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교
1. 개요
서상교는 1924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대구상업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42년, 항일 비밀 학생 결사 태극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태극단은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항하며 조직 확대를 위해 노력했으나, 1943년 일경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8·15 광복으로 출옥했다. 2018년 별세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 이름 | 서상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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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23년 11월 7일 |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북도 대구 |
| 사망일 | 2018년 3월 13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강동구 보훈병원 (노환 패혈증으로 인한 병사)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송파구 |
| 본관 | 달성서씨 |
| 경력 | 평화통일자문위원 광복회 부회장 광복회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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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력 | 경상북도 대구상업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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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훈 | 1963년 6월 6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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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현풍초등학교 동문 -
박관재
박관재는 민주노총 조직부장,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한국노동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신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노동 분야와 더불어 연극 분야에서도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
대구현풍초등학교 동문 -
고성국
고성국은 정치학 박사이자 정치 평론가로, 고려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추적 60분》 진행자로 활동했으며, 친박근혜 성향 논란과 방송 부적절 발언 논란을 겪은 후 현재 유튜브 채널 《고성국TV》를 통해 보수적인 정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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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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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장 -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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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장 -
문희갑
문희갑은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장과 경제기획국장을 지내며 경제 정책 수립에 참여했고, 국회의원과 대구광역시장을 역임하며 지방자치단체경영대상 수상 및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기여했다.
2. 생애
경상북도 대구 남산정에서 태어나 남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상업고등학교에 재학하였다. 1942년 대구상고 재학 중 항일 비밀 학생 결사 태극단을 조직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2018년 3월 13일에 별세한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1. 태극단 조직과 활동
1942년 6월, 대구고등상업학교 동급생 이상호, 김상길 등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항일 비밀 학생 결사 태극단을 조직하였다.
태극단(太極團)이라는 명칭은 대한제국 이래 사용되어온 태극기를 상징하며, TKD라는 약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일본군 입대 반대 등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항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한편, 조직 확대를 위해 동지 포섭 활동에 주력하였다.
최초 모의 장소는 대구광역시 앞산 안지랑골에 있는 약수터(현재 빨래터)였다. 1년 후 1943년 4월부터 김정진, 이준윤, 이원현, 윤삼용 등을 동지로 포섭하였으며, 계속 학교 단위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1943년 5월,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비파산 약수터에서 그동안 가입한 단원들 전원이 모여 결단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태극단 간부들은 구체적 투쟁 방안을 협의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태극단의 조직 체제는 크게 일반 조직과 특수 조직으로 나누었으며, 최고의결기관으로 간부회의를 구성하였다. 일반 조직은 육성부 아래 관방국, 체육국, 과학국 등 3국을 두고, 그 밑에 군사부, 항공부 등 10여 부를 두어 체계화했다. 특수 조직은 건아대라 칭하여 중학교 1, 2학년생과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을 대원으로 가입시켜 장차 단원으로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때 서상교 선생은 체육국장으로서 단원의 훈련 활동을 지도, 감독하였다.
태극단은 조직 확대를 통하여 전국의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여론을 환기시키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고자 했다. 국내에서의 투쟁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항쟁을 계속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단원들은 용두산, 비파산 등 비밀 장소를 이용하여 학술연구토론회, 각종 체육회 등을 개최하여 동지 간 유대 의식과 민족적 교양 함양 및 체력 증강에 힘을 쏟았다. 또한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하여 군사 관계 서적 번역, 글라이더 및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를 추진하였다.
2.2. 투쟁과 시련
태극단은 조직을 확대해 전국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여론을 환기하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고자 했다. 만약 국내에서의 투쟁이 어려울 경우,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항쟁을 계속할 계획도 세웠다. 단원들은 용두산, 비파산 등 비밀 장소에서 학술연구토론회, 각종 체육회 등을 개최하여 동지 간 유대 의식, 민족적 교양 함양 및 체력 증강에 힘썼다. 또한 군사학 연구에도 힘써 군사 관계 서적 번역, 글라이더 및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1943년 5월, 한 단원의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여 밀고함으로써 태극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경에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서상교는 학교에서 수업 도중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정광해 등과 함께 대구 주재소에 끌려간 그는 모진 고문을 받았고, 1944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소년범 최고형인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같은 해 2월 5년형으로 감형되었으나,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2.3. 광복과 이후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2018년 3월 13일 별세하였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4. 서훈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3월 1일에 서상교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