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미쓰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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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사와 미쓰하루는 1962년 홋카이도 유바리시에서 태어난 프로레슬러로, 1981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하여 2대 타이거 마스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9년 자이언트 바바의 사망 후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장으로 취임했지만, 바바의 아내와의 갈등으로 2000년 프로레슬링 노아를 설립하여 사장 겸 선수로 활동했다. 2009년 경기 중 사망하기 전까지 GHC 헤비급 챔피언을 세 번, GHC 태그 챔피언을 두 번 차지했으며, "받기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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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미쓰하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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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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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미쓰하루 미사와 타이거 마스크 2세 카미카제 미사와 |
키 | 1.85m |
몸무게 | 110kg |
출생일 | 1962년 6월 18일 |
사망일 | 2009년 6월 13일 |
출생지 | 유바리시, 홋카이도, 일본 |
사망지 | 히로시마 대학교 병원, 히로시마시, 일본 |
사망 원인 | 환축추 탈구 |
배우자 | 마유미 미사와 (1988년 결혼) |
자녀 | 2명 |
훈련자 | 카즈하루 소노다 아키히사 타카치호 딕 바이어 자이언트 바바 도리 펑크 주니어 루 테즈 라 피에라 |
데뷔 | 1981년 8월 21일 |
출생 이름 | 미쓰하루 코타케 |
별칭 | 방주의 맹주 프로레슬링 노아의 상징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상징 미스터 삼관 언터처블 엘보의 귀공자 왕도의 계승자 초세대군의 기수 유리 에이스 |
로마자 표기 | Mitsuharu Misawa |
소속 | 프로레슬링 노아 |
스포츠 경력 | 아마추어 레슬링 기계 체조 |
프로레슬링 정보 | |
링네임 | 미사와 미쓰하루 타이거 마스크 (2대) 카미카제 미사와 리온 |
닉네임 | 방주의 맹주 노아의 상징 전일본의 상징 미스터 삼관 언터처블 엘보의 귀공자 왕도의 계승자 초세대군의 기수 유리 에이스 |
활동 지역 | 사이타마시, 일본 |
일본어 정보 | |
본명 | 三澤 光晴 |
링네임 (일본어) | 三沢 光晴 タイガーマスク(2代目) カミカゼ・ミサワ リオン |
닉네임 (일본어) | 方舟の盟主 ノアの象徴 全日本の象徵 ミスター三冠 アンタッチャブル エルボーの貴公子 王道の継承者 超世代軍の旗手 ガラスのエース |
출생지 (일본어) | 北海道夕張市生まれ, 埼玉県越谷市育ち |
소속 (일본어) | プロレスリング・ノア |
스포츠 경력 (일본어) | レスリング 器械体操 |
트레이너 (일본어) | ジャイアント馬場 ジャンボ鶴田 ザ・デストロイヤー ドリー・ファンク・ジュニア ラ・フィエラ |
데뷔 (일본어) | 1981年8月21日 |
은퇴 (일본어) | 2009年6月13日 |
2. 유년 시절
1962년 6월 18일, 홋카이도 유바리시에서 고타케 미쓰하루(小竹 光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301][302] 아버지는 홋카이도탄광기선(北海道炭礦汽船)에 근무했지만, 미사와가 태어난 직후 유바리탄광(夕張炭鉱)이 사실상 폐광 상태가 되어 가족은 사이타마현 고시가야시로 이주했다.[301][302] 따라서 미사와는 홋카이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한다.[303] 원래 그의 이름은 히데키(Hideki)였지만, 아버지가 무시하고 당시의 텔레비전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을 따 '미츠하루(光晴)'로 출생 신고를 해버렸기 때문에 '미츠하루'라는 이름이 되었다.[19][304]
미사와에게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형이 있었다.[1] 미사와의 말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인 아키코 미사와(Akiko Misawa)에게 폭력적이었고, 한때 부엌칼로 어머니를 찌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미사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혼했고, 그로 인해 미쓰하루와 그의 형제는 미사와라는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미사와는 초등학교 시절 고시가야에서 열린 멀리뛰기 대회에서 우승했고,[305][306] 중학교에서는 체조부에 들어갔다.[305] 미사와의 말에 따르면 유치원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회상한다.[307] 참고로, 초등학생 시절의 미사와는 권투선수가 되고 싶어했다.[308]
중학교 2학년 때, 텔레비전에서 전일본 프로레슬링 중계를 보고 프로레슬러를 지망하게 된다.[309][310]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레슬러가 될 생각이었지만, 담임 선생님과 어머니에게 레슬링이 강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기초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설득을 받았고, 사이타마현에 레슬링부가 있는 곳은 사이타마에이 고등학교(埼玉栄高校)뿐이었기 때문에, 당시 2년 연속으로 전국고등학교종합체육대회(インターハイ)를 제패한 아시카가공업대학 부속고등학교(足利工業大学附属高等学校)에 특기생으로 진학하여, 동교의 레슬링부에 입부했다.[311][312][313]
미사와는 고등학교 3년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혹독한 훈련에 매달리는 나날을 보냈다.[314][315] 나중에 미사와는 레슬링부의 훈련이 혹독했던 덕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훈련을 그다지 힘들게 느끼지 않았다고 회고하고 있다.[316][317] 3학년 때는 제35회 국민체육대회(국체)(프리스타일 87kg급)에서 우승하는 등 활약했지만,[318] 미사와에게 레슬링은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경기 자체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미사와는 고등학교 졸업 시 여러 대학과 자위대에서 스카우트되었지만, 그때의 심정에 대해 "『겨우 3년간 참았는데, 또 4년이나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 녀석!』같은 느낌이었죠"라고 표현하고 있다.[319]
참고로, 미사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기숙사를 뛰쳐나와 당시 롯폰기(六本木)에 있던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무실을 방문하여 입문을 지원한 적이 있다.[320] 이때 장보 쓰루타(ジャンボ鶴田)에게 "열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라.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레슬링에 입문했으니까, 결코 늦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충고를 받고 포기했다.[321]
2. 1. 아마추어 레슬링 경력
미사와는 어린 시절부터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처음 좋아했던 레슬러는 호스트 호프만(Horst Hoffman)과 쟌보 쓰루타(Jumbo Tsuruta)였다.[2] 호프만의 에메랄드 그린색 레슬링 팬츠는 후에 미사와가 모방하기도 했다.[2][20] 12살 때부터 프로레슬러가 되는 것을 꿈꿔왔지만,[1] 중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레슬러가 되려던 미사와의 계획은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의 설득으로 무산되고, 대신 아마추어 레슬링 프로그램이 우수한 아시카가 공과대학(Ashikaga Institute of Technology) 부속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1]미사와는 장학금을 받고 도치기현(Tochigi Prefecture) 아시카가 공과대학 부속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1년 후배인 카와다 도시아키(Toshiaki Kawada)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1] 2학년 때 레슬링 훈련을 위해 중퇴하려 했지만, 쟌보 쓰루타를 만난 후 그의 설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레슬링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아마추어 레슬링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받았다.[1]
84.8kg의 체중으로 1980년 전국 고등학교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1] 같은 해에는 주니어 그룹의 프리 스타일 레슬링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5위를 차지했다.[21] 미사와의 코치 야마토 오시모는 1981년 주신 라이거를 물리치고 카와다를 전국 챔피언으로 이끌기도 했다.[2]
홋카이도 유바리시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근무하던 유바리탄광이 폐광되면서 가족은 사이타마현 고시가야시로 이주했다.[301][302] 미사와의 말에 따르면 유치원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회상한다.[307] 초등학생 시절에는 권투선수가 되고 싶어했다.[308]
중학교에 입학하자 체조부에 입부했다.미사와는 자신의 저서에서 체조 경험이 프로레슬링의 공중 기술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2학년 때, 전일본 프로레슬링 중계를 보고 프로레슬러를 지망하게 된다.[309][310] 고등학교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휴일은 오봉과 정월 3일뿐이었다.[314] 3학년 때는 제35회 국민체육대회(프리스타일 87kg급)에서 우승했다.[318] 고등학교 졸업 시 여러 대학과 자위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모두 거절하였다.미사와는 "『겨우 3년간 참았는데, 또 4년이나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 녀석!』같은 느낌이었죠"라고 표현하고 있다.
3. 프로레슬링 경력
1981년 전일본프로레슬링(AJPW)에서 데뷔하여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제2대 타이거 마스크로 활동했다.
1999년 자이언트 바바가 사망한 후, 미사와 미쓰하루는 레슬러들의 지지를 받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으로 취임했다.[406][407][408] 그러나 자이언트 바바의 아내 바바 모토코와의 갈등으로 인해, 2000년 전일본의 주요 선수들을 이끌고 전일본을 탈퇴하여 새로운 프로레슬링 단체인 프로레슬링 노아를 설립했다.
3. 1. 전일본 프로레슬링 (1981–2000)
1981년 전일본프로레슬링(AJPW)에서 데뷔하여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제2대 타이거 마스크로 활동했다.1999년 자이언트 바바가 사망한 후, 미사와 미쓰하루는 레슬러들의 지지를 받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으로 취임했다.[406][407][408] 그러나 자이언트 바바의 아내 바바 모토코와의 갈등으로 인해, 2000년 전일본의 주요 선수들을 이끌고 전일본을 탈퇴하여 새로운 프로레슬링 단체인 프로레슬링 노아를 설립했다.
=== 데뷔와 초기 (1981–1984) ===
1981년 3월 27일, 고등학교 졸업 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했다. 같은 해 8월 21일, 우라와 경마장 정문 앞 주차장에서 열린 고시나카 시로 전으로 데뷔했다.[322] 이는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상 최고 속도의 데뷔였다.[326] 1983년에는 루 테즈컵 쟁탈 리그전에 출전하여 결승에 진출했지만, 고시나카 시로에게 패했다. 하지만 이 시합을 특별 심판했던 루 테즈는 "일본에서 본 젊은 선수들의 시합 중 최고의 경기가 아니었나"라며 높이 평가했다.[327]
타잔 고토에 따르면, 미사와는 수신(受身)을 배우는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자신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328][329] 햐쿠다 미쓰오에 따르면, 미사와는 모든 종류의 수신을 한 번만 가르쳐주면 대부분 익혔다고 한다.[329] 후유키 히로미치는 미사와를 천재형 레슬러로, 자이언트 바바는 연습 중 수신 소리만 듣고도 미사와가 수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330][298][331]
원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자이언트 바바를 비롯한 대형 레슬러들이 중시되었지만, 사토 아키오의 뒷받침을 받아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332]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 연습생의 월급은 5만 엔이었지만, 미사와는 특별히 7만 엔을 받았다.[334]
=== 2대 타이거 마스크 (1984–1990) ===
1984년 7월 31일 구라마에 고쿠기칸에서 2대 타이거 마스크로 데뷔했다. 8월 26일 데넨 콜로세움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라 피에라를 꺾었다. 1985년에는 고바야시 쿠니아키와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 6월 21일 일본무도관에서 NWA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십을 놓고 대결했으나 패했다. 8월 31일, 미사와는 고바야시를 꺾고 NWA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했다.[2] 미사와는 한 손으로 고바야시를 하프 넬슨 자세로 잡은 후 들어올리는 타이거 수플렉스 변형 기술을 사용했는데, 이는 ''타이거 수플렉스 '85''로 알려지게 되었다.[30] 1986년 3월, 무릎 문제로 인해 헤비급으로 승격하면서 챔피언십은 공석이 되었다.[2][1]
1986년 4월 19일, 미사와와 자이언트 바바는 크로켓 컵에 참가, 8강에 진출했지만 로니 가빈과 매그넘 T.A.에게 패했다.[32] 4월 20일에는 WrestleRock 86 이벤트에 참가하여 벅 줌호페를 꺾었다.[28] 1987년 3월, 릭 플레어와의 NWA 챔피언 경기에서 패했다.[33] 7월 3일, 미사와와 츠루타는 테드 디비아세와 스탠 핸슨으로부터 PWF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지만, 8일 만에 다시 이전 챔피언들에게 벨트를 넘겨주었다.[34] 1988년 1월 2일, 커트 헤닝과의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 매치에서 카운트아웃으로 승리했지만, 타이틀은 바뀌지 않았다.[37][2][38] 1989년 3월 8일, 리키 스팀보트를 상대로 NWA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패했다.[40]
타이거 마스크 시절의 미사와는 1대째 타이거 마스크(사야마 사토시)가 확립한 화려한 공중 기술을 계승해야 했다. 이는 미사와가 원래 목표로 했던 프로레슬링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미사와는 그 점에 고민했다. 공중 기술을 많이 사용한 결과 미사와의 무릎에는 부담이 걸려 왼쪽 무릎 전십자 인대 파열을 일으켜, 1989년 3월부터 1990년 1월까지 장기 결장을 피할 수 없었다.
