 1세
블라디슬라프 1세는 프르셰미슬 왕조 출신으로 1109년부터 1125년까지 보헤미아 공작으로 재임하면서 폴란드 압력, 공작위 경쟁 속에서 보헤미아를 통치하고 신성 로마 제국과 관계를 유지하며 독일인 정착 장려, 클라드루비 수도원 설립 등 종교와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
보헤미아 공작 -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
폴란드의 공작이자 초대 국왕인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는 용감왕으로도 불리며, 군사적 능력과 외교적 수완으로 폴란드를 강국으로 만들고 기독교를 장려하여 문화 발전에 공헌했다.
2. 생애
보헤미아 공국(체코)의 공작 블라디슬라프 2세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튀링겐의 유디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오타카르 1세의 동생이다.
1191년부터 1194년까지 브르노, 즈노이모 공작을 역임했다. 1192년에는 보헤미아 공작 바츨라프 2세를 폐위시킨 오타카르 1세를 지원했다. 1193년 6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는 보름스에서 열린 제국회의에서 오타카르 1세를 폐위시키고 프라하 주교 인드르지흐 브르제티슬라프를 보헤미아 공작으로 즉위시켰다. 블라디슬라프 3세는 프라하 성에 수감되어 브르제티슬라프 3세의 감시를 받았다.
1197년 하인리히 6세와 브르제티슬라프 3세가 사망하면서 석방되었다. 6월 22일 보헤미아 공작으로 즉위했지만, 보헤미아 전역에서 오타카르 1세를 지지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12월 22일 블라디슬라프 3세는 오타카르 1세에게 공작위를 물려주고 모라바 변경백이 되었다.
블라디슬라프는 왕위를 포기함으로써 아버지 사후 25년 이상 지속된 프르제미슬 왕조의 왕위 다툼을 종식시켰다. 1212년 시칠리아 금인칙서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25년간 형과 협력하며 모라바를 통치했다. 경쟁자인 브르노의 스피티흐네프 3세 공작의 눈을 멀게 하고, 고해 신부 다니엘 밀리크를 프라하 주교로 임명했는데, 이는 보헤미아에서 군주가 처음 서임한 것이었다. 다니엘은 블라디슬라프와 오타카르의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 차례 로마 교황청에 항의했지만, 황제 임명 없이 1214년까지 주교직을 유지했다. 1205년 시토회 벨레흐라드 수도원을 모라바 변경백의 가족 수도원 겸 묘지로 설립했다.
출신이 알려지지 않은 하일비다(헤드비히)와 결혼했다. 즈노이모 궁정에서 후손 없이 사망했고, 모라바 변경백령은 오타카르 1세에게 돌아갔고, 오타카르 1세는 막내 아들 블라디슬라우스 2세에게 봉했다. 블라디슬라프는 벨레흐라드 수도원에 묻혔다.
2.1. 초기 생애
블라디슬라프 3세는 보헤미아 공국(체코) 블라디슬라프 2세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튀링겐의 유디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오타카르 1세의 동생이다.
1191년부터 1194년까지 브르노, 즈노이모 공작을 역임했다. 1192년에는 보헤미아 공작 바츨라프 2세를 폐위시킨 오타카르 1세를 지원했다. 1193년 6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는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 로마 제국 제국회의에서 오타카르 1세를 폐위시키고 프라하 주교였던 인드르지흐 브르제티슬라프를 보헤미아 공작으로 즉위시켰다. 블라디슬라프 3세는 프라하 성에 수감된 뒤부터 한동안 브르제티슬라프 3세의 감시를 받았다.
1197년 하인리히 6세 황제와 브르제티슬라프 3세 공작이 사망하면서 석방되었다. 1197년 6월 22일 보헤미아 공작으로 즉위했지만 보헤미아 전역에서 오타카르 1세를 지지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블라디슬라프 3세는 1197년 12월 22일 오타카르 1세에게 보헤미아 공작위 자리를 물려주고 모라바 변경백이 되었다.
2.2. 권력 투쟁과 타협
1191년부터 1194년까지 브르노, 즈노이모 공작을 역임했다. 1192년에는 보헤미아 공작 바츨라프 2세를 폐위시킨 오타카르 1세를 지원했다. 1193년 6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는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회의에서 오타카르 1세를 폐위시키고 프라하 주교였던 브르제티슬라프 3세(인드르지흐 브르제티슬라프)를 보헤미아의 공작으로 즉위시켰다. 그 후 블라디슬라프 3세는 프라하 성에 수감되어 브르제티슬라프 3세의 감시를 받았다.
1197년 하인리히 6세와 브르제티슬라프 3세가 사망하면서 석방되었다. 6월 22일 보헤미아 공작으로 즉위했지만, 보헤미아 전역에서 오타카르 1세를 지지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결국 12월 22일 블라디슬라프 3세는 오타카르 1세에게 보헤미아 공작위를 물려주고 모라바 변경백이 되었다.
2.3. 모라바 통치
1197년 12월 22일에 오타카르 1세에게 보헤미아 공작위를 물려주고 모라바 변경백이 되었다. 블라디슬라프는 왕위를 포기함으로써 아버지의 죽음 이후 25년 이상 지속된 프르제미슬 왕조의 파괴적인 왕위 다툼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1212년 시칠리아 금인칙서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 후 25년 동안 형제와 긴밀히 협력하며 모라비아를 통치했다. 경쟁자인 브르노의 스피티흐네프 3세 공작의 눈을 멀게 하고 자신의 고해 신부인 다니엘 밀리크를 프라하 주교로 임명했는데, 이는 보헤미아에서 군주가 처음으로 서임한 것이었다. 다니엘은 블라디슬라우스와 오토카르의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 차례 로마 교황청에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황제의 임명 없이 1214년까지 주교직을 유지했다. 1205년 시토회의 벨레흐라드 수도원을 모라비아 변경백의 가족 수도원 겸 묘지로 설립했다.
출신이 알려지지 않은 하일비다(헤드비히)와 결혼했다. 즈노이모의 궁정에서 후손 없이 사망했고, 그 후 모라비아 변경백령은 오토카르 1세에게 돌아갔고, 그는 그것을 그의 막내 아들 블라디슬라우스 2세에게 봉했다. 블라디슬라우스는 벨레흐라드 수도원에 묻혔다.
2.4. 사망
블라디슬라프 3세는 즈노이모 궁정에서 후손 없이 사망했다. 이후 모라비아 변경백령은 오토카르 1세에게 돌아갔고, 오토카르 1세는 이를 자신의 막내 아들 블라디슬라우스 2세에게 봉했다. 블라디슬라프 3세는 벨레흐라드 수도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