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국은 일본의 옛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시가현에 해당한다. 야요이 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고분 시대에는 이민족 씨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아스카 시대에는 오미 오쓰 궁과 시가라키 궁이 수도 역할을 했다. 다이호 율령 제정 이후 '오미'로 표기되었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헤이안쿄와 가까워 전략적 요충지였다. 헤이안 시대 후반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사사키 씨족이 슈고 직을 장악했고, 센고쿠 시대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아즈치성을 건설하여 일본 통일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는 여러 한으로 분할되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 시가현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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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국 - 아네가와 전투 아네가와 전투는 1570년에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 간에 벌어진 전투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승리하였으나 아자이 가문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노부나가 포위망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오미국 - 히요시타이샤 히요시타이샤는 시가현 오쓰시에 위치한 오야마쿠이노카미를 모시는 신사로, 히에이 산 숭배의 중심지이며, 국보인 본전과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산왕신앙과 신불습합의 흔적을 보여주는 곳이다.
도산도 - 리쿠젠국 리쿠젠국은 1869년 무쓰국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일본의 옛 행정 구역으로, 보신 전쟁 이후 미야기현과 이와테현으로 분할 편입되었으며, 14개의 군으로 구성되었다.
도산도 - 무쓰국 무쓰국은 일본 고대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미치노오쿠"에서 유래하여 설치된 국으로, 데와국과 분리되어 넓은 지역을 관할하며 호족 세력의 번성, 무사 가문의 지배 시대를 거쳐 메이지 유신 이후 5개 국으로 분할되었다.
시가현의 역사 - 야마우치 가즈토요 야마우치 가즈토요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으로,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도사국을 얻어 다이묘가 되었고, 고치성을 축조하고 가다랑어 타다키의 유래를 만들었으며 20만 석의 영주가 되었으나 자식 없이 사망했다.
시가현의 역사 -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일본에서 발생한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괴도 21면상을 자칭하는 범인들이 글리코 사장 유괴를 시작으로 글리코와 모리나가 제과 등 식품 회사를 협박하며 청산가리를 넣은 과자를 유통시키겠다고 위협한 미해결 기업 협박 사건이다.
오미국은 처음에는 '淡海'로 표기하고 '아하미(あはうみ)' 또는 '아후미(あふみ)'로 읽었으며, '지카쓰아하미(近淡海)'로도 읽었다. 《고사기》에는 '近つ淡海國', '淡海國', '近淡海國' 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아스카에서 후지와라 시대(다이카 개신부터 일본에 율령제가 시작될 때까지의 기간)에 제작된 목간에는 '近水海'로 기재된 것도 있다.[3]
701년다이호 율령 제정 이후 '近江(오미)'로 표기하게 되었다. 713년 각 지방의 명칭을 좋은 의미를 가진 두 글자로 표기하라는 법령에 따라 '近江'로 정착되었다.
오미는 《고사기》에서 "'''치카츠아와우미'''(近淡海)", "'''아와우미'''(淡海)"로 기록되어 있다. "아와우미"가 있는 나라이며, 기나이에서 가까운 나라라는 의미로, "'가까운 아와우미국'"이지 "'가까운 아와우미'국"은 아니다.[4]
3. 연혁
오미 지역에는 적어도 야요이 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았으며, 여러 대규모 정착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고분 시대에는 이 지역이 여러 강력한 씨족들에게 지배받았는데, 특히 백제계 도래인인 와니 씨족(和邇氏族)의 영향력이 컸다.[2]
아스카 시대에는 오미 오쓰 궁과 시가라키 궁이 잠시 일본의 수도 역할을 했으며, 진신의 난과 같은 주요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나라 시대에는 국청과 국분사가 설치되었고, 다케베타이샤가 이 지역의 최고 신사(''이치노미야'')로 지정되었다.[2]헤이안 시대에는 수도 헤이안쿄와 가깝고 도카이도와 나카센도 등 주요 교통로가 지나가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덴다이 종파의 총본산인 엔랴쿠지가 히에이산에 세워졌다.
