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의 난
1. 개요
비담의 난은 647년 비담이 염종 등과 함께 일으킨 신라의 반란이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선덕여왕의 건강 악화가 반란의 배경이 되었으며, 김유신이 이끄는 정부군과 비담 세력 간의 월성 전투, 유성 낙하 사건 등이 전개되었다. 김유신의 계책으로 반란군의 사기가 꺾이고 진압되었으며, 비담은 처형되었다. 반란 진압 중 선덕여왕이 사망하고 진덕여왕이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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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1. 정치적 혼란
647년 1월, 비담은 주위의 꾐에 넘어가 염종 등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이는 선덕여왕의 심장병이 최고조에 달해 기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 선덕여왕의 건강 악화
647년 1월, 비담은 주위의 꾐에 넘어가 염종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때 선덕여왕의 심장병은 최고조에 달하여, 선덕여왕의 기력이 쇠할 때를 노려 난을 일으켰다는 일설이 있다.
3. 전개 과정
김유신이 이끄는 정부군이 월성을 먼저 장악하여 비담은 월성에 진을 쳤다. 난 도중에 큰 유성이 떨어지자, 비담은 이를 반란군의 사기를 높이는 데 이용하려 했다. 김유신은 연에 불 붙인 허수아비를 달아 날리는 계책을 써서 반란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토벌하였다.
3.2. 유성 낙하 사건
난 도중에 밤에 큰 유성이 떨어지자, 이를 본 비담은 "내가 듣기로 별이 떨어진 아래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다고 하니, 이는 아마 여자 임금이 패할 징조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반란군의 사기를 높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