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조 고리
1. 개요
세르조 고리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 칼리아리, 유벤투스에서 뛰며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1970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고리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유러피언컵과 인터콘티넨털컵 우승을, 유벤투스에서 UEFA컵 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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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Sergio Gori |
|---|---|
| 출생일 | 1946년 2월 24일 |
| 출생지 | 이탈리아 밀라노 |
| 사망일 | 2023년 4월 5일 |
| 사망지 | 이탈리아 세스토 산 조반니 |
| 키 | 1.78m |
| 포지션 | 미드필더, 공격수 |
| 1964–1966 | 인테르나치오날레 (10경기, 2골) |
|---|---|
| 1966–1968 | 비첸차 (56경기, 16골) |
| 1968–1969 | 인테르나치오날레 (14경기, 1골) |
| 1969–1975 | 칼리아리 (166경기, 33골) |
| 1975–1977 | 유벤투스 (29경기, 7골) |
| 1977–1978 | 엘라스 베로나 (18경기, 3골) |
| 1978–1979 | 산탄젤로 (26경기, 5골) |
| 합계 | 319경기, 67골 |
| 1970 | 이탈리아 (3경기, 0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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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FA 월드컵 | 준우승 ( 1970 멕시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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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 -
프란스 얀선스
프란스 얀선스는 벨기에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KFC 투른호우트, 리르서 SK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1970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1972에 참가했으며, 2024년에 사망했다. -
1970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 -
코무나르도 니콜라이
코무나르도 니콜라이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칼리아리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1970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24년에 사망했다. -
세리에 A의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세리에 A의 축구 선수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1946년 출생 -
엘리자베스 슬레이든
엘리자베스 슬레이든은 잉글랜드 배우로, BBC SF 드라마 《닥터 후》에서 사라 제인 스미스 역을 맡아 세 번째, 네 번째 닥터의 컴패니언으로 출연했으며, 이후 스핀오프 드라마 《사라 제인 어드벤처》에서 주연을 맡았다. -
1946년 출생 -
변인선
변인선은 평양 출신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으로, 인민군 상장까지 진급하여 제7군단 및 제4군단 사령관, 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2014년 예편 후 목함 지뢰 도발을 일으켜 2015년 총살형을 당했다.
2. 클럽 경력
고리는 선수 시절 세리에 A의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인테르, 칼리아리, 유벤투스에서 모두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조반니 페라리, 피에트로 파나, 알도 세레나, 아틸리오 롬바르도와 함께 세리에 A 3개 팀에서 우승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2.1. 초기 경력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비첸차)
밀라노 출신인 고리는 불과 18세의 나이로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신고식을 치렀고, 1964년과 1966년 사이 1960년대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전성기인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 시절에 10번의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경험을 쌓기 위해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른 루이스 비니시우와 맞바뀌어 비첸차로 이적하여 2년을 활약했다. 1968년, 그는 비첸차에서 인상적인 활약으로 1년 동안 인테르나치오날레로 복귀했으나, 이듬해에 로베르토 보닌세냐와 교환되면서 칼리아리로 안젤로 도멘기니와 함께 방출되었다. 고리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1964-65 시즌과 1965-66 시즌에 세리에 A를 우승했고, 1964-65 시즌 유러피언컵과 1965년 인터콘티넨털컵을 우승했다.
2.2. 칼리아리 시절 (전성기)
1969-70 시즌, 고리는 칼리아리의 주축 선수로 거듭나 소속 구단 사상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방패(리그 우승)를 획득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루이지 리바와 함께 공격을 맡아 리바의 후방에서 후방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칼리아리에서의 활약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70년 월드컵에 참가하기도 했다.
2.3. 유벤투스 시절 (말년)
1975년, 고리는 유벤투스로 이적해 2년을 보냈다. 1976-77 시즌에는 자신의 4번째 리그 우승과 UEFA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1977-78 시즌에 엘라스 베로나에서 마지막 세리에 A 시즌을 보낸 뒤, 세리에 C2의 산탄젤로에서 1년을 끝으로 세리에 C1 승격을 이룬 뒤 1979년에 축구화를 벗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고리는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개최국인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 도멘기니를 대신해 출전했다.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는 월드컵 이후 1970년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두 경기에 더 출전했다.
4.1. 클럽
밀라노 출신인 고리는 불과 18세의 나이로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신고식을 치렀고, 1964년과 1966년 사이 1960년대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전성기인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 시절에 10번의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경험을 쌓기 위해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른 루이스 비니시우와 맞바뀌어 비첸차로 이적하여 2년을 활약했다. 1968년, 그는 비첸차에서 인상적인 활약으로 1년 동안 인테르나치오날레로 복귀했으나, 이듬해에 로베르토 보닌세냐와 교환되면서 칼리아리로 안젤로 도멘기니와 함께 방출되었다. 고리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1964-65 시즌과 1965-66 시즌에 세리에 A를 우승했고, 1964-65 시즌 유러피언컵과 1965년 인터콘티넨털컵을 우승했다.
1969-70 시즌, 그는 칼리아리의 주축 선수로 거듭나 소속 구단 사상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방패(리그 우승) 획득의 업적을 쓴 선수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루이지 리바와 공격을 맡아 리바의 후방에서 후방 스트라이커로 보조했다.
1975년, 고리는 유벤투스로 이적해 2년을 보내며 자신의 4번째 리그 우승과 UEFA컵 우승을 1976-77 시즌에 동시에 이룩했고, 1977-78 시즌에 엘라스 베로나에서 마지막 세리에 A 시즌을 보낸 뒤 세리에 C2의 산탄젤로에서 1년을 끝으로 세리에 C1 승격을 이룬 뒤 1979년에 축구화를 벗었다.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 칼리아리, 그리고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를 우승한 5명밖에 되지 않는 선수로 꼽히며, 같은 업적을 달성한 선수로는 조반니 페라리, 피에트로 판나, 알도 세레나, 그리고 아틸리오 롬바르도가 있다.
4.2. 국가대표팀
고리는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개최국인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 안젤로 도멘기니를 대신해 출전했다.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는 월드컵 이후 1970년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두 경기에 더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