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요시시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 개요
소 요시시게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인물로, 1532년에 태어나 1588년에 사망했다. 그는 소 씨의 제17대 당주였으며,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와 아시카가 요시테루로부터 이름을 받았다. 1555년 을묘왜변 당시 왜구 토벌에 협력하고, 1557년에는 조선과 통상 조약을 맺어 무역을 확대하여 소 씨 가문의 번영을 이끌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이후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했으나, 무리한 요구 속에서 교섭 도중 사망했다.
| 씨명 | 종씨 |
|---|---|
| 이름 | 종의조 |
| 로마자 표기 | Sō Yoshishige |
| 다른 이름 | 웅태랑 (어릴 적 이름) 의친 (처음 이름) 언칠 (통칭) 한재일구 (호)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묘소 | 대마시이즈하라 정 일길의 장수원 이즈하라 정 중촌의 태평사 |
|---|
| 시대 | 전국 시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
| 출생 | 1532년 |
| 사망 | 1589년1월 28일 |
| 관위 | 형부소보 사누키 수 |
|---|---|
| 막부 | 무로마치 막부 대마도국수호직 |
| 부모 | 아버지: 종청강 어머니: 종국친의 딸, 명석 (천광원) |
|---|---|
| 자녀 | 양자: 종무상, 종의순, 종의지 (*모두 제15대 당주 종장성의 자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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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씨 (쓰시마)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소씨 (쓰시마) -
소 요시토시
소 요시토시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쓰시마 후추번의 초대 번주이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했고, 조선과의 국교 회복에 힘써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단절되었던 조선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기여했다. -
1589년 사망 -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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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9년 사망 -
허난설헌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으로, 진보적인 아버지와 문인 집안의 영향으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보였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과 자녀의 죽음, 시대적 제약 속에서 요절하였고, 사후 동생 허균에 의해 간행된 《난설헌집》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중국과 일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
센고쿠 무장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센고쿠 무장 -
사나다 노부시게
2. 생애
덴분(天文) 원년(1532년) 소 무네야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1542년 무로마치 막부 제12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로부터 편휘를 받아 요시치카라고 칭했다. 1553년 아버지로부터 가독을 이어받아 소씨의 제17대 당주가 되었고, 1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로부터 거듭 편휘를 받아 요리토모로 개명했다(이후 '義'자는 소씨의 통자가 된다). 1555년 을묘왜변이 발발하여 조선의 왜구 토벌에 협력했다. 1557년 조선과 정사조약을 맺어 무역을 확대하여 소씨의 무역 번영을 가져왔다.
1559년 쓰나 도치카(소 마사모리의 이복 동생) 등이 모반을 일으켰으나, 이키에서 이를 진압하여 소씨의 통일을 이룩했다. 1566년 가독을 양자 소 시게히사에게 물려주고 은거했지만, 실권은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후 시게히사와 소 요시즈미가 요절하자, 소 요시토시를 당주로 삼고 그 후견인으로서 정치 실권을 쥐었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에 참진하여 쓰시마를 본령으로 안도받았다. 이후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 조선과의 교섭을 진행했다. 히데요시는 요시시게에게 1년 안에 조선 국왕이 일본에 종속하지 않으면 조선에 출병하겠다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요시시게는 유노키 야스히로를 조선에 파견하여 교섭했으나, 1588년 교섭 도중 병사했다. 향년 57세. 소 요시토시가 당주가 되어 뒤를 이었다.
2.1. 어린 시절과 가독 상속
덴분(天文) 원년(1532년) 소 하루야스(宗晴康)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로마치 막부 제12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에게 헨키를 받아 어린 시절 이름은 요시치카(義親)였다. 덴분 22년(1553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 씨 제17대 당주가 되었다. 고지(弘治) 3년(1557년) 조선과 정미약조를 맺고 무역을 확대하여 소 씨 무역 번영을 가져왔다.
2.2. 조선과의 관계 및 내부 갈등
1555년 을묘왜변이 발발하자 요시시게는 조선의 왜구 토벌에 협력했다. 1557년에는 조선과 통상 조약인 정사조약을 맺어 무역을 확대, 소 씨의 무역 번영을 이끌었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이후, 히데요시는 요시시게에게 1년 안에 조선 국왕을 일본에 종속시키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요시시게는 가신 유노키 야스히로를 조선에 파견하여 교섭했지만, 1588년 12월 12일 교섭 도중 병으로 사망했다.
2.3. 규슈 정벌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1587년(덴쇼 1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이 시작되자, 5월에 소 요시시게는 상속자로 복귀하여 다시 소씨의 당주가 되었다. 소 요시시게는 요시토시와 함께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에 참전했기 때문에, 쓰시마 1국의 봉토를 받게 되었다.
2.4. 조선과의 외교와 죽음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요시시게는 조선과의 교섭을 맡게 되었다. 히데요시는 요시시게에게 1년 안에 조선 국왕을 일본에 종속시키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요시시게는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 협박을 억누르면서, 가신인 유즈야 야스히로를 조선에 파견하여 교섭을 진행했다. 요시시게는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을 막고 조선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1588년 음력 12월 12일(1589년 1월 28일) 교섭 도중 향년 57세로 병사하였다. 요시시게의 사후 양자인 요시토시가 가독을 이었다.
3. 가신
| 시기 | 이름 | 비고 |
|---|---|---|
| 가독 상속 시 | 구보나 조친 | 소 무네마사의 이복 동생, 요시노리의 숙부 |
| 가독 상속 시 | 소 조상 | 무네마사의 아들, 요시노리의 양자, 훗날 시게히사 |
| 가독 상속 시 | 소 조굉 | 무네마사의 아들, 요시노리의 양자, 훗날 요리즈미 |
| 가독 상속 시 | 소 조국 | 무네마사의 아들, 시게히사·요리즈미의 동생, 요시노리의 형 |
| 가독 상속 시 | 사스 조만 | 쓰시마 국 수호 대리, 훗날 가게미쓰로 개명 |
| 가독 상속 시 | 야나가와 조장 | |
| 가독 상속 시 | 야나가와 조신 | 야나가와 조장의 동생 |
| 당주 재취임 이후 | 스기무라 조장 | 사스 가게미쓰의 동생, 스기무라 히로유키의 손자. 스기무라 씨는 원래 소 씨의 서류 |
| 당주 재취임 이후 | 야나가와 조흥 | 야나가와 조노부의 손자, 아버지는 치나가. 야나가와 사건에 관여 |
3.1. 가독 상속 시
* 구보나 조친 (소 무네마사의 이복 동생, 요시노리의 숙부)
* 소 조상 (무네마사의 아들, 요시노리의 양자, 훗날의 시게히사)
* 소 조굉 (무네마사의 아들, 요시노리의 양자, 훗날의 요리즈미)
* 소 조국 (무네마사의 아들, 시게히사·요리즈미의 동생, 요시노리의 형)
* 사스 조만 (쓰시마 국 수호 대리, 훗날 가게미쓰로 개명)
* 야나가와 조장
* 야나가와 조신 (조장의 동생)
3.2. 당주 재취임 이후
* 스기무라 조장 (사스 가게미쓰의 동생, 스기무라 히로유키의 손자. 스기무라 씨는 원래 소 씨의 서류였다.)
* 야나가와 조흥 (조노부의 손자, 아버지는 치나가. 야나가와 사건에 관여했다.)