=== 본명 활동과 초세대군 결성 (1990-1993) ===
1990년 5월 14일, 천룡원일랑 등이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퇴단하고 SWS로 이적하면서(SWS 사건) 전일본은 존폐 위기에 놓였다.[370] 같은 날, 미사와는 경기 도중 파트너 카와다 토시아키에게 마스크 끈을 풀도록 지시하여 갑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벗은 마스크를 관중석으로 던졌다.[372] 2일 후, 링네임을 "미사와 미쓰하루"로 되돌릴 것을 발표했다.[373]
미사와는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등과 함께 초세대군을 결성했다.[375][377][378] 1990년 6월 8일, 쓰루타와의 싱글 매치에서 승리,[379] 1992년 8월 22일에는 스탠 한센을 꺾고 삼관 헤비급 왕좌를 획득하는 등 초세대군의 중심 레슬러로 활약했다.[375][377] 초세대군과 잔보 츠루타를 중심으로 한 츠루타군의 세대 항쟁은 전일본의 새로운 명물 카드가 되었다.[380] 1992년 7월, 잔보 츠루타가 내장 질환으로 장기 휴식을 취하게 되면서 초세대군과 츠루타군의 항쟁은 종식되었고,[383][384][385] 미사와는 실질적인 에이스가 되었다.[379] 초세대군의 활동은 1993년 카와다가 탈퇴하면서 마무리되었다.
=== 프로레슬링 사천왕 시대 (1993-1999) ===
초세대군 활동이 마무리 된 이후, 코바시·카와다·타우에와 함께 프로레슬링 사천왕 중 한 명으로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중심을 담당했다.[383][384][385] 미사와는 1992년 8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삼관 통일 헤비급 왕좌를 5회 획득, 21회 방어했다.[387][388] 1994년 3월 5일에는 자이언트 바바로부터 태그 매치에서 폴 승리를 거두고, 명실상부하게 전일본을 대표하는 레슬러가 되었다.[389][390]
초세대군이 결성되었을 당시, 자이언트 바바는 흉기 공격, 출혈, 링 아웃·반칙·기브업에 의한 결착이 없는 경기보다 3카운트 폴에 의해서만 결착을 짓는 프로레슬링을 이상으로 여기게 되었고, 미사와를 비롯한 초세대군 레슬러들은 바바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대기술을 2.9 카운트에서 계속 받아치는 치열한 경기를 하게 되었다.[391][392] 프로레슬링 사천왕 시대가 되자, 미사와들은 점차 발상자인 바바의 상상조차 능가하는 치열한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레슬링은 "왕도 프로레슬링", "사천왕 프로레슬링"이라고 불리며,[400] 프로레슬링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399]
1998년 미사와는 ''에메랄드 플로우전''을 선보이며 아키야마 준을 꺾었습니다.[143]
===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장 취임과 갈등 (1999-2000) ===
1999년 자이언트 바바가 사망하면서, 매치 메이킹 등 현장에서 권한을 이어받았던 미사와 미쓰하루는 레슬러들의 지지를 받아 후임 사장에 취임했다.[406][407][408] 그러나 자이언트 바바의 아내 바바 모토코는 미사와가 회사를 운영하는데 있어 사사건건 간섭하고, 자신의 허락을 받도록 요구했다.[411][412]
미사와는 회사의 경비 절감을 위해 순회 공연 시 이동 수단이나 숙박 시설 변경 등을 검토했지만, 바바 모토코는 이러한 것들을 "자이언트 바바 전일본의 전통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간주했다.[415] 미사와는 회사의 수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한편, "바바 전일본"의 전통과도 마주해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
2000년 5월 28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이사회는 미사와를 사장직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6월 13일, 모모타 미츠오를 비롯한 이사진들이 집단 사퇴했다.[152] 6월 16일, 미사와는 기자 회견을 통해 가와다 도시야키와 후치 마사노부를 제외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모든 일본인 레슬러들이 자신과 함께 새로운 프로모션을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80] 다음 날, 미사와는 새로운 프로모션의 이름을 프로레슬링 노아로 발표했다.[4]
3. 1. 1. 데뷔와 초기 (1981–1984)
1981년 3월, 미사와 미쓰하루는 전일본프로레슬링(AJPW) 훈련소에 입소하여 주로 소노다 가즈하루와 다카치호 아키히사에게 훈련을 받았다.[2] 딕 "디스트로이어" 바이어, 바바 쇼헤이, 도리 펑크 주니어, 그리고 루 테즈에게도 훈련을 받았다.[4][1][5]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81년 3월 27일,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했다. 같은 해 8월 21일, 우라와 경마장 정문 앞 주차장에서 열린 고시나카 시로 전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는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상 최고 속도의 데뷔였다.[322][326] 처음 17경기에서 연속으로 패한 후, 10월 9일 모모타 미츠오와의 태그 매치에서 후유키 히로미치와 스가와라 노부요시를 상대로 승리하며 첫 승을 거두었고, 4일 후 스가와라를 상대로 첫 단식 승리를 거두었다.[2][22][23]1983년 4월, 바바는 AJPW의 하위 랭크 레슬러들을 위한 리그전인 루 테즈컵을 개최했고, 미사와는 고시나카 시로, 후유키 히로미치, 모모타 미츠오와 그의 형제인 모모타 요시히로, 스가와라, 카와다, 그리고 고토 타잔과 함께 토너먼트에 참가했다.[2] 미사와는 결승에 진출했고, 4월 22일 나카지마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루 테즈컵 결승전(루 테즈 본인이 심판을 맡았다)에서 다시 고시나카 시로와 맞붙었지만 패했다.[24] 바바는 토너먼트 우승자를 해외 원정에 보낼 계획이었지만, 미사와가 경기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시나카 시로보다 3살이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로 인식되었기에 바바는 두 선수 모두를 해외 원정에 보내기로 결정했다.[2] 루 테즈는 "일본에서 본 젊은 선수들의 시합 중 최고의 경기가 아니었나"라며 이 시합을 높이 평가했다.[327] 미사와는 5월 20일 마이티 이노우에와 아수라 하라에게 도전했지만 실패하며 첫 타이틀 매치를 치렀다.[2]
미사와와 고시나카 시로는 1984년 3월 16일 멕시코에 도착하여 사무라이 시로와 가미카제(혹은 가미카제 미사와)라는 이름으로 EMLL에서 태그팀으로 활동했다.[2] 미사와는 라 피에라의 지도 아래 공중 기술을 향상시켰고,[25][6] 4월 5일, 아레나 멕시코에서 메인 이벤트로 NWA 세계 미들급 챔피언 엘 사타니코와의 경기를 치렀지만 패했다.[2] 이 해외 원정은 1년 동안 지속될 예정이었지만, 바바가 미사와에게 전화를 걸어 ""코너 포스트에서 점프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미사와가 할 수 있다고 대답하자 바로 귀국을 명령했다.
원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자이언트 바바 이하, 잔보 츠루타, 타이거 토구치, 텐류 겐이치로, 록키 하타, 사쿠라다 가즈오 등 대형 레슬러들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젊은 레슬러들의 지도를 담당했던 사토 아키오의 뒷받침을 받아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332]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 연습생의 월급은 5만 엔이었지만, 미사와는 특별히 7만 엔을 받았다.[334] 타잔 고토에 따르면, 미사와는 수신(受身)을 배우는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자신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328][329] 또한 코치 역할을 했던 햐쿠다 미쓰오에 따르면, 미사와는 모든 종류의 수신을 한 번만 가르쳐주면 대부분 익혔다고 한다.[329] 후유키 히로미치에 따르면 미사와는 당시부터 천재형으로, 누군가에게 "이것을 해보라"고 말하면 곧바로 해냈다고 하며, 머릿속으로 상상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레슬러라고 평가하고 있다.[330] 자이언트 바바는 연습 중 수신 소리만 듣고도 미사와가 수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298][331]
3. 1. 2. 2대 타이거 마스크 (1984–1990)
미사와는 1981년에 전일본프로레슬링(AJPW)에서 데뷔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봄까지 미사와는 타이거 마스크 2세로 활동하며 사야마 사토루의 뒤를 이었다. 바바는 만화가 카지와라 이키의 ''타이거 마스크'' 캐릭터 사용권을 구입했다.[26] 미사와는 1984년 7월 31일 구라마에 고쿠기칸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8월 26일 매진된 데넨 콜로세움에서 첫 경기에서 라 피에라를 꺾었다.[1][2][27] 미사와는 그 해 남은 기간 동안 제리 에스트라다와 피라타 모건과 주목할 만한 경기를 치렀다.[2]1985년 바바는 새로운 타이거 마스크를 더욱 확립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고바야시 쿠니아키를 포함한 최고의 주니어 헤비급 선수들과 고공 기술자들을 영입했다. 원조 타이거 마스크 시절 가장 주목할 만한 라이벌이었던 다이너마이트 키드는 이미 WWF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고바야시가 이 시기 미사와의 가장 주목할 만한 라이벌이 되었다.[2] 2월 1일 첫 경기는 고바야시가 미사와의 마스크를 찢고 링 기둥에 미사와를 부딪혀 얼굴에 피가 나게 하는 바람에 더블 실격으로 끝났다. 3월 9일 스모 홀에서의 재경기는 더블 카운트아웃으로 끝났다.[2] 6월 21일, 일본무도관에서 첫 경기를 치른 미사와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독자들이 올해의 최고 경기로 평가한 경기에서 NWA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십을 놓고 고바야시에게 도전했지만 패했다.[2] 미사와는 경기 전에 무릎을 심하게 다쳤지만 레슬링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인 데이브 멜처가 "타이거 마스크 시대 최고의 경기"라고 부른 경기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2] 수술을 받아야 했다.[28] 미사와가 타이거 마스크 2세 기믹 아래에서 채택하도록 만들어진 공중 기술은 그의 무릎에 무리를 주었다. 후치 마사노부에 따르면, 미사와는 실제로 그라운드 기반 스타일을 더 선호했다.[29] 그리고 수년 후 그는 후드를 쓴 상태에서는 관중의 반응을 얻기가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타이거 마스크 캐릭터에게서 초인적인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마스크를 벗은 후보다 관중을 감동시키기가 더 어려웠다. 복귀 후, 타이거 마스크-고바야시 프로그램은 8월 31일 미사와가 고바야시로부터 타이틀을 탈환하면서 절정에 달했다.[2] 미사와가 한 손으로 고바야시를 하프 넬슨 자세로 잡은 후 들어올리는 타이거 수플렉스 변형 기술을 사용했는데, 이는 ''타이거 수플렉스 '85''로 알려지게 되었다.[30] 아이즈와카마츠에서 차보 게레로 시니어를 상대로 10월 28일 성공적으로 방어한 후,[31] 바바는 미사와의 무릎 문제 때문에 그를 헤비급으로 승격시켰고, 챔피언십은 1986년 3월 공석이 되었다.[2][1] 공중 기술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미사와는 앞으로 공중 기술을 더욱 신중하게 사용하게 되었다.[28]
1986년 4월 19일, 미사와와 바바는 루이지애나 슈퍼돔에서 열린 크로켓 컵(단판 토너먼트 태그팀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8강에 진출했지만, 결승 2위 팀인 로니 가빈과 매그넘 T.A.에게 패했다.[32] 다음 날, 미사와는 스탠 핸슨에 의해 AWA의 WrestleRock 86 이벤트에 참가하여 벅 줌호페를 꺾었다.[28] 미사와는 1986년 바바와 함께 첫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WSTDL)에 참가했는데, 그 역할은 그 해 스타 팀과의 경기에서 핀폴로 패하는 것이었다.[2] 두 사람은 3승 3패 1더블 카운트아웃으로 6위를 기록했다.[2] 다음 해 3월, 미사와는 당시 NWA 챔피언이었던 릭 플레어와의 유일한 경기에서 패했다.[33] 미사와는 츠루타와의 경기가 AJPW의 메인 프로그램이 되면서 츠루타의 가끔씩 태그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되었다.[2] 7월 3일, 미사와와 츠루타는 카운트아웃으로 테드 디비아세와 스탠 핸슨으로부터 PWF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지만, 8일 만에 다시 이전 챔피언들에게 벨트를 넘겨주었다.[34] 멜처에 따르면 당시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싱글스 승리"였던 7월 19일 미사와는 디비아세를 핀폴로 꺾었다.[2] 1987년 WSTDL에서 미사와는 나카노 신이치와 함께 참가하여 3승 7패 1더블 카운트아웃으로 8위를 기록했다.[2] WSTDL 결승전의 언더카드에서 미사와는 무도관에서 자신과 이시카와 타카시가 카와다와 후유키와 팀을 이룬 태그 매치에서 카와다와 처음으로 맞붙어 타이거 수플렉스로 카와다를 핀폴로 꺾었다.[2][36]
AJPW의 1988년 첫 이벤트에서 미사와는 커트 헤닝과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 매치를 치렀다.[37] 미사와는 카운트아웃으로 승리했지만, 타이틀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카운트아웃으로 타이틀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논란이 되었다.[2][38] 그 해 WSTDL에서 미사와는 지미 스누카와 팀을 이루어 7점으로 7위를 기록했다.[2] 리그 중에 열렸지만 리그와는 관련 없는 태그 매치에서 미사와는 11월 24일 이시카와와 팀을 이룬 켄타 고바시와 처음으로 경기를 치러 스누카와 함께 승리했다.[2][39] 1989년 3월 8일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카드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경기에서 미사와는 리키 스팀보트를 상대로 NWA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패했다.[40] 그는 경기 중 왼쪽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어 1989년 남은 기간 동안 활동하지 못했다.[29]
미사와는 1990년 1월 2일 도쿄 고라쿠엔 홀에서 AJPW의 신년 자이언트 시리즈 첫날 열린 메인 이벤트 배틀 로열에 참가하며 부상에서 복귀했다.[41] 2월 10일, 미사와는 AJPW 이벤트가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도쿄돔에서 경기를 치렀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회장 사카구치 세이지는 WCW와의 계획이 실패한 후 두 번째 도쿄돔 쇼를 위해 바바에게 도움을 요청했고,[42] 바바는 AJPW 레슬러들이 패하거나 약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미사와는 타카노 조지와 초슈 리키를 상대로 덴류 겐이치로와 팀을 이루어 카운트아웃으로 승리했으며, 이 이벤트는 5만 3천 명의 관중으로 도쿄돔을 매진시켰다(마이크 타이슨 vs. 버스터 더글러스 경기가 3만 명을 기록한 다음 날).[42] 이 이벤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사와의 경기는 각 프로모션의 방송 프로그램에 독점 계약을 맺은 선수들의 계약 때문에 TV로 방송되지 않았다.[43] 4월 9일, 미사와와 고바시 켄타는 캔-암 익스프레스로부터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고,[44] 4일 후, 미사와는 도쿄돔에서 열린 WWF/NJPW/AJPW 슈퍼쇼에서 브렛 하트와 시간 제한 무승부를 기록했다.
