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 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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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카구치 료코는 1971년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였다. 1972년 드라마 《아이짱이 간다!》로 주연을 맡았고, 같은 해 싱글 「あこがれ(아코가레)」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드라마 《사인은 V》, 《전략 어머니께》, 《이케나카 겐타 80킬로》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 《견신가의 일족》, 《옥문도》 등에도 출연했다. 2013년 횡행결장암과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말년에는 딸 사카구치 안리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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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료코 | |
---|---|
기본 정보 | |
예명 | 坂口 良子 |
후리가나 | さかぐち りょうこ |
본명 | 尾崎 良子 (おざき りょうこ) |
출생지 | 일본 홋카이도 요이치 군 요이치정 |
사망지 | 일본 도쿄도 |
국적 | 일본 |
혈액형 | O형 |
생년 | 1955년 |
생월 | 10월 |
생일 | 23일 |
사망년 | 2013년 |
사망월 | 3월 |
사망일 | 27일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71년 - 2013년 |
활동 내용 |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연극 |
배우자 | 田山恒彦 (1986년 - 1994년) 오자키 다케오(2012년 - 2013년) |
가족 | 사카구치 안리 (딸) |
주요 작품 | |
텔레비전 드라마 | 신・사인은 V 전략, 어머니 굿바이 마마 미케네코 홈즈 시리즈 이케나카 겐타 80킬로 |
수상 | |
菊田一夫 연극상 | 제27회 연극상 "질옥의 여편" |
2. 약력
1971년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연예계에 진출하였다. 1972년 후지 TV 드라마 《아이짱이 간다!》로 주연 데뷔하였다. 2013년 3월 27일 오전 3시 40분, 횡행결장암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1971년, 15세의 나이로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6] 1972년, 싱글 「あこがれ(아코가레)」(あこがれ|아코가레일본어)로 가수 데뷔를 했고, 같은 해 후지 TV 드라마 《아이짱이 간다!》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며 배우 데뷔도 하였다.[2]
3. 생애
이후 드라마 《사인은 V(1973년판)》에서 주인공 에가와 유카 역을 맡아 주제가를 불렀고, 1975년 《전략 어머니께》, 1980년 《이케나카 겐타 80킬로》 등의 작품에도 출연했다. 1970년대에는 아이돌적인 대우를 받았으며,[7] 이시이 후쿠코(石井ふく子)에게 "이시이 팀(石井組)"의 일원으로 여겨졌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치카와 곤(市川崑) 작품을 중심으로 영화 출연도 많이 했으며, 이치카와 작품에는 총 4편에 출연했다.[6] 영화 평론가 타야마 리키야(田山力哉)는 「일본 영화 배우 전사. 여배우 편」(사회사상사)에서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보다 큰 스크린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라며 극찬했다. 조연이 많았지만, 《돌아온 와카다이쇼(帰って来た若大将)》에서는 여배우 톱에 해당하는 준주연이었다.
말년에는 딸 사카구치 안리와 함께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2012년 11월 20일에 함께 녹화한 《아메아가리 쇼쿠라부(雨上がり食楽部)》가 생전 마지막 TV 출연이 되었다 (12월 22일 방송).[8]
2013년 3월 12일, 「주간여성」은 사카구치 료코의 중병설을 보도했다.[9] 사카구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요양 중이라고 설명했다.[10] 그러나 2013년 3월 27일 오전 3시 40분, 횡행결장암과 폐렴으로 사망했다.[2] 향년 59세(만 57세). 니시다 토시유키는 “겐타를 사랑한 아코를 그렇게 멋지게 연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추모글을 발표했다.[11]
3. 1. 학창 시절
요이치정립 히가시 중학교를 졸업하고 오타루 후타바 고등학교에 입학, 호리코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5]
3. 2. 가수 및 배우 활동
1971년, 15세의 나이로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6] 1972년, 싱글 「あこがれ(아코가레)」로 가수 데뷔를 했다. 같은 해 후지 TV 드라마 《아이짱이 간다!》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며 배우 데뷔도 하였다.[2]
이후 잇달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고, 드라마 《사인은 V(1973년판)에서는 주인공 에가와 유카 역을 맡아 주제가도 불렀다. 그 외에도 1975년의 《전략 어머니께》, 1980년의 《이케나카 겐타 80킬로》 등의 작품이 히트했으며, 특히 1970년대에는 아이돌적인 대우를 받았다.[7] 이시이 후쿠코(石井ふく子)에게서도 귀하게 여겨져 "이시이 팀(石井組)"의 일원으로 여겨졌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치카와 곤(市川崑) 작품을 중심으로 영화 출연도 많이 했으며, 이치카와 작품에는 총 4편에 출연했다.[6] 영화 평론가 타야마 리키야(田山力哉)는 「일본 영화 배우 전사. 여배우 편」(사회사상사)에서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보다 큰 스크린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라며 극찬했다. 조연이 많았지만, 《돌아온 와카다이쇼(帰って来た若大将)》에서는 여배우 톱에 해당하는 준주연이었다.
말년에는 딸 사카구치 안리와의 공동 출연이 많았고, 함께 출연한 2012년 11월 20일 녹화된 《아메아가리 쇼쿠라부(雨上がり食楽部)》가 생전 마지막 TV 출연이 되었다 (12월 22일 방송).[8]
3. 3. 사망
2013년 3월 12일 발매된 「주간여성」은 사카구치 료코의 중병설을 보도했다.[9] 사카구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요양 중이라고 설명했다.[10] 그러나 2013년 3월 27일 오전 3시 40분, 횡행결장암과 폐렴으로 사망했다.[2] 향년 59세(만 57세). 니시다 토시유키는 “겐타를 사랑한 아코를 그렇게 멋지게 연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추모글을 발표했다.[11]
4. 사생활
1986년에 부동산 회사 사장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았다. 딸 사카구치 안리는 배우가 되었다. 1994년에 이혼하였으며, 2012년 8월에 15년에 걸쳐 사실혼 상태였던 골프 선수 오자키 다테오와 재혼하였다.
5. 가족 관계
1986년에 부동산 회사 사장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았다. 딸은 사카구치 안리로, 배우가 되었다. 1994년에 이혼하였으며, 2012년 8월에 15년에 걸쳐 사실혼 상태였던 골프 선수 오자키 다테오와 재혼하였다.[1]
1986년 부동산 회사 사장 다야마 쓰네히코[1]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6] 그러나 이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의 보증인이 되었고, 남편은 건물 등을 매입했으나, 버블 붕괴로 사카구치는 40억엔의 빚을 지게 되었다.[6] 1994년 이혼한[1] 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녀들의 양육을 부탁하고 필사적으로 일하여[6], 전 남편의 40억엔의 빚을 10년 만에 전액 상환했다.[1][6] 연 4억엔은 일본 최고 여배우의 연봉보다 많다.
1998년 지인의 소개로 프로 골퍼 오자키 겐오를 만나 오랫동안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6] 이후 장남의 대학 졸업을 계기로 2012년 8월 12일 혼인 신고를 했다.[1][6] 피로연은 오자키의 고향인 도쿠시마현 카이후군 가이요정의 호텔에서 열렸다. 그러나 그 이듬해 사카구치가 사망하여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했다.[6]
6. 출연 작품
4월 10일
10월
4월
10월
6월
2월 25일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