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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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중로는 도요토미 정권 시기에 존재했는지에 대한 연구 및 고찰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인물 또는 직책으로 추정된다. 미야모토 요시미, 다카하시 요스케, 타니구치 카츠히로 등 여러 학자들은 삼중로의 실존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며, 특히 도요토미 정권의 기본 사료에서 삼중로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삼중로가 후세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관련 사료의 검증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한민국 학계에서도 삼중로의 실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삼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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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 및 고찰

미야모토 요시미는 삼중로가 후대에 창작된 것이라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지적했다. 다카하시 요스케는 도요토미 가문에 '삼중로'라는 직책이 있었는지, 이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심문 사절로 갔었는지 1차 사료로 확인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미야모토 요시미와 마찬가지로 삼중로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했다. 타니구치 카츠히로는 코세 호안이 호리오 요시하루를 섬긴 경력이 있으며, 『보안 태합기』에서 요시하루의 전공을 과장하여 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세키가하라 전투 전후의 기사에서도 요시하루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이코마 치카마사, 나카무라 이치우를 "쇼네리기(소년기)"로 묶어 옛 주군의 권위를 부여하려 한 것으로 분석했다.

2.1. 미야모토 요시미의 주장

미야모토 요시미는 나오에조를 위조 문서는 아니지만, 후대에 대폭 개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에서, 나오에조에 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분노를 달래는 내용(즉, 나오에조를 진필로 뒷받침하는 내용)의 봉행 연서 조서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삼중로 3명이 봉행 중 3명과 연서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으며, 봉행 중 상위에 삼중로 3명이 위치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고 했다. 또한, 문서 수신자가 이 무렵 우에스기 가문에 대한 취급이었던 사카키바라 야스마사가 되어야 하는데, 이이 나오마사로 되어 있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삼중로의 존재는 도요토미 정권의 기본 사료에서는 확인할 수 없으며, 『보안 태합기』 등에 의존한 후세의 창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2. 다카하시 요스케의 견해

다카하시 요스케는 도요토미 가문에 '삼중로'라는 직책이 있었는지, 이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심문 사절로 갔었는지 1차 사료로 확인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미야모토 요시미와 마찬가지로 삼중로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했다.

2.3. 타니구치 카츠히로의 분석

타니구치 카츠히로는 코세 호안이 호리오 요시하루를 섬긴 경력이 있으며, 『보안 태합기』에서 요시하루의 전공을 과장하여 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키가하라 전투 전후의 기사에서도 요시하루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이코마 치카마사, 나카무라 이치우를 "쇼네리기(소년기)"로 묶어 옛 주군의 권위를 부여하려 한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