1984년 봄, 미사와는 고시나카와 함께 멕시코로 원정을 떠났다. 처음에는 고시나카와 미사와 모두 본명으로 경기에 출전했지만, 나중에는 고시나카는 유도나 가라테를 연상시키는 흰색 도복 스타일의 롱 트렁크에 "필승"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일장기를 든 '사무라이 시로', 미사와는 빨간 라메 장퍼에 흰 줄이 들어간 빨간색 롱 타이츠 차림의 '가미카제 미사와'라는 링네임으로 개명하여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어느 날, 미사와는 마바시로부터 국제전화로 "코너 포스트에 올라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올라탈 수 있다고 대답하자 즉시 귀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사와는 7월 22일 멕시코에서 일본으로 비밀리에 귀국했고, 마바시로부터 2대째 타이거 마스크가 될 것을 명령받았다. 미사와는 1대째 타이거 마스크(사야마 사토시)의 팬들로부터 2등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저항감을 느꼈지만, 2대째 타이거 마스크는 전일본, 일본프로레슬링, 가시와라 이키 프로덕션, 일본텔레비전의 대규모 프로젝트였고, 이미 데뷔전 일정이 잡혀 있었다.
2대째 타이거 마스크가 된 미사와는 7월 31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공개되었고, 8월 26일에 열린 타에노 콜로세움 대회의 라 피에라 전에서 데뷔했다. 처음에는 주니어 헤비급 전선에서 활약하며, 1대째 사야마를 상대로 "호랑이 사냥꾼"이라고 불린 코바야시 쿠니아키와의 항쟁을 벌였다. 1985년 8월 31일에는 코바야시를 꺾고 NWA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지만, 같은 해 10월에 헤비급으로 전향했다.
1986년에는 미국으로 원정을 가서, 4월 19일 NWA의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슈퍼돔에서 개최한 태그팀 토너먼트 "Crockett Cup"에 마바시와 태그를 짜서 참가, 시드 출전한 2회전에서 지미 가빈 & 블랙 바트를 이겼지만, 준준결승에서 로니 가빈 & 매그넘 TA에게 패배했다. 4월 20일에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메트로돔에서 열린 AWA의 "WrestleRock 86"에 출전, AWA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백 즈모프를 꺾었다. 1988년 1월 2일에는 후라쿠엔 홀에서 카트 헤닝이 보유하고 있던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 벨트에 도전했다.
타이거 마스크 시절의 미사와는 1대째 타이거 마스크(사야마 사토시)가 확립한 화려한 공중 기술을 계승해야 했다. 이것은 미사와가 원래 목표로 했던 프로레슬링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미사와는 그 점에 고민했다. 그래서 미사와는 헤비급으로 전향한 이유에 대해 "팬들이 원하는 공중 기술을 많이 사용하면서도 2대째 타이거 마스크로서의 개성을 확립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중 기술을 많이 사용한 결과 미사와의 무릎에는 부담이 걸려 왼쪽 무릎 전십자 인대 파열을 일으켜, 부상 부위 수술을 받기 위해 1989년 3월부터 1990년 1월까지 장기 결장을 피할 수 없었다.
미사와의 타이거 마스크 시절 전일본 프로레슬링 중계의 실황 아나운서를 맡았던 쿠라모치 타카오에 따르면, 미사와는 미국의 프로레슬링계에서는 복면 레슬러는 패배자이고 지위가 낮다는 의식이 있어, 그래서 취재 시에는 본명으로 부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쿠라모치는 타이거 마스크 시절의 미사와를 "만화 영웅이 되었으니, 좀 더 만화 세계처럼 기상천외하고 자유분방한 발언을 하고, 언론을 농락할 정도의 이야기를 하면 좋은데, 근성이 성실한 미사와 청년은 끝까지 복면 레슬러가 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타이거 마스크 시절의 미사와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적은 호랑이 전사"라고 불렸다. 주간 곤그 전 편집장인 코사노 케이코는 2대째 타이거 마스크로서의 미사와에 대해 "영웅은 항상 강해야 하는데, '맨날 지는 타이거 마스크'라는 인상이 강하다"고 하며, 일본인 선수, 외국인 선수를 불문하고 상대가 항상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비적인 싸움이 되어 버렸고, 또 당시 전일본은 양자 링 아웃 등 불투명한 결착으로 끝나는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미사와의 승률도 결코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미사와 타이거는 불쌍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2대째 타이거 마스크로서 수비적인 입장에 있는 장면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그것은 후의 '불굴의 미사와'를 길렀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전일본에서는 "타이거 마스크는 1년에 1개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고 홍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사와가 타이거 마스크 시절에 개발한 기술의 이름에는 "타이거 수플렉스 '84"와 같은 개발 연도가 붙어 있다. 그런데, 미사와는 2대째 타이거 마스크로 활동하고 있던 1988년 5월에 결혼했는데, 그때 기자 회견에서 아내가 가면을 벗기는 연출에 의해 4년 5개월 만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 정체를 밝히고, 그 위에서 2대째 타이거 마스크로서의 활동은 계속한다는, 복면 레슬러로서는 이례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3. 1. 3. 본명 활동과 초세대군 결성 (1990-1993)
1990년 봄, 천룡원일랑이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퇴단하고 SWS로 이적하면서 여러 프로레슬러들이 천룡을 따라갔다(SWS 사건). 이 사건으로 전일본은 당시 황금 카드였던 천룡 대 쓰루타 카드를 잃게 되었고[369],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370] 사건 중이던 5월 14일, "마스크맨이 정상을 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 미사와는[371], 이날 경기(도쿄 체육관, 타이거 마스크 & 카와다 토시아키 vs 다니즈 요시아키 & 샘슨 후유키) 중 파트너 카와다에게 마스크 끈을 풀도록 지시하여 갑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벗은 마스크를 관중석으로 던졌다.[372] 이 경기 2일 후인 16일에는 링네임을 "미사와 미쓰하루"로 되돌릴 것을 발표했고,[373] 포스트 천룡을 자처했다.[369][375][376]미사와는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등과 함께 초세대군을 결성했다.[375][377][378] 1990년 6월 8일, "전일본의 '강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쓰루타와의 싱글 매치에서 승리를 거두었고,[379] 1992년 8월 22일에는 스탠 한센을 꺾고 삼관 헤비급 왕좌를 획득하는 등 초세대군의 중심 레슬러로 활약했다.[375][377] 초세대군과 잔보 츠루타를 중심으로 한 츠루타군의 세대 항쟁은 전일본의 새로운 명물 카드가 되었다.[380] 특히 초세대군은 높은 인기를 얻어 전일본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381] 나카다 류(링 아나운서. 후에 프로레슬링·노아 이사)에 따르면 초세대군은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1993년에 "초세대군과 함께 가는 하와이 투어"를 개최했을 때 참가자 143명 중 140명이 여성 팬이었다고 한다.[381] 나가모토 하루카는 초세대군의 인기는 초대 타이거 마스크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말했다.[382] 미사와는 이 시기에 엘보우와 페이스락 등의 필살기를 습득했다.[380]
1992년 7월, 잔보 츠루타가 내장 질환으로 장기 휴식을 취하게 되면서 초세대군과 츠루타군의 항쟁은 종식되었고,[383][384][385] 동시에 미사와는 실질적인 에이스가 되었다.[379] 초세대군의 활동은 1993년 카와다가 탈퇴하면서 마무리되었다.
3. 1. 4. 프로레슬링 사천왕 시대 (1993-1999)
미사와는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등과 함께 초세대군을 결성했다.[375][377][378] 1990년 6월 8일, "전일본의 '강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츠루타와의 싱글 매치에서 승리를 거두었고,[379] 1992년 8월 22일에는 스탠 한센을 꺾고 삼관 헤비급 왕좌를 획득하는 등 초세대군의 중심 레슬러로 활약했다.[375][377] 초세대군과 잔보 츠루타를 중심으로 한 츠루타군의 세대 항쟁은 전일본의 새로운 명물 카드가 되었다.[380] 특히 초세대군은 높은 인기를 얻어 전일본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381] 나카다 류(링 아나운서. 후에 프로레슬링·노아 이사)에 따르면 초세대군은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1993년에 "초세대군과 함께 가는 하와이 투어"를 개최했을 때 참가자 143명 중 140명이 여성 팬이었다고 한다.[381] 나가모토 하루카는 초세대군의 인기는 초대 타이거 마스크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말했다.[382] 미사와는 이 시기에 엘보우와 페이스락 등의 필살기를 습득했다.[380]1992년 7월, 잔보 츠루타가 내장 질환으로 장기 휴식을 취하게 되면서 초세대군과 츠루타군의 항쟁은 종식되었고,[383][384][385] 동시에 미사와는 실질적인 에이스가 되었다.[379] 초세대군의 활동은 1993년 카와다가 탈퇴하면서 마무리되었고, 이후 코바시·카와다·타나가 아키라와 함께 프로레슬링 사천왕 중 한 명으로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중심을 담당했다.[383][384][385] 미사와는 1992년 8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삼관 통일 헤비급 왕좌를 5회 획득, 21회 방어했다.[387][388] 1994년 3월 5일에는 전일본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자이언트 바바로부터 태그 매치에서 폴 승리를 거두고, 명실상부하게 전일본을 대표하는 레슬러가 되었다.[389][390]
초세대군이 결성되었을 당시, 바바는 흉기 공격, 출혈, 링 아웃·반칙·기브업에 의한 결착이 없는 경기보다 3카운트 폴에 의해서만 결착을 짓는 프로레슬링을 이상으로 여기게 되었고, 미사와를 비롯한 초세대군 레슬러들은 바바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대기술을 2.9 카운트에서 계속 받아치는 치열한 경기를 하게 되었다.[391][392] 프로레슬링 사천왕 시대가 되자, 미사와들은 점차 발상자인 바바의 상상조차 능가하는 치열한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 바바는 미사와가 카와다와 대결한 1993년 7월 29일 삼관전에 대해 "미사와와 카와다의 승인은, TV 해설자로서 부끄럽지만, 너무나 고도의 전개라서, 나로서는 모르겠다"고 방송석에서 코멘트했고,[393] 마찬가지로 카와다와 대결한 1997년 6월 6일 삼관전은 바바가 "너무나 대단하다"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치열한 경기로 알려져 있다.[394] 미사와 자신은 그 중에서도 코바시와의 싸움을 "가질 수 있는 힘의 전부를 발휘하고, 극한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었고,[395] 두 사람의 경기의 격렬함은 미사와 자신이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396] 코바시는 1997년 1월 20일 미사와의 도전을 받은 삼관전 며칠 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로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미사와 씨를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전한 것이 알려져 있다.[397] 받는 기술이 향상됨과 함께 위험한 투척 기술의 공방이 주목받게 되었고,[399] 이러한 대기술을 연발하는 프로레슬링은 "왕도 프로레슬링", "사천왕 프로레슬링"이라고 불리며,[400] 프로레슬링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399] 레퍼리로서 미사와의 경기를 심판했던 와다 쿄헤이에 따르면, 경기 중 미사와는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굴하지 않고, "괜찮아?"라고 묻자 "괜찮아"라고 대답하며 경기를 계속할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401][402]
미사와-카와다 팀은 곧 해체되었다. Jumbo 쓰루타(ジャンボ鶴田)의 커리어는, 적어도 메인 이벤트 레슬러로서의 커리어는, 끝났다. 그는 10월 자이언트 시리즈 투어를 마친 후 갑자기 떠났고, 간염 진단을 받았다.[81] 이로 인해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상품성에 공백이 생겼고, 타우에(田上明)는 특히 태그 파트너가 필요했기에, 바바(馬場正平)는 1993년 봄 미사와와 카와다를 분리하여 카와다를 미사와의 주요 국내 라이벌로 만들었다.[82] 1993년 3월 초, 카와다는 투어에서 예정된 경기가 끝난 후 더 이상 미사와의 태그 파트너로 활동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그는 Jumbo의 파벌 잔당(아키라 타우에가 이끌고 있었다)에 합류할 것이라는 것을 부인했다.[79] 그러나 카와다와 타우에는 1993년 챔피언 카니발에서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후 악수를 나누며 앙숙 관계를 끝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귀군(Seikigun/聖鬼軍일본어)을 결성했다.[82] 켄타 고바시(小橋建太)가 미사와의 새로운 태그 파트너가 되었다.