헤이안 시대 후반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사사키 씨족(佐々木氏族)이 오미국의 슈고직을 장악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롯카쿠 씨족(六角氏族)과 교고쿠 씨족(京極氏族)의 방계 가문이 오미국을 지배했다. 센고쿠 시대에는 이들 씨족 간의 내분과 아자이 씨족, 아사쿠라 씨족 등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다. 1560년대 후반에서 1570년대에 걸쳐 오다 노부나가가 오미국을 침략하여 아즈치성을 쌓고 일본 통일의 거점으로 삼으려 했다. 혼노지의 변 이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오미국을 수여하였다.
도쿠가와 막부 수립 후, 오미국은 여러 번으로 분할되었으며, 그중 가장 큰 번은 이이 씨족이 통치한 히코네번이었다. 오미는 도카이도의 5개 역참(도카이도 53차)과 나카센도의 8개 역참(나카센도 69차)이 있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계속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1년 11월 22일, 오미국 내의 천령과 하타모토 영토에서 오쓰현과 나가하마현이 창설되었고, 각 옛 번은 자체 현을 형성했다. 이들은 1872년 1월 19일에 합병되어 시가현을 형성했다. 1876년 8월 21일부터 1881년 2월 7일까지는 후쿠이현의 레이난 지역(쓰루가시 서쪽)이 시가현에 속해 동해에 해안선을 가지기도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합병이 철회되었다.
니노미야 히요시타이샤 - 히에이 산엔랴쿠지와 관계가 깊어, 이치노미야를 능가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산노미야 다카타이샤 또는 미카미 신사
5. 지역
오미 지역은 적어도 야요이 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했으며, 여러 대규모 정착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고분 시대에는 이 지역이 여러 강력한 이민족 씨족에게 지배받은 것으로 보이며, 특히 백제 출신인 와니 씨족(Wani clan)이 두드러졌다. "오미" 또는 "비와호"라는 이름은 ''고지키'', ''만요슈'' 등 고대 문서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원래 "아하우미"(淡海), "지카우미"(近淡海, 담수 바다 또는 근처 담수 바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오미노우미(近江海)로 발전했다. "오미"라는 이름은 701년 다이호 율령 제정 및 시행, 713년 ''율령'' 시스템에 따라 정의된 지방 이름을 두 개의 상서로운 한자를 사용하여 명명해야 한다는 법령이 내려진 후에 고정되었다.
현재 오쓰시에 위치한 오미 오쓰 궁과 고카시에 위치한 시가라키 궁은 잠시 일본의 수도였으며, 오미는 아스카 시대진신의 난의 여러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나라 시대에는 국청과 국분사가 이전 오미 오쓰 궁 유적 근처 오쓰에 세워졌고, 다케베타이샤는 이 지방의 최고 신사(''이치노미야'')로 지정되었다.[2]헤이안 시대에는 수도 헤이안쿄와 가깝고, 수도를 일본 동부 지방과 연결하는 도카이도와 나카센도 고속도로, 수도에서 동해로 가는 주요 경로에 위치하여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일본의 불교가 확산되면서 덴다이의 대사찰인 엔랴쿠지가 오미의 히에이산에 건설되었다.
헤이안 시대 후반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사사키 씨족이 오미국의 슈고 직을 장악했으며, 롯카쿠 씨족과 교고쿠 씨족의 방계 가문은 무로마치 시대까지 이 지방을 계속 지배했다. 혼란스러운 센고쿠 시대에는 내부 갈등으로 두 씨족 모두 약해졌고, 오미는 북쪽의 아자이 씨족과 아사쿠라 씨족, 남쪽의 롯카쿠 씨족과 고카 잇키 사이의 전투장이 되었다. 1560년대 후반에서 1570년대에 걸쳐 오다 노부나가가 동쪽에서 침략하여 아자이, 아사쿠라, 롯카쿠, 고카 및 아시카가 막부를 격파하고, 오미의 비와호 근처에 아즈치성을 건설하여 일본 전체를 지배하려 했다. 혼노지의 변 이후, 이 지방의 대부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숙적이었던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수여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1년 11월 22일, 오미국 내 옛 천령과 하타모토 영토에서 오쓰현과 나가하마현이 창설되었고, 각 옛 번은 자체 현을 형성했다. 이들은 1872년 1월 19일에 합병되어 시가현을 형성했다. 1876년 8월 21일부터 1881년 2월 7일까지 후쿠이현 레이난 지역(쓰루가시 서쪽)이 시가현에 속해 동해에 해안선을 가지기도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합병이 철회되었다.
