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부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서희부대는 2003년 4월 30일, 이라크 건설 및 복구 지원을 위해 파병된 대한민국 군 부대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고 대한민국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파병이 결정되었으며, 575명 규모로 파견되어 미군 및 연합군의 기지 건설 지원과 병원 및 학교 시설 보수 작업을 수행했다. 2004년 자이툰 부대 추가 파병 이후에는 제마 부대와 함께 자이툰 부대에 흡수 통합되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2008년 12월 임무를 종료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공병부대 - 대한민국 아이티 재건지원단
대한민국 아이티 재건지원단은 2010년 아이티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파견되어 도로 및 교량 복구, 학교 및 병원 건설, 의료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2012년 철수한 대한민국 군 부대이다. - 대한민국의 공병부대 - 다산부대
다산부대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요청으로 창설된 대한민국 육군 제100건설공병대대로, 건설 공병, 운전, 정비 병과로 구성되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되어 도로, 건물 복구, 학교 신축 등 건설 임무를 수행하며 국제 평화 유지 활동에 기여했지만, 2005년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해체되었고 201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 서희 - 강동 6주
강동 6주는 993년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가 요나라로부터 확보한 압록강 동쪽의 여섯 지역으로, 과거 고구려 영토였으나 여진족이 거주하던 곳을 고려가 외교 및 군사적 정복을 통해 편입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거란의 침입을 막아 영유권을 확고히 한 지역이다. - 서희 - 서눌
서눌은 996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형부시랑, 상서이부시랑 등을 역임하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딸 원목왕후가 현종의 비가 되면서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거란과의 외교 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부대 및 편성 - 대한민국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
대한민국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자이툰 부대)은 2004년 이라크 재건과 평화 유지를 위해 창설되어 아르빌 지역에서 경비, 재건 임무를 수행하다가 2008년 철수했다. -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부대 및 편성 - 제58항공수송단
제58항공수송단은 2004년 자이툰 부대 지원을 위해 창설되어 이라크에 파병되었으며, 4년 3개월간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2008년 자이툰 부대 철수에 따라 철수하였다.
서희부대 | |
---|---|
부대 정보 | |
이름 | 대한민국 제1100건설공병지원단 |
원어 이름 | 大韓民國 第1100建設工兵支援團 |
활동 기간 | 2003년 4월 30일 ~ 2008년 12월 20일 |
병과 | 공병 |
종류 | 비전투부대 |
역할 | 이라크 재건 지원 |
규모 | 575명 |
본부 | 남부 나시리아 |
별명 | 서희부대(徐熙 部隊) |
참전 | 이라크 전쟁 |
2. 역사
2003년 3월, 미국이 9.11 테러로 미국을 공격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단과 손을 잡은 이라크에 공격을 개시했다. 미국은 대한민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우리 정부는 2003년 4월 2일에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4월 30일, 정부는 575명 규모의 이라크 건설 및 복구지원 목적으로 서희부대와 의료지원 목적으로 100명 규모의 제마 부대와 같이 이라크로 파병하였다.
서희부대는 미군 및 연합군의 기지 건설 지원과 이라크 전후 복구건설 지원으로 병원 및 학교시설을 보수 작업을 펼쳤다.
2004년 4월, 대한민국 정부는 민사와 재건을 목적으로 자이툰 부대를 추가 파병하게 된다. 그리하여 3진 부대원은 자이툰 부대의 주둔지가 있는 아르빌로 이동시켜 제마 부대와 같이 자이툰 부대로 흡수 편성하게 되어 2008년 12월 임무를 마쳤다.
2. 1. 파병 결정 과정
2003년 3월,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대한민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심 끝에 파병을 결정하였고, 2003년 4월 2일, 대한민국 국회는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파병의 명분과 실효성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거웠으며, 특히 진보 진영에서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명분 부족과 대량살상무기 발견 실패 등을 이유로 파병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으나, 결국 한미동맹 강화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고려하여 조건부 찬성으로 당론을 모았다.2. 2. 서희 부대와 제마 부대 파병 (2003년)
2003년 3월,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대한민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4월 2일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4월 30일, 정부는 이라크 건설 및 복구 지원을 위한 575명 규모의 서희부대와 의료 지원을 위한 100명 규모의 제마 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하였다.서희부대는 미군 및 연합군의 기지 건설을 지원하고,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병원 및 학교 시설 보수 작업을 수행했다. 제마 부대는 이라크 현지 주민과 파병 장병들에 대한 의료 지원 활동을 펼쳤다.
2004년 4월, 대한민국 정부는 민사 및 재건을 목적으로 자이툰 부대를 추가 파병하면서, 3진 부대원을 아르빌로 이동시켜 제마 부대와 함께 자이툰 부대로 흡수 편성했다. 서희부대는 2008년 12월 임무를 종료했다.
2. 3. 자이툰 부대 추가 파병 및 통합 (2004년 - 2008년)
2003년 3월,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대한민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4월 2일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을 통과시켰고, 4월 30일, 575명 규모의 서희부대와 100명 규모의 제마 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하였다. 서희부대는 미군 및 연합군의 기지 건설 지원과 이라크 전후 복구 건설 지원으로 병원 및 학교 시설 보수 작업을 펼쳤다.2004년 4월, 대한민국 정부는 민사 작전 및 재건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자이툰 부대를 추가 파병했다. 기존 서희부대와 제마 부대는 자이툰 부대로 흡수 통합되어 아르빌 지역에서 현지 주민들의 생활 안정과 재건 사업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자이툰 부대는 2008년 12월 임무를 종료하고 철수하였으며,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이루어진 파병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3. 파병의 의의와 평가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