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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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원사 동종은 725년(성덕왕)에 주조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으로, 높이는 1.7m이다. 휴도리라는 귀부인이 기증했으며, 당초문과 천인상으로 장식된 무늬대, 연화문 당좌와 병좌주악천인상이 특징이다. 신라 성덕왕 24년에 조성되어 조선 예종 원년에 상원사로 옮겨졌으며, 음통, 안으로 오무라든 종신형, 상대·하대, 4유곽 등의 구조적 특징은 한국 종의 전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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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동종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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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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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상원사 동종 |
영문 명칭 | Bronze Bell of Sangwonsa Temple |
지정 번호 | 국보 제36호 |
지정 일자 | 1962년 12월 20일 |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50, 상원사 (동산리) |
소유자 | 상원사 |
수량 | 1구 |
시대 | 남북국 시대 |
상세 정보 | |
특징 | 종 몸체에 있는 명문을 통해 725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음. |
참고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 중 하나임. |
2. 특징
725년(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이 종은 현재 남아있는 한국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으로,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앞선다.[2] 높이는 1.7m이며, 종의 윗부분 명문에 따르면 휴도리(休道里)라는 귀부인이 시주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상원사 동종은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 독특한 종신(鐘身) 형태, 상대(上帶)와 하대(下帶), 네 개의 유곽(乳廓) 등 한국 범종의 고유한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어 한국 종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2]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이후 만들어지는 한국 종들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2]
종 표면에는 당초문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비천상과 연꽃 모양의 당좌(종을 치는 부분) 등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2] 특히 구름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8세기 전반 신라의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예술성을 나타낸다.[2] 이 종은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졌다.[2]
2. 1. 형태
725년(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이 종은 현재 남아있는 한국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는다.[2]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앞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1.7m이다.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춘 대표적인 예로,[2]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龍鈕)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이 있고, 종 몸체(종신)는 위쪽이 약간 좁아졌다가 아래로 가면서 살짝 벌어져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형태는 이상적인 비례와 풍부한 양감을 보여주며, 세부 묘사 또한 매우 사실적이다.[2] 종신이 안으로 오므라든 형태, 음통, 종의 위아래를 두르는 띠인 상대(上帶)와 하대(下帶), 네모난 유곽(乳廓) 등의 구조적 특징은 이후 만들어지는 모든 한국 종의 전형이 되었다.[2]종의 상대, 하대, 유곽의 테두리(무늬대, 문양대)는 모두 당초문을 바탕으로 장식되었고, 반원 모양으로 구획된 안에는 2명에서 4명의 작은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2] 종신 표면에는 연꽃 모양으로 만든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 2곳과, 나란히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竝坐奏樂天人象) 2곳이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당좌는 8개의 꽃잎을 가진 연화문으로 표현되었다.[2]
특히 비천상은 매우 경쾌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구름 위에서 하늘하늘한 천의(天衣) 자락을 흩날리며 공후(箜篌)와 생(笙)을 연주하는 모습인데, 통통한 두 뺨과 부드러운 몸짓, 섬세한 옷 표현 등은 8세기 전반 신라의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2]
천판(天板, 종의 가장 윗부분 평평한 면)의 명문에 따르면 휴도리(休道里)라는 귀부인이 시주하여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 2. 문양
종의 무늬대[紋樣帶]는 모두 당초문과 반원형으로 구획지은 속에 천인상으로 장식되었다. 종신에는 당초문 띠를 바깥에 두른 연화문 당좌(撞座)와 병좌주악천인상(竝座奏樂天人象)을 두 군데 배치하고 있다.현존하는 한국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조성되어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상원사로 옮겨졌으며,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춘 대표적인 범종이다.[2] 음통이 있는 종뉴 아래에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이 연결된 형태인데,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 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 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다. 종신의 상대·하대, 4유곽의 문양은 모두 당초문을 바탕으로 2~4인의 작은 비천상이 있는 반원권문이 새겨졌고, 종복에 비천상과 교대로 있는 당좌는 8판 연화문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비천상은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구름 위에서 천의(天衣) 자락을 흩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고 있는데, 볼록한 두 뺨,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 사실풍 불교조각 양식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2] 이러한 상원사 종에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형, 상대·하대, 4유곽 등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 종의 전형이 되어, 양식적인 변천 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모든 종에 계승된다.[2]
