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마 지카마사
1. 개요
이코마 지카마사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며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사누키 국을 다스리며 다카마츠 성과 마루가메 성을 축성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아들과 다른 편에 서서 가문의 존속을 꾀했으며, 이후 승려가 되어 고야산에 들어갔다가 다카마츠 성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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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코마 지카마사 |
|---|---|
| 본명 | 생구친정(生駒親正) |
| 통칭 | 도다 진스케(土田甚助) |
| 다른 이름 | 지카노리(近規) 지카마사(近正) 마사카쓰(政勝) 지카치카(近親) |
| 계명 | 해의홍헌대선정문(海依弘憲大禅定門), 전찬주자사종사위하태악령해의홍헌대거사(前讃州刺史従四位下太楽令海依弘憲大居士) |
| 묘소 | 가가와현다카마쓰시 니시키정의 홍헌사 교토부교토시우쿄구하나조노의 묘신사 탑두옥룡원 |
| 출생 | 다이에이 6년 (1526년) 경 |
|---|---|
| 사망 | 게이초 8년 2월 13일 (1603년 3월 25일) |
| 사망 장소 | 다카마쓰성 (사누키) |
| 씨족 | 도다 이코마 씨 |
|---|---|
| 가문 문양 | |
| 아버지 | 이코마 지카시게 |
| 어머니 | 소네 씨 |
| 형제자매 | 지카마사 지카키요(친청) 가쓰스케 슈리노스케(修理亮) 지우에몬(次右衛門) 겐파치로(源八郎) |
| 배우자 | 고다카 마사스케의 양녀 |
| 자녀 | 가즈마사 무라코시 나오요시 계실 |
| 주군 |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요토미 히데요리 |
|---|---|
| 봉직 | 다이묘 주로(中老) |
| 소속 | |
| 관위 | 종5위하 종4위하 아악두 |
| 지휘 | 다카마쓰성 |
| 영지 | 사누키국다카마쓰번 번주 |
| 전투 목록 | 이나바야마성 공방전 이시야마 전투 나가시노 전투 야마자키 전투 시즈가타케 전투 오다와라 정벌 분로쿠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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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가문 | 이코마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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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타 이코마가 -
다카마쓰번
다카마쓰번은 에도 시대 사누키국을 다스린 번으로, 이코마 가문에서 시작하여 마쓰다이라 가문이 메이지 유신까지 통치했으며, 릿린 공원 등 문화 시설 보호와 경제 발전에 기여하다가 폐번치현으로 다카마쓰 현이 되었다. -
도타 이코마가 -
야시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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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마씨 -
다카마쓰번
다카마쓰번은 에도 시대 사누키국을 다스린 번으로, 이코마 가문에서 시작하여 마쓰다이라 가문이 메이지 유신까지 통치했으며, 릿린 공원 등 문화 시설 보호와 경제 발전에 기여하다가 폐번치현으로 다카마쓰 현이 되었다. -
이코마씨 -
야시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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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사망 -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의 딸로 잉글랜드 여왕으로 즉위하여 국교회를 정비하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등 잉글랜드의 국제적 지위를 높였으며,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로서 국가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다. -
1603년 사망 -
윌리엄 길버트
윌리엄 길버트는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의 주치의였던 영국의 의사이자 과학자로, 전기와 자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지구 자기학의 기초를 마련하고 과학 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생애
이코마 치카시게의 아들로 미노 국 카니 군 도다(현재의 기후현 카니시 도다)에서 태어났다. 에이로쿠 9년(1566년) 오다 노부나가의 미노 공격 때 그의 신하가 되었고,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 휘하에서 가네가사키 전투, 나가시노 전투, 이시야마 혼간지 공략, 기이 국 사이카 공략 등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덴쇼 10년(1582년) 노부나가 사후에는 히데요시의 가신으로서 야마자키 전투, 시즈가타케 전투, 오다와라 정벌, 분로쿠의 역 등에서 활약했다. 히메지 성 주인이었던 히데요시를 섬기며 덴쇼 6년(1578년) 약 1,000석에서 시작하여 점차 영지가 늘어나 덴쇼 14년(1586년)에는 하리마 국에서 6만 석을 다스렸다. 분로쿠 4년(1595년)에는 사누키 국 12만 6천 200석을 받아 다카마츠 성과 마루가메 성을 축성하고 성하 마을을 정비했다. 히데요시 말년에는 나카무라 카즈우지, 호리오 요시하루와 함께 산추로에 임명되어 정권 운영에 참여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 직책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본인은 서군에 속하고 아들 카즈마사는 동군에 속하게 하여, 어느 쪽이 승리하든 가문을 보존하려 했다. 지카마사는 본국에 머물며 가신을 대신 보내 탄고 국 타나베 성 공격에 참여시켰다. 전투 후 서군 가담의 책임을 지고 삭발하여 고야산에 들어갔으나, 실제로는 전투 이전에 이미 고야산에 들어갔다는 설도 있다. 아들 카즈마사가 동군에 속했기에 이코마 가문의 영지는 유지되었고, 이후 사누키로 돌아와 게이초 8년(1603년) 다카마츠 성에서 사망했다.