1998년 첫 번째 방어전은 1월 26일 오사카 부립 체육관에서 열렸으며,[142] 미사와는 ''에메랄드 플로우전''을 선보이며 아키야마 준을 꺾었습니다.[143] 한 달 후, 그는 매진된 부도칸에서 조니 에이스를 상대로 마지막 성공적인 방어전을 치렀습니다. 이 2월 28일 경기는 미사와가 AJPW를 떠날 때까지 이어진 부도칸 매진 행진의 시작이었습니다.[144][2] 미사와는 1998년 챔피언 카니발에 참가하여 8승 3무(아키야마, 한센, 가와다와 무승부) 1패(타우에에게 패)로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목과 허리 부상, 부러진 손가락, 그리고 4월 6일 에이스와의 경기 중 부러진 왼쪽 무릎뼈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것입니다.[14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수술을 받고 6주간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145] 미사와는 경기에 계속 출전하여 아키야마와의 또 다른 경기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챔피언 카니발에서 우승했습니다.[146]
3. 1. 5.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장 취임과 갈등 (1999-2000)
1999년 자이언트 바바가 사망하면서, 매치 메이킹 등 현장에서 권한을 이어받았던 미사와 미쓰하루는 레슬러들의 지지를 받아 후임 사장에 취임했다.[406][407][408] 그러나 바바 사후 약 3개월 동안이나 혼란 끝에 이루어진 인사였다.[409] 미사와는 취임 당시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지만,[410] 주식은 미사와가 아닌 자이언트 바바의 아내 바바 모토코가 소유하고 있었고, 무엇을 하든지 자신에게 허락을 받도록 요구하는 모토코 앞에서 회사를 원하는 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411][412]미사와가 매치 메이킹 권한을 갖게 된 이후로는 핀폴로만 결정되는 스타일이 무너지고, 링 아웃이나 기브업으로 결정되는 경기가 나오게 되었다.[413] 1998년 당시 아키야마 준과 팀을 이루었던 태그를 해체하고 전좌에서 출전이 많았던 오가와 요시나리와 태그를 결성하여 세계 태그 왕좌를 획득했고, 또 중견에 묻혀 있던 오오모리 타카오가 주장을 시작하여 프리랜서로 전일본에 참전했던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태그를 결성하여 아시아 태그 왕좌를 획득했으며, 게다가 4천왕의 싸움에 아키야마 준이 개입하게 되면서, 이러한 전일본의 변화를 언론은 "미사와 혁명"이라고 불렀다.[407][414] 그러나 와다 교헤이에 따르면 모토코는 미사와가 결정한 매치 메이킹에 대해 반드시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하며,[412] 또 나카타 류에 따르면, 미사와에게는 바바의 운영 방침을 100% 계승할 것이 요구되었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일절 금지되었다고 한다.[417] 미사와는 회사의 경비 절감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고, 순회 공연 시 이동 수단이나 숙박 시설 등도 변경을 검토하고 있었지만, 모토코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도 "바바 전일본의 전통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에, 미사와는 회사의 수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한편, "바바 전일본"의 전통과도 마주해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415]
미사와는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장으로서 이러한 환경을 경험하면서, 프로레슬링 노아 창립 후에 발간한 자서전 『출항』에서 "내가 하려는 것이, 존경하는 바바 씨가 만들어낸 프로레슬링을 더럽힌다고 말해지고, 게다가 전일본답지 않다고 비난받는다면, 내가 먼저 물러설 것이다"라고 전일본 탈퇴를 결심한 이유를 회고하고 있다.[416] 또한 미사와는 경영에 관한 불투명한 부분을 보면서 전일본에 대한 불신감이 커져, 그 결과 프로레슬링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이 되어, 그렇게 되기 전에 탈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도 말하고 있다.[416]
2000년 5월 28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이사회는 미사와를 사장직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당사자는 현재 투어가 끝날 때까지 이 소식을 비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고, 미사와는 공개적인 전환을 원활하게 하고 자이언트 바바와 최근 사망한 쓰루타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바바가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도록 공개적인 축복을 해줄 것을 설득하려고 시도했다.[152] 그러나, 바바는 이 제안이나 그녀의 과반수 지분의 포기를 거부했고, 그래서 ''도쿄 스포츠''가 6월 12일에 그 소식을 보도했다.[152] 6월 13일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열린 긴급 이사회 회의에서 공동 부사장 모모타 미츠오와 이사인 고바시 켄타, 타우에 아키라, 오야기 케니치, 그리고 모모타 요시히로가 집단 사퇴했다.[152]
6월 16일, 미사와는 기자 회견을 주재했는데, 그곳에는 가와다 도시야키와 후치 마사노부를 제외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모든 일본인 레슬러들이 그와 동행했다. 그는 7월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대한 마지막 약정을 마친 후 회견에 동행한 23명이 8월에 새로운 프로모션을 설립하기 위해 미사와와 함께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180] 다음 날, 미사와는 새로운 프로모션의 이름을 발표했다: 프로레슬링 노아.[4]
3. 2. 프로레슬링 노아 (2000–2009)
2000년 전일본프로레슬링(AJPW)의 설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자이언트 바바가 1999년에 사망한 후, 그의 아내 모토코 바바가 사장이 되면서 운영진과 선수 간에 분쟁이 발생하였다. 2000년 5월 28일, 임시 이사회에서 미사와는 사장직에서 해임되었다.[417][415] 6월에 들어서 도쿄스포츠가 "미사와 사장 해임"이라고 보도했고,[418] 같은 달 13일 미사와는 정례 이사회에서 이사직 사퇴를 제안했으며, 이것으로 미사와는 전일본을 퇴단하게 되었다.[417] 미사와는 이미 퇴단 후에 새로운 단체를 설립할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16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번 전일본 퇴단을 발표하며, 자신을 포함하여 회견에 함께한 레슬러 24명으로 새로운 단체를 설립할 것을 선언했다.[419] 미사와는 2000년에 전일본의 주요 선수들을 데리고 전일본을 탈퇴하여 새로운 프로레슬링 단체인 '프로레슬링 노아(Pro-Wrestling Noah)'를 설립하여 사장 겸 선수로 활동하였다.7월 4일, 새로운 단체의 명칭이 "'''프로레슬링·노아'''"(유래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 발표되었고,[428] 미사와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목표하는 "이상적인 프로레슬링"에 대해 "추상적이지만, 선수와 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프로레슬링을 목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430]
나카타 류에 따르면, 노아 기성 후 미사와는 항상 컨디션이 나빴고, 원하는 대로 훈련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437] 그러나 미사와는 노아 기성 이후 한 번도 경기를 결장하지 않았고,[438][439] GHC 헤비급 챔피언을 3번(초대, 5대, 11대), 또 오가와 요시나리와의 콤비로 GHC 태그 챔피언을 2번(2대, 8대) 획득했다. 2007년에는 GHC 헤비급 챔피언으로 1년간 방어를 계속했고, 그때까지 인연이 없었던 프로레슬링 대상 MVP에 당시 역대 최고령(45세)으로 선출되었다. 또 2009년 5월 6일에는 시오자키 고와의 콤비로 제2회 "글로벌 태그 리그전"의 우승을 차지했다.
미사와는 격렬한 경기의 대가로 시신경과 뇌신경에 손상이 미치고, 전일본 시대부터 생각대로 말이 나오지 않고, 낮에도 어지럼증이 나는 등의 증상에 시달렸지만,[445] 말년에는 경추에 골극이라고 불리는 가시 모양의 연골이 증식하여 고개를 숙이는 것도 뒤를 돌아보는 것도 어려워졌다.[440][441] 오른쪽 눈에 원인 불명의 시력 장애가 발생하는 등 체력적인 불안이 심각해졌다. 경추는 이를 닦거나, 가운 깃 부분이 닿거나,[446] 뒤척이기만 해도 통증이 오는 상태였고, 게다가 어깨, 허리, 무릎에도 만성적인 통증을 안고 있었다.[448][449] 이 무렵 미사와는 주위에 "그만두고 싶다", "은퇴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441]

미사와는 네 번째 트리플 크라운 통치 이후 가장 긴 448일 동안 GH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지켰고, 2007년 내내 7차례 성공적인 방어전을 치렀다.
2008년 3월 2일, 미사와는 모리시마에게 패해 GH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잃었다.[263] 그 후에도 미사와는 모든 노아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의 부상은 목의 골극으로 인해 이빨을 닦거나 가운 깃을 만지는 등의 간단한 행동에도 통증이 있었고,[29] 2007년에 오른쪽 눈의 시력 장애가 발견되는 등 심각해지고 있었다.[13]
3. 2. 1. 노아의 성장과 위기 (2000-2009)
2000년 전일본프로레슬링(AJPW)의 설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자이언트 바바가 1999년에 사망한 후, 그의 아내 모토코 바바가 사장이 되면서 운영진과 선수 간에 분쟁이 발생하였다. 2000년 5월 28일, 임시 이사회에서 미사와는 사장직에서 해임되었다.[417][415] 6월에 들어서 도쿄스포츠가 "미사와 사장 해임"이라고 보도했고,[418] 같은 달 13일 미사와는 정례 이사회에서 이사직 사퇴를 제안했으며, 이것으로 미사와는 전일본을 퇴단하게 되었다.[417] 미사와는 이미 퇴단 후에 새로운 단체를 설립할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16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번 전일본 퇴단을 발표하며, 자신을 포함하여 회견에 함께한 레슬러 24명으로 새로운 단체를 설립할 것을 선언했다.[419] 미사와는 2000년에 전일본의 주요 선수들을 데리고 전일본을 탈퇴하여 새로운 프로레슬링 단체인 '프로레슬링 노아(Pro-Wrestling Noah)'를 설립하여 사장 겸 선수로 활동하였다.프로레슬링 노아는 8월 5일과 6일, 디퍼 아리아케에서 ‘데파처(Departure)’라는 이름의 두 차례 이벤트로 데뷔했다.[180][188] 티켓은 몇 분 만에 매진되었지만, 이벤트 자체는 수익성이 없었다. 낮은 티켓 가격 때문에 암표상들이 60달러짜리 링사이드 좌석을 2700달러에 되팔았다. 노아는 또한 경기장 밖에서 관람하는 1300명을 위해 주차장에 스크린을 설치하는 데 첫 번째 공연의 입장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189] 첫 번째 공연의 메인 이벤트에서 미사와와 타우는 3전 2선승제 태그 매치에서 코바시와 아키야마에게 패했고, 두 번째 공연에서는 미사와와 오가와가 켄타로 시가와 이케다 다이스케를 물리쳤다.[189] 모토코 바바로부터 NTV에 대한 법적 위협 때문에 노아는 2001년 4월까지 TV에 출연하지 못하면서 성장에 어려움을 겪었다.[190] 미사와는 AJPW의 선수들이 자신과 함께 이탈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191]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미사와는 자신의 보험을 해지하고 집에서 돈을 빌려 급여를 지급해야 했다.