2. 3. 비천상
종의 몸체(종신)에는 비천상과 당좌가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2] 특히 비천상은 매우 경쾌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구름 위에서 천의 자락을 흩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고 있다. 볼록한 두 뺨,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불교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2]3. 제작 배경 및 역사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만들어진 종으로, 현재 남아있는 한국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앞서 제작되었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지금의 오대산 상원사로 옮겨졌다.[2] 한국 범종의 고유한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종으로 평가받는다.[2]
3. 1. 제작 배경
725년 성덕왕 재위 시기에 만들어진 종으로, 현재 남아있는 한국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앞서 제작되었다. 높이는 1.7m이다. 종의 윗부분인 천판에 새겨진 글(명문)에 따르면, 휴도리(休道里)라는 귀족 여성이 시주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3. 2. 역사
725년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종으로, 현재 남아있는 한국의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2] 이는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앞선 것이다. 높이는 1.7m이다. 종의 윗부분 평평한 곳(천판)에 새겨진 글(명문)에 따르면, 휴도리(休道里)라는 귀부인이 기증했다고 한다.이 종은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졌다.[2] 한국 범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춘 대표적인 종으로 평가받는다.[2]
종의 구조를 보면,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이 있는 용 모양의 고리(종뉴) 아래로 종 몸체(종신)가 안쪽으로 약간 오므라들며 연결된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이상적인 비율과 안정감 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을 보여주며, 세부 묘사 또한 매우 사실적이다.[2] 종 몸체 윗부분(상대)과 아랫부분(하대), 그리고 네모난 유곽의 무늬는 모두 당초문을 바탕으로 하며, 2~4명의 작은 비천상이 새겨진 반원 모양의 무늬(반원권문)가 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8개의 꽃잎을 가진 연화문으로 표현되었고, 종 몸체에는 당좌와 번갈아 가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병좌주악천인상)이 배치되어 있다.[2]
특히, 하늘을 나는 선녀를 묘사한 비천상은 매우 경쾌한 모습이다. 구름 위에서 옷자락(천의)을 흩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볼록한 두 뺨과 부드러운 몸짓, 옷의 표현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2]
상원사 동종에서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 형태, 상대와 하대, 4개의 유곽 등의 구조적 특징은 이후 만들어지는 한국 종의 기본적인 틀(전형)이 되었으며, 시대에 따른 양식 변화를 거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2]
4. 의의 및 평가
725년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이 종은 현재 남아있는 한국의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앞선 것이다. 높이는 1.7m이다. 천판의 명문에 따르면 휴도리(休道里)라는 귀부인이 시주하여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이 종은 한국 범종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들을 모두 갖추고 있어 한국 종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2] 특히, 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는 음통이 있는 종뉴 아래로 잘록하게 오므라든 종 몸체가 조화롭게 연결되어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도 매우 사실적이다.[2]
종의 위쪽과 아래쪽 테두리(상대·하대)와 네 곳의 유곽에는 당초문을 바탕으로 하여 반원 모양의 틀 안에 2~4명의 작은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종 몸체에는 당초문 띠를 두른 연꽃 모양의 당좌(종을 치는 부분)와 그 사이에 병좌주악천인상(竝座奏樂天人象)이 번갈아 2곳에 배치되어 있다.[2] 특히 구름 위에서 천의 자락을 가볍게 흩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는 비천상의 모습은 매우 생동감이 넘친다. 통통한 뺨과 부드러운 신체 표현 등은 8세기 전반 신라의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2]
상원사 동종에서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 몸체 형태, 상대와 하대, 네 개의 유곽 등의 구조적인 특징은 이후 만들어지는 모든 한국 종의 기본 틀, 즉 한국 종의 전형이 되어 양식적인 변화를 거치며 계승되었다.[2] 이 종은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상원사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2]
5. 사진
6. 현지 안내문
현존하는 한국종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조성되어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상원사로 옮겨진 것으로, 한국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범종이다.[2]
음통이 있는 종뉴 아래에 안으로 오무라든 종신이 연결된 형태인데,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 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 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다. 종신에 있는 상대·하대, 4개의 유곽 문양은 모두 당초문을 바탕으로 2~4인의 작은 비천상이 있는 반원권문이 새겨졌고, 종복에 비천상과 교대로 있는 당좌는 8판 연화문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비천상은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구름 위에서 천의(天衣) 자락을 흩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고 있는데, 볼록한 두 뺨,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 사실풍의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2]
이러한 상원사 동종에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 형태, 상대·하대, 4유곽 등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종의 전형이 되어, 양식적인 변천 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모든 종에 계승된다.[2]
참조
[1]
웹사이트
상원사 동종(上院寺銅鐘)
http://encykorea.aks[...]
2019-05-31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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