2.2. 오다 노부나가 시대
에이로쿠 9년(1566년), 오다 노부나가가 미노 국을 공격할 때(이나바야마성 공략) 그의 가신이 되었다. 그 후 하시바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으로 활동하며 가네가사키 전투, 나가시노 전투(1575년), 이시야마 혼간지 공략, 기이 국 사이카 공략(1577년) 등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2.3.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겼으며, 1582년 야마자키 전투, 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 1590년 오다와라 정벌, 1592년 분로쿠의 역 등 히데요시 휘하의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활약했다. 이러한 공적으로 인해 사누키 국에서 17만 1천 800 곡에 달하는 영지를 하사받았다. 이후 다카마쓰 성과 마루가메 성을 새로 짓고 성 아랫마을을 정비하는 데 힘썼다.
히데요시의 만년에는 나카무라 가즈우지, 호리오 요시하루와 함께 츄로라는 중책에 임명되어 도요토미 정권 운영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츄로라는 직책은 후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2.4. 세키가하라 전투
게이초 5년(1600년)에 발발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지카마사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끄는 서군에 가담했으며, 아들 카즈마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속했다. 이는 어느 쪽이 승리하든 이코마 가문을 보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지카마사 본인은 본거지인 사누키 국에 머물렀고, 대신 가신 오노키 시게카츠를 파견하여 서군의 일원으로 단고국의 다나베성 공격에 참여하게 했다.
전투는 동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들 카즈마사가 동군에 속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코마 가문의 영지 보유를 인정했다. 그러나 지카마사는 서군에 가담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문의 수장 자리를 카즈마사에게 물려주었다. 이후 삭발하고 고야산에 들어갔다. 다만, 고야산에 들어간 시기가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이었으며, 이는 동군 측에 기운 듯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했기 때문이라는 다른 설도 존재한다.
2.5. 죽음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지카마사는 고야 산으로 물러나 승려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누키 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었으며, 1603년(게이초 8년) 다카마츠 성에서 사망했다.
3. 일화
사누키 국의 전 국주였으며 도쓰가와 전투에서 전사한 소고 도키야스의 아들 센마츠마루를 맡아 길렀다. 덴쇼 15년(1587년), 지카마사가 센마츠마루와 함께 히데요시를 알현했을 때, 히데요시는 "도키야스 정도 되는 인물의 아들에게 겨우 3천 석을 주다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에 소고 가문의 옛 신하들은 센마츠마루가 본래 영지인 2만 석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센마츠마루는 15세로 원복을 치를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히데요시 앞에서 센마츠마루와 함께 춤을 추었던 지카마사의 조카 오쓰카 우네이 등 이코마 가문 측에서 센마츠마루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소문이 이코마 가문에 적대적인 세력이 퍼뜨린 모략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이후 이코마 가문은 미요시 씨와 관련된 인물들을 철저히 탄압하여 소고 씨가 다시 일어설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고 알려져 있다.
4. 가계
* 아버지: 이코마 치카시게
* 어머니: 소네 씨
* 정실: 다카기 마사스케의 양녀
* 자녀
이코마 카즈마사 (장남): 생모는 정실
딸: 무라코시 나오키치의 계실
5. 관련 작품
*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 (2000년, 배역: 시노하라 다이사쿠)
* 공명의 갈림길 (2006년, 배역: 시마자키 노부오)
* 군사 칸베에 (2014년, 배역: 사코 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