7월 4일, 새로운 단체의 명칭이 "'''프로레슬링·노아'''"(유래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428] 미사와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목표하는 "이상적인 프로레슬링"에 대해 "추상적이지만, 선수와 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프로레슬링을 목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430]
그러나 노아는 12월 23일 아리아케 콜리세움에서 열린 그레이트 보야지(Great Voyage) 공연을 사전에 매진시키며 그때까지 가장 큰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미사와는 자신의 프로모션에서 첫 번째 주요 싱글 매치에서 세미 메인 이벤트에서 베이더를 물리쳤다.[192]
또 다른 문제는 2001년 1월 18일에 발생했는데, 타우와 함께 미사와와 마루후지 나오미치와의 태그 매치 중에,[193] 코바시가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194] 코바시의 무릎은 문설트 사용과 링에서의 과도한 활동으로 인해 1991년 초부터 좋지 않았다.[44] 그는 AJPW에서의 활동을 끝낸 후 양쪽 무릎 수술을 받을 계획이었지만, 8월에 데파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받지 않았고,[195] 그 후에도 노아의 이벤트에 계속 출전했다.[196] 코바시는 1월 25일에 팔꿈치의 연골을 무릎으로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처음에는 7월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되었지만,[197] 이는 너무 낙관적이었고 코바시는 그 해에 여러 차례 더 수술을 받았다.[198]
2001년 초, 미사와는 그레이트 보야지 카드에서 함께 활동했던 하시모토 신야와 두 번의 경기를 치렀다.[192] 첫 번째 경기는 1월 13일 오사카 부립 체육관에서 미사와와 오가와가 하시모토와 오츠카 알렉산더를 상대로 미사와가 타이거 드라이버 이후 오츠카를 핀폴로 잡아 승리했다.[199] 두 번째 경기는 하시모토가 공동 설립한 프로모션 프로레슬링 제로원(Pro Wrestling Zero1)의 3월 2일 트루스 센추리 크리에이션(Truth Century Creation) 개막전 메인 이벤트에서 미사와와 아키야마가 하시모토와 나가타 유지를 상대로 매진된 료고쿠 국기관에서 승리했다.[200] 3월 18일부터 4월 15일까지 노아는 초대 GHC 헤비급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한 16인 단일 탈락 토너먼트가 포함된 승리의 항해 GHC 투어를 개최했다.[201] 디퍼 아리아케에서 열린 투어 첫 번째 경기에서 미사와는 사이토 아키토시를 1라운드에서 물리쳤고,[202] 4월 4일 오카야마에서 오가와를,[203] 4월 11일 히로시마에서 아키야마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204] 4월 1일 고쿠사이 국제 센터에서 노아의 첫 TV 녹화(4월 6일 방영)에서 미사와와 오가와는 마루후지와 리키오 타케시를 상대로 승리했다.[205] 4월 15일, 아리아케 콜리세움에서 1만 2천 명의 관중 앞에서 미사와는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물리치고 초대 GH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206] 이 경기에서 미사와는 타카야마의 하이킥에 턱이 탈구되면서 입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고, 5cm의 상처로 6바늘을 꿰매야 했다.[204] 5월 18일 삿포로에서 타우를 상대로 성공적으로 방어한 후,[207] 미사와는 7월 28일 프로모션 1주년 기념으로 매진된 부도칸 이벤트에서 아키야마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다.[208] 10월, 미사와와 오가와는 초대 GHC 태그팀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한 항해 줄다리기 토너먼트에 참가했지만, 아키야마와 사이토에게 준결승에서 패했다.[209] 미사와와 오가와는 11월 30일 삿포로에서 스콜피오와 베이더를 물리치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두 번째 팀이 되었지만,[210] 이 기록은 매진된 아리아케 콜리세움에서 노 피어에게 벨트를 빼앗기면서 9일 만에 끝났다.[211]
2002년 2월 17일, 니혼 부도칸에서 미사와는 복귀한 코바시와 함께 아키야마와 나가타 유지를 상대로 경기를 치렀고 아키야마가 코바시를 핀폴로 잡고 승리했다.[212] 코바시가 노아에서 정규직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였고, 복귀 공연은 한 달 전에 매진되었을 만큼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코바시는 이 경기에서 왼쪽 무릎 인대를 더욱 손상시켰다.[212] 코바시는 앞으로 6개월간 휴식을 취하거나, 1년 동안 레슬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의사의 의견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미사와는 그의 출전을 취소했다. 이로써 코바시는 노아에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될 때까지 복귀할 수 없게 되었다.[212] 5월 5일, 미사와는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 경기에 출전하여 도쿄 돔에서 열린 투혼 기념일 이벤트에서 쵸노 마사히로와 맞붙었다. 두 선수는 노아, 특히 나카타 류의 주장대로 30분 시간 제한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이는 신생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2002년 9월 23일, 미사와는 GHC 헤비급 챔피언 타카야마를 물리치고 두 번째 통치를 시작했다.[213] 타카야마는 프라이드 21에서 돈 프라이와의 싸움으로 인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멜처는 2009년 미사와의 부고 기사에서 노아가 "정말 이륙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말했다.[1] 이 경기는 그 잔혹함으로 유명했고,[214] 타카야마는 쇄골 견봉 관절 탈구, 어깨 인대 파열, 안와골절(후자는 프라이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과 같은 부상)을 입었다.[213] 미사와는 12월 7일 오가와를 물리치고 유일하게 성공적인 방어를 했다.[215]
2003년 첫 대회이자 매진된 부도칸에서 열린 그레이트 보이지 2003에서 미사와와 초노는 세미 메인 이벤트에서 고바시와 타우에에게 패배했는데, 고바시가 미사와를 핀폴로 꺾었다.[216] 2003년 3월 1일, 매진된 부도칸에서[217] 고바시는 버닝 해머를 사용하여 첫 번째 노아 단독 경기에서 미사와를 꺾고 GHC 헤비급 챔피언십을 획득했다.[218] [219] 1998년 가와다가 도쿄돔에서 미사와를 꺾은 것처럼, 이 경기는 수년간 타이틀 매치에서 미사와를 꺾지 못했던 고바시의 노력의 정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경기는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1999년과 마찬가지로 미사와와 고바시는 《도쿄 스포츠》와 《레슬링 옵서버 뉴스레터》에서 올해의 경기 상을 수상했다.[220] 멜처는 2015년 미사와/고바시 라이벌전이 이 경기에서 "정점"에 달했다고 썼다.[221] 미사와는 이후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단독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219] 노아의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 쇼의 오프닝 매치(10분 시간 제한 무승부)를 제외하고는 이 약속은 지켜졌다.[222]
2004년 1월 10일, 매진된 부도칸에서 열린 그레이트 보이지 2004에서 미사와와 오가와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스타인 나가타 유지와 타나하시 히로시를 꺾고 두 번째 GHC 태그팀 챔피언십 통치를 시작했다.[223] 세미 메인 이벤트에서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고바야시 켄타가 엘 사무라이와 이누에 와타루로부터 GHC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한 것과 함께, 이것은 노아에게 있어 신일본 프로레슬링 선수들과의 지난 네 번의 인터프로모션 매치에서 패배한 이후 거둔 승리였다.[223] 이로써 미사와와 오가와는 최초의 두 번의 GHC 태그팀 챔피언이 되었고, 이 통치는 그들의 첫 번째 통치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3월 6일 이케다와 무하마드 요네와의 성공적인 방어,[224] 그리고 4월 25일 고바야시와 마루후지와의 성공적인 방어 이후,[225] 미사와와 오가와는 미국 인디 프로모션인 프로 레슬링 IRON에 출전하여 6월 11일 캘리포니아주 산 레안드로에서 나이젤 맥기니스와 바트 블랙슨을 상대로 벨트를 방어했다.[226]
미사와와 오가와의 다음 방어전은 대량 이탈 이후 최초의 AJPW 레슬러들과의 노아 인터프로모션 매치였다. 7월 10일, 노아는 첫 도쿄돔 쇼인 디파처를 개최했고, 마지막에서 두 번째 경기에서 그들은 AJPW 회장인 무토 케이지와 노아 이탈에 참여하지 않은 몇 안 되는 AJPW 레슬러 중 한 명인 케아 타이요를 상대로 벨트를 방어했다.[227] 8일 후, 미사와는 2000년 7월 이후 첫 AJPW 경기를 가졌고, 배틀 뱅킷의 세미 메인 이벤트에서 고지마 사토시를 꺾었다.[230] 9월 10일, 미사와와 오가와는 사이토와 이누에를 상대로 벨트를 방어했고,[231] 10월 24일에는 타우에와 사노 타쿠마를 상대로 벨트를 방어했다.[232] 미사와는 10월 31일 무토 케이지: 러브 앤 범프 페이퍼뷰에서 AJPW로 복귀하여, "특별 드림 태그 매치"로 홍보된 경기에서 무토와 함께 하세 히로시와 사사키 켄스케를 꺾었다.[233] 요코하마에서 12월 4일 도노반 모건과 마이클 모데스트를 상대로 GHC 태그팀 챔피언십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후,[234] 미사와와 오가와는 2005년 1월 23일 스콜피오가 오가와를 핀폴로 꺾으면서 더그 윌리엄스와 스콜피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235]
미사와는 2005년 상반기에 영국 투어를 포함한 여러 인터프로모션 출전을 했다.[235] 3월 18일, 그는 오가와와 함께 브리티시 챔피언십 레슬링 이벤트에서 더그 윌리엄스와 스티비 나이트를 꺾었다.[236] 다음 날, 더 레슬링 채널의 인터내셔널 쇼다운 슈퍼카드에서 미사와, 오가와, 스즈키 코타로는 윌리엄스, 스콜피오, 제임스 티그에게 패배했다.[237][238] 3월 20일, 미사와와 스즈키는 독일 프로모션인 웨스트사이드 익스트림 레슬링에 출전하여 아레스와 아메드 차에르에게 패배했다.[239] 1만 5800명의 관중을 동원한 4월 24일 부도칸 쇼에서 미사와와 스즈키는 마루후지와 스즈키 미노루에게 패배했다. 이 이벤트에서 가와다는 세 번째 경기 후 노아에 첫 출전을 했다. 그는 그 후 노아의 7월 18일 도쿄돔 쇼에서 미사와에게 경기를 신청했다.[240] 그 해 마지막 인터프로모션 출전에서 미사와와 후지나미 타츠미는 5월 14일 NJPW 넥서스 VI에서 초노 마사히로와 리거 주신을 꺾었다.[241] 7월 18일 프로모션의 두 번째 도쿄돔 이벤트인 데스티니에서 그는 메인 이벤트에서 이탈 이후 처음으로 가와다와 맞붙어 승리했다.[242] 노아는 6만 2000명의 매진 관중이 이 이벤트에 참석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나온 수입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이 쇼에서 1000만 엔의 손실을 기록했다. 데스티니는 노아의 마지막 도쿄돔 이벤트였다. 미사와는 9월 18일 매진된 부도칸에서 리키오에게 GHC 헤비급 챔피언십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243] 11월 5일 매진된 노아의 그 해 마지막 부도칸 쇼에서 그는 텐류 겐이치로를 꺾었다.[2]

2006년 4월 23일, 후지산 부도칸에서 열린 노아의 경기 언더카드에서 미사와와 오가와는 스즈키 미노루와 스와를 꺾었다. 노아는 관중 수가 14,2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10,000명 미만이었다.[244] 7월, 미사와는 고바시가 정기 건강검진 중 발견된 신장암 치료를 위해 무기한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245] 7월 16일 노아의 다음 부도칸 경기는 메인 이벤트로 고바시와 다카야마가 미사와와 아키야마와 대결할 예정이었다. 이는 2004년 NJPW G1 클라이맥스에서 사사키 켄스케와의 경기 후 뇌졸중을 겪은 다카야마의 2년 만의 경기였다.[246] 미사와는 고바시를 대신하여 사사키를 직접 섭외했고, 그 결과 매진을 기록했다.[246] 하지만 그 후 부도칸 경기의 관중 수는 미사와가 주니어 헤비급 선수 마루후지를 GHC 헤비급 챔피언으로 만들면서(9월 아키야마에게서 타이틀을 획득[247]) 그해 내내 감소했다. 미사와가 전통을 더욱 깨고 10월 29일 부도칸에서 마루후지가 동료 주니어 코바야시와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는 경기를 개최했을 때, 11,500명의 관중 중 5,000명만이 입장료를 지불했다.[1][2]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노아가 현지 프로모터에게 판매한 경기에 의존했는데, 이 프로모터들은 대부분 미사와와 고바시를 보기 위해 노아 경기를 구매하는 연장자이자 부유한 남성들이었고 경기 내용을 자세히 몰랐다는 점이다.[248] 미사와는 2007년 은퇴를 계획했지만, 그는 노아가 가진 유일한 꾸준한 최고의 카드였다. 미사와는 고바시가 돌아올 때까지 최소한 모든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 노아의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세계 타이틀을 걸었다.[1] 그는 12월 10일 부도칸에서 열린 그레이트 보이지에서 마루후지를 꺾고 세 번째 GHC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4][249]