5. 1. 군(郡)
오미국은 12개의 군(郡)으로 나뉘었다.
군(郡) 이름
비고
시가군
폐지
구리타군
폐지
코카군
폐지
야스군
폐지
가모군
칸자키군
폐지
에치군
이누카미군
사카타군
폐지
아자이군
이카군
1897년 4월 1일 니시아자이군을 흡수; 현재 폐지
다카시마군
폐지
5. 2. 에도 시대의 번(藩)
도쿠가와 막부 수립 후, 오미 지역 대부분은 여러 한으로 분할되었으며, 그중 가장 큰 것은 이이 씨가 통치한 히코네번이었다. 오미는 교통로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했으며, 도카이도의 5개 역과 나카센도의 8개 역이 있었다.[2]
오미국의 번은 다음과 같다.
오미국의 번 목록
이름
수도
지배 가문 및 석고
히코네 번
사와야마 성 (1600년 ~ 1606년) 히코네 성 (1606년 ~ 1871년)
이이 씨 (1600년 ~ 1871년, →→→→→→)
제제 번
제제 성
도다 씨 (1601년 ~ 1616년, )
미나쿠치 번
미나쿠치 성
가토 씨 (1682년 ~ 1695년, )
오미조 번
오미조 진야
와케베 씨 (1619년 ~ 1871년, )
닛쇼지 번
닛쇼지 진야
이치하시 씨 (1620년 ~ 1871년, →→)
야마카미 번
야마카미 진야
안도 씨 (1604년 ~ 1695년, )
오미-미야가와 번
미야가와 진야
홋타 씨 (1698년 ~ 1871년, →)
미카미 번
미카미 진야
엔도 씨 (1698년 ~ 1870년, →)
카타타 번
카타타 진야
홋타 씨 (1698년 ~ 1826년, →)
쿠츠키 번
쿠츠키 진야
쿠츠키 씨 (1636년 ~ 1648년, )
오모리 번
오모리 진야
모가미 씨 (1622년 ~ 1632년, )
오미-다카시마 번
사쿠마 씨 (1600년 ~ 1616년, →)
오미-코무로 번
코무로 진야
코보리 씨 (1619년 ~ 1788년, 12460석→11460석→16300석)
6. 인물
오미국일본어(近江国)은 일본헤이안 시대까지 국사가 임명되어 통치하였다. 헤이안 시대의 국사로는 오미노카미, 오미노스케, 오미노조 등의 관직이 있었다.
[1]
서적
Ōmi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2005
[2]
웹사이트
Nationwide List of Ichinomiya
http://eos.kokugakui[...]
2011-08-09
[3]
간행물
『古事記』と木簡に見える国名表記の対比
2012
[4]
간행물
「大津宮」の宮号とアフミの表記
1996
[5]
문서
旧高旧領取調帳
[6]
문서
狭山藩廃藩
1870-01-27
[7]
문서
丸亀藩廃藩
1871-05-28
[8]
문서
大溝藩廃藩
1871-04-16
[9]
문서
籐氏家伝の武智麻呂伝
[10]
간행물
近江守護六角氏の研究
1978
[11]
문서
佐々木氏と京極氏
[12]
웹사이트
近江の人 木沢まさと: ブランド構築に向けて
https://mokuzawa.exb[...]
201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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