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가즈나리
1. 개요
사지 가즈나리는 오다 가문에 종속된 가신이자 해적 "사지 수군"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누이며,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 오에(스겐인)와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1584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원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샀고, 이후 오노를 퇴거당했다. 이후 이세로 도망쳐 오다 노부카네의 가신으로 있다가 1634년 교토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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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씨 -
스겐인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딸인 스겐인은 도요토미 히데카쓰와 사별 후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재혼하여 2대 쇼군비가 되었고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생모이다. -
사지씨 -
오노성 (아이치현 도코나메시)
오노성은 1350년경 잇시키 노리우지가 축성한 아이치현 도코나메시의 성으로, 사지 가문이 거점으로 삼았으나 오다 노부나가 사망 후 쇠퇴하였고 현재는 시로야마 공원으로 조성되어 천수와 해자 터 등이 남아있다. -
일본 전국수군 -
무라카미 수군
무라카미 수군은 세토 내해에서 활동한 일본 해상 세력으로, 인노시마, 구루시마, 노지마의 세 가문이 주축을 이루며 남북조시대부터 제해권을 장악하고 해상 경호와 통행세 징수 등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해적 정지령 이후 쇠퇴하였다. -
일본 전국수군 -
구키 요시타카 (센고쿠 시대)
구키 요시타카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활약한 구키 수군의 수장으로,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며 임진왜란에도 참전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후 자결한 철갑선 활용의 해전으로 유명한 무장이다. -
1569년 출생 -
허균
허균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로서, 홍길동전, 교산시화, 도문대작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나, 진보적인 사상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1569년 출생 -
다치바나 긴치요
다치바나 긴치요는 전국 시대 규슈의 다치바나 씨족 당주로서 뛰어난 지략과 용맹함으로 가문을 이끌었으며, 시마즈 씨족과의 전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후에도 활약한 여성 영주이다.
2. 가계
사지 가즈나리는 오와리 지타반도의 오노를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 지역을 영유한 사지 씨 출신으로, 이세만 해상 교통을 장악하는 해적 "사지 수군"을 이끌었다. 아버지가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누를 아내로 맞이하여 오다 일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사이 나가마사의 딸 고와 혼인했다가 후에 이혼했다고 전해지지만, 여러 설이 있다.
2.1. 아버지
사지 노부카타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누를 아내로 맞이한 오와리 사지 씨 일족으로, 오다 가문에 종속적인 가신이자 오다 일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지 씨는 지타반도의 오노를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 지역을 영유하며, 이세만 해상 교통을 장악하는 해적 "사지 수군"을 이끌었다.
노부카타는 덴쇼 2년( 1574년 ) 9월 28일, 이세 나가시마 공략에 종군하여 전사하였다.
2.2. 어머니
오이누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이다. 사지 노부카타 사후 호소카와 아키모토에게 재가했다. 오이누가 잇세이(가즈나리)의 친모가 아닐 가능성, 잇세이가 노부카타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
가즈나리는 어머니 오이누가 사망했을 때, 망모의 조문료로 10월 3일에 3관 989문을, 다음 해에 향료로 19관 655문을 봉납하여, 이별 후에도 어머니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이 템플릿은 제거 대상이다.
2.3. 배우자
* 오에이요(1583년 결혼, 1592년 이혼)
* 스겐인(고):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노카타(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의 셋째 딸. 도요토미 히데카쓰와 결혼, 히데카쓰 사후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재혼했다.
* 혼인 시기 및 배경:
* 덴쇼 12년(1584년) 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지 가문과 오다 노부오를 회유하기 위해 혼인을 주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덴쇼 12년(1584년) 봄: 오다 노부오가 혼인을 결정했다는 설도 있다.
* 덴쇼 2년(1574년): 오다 노부나가가 오이치노카타의 재가를 위해 혼인을 주선했을 가능성도 있다.
* 이혼: 덴쇼 12년(1584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이후 가즈나리가 오노에서 추방당하면서 이혼.
* 아자이 삼자매 중 차차는 "미다이도코로", 하쓰는 "실"로 칭해지는 반면, 오에는 "아내"로 격하된 표현을 사용. 혼인의 의의나 약혼만이었을 가능성 등 실태에 대해서는 논의가 존재한다.
* 가즈나리와 오에 사이에는 "오키타"와 "오누이"라는 두 딸이 있었고, 오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돌아갔을 때 자결했다는 전승이 있다.
* 오후리: 오다 노부나가의 딸.
2.4. 자녀
* 키타히메
* 누이히메
* 사지 타메나리
3. 생애
오와리 사지 씨는 지타반도의 오노를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 지역을 영유한 일족으로, 이세만 해상 교통을 장악하는 해적 "사지 수군"을 이끌었다. 아버지 노부카타가 에이로쿠 초년경에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누를 아내로 맞이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다 씨에게 종속적인 가신이라는 설과 독립적인 국중이라는 설, 오다 일문 격이라는 설이 있다.
오미국오다니성 주군 아사이 나가마사의 딸 고와 결혼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후에 이혼했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있다.
3.1. 오다 가문과의 관계
1574년 아버지 노부카타가 오다 노부나가의 이세 나가시마 공략에 종군하여 전사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가독을 상속했다.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한 후, 노부나가의 차남 오다 노부오를 섬겼다.
3.2.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와 몰락
1584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원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샀다. 히데요시는 가즈나리가 총애하는 측실의 여동생인 고와 결혼하도록 주선했지만, 가즈나리가 이에야스를 지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고를 거두어갔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이후에도 가즈나리의 오노 지배가 확인되지만, 1585년 무렵 오다 노부오의 '분한장'에는 가즈나리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이 시기에 영지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 오이누가 사망했을 때 조문료를 보내는 등, 이별 후에도 어머니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4. 스겐인(고)과의 혼인 및 이혼
오에이요(스겐인)는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노카타(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의 셋째 딸로, 가즈나리의 사촌이다. 1583년 오이치노카타와 시바타 가쓰이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하여 자결한 후, 스겐인은 언니들과 함께 히데요시에게 거두어졌다.
가즈나리와 스겐인의 혼인 시기 및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 오와다 테츠오 설: 1584년 초, 히데요시가 사지 씨나 오다 노부오를 회유하기 위해 혼인을 주선했다.
* 미야모토 요시미 설: 1584년 봄, 오다 노부오가 혼인을 주선했다.
* 돗토리번 이케다 가문 유래서: 1574년 노부카타 전사 후, 오이누의 재가를 돕기 위해 노부나가가 혼인을 주선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즈나리와 스겐인 사이에 두 딸(오키타, 오누이)이 있었으며, 스겐인이 히데요시에게 돌아갔을 때 두 딸이 자결했다는 전승이 있다.
가즈나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히데요시는 스겐인을 다시 데려갔다. 스겐인은 이후 이에야스의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결혼하여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를 낳았다.
5. 대중문화
NHK 대하드라마 고(2011)에서 히라 타케히로가 사지 가즈나리 역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