미사와는 네 번째 트리플 크라운 통치 이후 가장 긴 448일 동안 GH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지켰고, 2007년 내내 7차례 성공적인 방어전을 치렀다. 그 첫 번째 방어전은 1월 12일 모리시마 타케시를 꺾으면서였다.[250] 4월 28일에는 사노 타쿠마와의 방어전을 치렀다.[251] 비손 스미스는 6월 3일에 미사와에게 도전했고,[252] 타우에가 7월 15일에 도전했다.[253] 8월 말, 미사와가 11월 2일과 3일 필라델피아와 뉴욕시에서 각각 열리는 링 오브 아너(ROH) 글로리 바이 아너 카드에 출전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254] 9월 29일, 미사와는 GHC 타이틀을 놓고 마루후지와 재경기를 치러 승리했다.[255] 10월 27일, 미사와는 14,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부도칸 경기에서 사모아 조를 상대로 성공적으로 타이틀을 방어했다.[256] 다음 주, 미사와는 ROH 출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첫날 밤, 그는 켄타 코바야시와 팀을 이뤄 모리시마와 마루후지와 맞붙어 30분 시간 제한 무승부를 기록했다.[257] 다음 날 밤, 그는 코바야시와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다. 독감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지만,[258] 이 경기는 일각에서 미사와의 수년 만의 최고 경기로 여겨졌고,[257][259] 멜처는 2009년에 이 경기가 미사와의 마지막 "(별 네 개)"급 싱글 매치였다고 말했다.[1] 12월 2일, 미사와와 아키야마는 고바시의 복귀전에서 고바시와 다카야마와 맞붙었다. 17,000명의 매진 관중(경기장 사상 최다 관중 기록으로 알려짐[2]) 앞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미사와는 고바시에게 미들 로프에서 ''에메랄드 플로우전''을 사용하여 승리했고, ''닛칸 스포츠''와 ''도쿄 스포츠''로부터 올해의 경기 상을 수상했다. 미사와 자신은 ''도쿄 스포츠''로부터 올해의 프로레슬러 상을 수상했고, 팬 투표로 결정된 ''닛칸 스포츠'' MVP 상을 수상했다.[261]
2008년 3월 2일, 미사와는 모리시마에게 패해 GH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잃었다.[263] 그 후에도 미사와는 모든 노아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고바시가 복귀했지만, 이때 회사는 미사와가 출전하지 않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1] 그의 부상은 목의 골극으로 인해 이빨을 닦거나 가운 깃을 만지는 등의 간단한 행동에도 통증이 있었고,[29] 2007년에 오른쪽 눈의 시력 장애가 발견되는 등 심각해지고 있었다.[13] 미사와는 또한 오랫동안 골초였다.[1] 미사와는 대부분 파트너가 대부분의 활동을 하는 미드카드 태그 매치에 출전했는데, 이는 자이언트 바바가 생애 마지막 두 달까지 활동적인 레슬러로 남아 있던 방식과 같았다.[1] 미사와와 오가와는 3월 29일부터 4월 27일까지 열린 노아의 첫 번째 글로벌 태그 리그에 참가[264]했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부도칸에서 사이토와 스미스에게 패했다.[2] 6월, 노아는 짧은 유럽 투어를 진행했다. 6월 21일, 미사와와 마루후지는 코번트리에서 고바시와 시오자키 고를 꺾었다. 그 후 노아는 파링던과 오버하우젠에서 경기를 진행했는데, 후자는 웨스트사이드 익스트림 레슬링을 위해서였다. 미사와는 전자 경기에 출전하여 코타로 스즈키와 함께 스미스와 마크 해스킨스를 꺾었다.[265] 이 경기들은 비교적 성공적이었지만,[265] 노아는 7월 18일 부도칸 경기에서 사상 최저 관중 수인 6,000명을 기록했다.[266] 9월, 니폰 TV 계열사 요미우리 TV는 노아 방송을 취소했다.[267] 바바의 활동 무대였던 간사이 지방에서 이것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무렵 노아는 여행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전 선수를 투어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발표했다.[158] 12월 17일, 니폰 TV는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광고 손실을 메우기 위해 3월에 노아의 TV 프로그램을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 이는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JWA)로 거슬러 올라가는 55년 동안의 레슬링 프로그램 방송의 종식을 의미했다. 새벽 1시 30분부터 3시 사이에 방송되던 30분짜리 일요일 시간대 프로그램은 여전히 노아의 주류 노출의 최선의 수단이었다.[158]
미사와는 2009년 1월 4일 NJPW의 레슬 킹덤 III에 출전하여 스기우라 타카시와 함께 나카무라 신스케와 고토 히로오키에게 패했다.[268] 3월 1일, 노아는 부도칸에서 마지막 NTV 녹화를 진행했고, 14,200명의 거의 매진 관중을 기록했다.[269] 이 경기는 9월 팔꿈치 수술 후 고바시의 복귀라는 점에서도 중요했다.[270] 노아는 위성 방송국 니테레 G+와 파이팅 TV 사무라이와의 TV 계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가정의 위성 TV 보급률은 낮았다. 즉, 노아가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 TV 노출은 TV 오사카(더 작은 TV 도쿄 계열사)의 자정 이후 30분짜리 시간대였다.[269]
미사와는 모리시마 대신 시오자키를 노아의 새로운 에이스로 설정하기로 결정했다. 모리시마의 챔피언 시대에는 사업이 부진했고 그의 체중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272] 그는 4월 16일 아키야마와의 타이틀 매치에서 패하기 전에 시오자키에게 여러 차례 큰 승리를 안겨주었다.[1][273] 시오자키가 반등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1] 미사와는 그와 태그팀을 결성하여 4월 11일부터 5월 6일까지 열린 두 번째 글로벌 태그 리그에 참가했다. 그들은 9점(4승 2무 1패)으로 결승에 진출하여 모리시마와 사사키를 꺾고 우승했다.[274] 이 결승전은 부도칸에서 열렸고, 부도칸에서 열린 미사와의 69번째 메인 이벤트였다. 이곳에서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고, NTV 방송을 잃은 후 첫 노아 부도칸 경기였기 때문에 7,300명만이 참석했다.[270] 지방 프로모터의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고, 이 프로모터들은 그들의 신체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노아의 최고 스타들이 경기를 치르기를 원했다.[275] 사망 4일 전, 미사와는 ''도쿄 스포츠'' 기자에게 은퇴하고 싶고 "48세가 될 때까지는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휴식을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시오자키를 밀어줘야 했고 "단 한 번이라도 휴식을 취하면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13] 미사와의 사망 직후 인터뷰에서 나카타 류는 미사와가 그날 아내에게 연말까지 은퇴하고 다른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4. 사망
2009년 6월 13일 경기 시작 25분에 상대 선수인 사이토 아키토시의 백드롭을 맞고 쓰러져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573] 구급대원이 도착하여 10여 분간 심장 마사지 및 자동체외식제세동기(AED)를 이용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망 당일, 미사와는 히로시마 그린 아레나에서 시오자키와 팀을 이루어 GHC 태그팀 챔피언인 사이토와 스미스에게 도전했다. 경기 도중 사이토의 백 수플렉스를 받은 미사와는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현장 의료진과 응급구조사들이 심폐소생술과 AED를 사용해 소생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미사와는 히로시마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일본 표준시(JST) 오후 10시 10분에 46세의 나이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282] 공식 경찰 보고서에서는 경추 손상으로 추정되었으며, 히로시마 현 경찰청은 "경추 척수 절단"이라는 진단을 발표했다. 멜처는 이 부상을 경추 골절, 즉 환추-축추(첫 번째와 두 번째 경추)가 분리된 환추후관절탈구로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미사와의 죽음은 일본 스포츠 언론의 주요 뉴스였다. 《닛칸 스포츠》와 《도쿄 스포츠》는 추모 특집을 발행했고, 《주간 프로레슬링》은 미사와를 사망하게 한 기술의 사진을 실었다.[282] 그러나 고급 신문과 주류 언론은 이 사건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는데, 이는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1] 예외적으로 NTV 방송인 도쿠미쓰 가즈오는 자신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20분 동안 미사와를 추모했다.[271][1] 전 세계 프로레슬링 단체들은 추모의 의미로 쇼를 10카운트 세레모니로 시작했고, WWE와 TNA(Impact Wrestling)는 추모 메시지를 게시했다.[1][283] WWE 레슬러 CM 펑크는 손목과 팔뚝 테이프에 'MISAWA'라고 써서 추모했고, 요시 타츠는 미사와의 복장과 비슷한 링 의상을 입고 추모했다.[1][284]
미사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노아 레슬러들은 투어 버스 회의에서 이 소식을 들었지만, 회사는 남은 투어 일정을 취소할 수 없었다.[2] 다음 날 후쿠오카에서 쇼가 진행되었고, 모모타 부사장은 미사와의 사인을 공개하지 않았다.[1] 아키야마는 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계속했고, 미사와의 죽음은 아키야마에게 검진을 받도록 자극하여 요추 4번과 5번 척추 사이의 탈장이 발견되었다.[1] 한편, 미사와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사이토와 그의 가족은 괴롭힘을 당했지만, 고인의 가족은 그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고, 노아 관계자들은 괴롭힘을 멈추라고 요청했다.[285]
6월 18일에는 약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카와다를 포함한 많은 레슬러들이 참석했고, 모토코 바바도 참석했다.[288] 고바시, 타우에, 오가와, 시오자키 등이 운구를 맡았다.[2] 7월 4일 디퍼 아리아케에서 노아는 추모식을 열었고, 2만 6천 명의 인파가 몰려 2.4km에 걸쳐 줄이 이어졌다.[290] 이는 일본 운동선수의 추모식 중 두 번째로 많은 참석자 수였다.[289]
다음 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타우에가 노아 사장으로 임명되었고, 고바시와 마루후지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289] 미사와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권력 다툼으로 모모타 미쓰오 부사장이 사임했다.[278]
미사와의 죽음은 여러 프로레슬링 단체들이 국가의 프로레슬링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도록 만들었다.[293] 6월 18일, 하세 히로시는 NJPW, AJPW, 노아의 수장들과 회의를 주최하여 통합 규제 기관 설립을 논의했다.[2]
6월 19일, 도쿄 나카노구의 호센지에서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464] 법명은 "자정원웅도일광"이다.[465] 유영에는 가족의 뜻에 따라 2000년에 참가한 내구레이스에서 레이싱 슈트를 입고 웃고 있는 사진이 선택되었다.[466] 같은 날, 니혼테레비 지타스와 니혼테레비에서 추도 특별 방송이 방영되었다.[467][468][469][470]
7월 4일, 디파 아리아케에서 헌화식 "미사와 미쓰하루 고별회 ~DEPARTURE~"가 개최되어 약 2만 6천 명이 참석했다.[471][472] 몰려든 팬들의 행렬은 3km에 달했다.[472]
미사와의 후임 사장에는 타가미 아키라가 취임했고, 2009년 가을에는 미사와 미쓰하루 추도 기념 공연이 9월 27일 일본무도관,[473] 10월 3일 오사카후립타이쿠카이칸에서 개최되었다.[474]
미사와의 사망 다음 날, 오사카 프로레슬링에서 레퍼리 테드 타나베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잇따른 2건의 문제로 6월 18일 개최된 자유민주당 회의에서 재발 방지책과 선수 건강 관리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고, NOAH, 신일본, 전일본 사장 등이 참석했다.[475]
5. 업적 및 영향
미사와 미쓰하루의 챔피언십 및 업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사와 미쓰하루의 챔피언십 및 업적 문서를 참고하라.
