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유씨
1. 개요
소비 유씨는 명 신종 만력 6년(1578년)에 후궁으로 선발되어 소비로 책봉되었으나, 총애를 받지 못했다. 명 희종 즉위 후 선의소비로 추존되었으며, 자녕궁에 기거했다. 신중하고 후한 성격으로 조정과 궁중에서 신망을 얻었으며, 명 사종은 유씨를 할머니처럼 존경했다. 숭정 15년에 86세로 사망했으며, 시호는 선의강소이고 천수산에서 이황귀비의 묘에 부장되었다.
| 원어이름: 宣懿昭妃 劉氏 | |
| 이름 | 선의소비 유씨 |
|---|---|
| 작위 | 비 (妃) |
| 시호 | 선의강소황태비 (宣懿康昭皇太妃) |
| 별호 | 소비 (昭妃) |
| 출생일 | 1557년 |
| 사망일 | 1642년 |
| 매장지 | 북경 천수산 이황귀비묘원 내 |
| 아버지 | 유응절 (劉應節) |
| 배우자 | 만력제 |
| 친인척 | 동생 좌도독 유대 (劉岱), 동생 지위첨사 유화 (劉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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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제의 후궁 -
덕빈 이씨
명나라 만력제의 후궁인 덕빈 이씨는 세 명의 옹주를 낳았으나 모두 요절했고, 안빈 왕씨와 달리 진봉되지 못한 채 62세에 사망하여 베이징시 하이뎬구에 묻혔다. -
만력제의 후궁 -
의비 양씨
명나라 만력제의 후궁인 의비 양씨는 미녀 선발로 입궁하여 의비에 책봉되었으나 자녀 없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영혜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평민 출신 아버지는 딸 덕분에 금의위 천호에 봉해졌다. -
1642년 사망 -
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의 과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을 반박하고 망원경을 개량하여 천문학적 업적을 남겼으며 지동설을 옹호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지만 근대 과학 발전에 기여하여 "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
1642년 사망 -
귀도 레니
귀도 레니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화가로, 볼로냐에서 미술을 배워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라파엘로풍의 고전주의 양식을 발전시켜 《아우로라》, 《무고한 어린이 학살》 등의 대표작을 남기며 당대 "라파엘로의 재림"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을 얻었고 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557년 출생 -
오다 노부타다
오다 노부타다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며 후계자로서 기대를 모았으나 혼노지의 변에서 아버지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 무장이다. -
1557년 출생 -
도쿠이 미치유키
무라카미 수군 출신인 도쿠이 미치유키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긴 무장으로, 임진왜란 중 사망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사망 시기는 불분명하다.
2. 생애
소비 유씨는 평민 유응절의 딸로, 어머니는 마씨였다. 명 신종 만력 6년(1578년) 왕희저, 양씨와 함께 후궁으로 선발되었으며, 그해 2월에 소비(昭妃)로 책봉되었다.
2.1. 입궁과 책봉
만력 6년(1578년), 유씨는 왕희저, 양씨와 함께 후궁으로 선발되었다. 그해 2월, 21세의 나이로 소비(昭妃)에 책봉되었다. 아버지 유응절은 정5품 금의위 천호에 임명되었다.
2.2. 궁중 생활
명 신종 만력 6년(1578년), 21세의 나이로 소비(昭妃)에 책봉되었다. 평생 총애를 받지 못하고 자녀도 낳지 못하였다. 명 희종이 즉위한 후, 천계 연간에 선의소비(宣懿昭妃)로 추존되어 자녕궁에 기거했다. 명나라는 신종 때 자성황태후가 세상을 떠난 뒤 황태후가 나타나지 않자, 유태비가 태후의 인새를 관장했다.
유태비는 신중하고 후한 성격으로, 여러 왕을 사랑으로 보듬어 조정과 궁중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명 사종은 예를 갖추어 할머니처럼 모셨다. 한번은 사종 때, 유태비를 만나고 태비가 앉게 하자, 사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깜빡 졸게 되었다. 유태비는 그 상황을 보고도 나무라지 않고, 좌우 궁인들에게 사종을 깨우지 말라고 명하고, 다른 사람에게 옷을 가져오게 하여 사종에게 덮어주었다고 한다. 이윽고 사종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의관을 정돈한 후, 유태비에게 "신종 연대는 국내외 일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재난이 많아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상주를 읽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태비 앞에서 정신이 부족하여 실례를 범했습니다"라고 사죄하였다. 유태비는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하였다. 유씨는 숭정 15년에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선의강소(宣懿康昭)이다.
천계제 즉위 후 정치적인 이유로 태비들 중에서 주도적인 지위에 올라 선의의 휘호가 내려졌다. 숭정 15년에 훙거했다. 천수산에서 이황귀비의 묘에 부장되었다.
2.3. 희종 즉위 후
명 희종이 즉위한 후, 유씨는 천계 연간에 선의소비(宣懿昭妃)로 추존되어 자녕궁에 기거했다. 명나라는 신종 때 자성황태후가 세상을 떠난 뒤, 황태후가 나타나지 않자, 유태비가 태후의 인새를 관장했다.
유태비는 신중하고 후한 성격으로, 여러 왕을 사랑으로 보듬어 조정과 궁중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명 사종은 예를 갖추어 할머니처럼 모셨다. 한번은 사종 때, 유태비를 만나고 태비가 앉게 하자, 사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깜빡 졸게 되었다. 유태비는 그 상황을 보고도 나무라지 않고, 좌우 궁인들에게 사종을 깨우지 말라고 명하고, 다른 사람에게 옷을 가져오게 하여 사종에게 덮어주었다. 이윽고 사종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의관을 정돈한 후, 유태비에게 "신종 연대는 국내외 일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재난이 많아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상주를 읽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태비 앞에서 정신이 부족하여 실례를 범했습니다"라고 사죄하였다. 유태비는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하였다.
천계제 즉위 후 정치적인 이유로 태비들 중에서 주도적인 지위에 올랐으며, 숭정 15년에 86세의 나이로 훙거했다. 시호는 선의강소(宣懿康昭)이다. 천수산에서 이황귀비의 묘에 부장되었다.
2.4. 숭정제의 존경
유씨는 신중하고 후한 성격으로, 여러 왕을 사랑으로 보듬어 조정과 궁중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숭정제은 예를 갖추어 할머니처럼 모셨다. 한번은 숭정제가 유태비를 만나고 태비가 앉게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깜빡 졸게 되었다. 유태비는 그 상황을 보고도 나무라지 않고, 좌우 궁인들에게 숭정제를 깨우지 말라고 명하고, 다른 사람에게 옷을 가져오게 하여 덮어주었다고 한다. 숭정제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의관을 정돈한 후, 유태비에게 "신종 연대는 국내외 일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재난이 많아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상주를 읽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태비 앞에서 정신이 부족하여 실례를 범했습니다"라고 사죄하였다. 유태비는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