6. 평가
미사와는 "받기의 천재"라고 평가받는다.[506] 미사와는 상대의 주특기 기술을 일부러 받아 상대의 특징과 장점을 이끌어내고, 그 위에서 승리하는 것이 프로레슬링의 특징이라고 말했다.[507] 프로레슬러에게는 상대의 주특기를 받아내면서 승리하는 정신적, 육체적 강인함이 요구된다.[507]
미사와는 2004년 저서에서 받기가 어려운 기술로 풀넬슨 수플렉스, 하프넬슨 수플렉스, 타이거 수플렉스, 버닝 해머, 익스플로이더 등을 언급했다.[508][509] 또한, 머리부터 떨어지는 큰 기술이 반복되면서 데미지가 축적된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목에도 데미지가 쌓이고 있음을 인정했다.[510]
받기의 능숙함은 던져졌을 때 매트에 착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서투른 레슬러는 허리부터 떨어져 후두부를 부딪히는 소리가 두 번 들린다.[511] 미사와의 받기는 목덜미 아래로 받는 점이 뛰어나며,[406][512] 아키야마 준은 미사와가 머리부터 떨어질 때 손으로 데미지를 피했지만, 목과 어깨도 사용했기 때문에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513]
미사와는 일류 프로레슬러는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개성의 표현이 경기력이 된다고 생각하여 의도적인 퍼포먼스를 좋아하지 않았다.[516] 자이언트 바바가 금지했던 설전 등 링 밖에서 화제를 만드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517] 미사와는 경기 중 쓰러진 상대를 일으킬 때 머리카락을 잡는 것을 "저속하다"고 싫어했다.[521]
미사와는 자신의 기술에 대해, 힘보다는 기술의 날카로움과 떨어뜨리는 각도를 중시했다.[522] 장보 츠루타의 백드롭, 스탠 한센과 고바시 켄타의 래리어트를 인상적인 기술로 꼽았다.[523] 특히 고바시의 래리어트는 팔의 두께와 근력으로 밀어붙이는 힘, 순발력 때문에 큰 데미지를 준다고 평가했다.[524]
미사와는 "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젊은 선수도 큰 기술을 사용하고 선배 레슬러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525][526]
미사와 미쓰하루의 챔피언십 및 업적에 대한 내용은 미사와 미쓰하루의 챔피언십 및 업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1. 프로레슬링계의 평가
미사와는 "받기의 천재"라고 평가받는다.[506] 미사와는 상대의 주특기 기술을 일부러 받아 상대의 특징과 장점을 이끌어내고, 그 위에서 승리하는 것이 프로레슬링의 특징이라고 말했다.[507] 프로레슬러에게는 상대의 주특기를 받아내면서 승리하는 정신적, 육체적 강인함이 요구된다.[507]미사와는 2004년 저서에서 받기가 어려운 기술로 풀넬슨 수플렉스, 하프넬슨 수플렉스, 타이거 수플렉스, 버닝 해머, 익스플로이더 등을 언급했다.[508][509] 또한, 머리부터 떨어지는 큰 기술이 반복되면서 데미지가 축적된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목에도 데미지가 쌓이고 있음을 인정했다.[510]
받기의 능숙함은 던져졌을 때 매트에 착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서투른 레슬러는 허리부터 떨어져 후두부를 부딪히는 소리가 두 번 들린다.[511] 미사와의 받기는 목덜미 아래로 받는 점이 뛰어나며,[406][512] 아키야마 준은 미사와가 머리부터 떨어질 때 손으로 데미지를 피했지만, 목과 어깨도 사용했기 때문에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513]
미사와는 일류 프로레슬러는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개성의 표현이 경기력이 된다고 생각하여 의도적인 퍼포먼스를 좋아하지 않았다.[516] 자이언트 바바가 금지했던 설전 등 링 밖에서 화제를 만드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517] 미사와는 경기 중 쓰러진 상대를 일으킬 때 머리카락을 잡는 것을 "저속하다"고 싫어했다.[521]
미사와는 자신의 기술에 대해, 힘보다는 기술의 날카로움과 떨어뜨리는 각도를 중시했다.[522] 장보 츠루타의 백드롭, 스탠 한센과 고바시 켄타의 래리어트를 인상적인 기술로 꼽았다.[523] 특히 고바시의 래리어트는 팔의 두께와 근력으로 밀어붙이는 힘, 순발력 때문에 큰 데미지를 준다고 평가했다.[524]
미사와는 "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젊은 선수도 큰 기술을 사용하고 선배 레슬러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525][526]
6. 2. 팬들의 평가
미사와 미쓰하루의 챔피언십 및 업적에 대한 내용은 미사와 미쓰하루의 챔피언십 및 업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7. 기타
미사와는 1988년 5월 10일 배우 시이나 마유미와 결혼했다.[277] 두 자녀로는 딸 카에데와 아들 시즈마가 있었는데, 사망 당시 각각 20세와 17세였다.[2] 사망 후, 마유미는 노아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278] 미사와는 레슬링 외의 삶에 대해 매우 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그를 알고 지낸 레슬러들조차 그에게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2] 그는 열렬한 게이머이기도 했으며, 한때 비디오 게임 잡지 『패미통』에 자신이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 목록을 공개하기도 했다.[279] 미사와는 자신이 입는 녹색 의상과 부츠가 호르스트 호프만(Horst Hoffman)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280]
7. 1. 에피소드
미사와는 1988년 5월 10일 배우 시이나 마유미와 결혼했다.[277] 두 자녀로는 딸 카에데와 아들 시즈마가 있었는데, 사망 당시 각각 20세와 17세였다.[2] 사망 후, 마유미는 노아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278] 미사와는 레슬링 외의 삶에 대해 매우 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그를 알고 지낸 레슬러들조차 그에게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2] 그는 열렬한 게이머이기도 했으며, 『패미통』에 자신이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 목록을 공개하기도 했다.[279] 미사와는 자신이 입는 녹색 의상과 부츠가 호르스트 호프만(Horst Hoffman)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280]녹색은 미사와 미쓰하루(三沢光晴)를 상징하는 색으로, 타이거 마스크(タイガーマスク)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후 녹색 롱 타이츠를 착용했다. 이는 호스트 호프만(ホースト・ホフマン)을 본뜬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되지만,[388] 주간 곤그(週刊ゴング) 주임인 사사키 켄지(佐々木賢之)에 따르면 지인의 조언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486] 녹색 롱 타이츠가 자리 잡기 전에는 빨간색이나 파란색 롱 타이츠를 착용한 적도 있다.[486] 2000년 프로레슬링 노아 설립 시에는 다른 단체에는 없는 색이라는 이유로 녹색 매트를 사용했다.[388]
전일본에서의 젊은 시절 잔보 쓰루타의 수행을 맡았지만, 쓰루타는 간섭을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 영향으로 삼자와 자신도 수행생에게 잡일을 많이 시키거나 잔소리를 하는 일이 없었다[528]. 도쿠미쓰에 따르면, 이는 “나는 아랫사람에게 그와 같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529]。마루후지 마사미치에 따르면 삼자와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는 사람”이었고, 프로레슬링·사생활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말을 들은 적이 없고, 수행 시절에 함께 식사하러 갔을 때도 프로레슬링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535]. 후배에게 대해서도 선배 행세를 하거나 특별히 엄하게 대하지 않았고, 코사노 케이고에 따르면 술자리에서는 다른 선배에게 술을 마시게 되어 취한 아사코 사토루나 이노우에 마사히로에 대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술은 즐겁게 마셔야지!”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536].
후유키 히로미치는 삼자와의 인간적인 매력에 대해,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여자 쪽에서 다가오는 거야. 그것은 타고난 인간의 그릇이라고 생각해. 젊은 시절부터 장수의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하는 한편[540], “얌전하고 온화한 남자로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이제 와서는 대단해. 어떤 선을 넘으면 삼자와는 몸을 던지고, 언제든지 몸을 던질 수 있는 레슬러야”라고도 말하고 있다[527]. 후유키는 삼자와의 그러한 인품을 나타내는 일화로서, 젊은 시절에 지방의 경기장에서 야쿠자와 시비가 붙은 것을 밝히고 있다[537]. 후유키에 따르면, 야쿠자는 “완전히 머리에 피가 오른” 상태로 삼자와에게 “네놈 죽여 버리겠다!”라고 말했는데, 삼자와는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죽일 수 있다면 죽여 봐!”라고 응수했다고 하며[527][537], 후유키는 상대에게 사과하는 것과 삼자와를 달래는 것 양쪽 모두 힘들었지만, 삼자와는 “아니 별로 죽일 거면 죽이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527]. 이 사건으로 후유키는, “이 녀석과는 절대로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삼자와는 진짜 싸움이 되면, 마지막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하는 근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턱대고 으르렁거리는 녀석보다, 사실은 삼자와 같은 남자가 더 무서운 거야”라고 말하고 있다[537].
삼자와는 자주 의리 있다고 평가받는다. 후유키 히로미치의 은퇴 흥행이 그 예인데,[538] 젊은 시절, 삼자와는 후유키와 사이가 좋았다.[539] 1990년에 후유키가 SWS로 이적함으로써 양자의 교류는 단절되었지만, 삼자와의 전일본 프로레슬링 퇴단·노아 기성을 계기로 다시 접점이 생겨, 2002년 4월 7일에 싱글 매치로 대결했다[540]. 이튿날 8일, 후유키는 의사로부터 대장암이라고 선고받고, 18일에 수술을 받고 프로레슬러를 은퇴하기로 결심했다.[540] 당초 후유키는 9일의 후유키군 흥행에서의 시합을 은퇴 시합으로 할 작정이었지만, 이 사실을 안 삼자와는 급거 6일 후의 디파 아리아케를 잡아 노아 주최로 은퇴 흥행을 열고, 5월 5일에 예정되어 있던 신단체·WEW의 기성 흥행(가와사키 구장)에도 전면적으로 협력했다.[541][542] 동 대회의 티켓은 모두 당일권으로 발매되었지만, ZERO-ONE의 소속 선수나 오니타 아쓰시가 참전한 것도 있어서 초만원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고[543], 삼자와는 그 수익의 전부를 후유키에게 증여했다.[542] 도쿠미쓰 마사유키에 따르면, 후유키는 “내 인생에서 삼자와 미쓰하루를 만난 것이 최고의 일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544]
신일본 프로레슬링 첫 참전이 된 2002년 5월 2일 도쿄 돔 대회, 대 조노 마사히로 전이 실현될 때까지의 경위에 대해서, 조노는 2019년에 고바시 켄타와의 대담에서 밝히고 있다.[545] 2002년 2월, 신일본의 삿포로 대회(홋카이도립종합체육센터)에서, 조노는 안토니오 이노키로부터 현장 감독에 지명되었다.[545] 당시의 신일본은 무토 케이지가 중추 사원들을 이끌고 전일본으로 이적한 직후로 경영 면에서 위기적인 상황이었는데, 3월이 되어도 당일의 대전 카드는 결정되지 않고 티켓 판매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일 시합을 중지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가운데 조노는 삼자와에게 “갑작스러운 이야기로 정말 죄송하지만, 우리 돔에서 나와 일대일 대결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이 시점에서 신일본은 일주일 이내에 삼자와로부터 전화가 없으면 당일의 대회를 중지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전화에서 30분 후에 삼자와는 “좋아, 하지”라고 조노에게 회답 전화를 걸어 출전을 승낙했다. 조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렇게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마 주위에는 묻지 않고, 사장의 일방적인 결단으로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래의 노아에게 있어 신일본은 경쟁 단체인데, 프로레슬링계 전체의 일을 생각해서 결단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고바시는 “삼자와 씨는 제대로 수지를 따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30분 동안 닛폰TV에 이야기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노 씨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리도 있어서, 곧바로 움직였겠죠”라고 말하고 있다[545]. 이 건으로 조노는 “업계 전체를 생각한 매치 메이킹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듬해 2003년 5월의 신일본 도쿄 돔 대회에서는, 당시의 GHC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고바시에게 자신과의 타이틀 매치를 제안하여 실현시키고 있다.[545]
나카타 류는 삼자와를 “손익 계산으로 움직이지 않는 인간[538]”, 코사노 케이고는 “사람에게 좌우되지 않고, 확실히 자신이라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판단으로 인간관계를 하는 남자였다[546]”고 평가하고 있다. 노아의 경영자로서 삼자와는, 휴양 중의 급료 보장, 연간의 최저 보장을 정하고, 소속 레슬러를 금전 면에서 백업하는 것에 유의했다[547].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장 시절에는, 회사의 재정 상태가 어려운데도 소속 레슬러가 거는 보험의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548]. 전 주간 곤그 기자의 스즈키 아쓰오에 따르면, 1994년에 UWF 인터내셔널이 『94 프로레슬링 월드 토너먼트』의 개최를 발표하고, 거기서 자신이 초대되어 우승 상금 1억 엔이 나온다는 것을 안 삼자와는, “내가 십수 년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노력해 온 것이 무가 되어 버려. 화가 나는 것보다 어이없었네”, “팬은 보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하면 전일본을 좋아해서 보러 와 주는 팬을 배신하는 일이 된다”고 분노를 드러냈다고 한다[549].
사후 10년을 앞두고 삼자와의 마지막 시합에서 백드롭을 건 사이토 아키토시가 LINE NEWS의 취재에 응해, 삼자와가 사고의 2년 전에 “만약 내가 링 위에서 죽는 일이 있으면, 그때의 상대에게 전해주었으면 한다”고 친한 친구에게 맡긴 편지를 받았던 것을 밝혔다.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해서 미안하다”“틀림없이 너는 나를 신뢰하고, 전력으로 기술을 걸어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그것에 나는 응할 수 없었다. 신뢰를 배신하는 형태가 되었다. 정말 죄송하다”“그래도 너는 프로레슬링을 계속해 주었으면 한다”“힘들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계속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상대가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을 예견한 내용으로, 자살도 생각했던 사이토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편지를 순례용 가방 속에 항상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별로 사람에게 보여준 것은 없었지만, 중요한 시점에서의 공개였다[550].
2대 타이거 마스크(타이거 마스크 2세)는 복면을 착용하여 시야가 좁은 상황에서 경기를 계속한 영향으로, 로프에 밀리면 고개를 숙이고 달리는 버릇이 있었다.[551] 또한, 이마의 땀을 손가락으로 닦는 버릇이 있었다.[551]
미사와에 따르면 아버지는 주폭이었고 가정 내 폭력이 심했으며, 어머니를 칼로 찌른 적도 있었다.[303] 어머니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두 살 위인 형과 미츠하루를 데리고 근처 공원으로 피신했고,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신발과 담요를 준비를 해두었다.[300] 아버지는 형을 귀여워했지만, 자신에게 결코 다가오려 하지 않는 둘째 아들 미츠하루는 싫어했다.[552] 어린 시절 미사와는 "빨리 커서 아버지를 때려눕혀 버리겠다"고 생각했으며,[300][553][554] 자신이 술을 마시게 된 후에는 아버지처럼 취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553] 미사와는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고 말하며, 아버지에 대해서는 "자주 집에 오는 사람", "술에 취해서 집에 오는 사람"이라는 인상밖에 없다고 말했다.[555] 미사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겼다.[556] 고등학교 시절 동기인 와타나베 유이치에 따르면, 1학년 때 연습이 끝난 후 도장 밖에 있는 훈련실에서 미사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걱정한 와타나베가 말을 걸자 미사와는 "아니, 어머니 생각이 나서"라고 말했다고 한다.[557][558] 프로레슬링 노아를 창단했을 무렵에는 아버지에게 "이제 와서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나는 것만은 그만두어 달라"고 심정을 토로했다.[559]
덕광 마사유키에 따르면, 미사와는 히어로물을 좋아했고, 미사와의 방은 히어로물 상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장례식 때는 미사와가 좋아했던 히어로물 음악이 많이 흘러나왔다.[560] 가라오케에 갔을 때도 히어로물 노래나 애니메이션송을 즐겨 불렀고, 마루후지 마사미치에 따르면, 그의 특기는 「울트라맨 레오」와 「신조인간 캐산」이었다고 한다.[561] 만화도 좋아해서, 「소년지부터 청년지까지, 거의 전부를 직접 사서 보았다」고 한다.[562] 그림 그리는 것도 능숙해서, 중학교 시절 인기 있었던 만화 『타이거 마스크』도 잘 그렸다고 한다.[563] 프로레슬링을 그린 만화 중에서는 『1・2의 삼사郎』에 대해, 「프로레슬링 연습 장면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은 다른 데 없네」라며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564]
학원물 TV 드라마를 좋아했고, 특히 「스쿨☆워즈」, 「3학년 B반 금팔선생」, 「GTO」, 「고쿠센」을 좋아했다.[565] 2008년에 TV 드라마, 2009년에 영화가 공개된 「루키즈」에 관해서는, 시오자키 고우에게 추천할 정도로 열중했다.[565] 또한 NOAH의 순회 버스에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동 중에는 이것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재키 찬이나 톰 행크스 주연 영화를 좋아했다.[565]
동물을 좋아해서, 고양이, 개, 새, 거북이, 토끼 등을 기르고 있었다.[566]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해서,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하와이에 가서 다이빙을 했다.[566]
1999년, 일세풍미세피아의 무노 코니오의 결혼 피로연에 천룡원일랑과 전일본 소속 레슬러들과 함께 참석했을 때, 미사와가 저속한 내용의 축사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무노의 여성 편력을 폭로했고[567], 천룡이 무노의 아버지의 머리를 휘두르는 등의 일이 있었던[568] 것에 격분한 야나기하 토시로와 대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이카와 쇼는 전해지는 내용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지만,[569][570] 피로연에 함께 참석했던 목격자 여성에 따르면 전해지는 내용과 사실이 다르다고 밝히고 있다. 그 여성에 따르면, 실제로는 취한 야나기하와 아이카와가 일방적으로 날뛰었고, 아이카와가 "내가 타이거 마스크가 될 예정이었는데"라고 말하며 근처에 있던 당시의 젊은 레슬러들을 위협했고, 야나기하는 만취 상태로 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프로레슬링은 강하지 않아, 내가 모두 날려 버리겠다"고 외치며 일방적으로 덤벼들려고 하는 것을 천룡이 달랬다고 한다. 또한 미사와가 음란한 이야기를 했을 때는 다툼이 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571] 도쿠미츠 마사유키에 따르면 이후 2차 회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미사와는 만취하여 참석하지 않았다. 미사와가 만취하여 술자리를 취소한 것은 이때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한다.[567]
노아의 공연에서 모금 활동을 하는 등[572] 일본 이식 지원 협회의 활동을 10년 가까이 지원했다. 미사와가 장기 이식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잔보 쓰루타가 간 이식 수술 중 사망한 것이 계기였다. 미사와 사망 직후인 2009년 6월 18일, 중의원에서 장기이식법 개정 A안이 가결되었는데, 이 날은 미사와 자신의 47번째 생일이기도 했다.[572]
7. 2. 수상 경력
- 전일본 프로레슬링
- * 삼관 헤비급 챔피언 : 5회 (제10・14・17・20・23대)
- * NWA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 1회 (제17대)
- * 세계 태그 챔피언 : 6회 (제17・20・24・25・29・39대) - 파트너는 카와다 도시아키 2회, 코바시 켄타 2회, 아키야마 준, 오가와 요시나리.
- * 아시아 태그 챔피언 : 2회 (제51・67대) - 파트너는 코바시 켄타, 오가와 요시나리.
- * PWF 세계 태그 챔피언 : 1회 (제3대) - 파트너는 장보 츠루타.
- * 신춘 헤비급 배틀 로열 : 우승 1회 (1987년)
- * 챔피언 카니발 : 우승 2회 (1995년・1998년)
- *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 우승 4회 (1992년・1993년・1994년・1995년) - 파트너는 1992년이 카와다 도시아키, 이후는 코바시 켄타.
- 프로레슬링 노아
- * GHC 헤비급 챔피언 : 3회 (초대・제5・11대)
- * GHC 태그 챔피언 : 2회 (제2・8대) - 파트너는 모두 오가와 요시나리.
- * 초대 GHC 헤비급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 : 우승 1회 (2001년)
- * 글로벌 태그 리그전 : 우승 1회 (2009년) - 파트너는 시오자키 고.
- 프로레슬링 대상
- * 1982년, 신인상
- * 1985년, 갬투상
- * 1990년, 수훈상
- * 1991년, 최우수 태그팀상 (파트너는 카와다 도시아키)
- * 1992년, 특별대상
- * 1993년, 최우수 태그팀상 (파트너는 코바시 켄타)
- * 1994년, 최우수 태그팀상 (파트너는 코바시 켄타)
- * 1995년, 연간 최고 시합상 (카와다 도시아키&타나카 아키라 vs 미사와 미쓰하루&코바시 켄타)
- * 1997년, 수훈상, 연간 최고 시합상 (미사와 미쓰하루 vs 코바시 켄타) 더블 수상
- * 1998년, 연간 최고 시합상 (미사와 미쓰하루 vs 코바시 켄타)
- * 2003년, 연간 최고 시합상 (미사와 미쓰하루 vs 코바시 켄타)
- * 2007년, 최우수 선수, 연간 최고 시합상 (미사와 미쓰하루&아키야마 준 vs 코바시 켄타&타카야마 요시히로)
- * 2009년, 특별 공로상
7. 3. 사용 기술
미사와 미쓰하루는 다양한 기술을 구사했으며, 특히 헤비급 전향 후에는 체격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의 날카로움과 각도를 중시했다.[522]- '''엘보 뱃(엘보)''': 미사와의 상징적인 기술로, 오른쪽 팔꿈치로 상대의 얼굴이나 턱을 가격한다.[476] 소에노 기지로부터 전수받았으며,[477][478] 체격이 큰 상대와 싸우기 위한 효과적인 타격 기술로 사용되었다.[476] 코사노 케이코에 따르면, 1990년 5월 26일 태그 매치에서 잔보 츠루타를 실신시킨 것을 계기로 미사와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357][480]
- '''응용 기술:''' 러닝 엘보,[476] 원투 엘보,[476] 롤링 엘보, 엘보 수이시다(토페 엘보),[483] 도다누키
- '''에메랄드 플로우전''': 상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머리부터 떨어뜨리는 기술이다.[487] 기술명은 미사와의 이미지 컬러인 녹색 보석 에메랄드와, 상대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모습에서 유래했다.[487] 여러 변형 버전이 존재한다. (자세한 내용은 에메랄드 플로우전 참조)
- '''타이거 드라이버''': 2대 타이거 마스크 시절 고안한 기술로, 리버스 풀넬슨 자세에서 상대를 들어 올려 떨어뜨린다.[489] 더블암 슈플렉스를 기반으로 고안되었으며,[490][491] 초기에는 고정 기술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489]
- '''타이거 드라이버 '91''': 1991년 1월 26일 타가미 아키라와의 경기에서 처음 공개된 기술이다.[492] 타이거 드라이버를 더욱 발전시켜, 상대를 거의 머리 위에서 떨어뜨려 목에 큰 데미지를 입힌다.[493]
- '''타이거 슈플렉스(타이거 슈플렉스 '84, 맹호 원폭 고정)''': 2대 타이거 마스크 시절 습득한 기술로, 양팔을 치킨 윙 자세로 잡고 뒤로 던진다.[495]
- '''타이거 슈플렉스 '85''': 무릎 부상 후 복귀전에서 처음 공개한 오리지널 기술이다.[491] 슬리퍼 홀드와 변형 풀넬슨을 결합한 형태이다.[491]
- '''저먼 슈플렉스(원폭 고정)''': 일반적인 저먼 슈플렉스 외에, 슈타이너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은 내던지는 방식도 사용했다.[497]
- '''다이빙 바디 프레스''': 타이거 마스크 시절부터 사용한 기술로, 공중에서 몸을 둥글게 했다가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498]
- '''다이빙 넥브레이커 드롭''': 코너 최상단에서 넥브레이커 드롭을 구사하는 기술이다.
- '''드롭킥''': 시합 초반 컨디션 측정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500]
- '''페이스록''': 1991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기술로, 상대의 팔을 잠그고 코를 조르는 형태이다.[501]
미사와는 "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젊은 선수도 큰 기술을 사용하고 선배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52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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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レスに殉じた男 三沢光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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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沢さん死因「頚髄離断」、遺体は東京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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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本 天龍源一郎 LIVE FOR TODAY -いまを生きる-
竹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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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川翔 天龍、三沢さんと一触即発危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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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타이거마스크' 레슬러 미사와, 경기중 부상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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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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